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요정의 공략법
난 알림창을 바라봤다.
6층까지는 시스템과 관련된 보상을 준다.
공략법은 무시하더라도 수많은 헌터가 증언한 거니까 맞겠지.
2층에서도 커뮤니티를 보상으로 받았고.
[3층 클리어 보상]
[스테이터스가 개방됩니다.]
-열심히 구른 만큼 스텟이 높겠죠?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보상이 나왔다.
드디어 객관적인 내 수준을 알 수 있는 건가.
스텟은 중요하다.
내 능력 전반을 알 수 있으니까.
그뿐이랴. 이렇게 객관화된 정보를 알아야 훗날 장비를 맞출 때도 편하다.
“등급이 붙는 아이템들은 요구 조건이 있으니까.”
근력 얼마, 민첩 얼마. 이런 식으로.
괜히 수준에 맞지도 않는 장비를 사 봤자 쓰지도 못한다는 거다.
“아래 등급의 아이템이야 상관없는 일이지만.”
모든 아이템에 조건이 붙지는 않으니.
난 탑으로 초대받기 전 봐 왔던 잡지를 떠올렸다.
헌터잡. 꽤 디테일한 정보와 잡지식이 많아서 애독했었는데.
“대충 B급 장비부터 조건이 달리기 시작한다고 했던가. AA급부터는 무조건 있다고 보는 게 편하고.”
그 아래 등급의 장비에도 조건이 붙는 경우가 있었지만 많지는 않다고 들었다.
마찬가지로 위 등급의 아이템이라고 무조건 착용 조건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하나하나 사용 조건이 있으면 너무 까다롭지 않겠나.
사람들이 모든 아이템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닌데.
미리 아이템에 맞춰 스텟을 키울 수는 없다는 뜻.
지금도 계속해서 새로운 아이템이 발견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헌터가 조건이 붙은 장비를 선호했는데.
“대체적으로 조건 달린 아이템이 더 강력하니까.”
그렇기에 헌터들은 점차 한 가지 콘셉트를 잡아 성장하게 된다.
아무래도 여러 스텟을 신경 쓰기보다는 하나에 집중하는 편이 더 빠르게 강해지니까.
착용할 수 있는 아이템도 그쪽으로 쏠리게 되고.
재밌게도 이런 시스템 덕분에 하위층은 어느 정도 형평성이 있는 편이었다.
길드의 지원도 한계가 생기니까. 좋은 거 줘 봤자 스텟이 안 맞으면 쓰지도 못하는 거다.
그래 봤자 지원을 못 받는 입장에서는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하지만.
“벌써 걱정할 필요는 없지.”
경쟁이야 길드 사이에서나 중요한 거고.
남들이야 앞서나가든 말든 나는 내 페이스에 맞춰서 착실히 올라가면 그만이다.
어차피 위로 올라갈수록 지원보다는 본인 능력이 중요하기도 하고.
고급 장비도 지금은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아직 튜토리얼도 공략하지 못했을뿐더러 아이템으로 부를 만한 장비조차 없으니까.
그래도 궁금하기는 하다.
“스테이터스.”
난 조금은 기대한 목소리로 스테이터스를 불러냈고.
[조현수 (최대 공략층-2층)]
-힘 5
-민첩 7
-체력 6
-마력 5
꽤나 단출한 스테이터스를 볼 수 있었다.
딱 운동 좀 한 일반인. 그 느낌인데.
기대한 내가 바보지.
살짝 맥이 빠졌다.
“그래도 평균은 좀 넘네.”
힘민체 합이 18이니까.
튜토리얼 구간 평균은 15다.
대형 길드에 속해 있는 사람들만 따지면 더 높겠지만 탑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나보다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는 말.
막상 튜토리얼을 통과한 사람들을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면 또 다르겠지만.
너무 상심하지는 말자. 스텟은 어차피 성장한다.
내가 몸을 굴려도 올라가고 다른 장비나 칭호, 퀘스트 등을 통해서도 올라가니까.
힘민체야 그렇다 치고.
한 가지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마력이 5나 된다고?”
속으로 감탄했다.
대부분 1. 많아 봐야 3을 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마력이란 건 그냥 타고나는 거다.
힘이니 체력이니 그런 건 탑에 올라오기 전에도 느끼고 키울 수 있지만 마력은 오로지 탑에 들어와야 얻을 수 있다.
존재하지 않던 무언가를 느끼고 활용한다는 건, 사람보고 날개를 퍼덕여 하늘을 날라는 것과 마찬가지.
단순하게 생각해도 어려운 일이었으며 그렇기에 철저히 재능의 범주에 드는 것이었는데.
“나한테 그런 재능이 있었나.”
잘은 모르겠다.
