12화 파밍
내가 강해질 수 있는 방법.
간단하다. 공략자 칭호를 받는 시점에서 이미 정해진 거나 다를 바 없으니까.
“공략자 칭호를 이용한 스펙 업.”
다른 몬스터를 사냥할 수 없는 지금 유일하게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이다.
맨몸으로 운동하는 것도 방법일 수는 있지만.
“식량이 없지.”
매번 클리어를 하면 식량과 물을 주긴 했지만 계속 준다는 보장은 없었다.
6층만 가도 상점창이 열리는데 굳이 여기서 그 고생을 할 필요가 있을까.
고로 먼저 해야 할 건 2층 공략법 작성이다.
마침 타이밍도 좋았다.
난 빠르게 글쓰기 탭을 눌렀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는 법.”
산군 길드 놈들이 몰리면서 내 공략이 공지로 올라갔다.
대중에게 노출이 됐다는 거다. 10층 이하 채널 유일한 공략글이니까.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에게 내 닉네임을 각인시킨 상황.
괜히 눈치 보면서 각을 재 봤자 타이밍만 놓친다,
지금 반짝 관심받았다고 앞으로도 그럴 거란 보장도 없고.
“겸사겸사 냥냥펀치에게 도움도 줘야지.”
아무래도 2층에서 막힌 것 같으니.
지금 나와 함께 튜토리얼을 오르고 있는 사람 모두 소중한 증인이다. 정부와 대형 길드의 만행을 증명해 줄.
덤으로 내게 공헌도 점수를 줄 고객님들이기도 하고.
[쁘띠공듀]: 냥냥펀치 님. 2층 공략이 어려우시다구요?
걱정 마세요! 저 쁘띠공듀와 함께라면 그따위 댕댕이들은 ㅈ밥이랍니닷!
난 2층에서 마주쳤던 코볼트를 떠올렸다.
당시에는 함정으로 놈을 유인해서 잡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어차피 놈이 가지고 있는 볼트는 10개.”
2층에서 놈이 쐈던 볼트이 개수와 내가 3층에서 쏜 볼트의 개수를 세면 그 정도 된다.
그리고 2층에 있는 코볼트는 한 마리가 전부.
가장 위험한 건 2층에 도착하자마자 날아오는 기습 공격이고.
이 모든 것을 조합해 봤을 때 공략은 간단했다.
[쁘띠공듀]: 2층에 도착하자마자 일단 튀세요. 놈은 뒤편에 있습니다.
놈이 가지고 있는 볼트는 대략 10개 정도니 그것만 다 쏘게 만들면, 뾰롱!
그땐 매타작으로 조지면 되는 거예요.
그렇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니 2층의 수행 과제는 기습과 추격을 피해서 살아남는 거였다.
기습에 의한 당황스러움과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계속되는 추격과 벌어져 가는 상처는 시야를 좁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쉬운 길도 돌아가게 만들었다.
그 와중에 필드는 정글. 코볼트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만드는 효과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놈의 명중률을 급격하게 떨어트리는 역할도 있었다.
초보자를 위한 배려겠지. 적당히 숨구멍은 남겨 두겠다는.
정말이지 철저하게 계획된 싸움이다.
그러니까 튜토리얼이라는 거겠지만.
“진짜 악마가 만든 거 아닌가, 이 정도면.”
탑이라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곳이기도 하고.
신이든 악마든 초월적인 무언가가 개입된 건 확실하다.
대놓고 성직자로 활동하는 헌터도 있는 마당에.
이러다 없던 신앙심도 생기는 거 아닌가 몰라.
부디 냥냥펀치가 살아남길 빌 뿐이다.
난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누가 누굴 걱정하냐. 내 앞가림이나 잘해야지.”
이걸로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다 해 줬다.
나머지는 냥냥펀치의 몫.
가능하다면 살아 줬으면 좋겠다.
내가 특별히 인류애가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고. 그래야 공헌도 점수가 오르니까.
“100점이 되면 뭐를 주려나.”
난 물끄러미 칭호를 확인했지만 떠오르는 정보는 없었다.
S급 권능인 별을 주시하는 눈도 만능은 아닌 모양.
수많은 정보를 알려주기는 하지만 안 보이는 정보도 있고 제한적으로 보이는 것도 있다.
당장 저곳에 있는 함정.
[저승행 땅구덩이]
-저승으로 다이랙트! 진짜라니까요?
땅구덩이에 대한 설명도 계속해서 바뀌고 있고.
