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8화 (8/740)

8화 전반부는 할 만한데?

사용된 권능.

눈앞에 떠오르는 수많은 양의 알림.

[창날 함정]

-꼬치구이가 되기를 꿈꾸신다면 지금이 기회입니다!

[돌려 돌려, 톱날판!]

-벌목 당하는 나무의 심정을 알아보는 건 어떨까요?

[저승행 땅구덩이]

-지하 세계로 모험을? 종착지는 저승입니다.

[화려한 불길 쇼]

-살고 싶으면 뛰세요!

[할아버지의 낡은 괘종시계-특대형]

-진자 운동하는 쇳덩이에 맞아 본 적 있나요?

.

.

.

이게 몇 개지?

10개? 아니다. 자잘한 것까지 합치면 20개에 달하는 함정이 숨겨져 있다.

이걸 도대체 무슨 수로 뚫으라고!

“김 대리 그 양반이 3층에서 떨어진 이유가 있었군.”

지금은 망한, 한때 같은 회사에서 일한 김 대리가 말했었다.

3층을 뚫으려면 미친놈이거나 무모할 정도의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그 양반이 성격은 모났어도 몸은 좋았는데.

본인 말로는 특수 부대에서 오래 있었다나.

그 습관이 남아 있던 건지 남자 신입이 들어오면 군기 잡는다고 개지랄을 떨었었다.

“지금은 그런 거 기억할 때가 아니야.”

회사 생활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있지도 않은 회사 떠올려 봐야 뭐 하겠는가.

중요한 건 하나. 특수 부대 출신이었던 자도 쉽게 죽어 나가는 곳이라는 거다.

당장 김 대리를 떠나서 그 대단한 대형 길드에 소속된 사람들 틈에서도 역시 낙오자가 속출한다.

언젠가 탑에 불려 갈 날을 대비해서 온갖 훈련을 받은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나도 조금은 알지.”

회사가 망하고 짐꾼 생활을 하기 전, 대형 길드에 들어가 보겠다고 발버둥을 친 적이 있다.

결과? 말할 것도 없이 광탈이었지.

내가 비록 언젠가 헌터가 될 거라면서 온갖 무술과 무기술에 투자하기는 했다만 그곳에 모인 놈들은 하나같이 괴물이었다.

격투기, 스포츠, 군대. 다양한 영역에서 엘리트 코스를 받은 전문가들이 바글바글했으니까.

그중에서도 선별을 거쳐 뽑는 게 대형 길드다.

나와 같은 일반인이 기웃거릴 곳이 아니라는 뜻.

그럼에도 그들 전원이 튜토리얼을 통과하지는 못한다는 게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

“비율이 높지는 않지만 무소속 일반인 중에서도 튜토리얼을 넘어 상층부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어.”

주목할 부분은 그거다.

신체 건장한 남성이 떨어지는가 하면, 대학 생활을 하던 여성이 탑을 오르기도 하고.

프로 파이터가 낙오하는 동안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던 사람이 앞으로 나가기도 했다.

그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가.

탑은 단순히 신체 능력만 좋다고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건 분명한데.

난 차분하게 함정들을 바라봤다.

‘하나같이 위험한 것들.’

어디 한 곳이 부러지거나 큰 화상을 입을 수 있다.

운이 나쁘다면 신체 일부는 내줘야 할 것이고 최악의 경우 죽겠지.

-철컥

난 배낭에서 석궁을 꺼내 장전했다.

맨 처음 발동한 창날 함정.

분명 센서라도 달린 것처럼 움직였었지.

확인해 보자. 사람한테만 발동되는지 아니면 아무거나 영역에 들어오면 작동하는지.

-키릭

코볼트가 사용하던 물건인 만큼 사이즈가 작기는 했지만 억지로 견착을 마쳤고.

-푸슉!

포탈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정확히 앞으로 날아가는 화살.

그 속도는 굉장히 빨랐으며.

-쿠르르릉!

-콰아아앙!

-카가가가가각!

볼트에 반응한 함정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작동해 댔다.

성인 몸통만 한 쇠구슬이 좌우로 흔들리고 화살 다발이 날아와 빗소리를 냈다.

톱날이 요란하게 돌아가는 한편, 발리스타나 다를 바 없는 쇠꼬챙이가 쏘아지기까지.

격자무늬 형태로 전류가 흘렀다 사라지는 한편, 발리스타나 다름없는 쇠꼬챙이가 쏘아지기까지.

쇠와 쇠가 부딪치며 튀어 오르는 불똥. 떨어지는 돌조각.

고막을 때리듯 울려 퍼지는 소음들.

귀가 먹먹할 지경이다.

하지만 수확은 있었다.

“조금은 알겠어.”

난 입꼬리를 올렸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

모든 함정이 발동된 것도 아니고.

[저승행 땅구덩이]

-저승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다면 지금이 기회입니다.

[블랙 타일-체크메이트]

-검정 타일을 밟는 순간 즉사합니다. 피하세요.

저 두 함정은 발동되지 않았다.

설명이 살벌하기도 하지.

함정 이름부터 설명까지 굉장히 위험해 보인다.

아무래도 직접 건들지 않아서 그런 거 같은데.

“이제 다섯 발 남았나.”

아쉽게도 볼트가 그리 많지 않다.

넉넉하게 있었다면 계속해서 쏴 보는 건데.

혹시 아는가 함정의 발동 횟수가 정해져 있을지.