마력이 어떤 기준으로 측정되는지는 밝혀진 게 없으니까.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남들이 가지지 못한 확실한 강점을 지녔다는 거지.”
지금이야 가지고 있는 스킬이 없으니 소용없겠지만 나중에는 다르다.
다른 스텟과 달리 마력은 키우고 싶다고 키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무조건 아이템을 통해 올려야 한다.
당연히 마력 관련 아이템은 말도 안 되게 비싸고.
아마 현재 튜토리얼을 겪고 있는 사람 중에는 내가 가장 마력 스텟이 높을 거다.
어쩌면 10층 아래에 있는 모든 헌터보다도.
“그건 그거고.”
스테이터스를 지운 난 온갖 함정들이 튀어나온 복도로 몸을 옮겼다.
바닥에 떨어진 볼트랑 입구 쪽에 놔둔 배낭을 챙겨야 한다.
나이프랑 단검도 챙겨야 하고.
한번 살아보겠다고 별짓을 다 했더니 난장판이 다 됐다.
주섬주섬 물건을 줍는 것도 잠시.
잊고 있던 게 떠올랐다.
“아, 발광석도 가져가자.”
솔직히 탐났다.
저거 은근 비싸다. 팔아도 좋고 내가 써도 좋다는 이야기.
개처럼 구른 것도 억울한데 뭐라도 얻어 가야 하지 않겠는가.
사다리가 없는 게 아쉽긴 하지만.
“없으면 만들면 되는 거지.”
난 창날 함정에 박혀 있던 창과 맨 마지막에 날아왔던 발리스타를 이용해 사다리를 만들었다.
작동이 멈춰서 그런가. 의외로 창날을 뽑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발디딤대야 사방에 가득한 화살을 뭉텅이로 엮어서 만들면 그만이고.
배낭에 로프가 있어서 다행이다.
-칵! 카직!
단검으로 발광석 주변을 두들기자 발광성이 떨어져 나왔다.
돌가루가 눈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파밍의 기쁨 앞에는 사소한 것에 불과했다.
“생각보다 많네. 흐흐.”
무려 발광석 16개를 얻었다.
이게 다 얼마야.
사람이 아껴야 잘 산다고 했다.
내 목숨을 빨아먹으려던 구간이니 나도 쓸개까지 뽑아 먹어야 밸런스가 맞지.
“창도 두어 개 챙겨 가야겠다.”
장거리 무기는 석궁이, 단거리 무기는 단검이 있지만 중거리 무기는 없다.
적당히 쓰다가 필요할 땐 투창용으로도 쓰지 뭐.
화살은 패스. 아쉽게도 내가 가지고 있는 석궁은 코볼트가 쓰던 거라 사이즈가 안 맞는다.
그보다.
“여기는 숨겨진 게 없나?”
난 천천히 그동안 뚫고 온 함정들을 살폈다.
오. 있다!
3층 시작점까지 걸어갔을 때인가.
반짝이는 뭔가가 보였다.
[망가진 장치 기관 태엽]
-가지고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길지도?
2층에서 챙긴 코볼트의 손톱과 같은 설명.
아직까지는 좋은 일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가지고 있어서 나쁠 건 없겠지. 다른 것도 아니고 S급 권능이 말해 주는 건데.
주먹만 한 태엽을 배낭에 챙겼다.
3층을 클리어했기 때문일까. 자신감이 생겼다.
조금씩이지만 확실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
멈추지만 않는다면 더 멀리 가겠지.
이걸로 할 건 다 했고.
“휴식 타임.”
좀 쉬자.
스페셜 도시락을 뜯으며 커뮤니티를 켰다.
날 엿 먹인 정부와 대형 길드에 되갚아 줄 때가 왔다.
“겸사겸사 고생하고 있을 애들도 좀 도와주고.”
씨익. 입꼬리가 올라갔다.
* * *
탑 30층. 주거 지역.
커다란 호랑이가 그려진 건물 안에 한 남자가 있었다.
최성모. 39층까지 올랐다, 40층을 코앞에 두고 떨어진 인물.
이제 남은 코인은 없다.
이번에도 오르지 못하면 39층을 최대로 탑을 나서게 된다는 뜻.
‘39층이면 끽해야 C급인데. 길드로 돌아가 봤자 높은 자리는 글렀군.’
딱 한층. 40층에 도달했다면 B급 헌터가 됐을 텐데.
최성모가 있는 건물은 대형 길드에 속하는 산군山君 길드의 소유.
그는 산군 길드에서 공을 들여 키운 루키였다.
기대한 것과 달리 그리 좋지 못한 성적을 내고 있지만.
“후우.”
다리를 떨며 담배를 태우던 최성모가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벌써 다섯 대째. 답답한 마음에 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다.