죽는다는 설명은 변함이 없지만.
더 나아가서 어떻게 죽는 건지, 어떤 조건으로 발동되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모든 걸 보여 주지는 않는다는 뜻.
-우웅
난 커뮤니티를 껐다.
1층 공략은 좀 이따가 쓰자.
한 번에 다 올려 봐야 밑천만 바닥나니까.
초반에 이목을 확 끄는 것도 좋지만 주기적으로 글을 올리지 못한다면 관심은 금방 사라질 거다.
그러니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길지는 않지만 탑을 오르면서 알게 된 사실 하나.
“탑은 도전을 종용한다.”
그리고 아직 3층에는 뒤져 볼 만한 곳이 더 있다.
바로 저거. 유일하게 발동되지 않은 즉사 함정 두 개.
3층은 안전하다고 했으니 건드려 봐도 되겠지.
난 조심스럽게 땅구덩이 함정에 다가갔고 그대로 창으로 내리찍었다.
-터엉!
“텅?”
안이 빈 소리가 난다.
그뿐이랴. 다른 것들과는 다르게 흠집도 났다.
내구도는 그리 강하지 않은 모양.
그렇다면.
“한번 부숴 보자!”
난 창을 꼬나쥐고 쉴새 없이 함정을 내려쳤고.
-캉!
-콰앙!
-쿠구구궁!
이내 균열이 간 바닥을 부술 수 있었다.
한 번에 무너지듯 꺼지는 바닥.
그리고 그 밑에는.
“음?”
의외로 별게 없었다.
대략 2미터 정도 되는 구덩이.
깊다면 깊지만 즉사할 높이는 아니다.
더군다나 밑바닥에 창이나 날붙이가 박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딱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있었으니.
“보석?”
기묘한 빛을 뿜는 자주색 보석이었다.
자수정이나 탄자나이트 같은데 크기가 제법 컸다.
얼추 탁구공 정도?
-턱
로프로 탈출구를 만든 난 함정 정중앙에 놓인 보석을 집었다.
은은하게 빛을 내뿜는 동시에 미적지근한 올라오는 온기.
기묘한 힘이 꿈틀대는 것이 생물체 같다는 착각까지 들 정도였는데 어째 어디선가 본 거 같다.
난 지그시 보석을 노려봤고 곧 권능이 발현됐다.
[중급 아케인 젬Arcane gem (A)]
-강력한 에너지를 품은 보석. 특정 조건 달성 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다.
-현자의 돌이 1퍼센트 함유되어 있는 귀품.
-호문클루스나 고급 골렘의 심장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A급 아이템!”
난 화들짝 놀라며 보석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A급 아이템을 함정에 태워?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함정에 빠진 사람을 반드시 죽이겠다는 악의마저 느껴진다.
심지어 아케인 젬이다.
마법사들에게는 보물과도 같은 물건.
“미쳤네. 진짜.”
대표적으로 알려진 마법 재료에는 마정석과 마나석이 있다.
몬스터에게 나오느냐 채굴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마나를 품은 결정체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아케인 젬 역시 마찬가지.
“에너지원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지.”
종류도 등급도 다양한 만큼 여러 의견이 나오지만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아케인 젬이 최고라고.
왜냐.
“최하급이어도 상급 마나석과 동일한 수준의 출력을 내니까.”
하물며 내가 들고 있는 건 중급.
실질적으로 마정석이나 마나석으로는 불가능한 퍼포먼스를 낼 수 있다는 거다.
위의 두 개가 화력발전소라면 아케인 젬은 원자력발전소.
감히 비빌 만한 게 아니다.
이러한 차이가 만들어지는 이유가 있다.
“여기에는 조금이라지만 현자의 돌이 들어가 있으니까.”
대단히 귀한 거다.
현자의 돌은 연금술의 정수.
현대의 기술로는 도저히 재현할 수 없는 신비의 물질이다.
아직까지 원형도 발견된 적 없고.
그저 현자의 돌이 들어간 아이템이 간혹 나와 실제한다고 짐작할 뿐이다.
실사용을 목적으로 하든 연구를 목적으로 하든 높은 가치를 지닌 건 확실하다.
“제작자에 따라 값어치가 더 뛴다는 것 같던데.”
난 서둘러 보석의 뒷면을 살폈다.
아케인 젬은 일반적인 아이템이 아니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존재가 인공적으로 만든 거지.
모든 공예가 그러하듯 제작자에 따라 그 성능이 갈리고는 했다.