B급만 돼도 눈치는 덜 볼 텐데. 팀장급 인력은 될 수 있으니까.
몇 마디 쓴소리는 들어도 별 탈 없이 길드 생활을 할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C급 헌터는?
그냥 일반 길드원이나 다를 바 없다.
그동안 받은 기대치에 충족하지 못한다는 말.
“길드장 성격에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쏟아부은 돈이 있으니까. 어떤 식으로든 밑천을 뽑아내려 할 거다.
아니. 어쩌면 죽이려 들지도 몰랐다.
최성모는 산군 길드의 루키. 알면 안 되는 정보를 알고 있었으니까.
“그때 계약하는 게 아니었어.”
멋 모를 때 길드장의 말 한마디만 듣고 덜컥 계약을 해 버렸으니.
AA급 헌터. 대형 길드인 산군의 장. 그런 사람이 ‘넌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하니 안 넘어가고 배기나.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제길.”
솔직히 억울했다.
탑이라는 것이 어떻게 될 줄 모르는 곳인데.
미리 교육 좀 받았다고 헤쳐 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란 건 길드장이 제일 잘 알고 있을 거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디에 하소연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차라리 일반 길드원이었으면 속 편하련만.
-콰앙
“형님! 커뮤니티 보셨습니까?”
하염없이 담배를 태우는 중, 거칠게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31층까지 클리어한 산군의 길드원 김성재.
동시에 최성모보다 뒤늦게 탑에 올라온 아래 기수였다.
“커뮤니티?”
담배를 비벼 끈 최성모가 얼굴을 찌푸린다.
가뜩이나 심란한데 무슨 뻘소리를 하려고.
“그 튜토리얼 구간 애들한테 열리는 채널 있잖습니까. 또 분탕 치는 놈이 나타났어요.”
그의 말에 최성모가 눈썹을 까딱인다.
안 그래도 골 아픈 마당에 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작게 한숨을 내쉰 최성모다 커뮤니티를 열었다.
튜토리얼 구간이면 10층 이하 채널.
“음?”
최성모가 미간을 찌푸렸다.
채널에 들어가 보니 꽤 화려한 제목이 눈에 띄었다.
조회수가 상당한지 공지까지 걸린 글.
그 제목은.
<@#$!!♡튜토리얼 3층 공략법@@ 초보자 필독!!!!!!!♡!!$#@>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였다.
이게 뭐야.
신선한 충격에 눈을 질끈 감았던 최성모가 글을 클릭한다.
-안녕하세요. 쁘띠공듀예요!
오늘은 3층 공략법에 대해 알아볼게요.
더운 날씨에 고생하는 여러분께는 시원한 소식이 아닐 수 없죠?
물론 전 덥지 않아요!
쁘띠공듀는 땀 같은 거 흘리지 않거든요. (찡끗)
.
.
.
주륵. 글을 읽어 내린 최성모가 눈을 꿈뻑였다.
뭘 본 거지?
순간 뇌 정지가 온 거 같다.
“이거 보여 주려고 달려온 거냐.”
잠시 멍하니 커뮤니티를 바라보던 최성모가 후배를 노려봤고.
-사아아아악!
“크흡!”
후배는 날카롭게 찔러 들어오는 살기에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31층과 39층의 격차는 그만큼 컸으니까.
간신히 정신을 차린 후배가 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계, 계속 읽어 보십시오. 형님께서 이런 놈 나타나면 꼬, 꼭 말하라고.”
한 번 더 후배를 노려본 최성모가 계속해서 글을 읽어 나간다.
집중해서. 끝까지.
처음에는 짜증으로 얼룩졌던 얼굴이 점차 딱딱해지고.
맨 마지막 줄을 읽었을 때는 입가가 비틀어졌다.
.
.
.
아셨죠? 바닥 창날-톱날-벽 칼날-쇠구슬-화살-천장-발리스타.
여기까지가 전반부.
이어서 불길-땅굴-랜덤 칼날-블랙 타일-뒤통수 창.
이렇게가 후반부예요. 함정이 너무 많은 거 아니냐고요?
어쩌라구요!
멍청하면 그냥 외우세요!
다른 공략법ㅗㅗㅗ 믿지 마시고요.
앗! 압정을 흘렸네.
그럼 전 이만!
쁘띠공듀는 요정이라 잠을 자야 해서요. 뿅!
꾸득.
주먹을 쥔 최성모가 커뮤니티를 껐다.
‘어떤 새끼지?’
어떤 간 부은 놈이 이런 짓을 벌인 걸까.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혀, 형님. 어떻게 할까요?”
“어쩌긴 뭘 어째! 애들 풀어!”
이 일을 수습하지 못하면 B급 헌터가 되더라도 목숨이 달아날 거란 것.
6층을 관리하는 건 산군 길드의 몫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