음각으로 파인 글씨. 알파벳으로 보이는 문자의 발음은.
“…존 트레일러.”
처음 들어보는 인물이었다.
기억을 되짚어 봤지만 모르겠다.
비주류 인물인가.
머리를 긁적인 것도 잠시.
-파앗!
권능이 발휘됐다.
[존 트레일러]
-먼 옛날, 92층까지 올랐던 현자.
-홀로 남은 그는 인공생명체 호문클루스를 제작해 탑을 공략하려 했습니다.
-가끔은 보석을 바라보며 그의 업적을 기려 보는 건 어떨까요?
“92층?”
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인류가 개척한 탑의 최상부는 미국의 데미 다이얼이 오른 64층이다.
아직 70층대도 오르지 못했다는 말.
그런데 92층이라니.
“설마?”
난 눈을 찌푸렸다.
탑이라는 건 지금에만 존재했던 게 아닌 건가.
어쩌면 과거에도, 지구가 아닌 다른 어딘가에서도 나타난 걸지도 모른다.
애초에 몬스터라는 것도 지구의 생물이 아니고.
그럴듯한 추론이었다.
던전에서 나오는 인공 건축물.
사람이 사용했을 게 분명한 아이템과 아티팩트.
드물지만 아이템에 적혀 있는 문자까지.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문자도 있었지만 현재 우리가 쓰는 문자와 유사한 것들도 종종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전문지에서도 비슷한 논문을 봤던 거 같은데.”
논리적 비약이 심하고 확실한 물증이 없어 흐지부지 넘어가기는 했지만.
“한가롭게 그런 걸 생각할 때는 아니군.”
잠시 사색에 빠졌던 난 아케인 젬을 배낭에 챙기고 구덩이를 빠져나왔다.
내게 중요한 건 탑을 오르는 것이니까.
아직 3층이다. 갈 길이 까마득하다.
“남은 건 하난가.”
어깨를 풀며 앞으로 나아갔다.
4층으로 올라가기 전 마지막으로 살펴볼 함정은 블랙 타일.
솔직히 조금 겁난다.
땅구덩이 함정은 어떤 식으로 발동될지 짐작이라도 됐지 이건 원리 자체를 모르겠다.
“건드려도 되나?”
되겠지?
일단 안전하다고 했으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스윽
난 바닥에 바짝 엎드린 채 왼쪽 새끼손가락을 함정에 가져다 댔다.
굳이 신체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이쪽이 가장 쓸모가 적을 거 같아서.
이어지는 적막.
손가락을 댄지 시간이 좀 지났지만 별다른 반응은 없다.
[3층]
-안전합니다.
권능을 통해 보여지는 알림창도 그대로고.
괜히 쫄았네.
슬쩍 새끼손가락을 감싸 쥐고 쓰다듬어 주며 나이프를 찾았다.
아무래도 타일 형식이다 보니 날카로운 것으로 파내야 할 것 같다.
-칵!
타일 사이를 찌르자 조금이지만 안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천천히, 지렛대의 원리로 들어 올리다 보면.
-쩌억
“그렇지!”
타일이 손쉽게 들어 올려진다.
다행히 바닥에 접착제를 붙여 두지는 않은 모양.
아무래도 그 원인은 타일 안에 놓인 스크롤 때문인 것 같았다.
척 보기에도 난해한 마법진이 그려진 스크롤.
그저 종이일 뿐인데도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고.
권능을 통해 정체가 밝혀졌을 때는.
[버스트 프레임 스크롤 (A)]
-강력한 화염을 내뿜는다.
-1회용.
“와오.”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었다.
A급 공격 스크롤. 그것도 파괴력이 강한 화염계 스킬이 깃든 물건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헌터 마켓에서 1,000만원 가량에 팔렸던 거 같다.
1회성이기는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목숨을 구할 수도 있었으니까.
“3층이 보물 창고네.”
아낌없이 주는 던전 같으니.
난 스크롤을 곱게 접에 가슴 포켓에 넣었다.
혹시나 한쪽 팔이 날아가더라도 꺼낼 수 있는 위치로는 포켓이 제격이었으니까.
당연스럽게 신체 일부가 사라질 상황을 염두하는 나 자신이 슬프게 느껴졌지만 어쩌랴.
내가 있는 곳이 그런 곳인데.
탕탕.
난 포켓을 두들겼다.
가볍지만 방탄조끼라도 입은 듯한 든든함.
“튜토리얼 클리어까지 앞으로 두 층.”
6층까지 그리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