다른 건 몰라도 화살 함정이나 발리스타 같은 경우에는 있을 법 싶었다.

“지금은 저 두 개부터.”

난 다시금 석궁을 들었고.

땅구덩이 함정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다시금 화살에 반응한 함정들이 움직였고.

그 모든 함정을 피해 날아간 볼트는.

-티잉!

바닥을 맞고 튕겨 나갔다.

예상외의 결과.

저건 화살로는 발동되지 않는 건가?

어쩌면 일정 무게가 올라가야 작동되는 걸지도 모른다.

-키릭

일단 저건 염두해 두고.

그보다 멀리 위치해 있는 검은색 타일을 조준했다.

[블랙 타일-체크메이트]

대놓고 즉사 트랩이라고 적혀 있는 무시무시한 함정이다.

복도의 거의 끝부분.

함정을 다 통과했다고 방심할 때를 노린 건가. 위치 선정이 기가 막히다.

“나야 알 바 아니지만.”

S급 권능의 사기성을 다시 한번 느끼며 조준을 마쳤다.

거리가 좀 되긴 했지만 못 맞출 정도는 아니었고.

-태애앵!

정확히 타일을 맞출 수 있었다.

이번에도 다른 함정들은 작동했지만 저건 반응이 없었다.

이걸로 확신했다.

“저 두 개가 가장 위험해. 1회성이고. 즉사 트랩이야.”

함정 이름과 설명이 그런 것도 있지만, 다른 것들과는 다르게 내가 직접 밟아야 작동한다 게 중요하다.

어떤 형식으로 발동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거니까.

최대한 피해 가는 수밖에 없다.

“다른 함정들도 만만치 않고.”

그래도 눈에 보이니 사정이 좀 낫다.

집중력만 잃지 않으면 어떻게든 통과할 수 있을 거 같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날린 화살 세 개.

난 튜토리얼의 비밀을 엿볼 수 있었다.

많지는 않지만 훈련받지 않은 일반인이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

“조금씩 틈이 있다.”

먼저 내가 지금 보고 있는 3층 함정 구간.

내가 쏜 화살들은 단 한 번도 함정에 가로막힌 적이 없다.

즉발성 트랩이 아니라는 것. 길지는 않지만 작동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충분히 피할 수 있을 정도야.”

외형부터 살벌하기 그지없는 함정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었다.

삐끗하면 죽게 생겼는데 긴장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하지만 함정이 발동하는 모습을 계속해서 지켜본 지금은 다르다. 가능성이 보였다.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이면 통과할 수 있어.”

단 한 번이라도 망설이거나 타이밍이 꼬이면 죽는다.

찔려 죽든, 타서 죽든, 깔려 죽든.

하지만 정확한 타이밍에 위축되지 않고 움직인다면?

“평균 체력만 돼도 통과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즉, 튜토리얼을 통과하는 데 중요한 건 신체 능력뿐만이 아니라는 거다.

뛰어난 관찰력과 과감하게 움직일 수 있는 행동력이 있다면 일반인도 통과할 수 있다.

국가 대표급의 미친듯한 신체 스펙이면 훨씬 수월하게 클리어하겠지만 그런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나도 그 정도 급은 아니고. 신중함과 판단력. 이거라도 붙잡고 가야지.”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번.

-푸슉!

석궁을 발사했다.

함정이 어떤 타이밍에 어느 방향으로 작동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함정의 종류. 가장 빠르게 통과할 수 있는 경로. 발이 꼬일 경우를 대비한 플랜B를 구체화했다.

-피잉!

또다시 볼트를 날렸다.

함정의 위력은 어느 정도인지, 포션으로 버틸 만한 것과 아닌 것들은 뭐가 있는지.

팔 한 짝을 내줘서라도 막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파악했고.

-파앙!

하나 남은 볼트를 쏘았을 때는.

“할 수 있다.”

클리어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마지막으로 확인한 내용은 함정이 다시 작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

확실히 차이가 있다.

대략 4초 정도 되는 텀. 함정은 준비 시간이 존재했다.

이제 남은 건.

“직접 뛰어가는 것뿐.”

난 신발 끈을 조였다.

석궁은 역할을 다 했으니 넣어 두고.

-뽀옹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포션의 뚜껑을 딴 채 왼손 엄지로 막았다.

함정에 당하는 순간 마셔야 하니까.

오른손에는 단검. 나이프도 언제든 뽑을 수 있게 옆구리에 달았다.

-투욱

가방은 잠시 내려 놓자. 무게도 제법 나갈 뿐더러 운이 나쁘다면 가방에 함정이 걸려 넘어지는 수가 있다.

그런 어이없는 죽음은 사양이다.

“후우.”

복도 가장 끝. 등에 벽이 닿을 때까지 뒤로 물러난 난 심호흡을 했다.

내가 달려갈 타이밍. 루트. 반드시 피해야 할 함정. 치밀하고 확실하게 되뇌었다.

심장이 세차게 뛴다. 혈관이 격동하는 게 느껴질 정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린 건 돌린 거고 실제로 하는 건 다른 거니까.

난 지그시 눈을 감았다 떴고.

벽에서 튀어나온 톱날이 도로 들어가는 타이밍에 발을 박찼다.

-쉬익!

그와 함께 집어 던진 단검.

단검에 반응한 함정들이 쇳소리를 내며 발동했으며, 다시 함정이 작동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4초.

내 몸이 출발선을 지났다.

극히 짧은 시간 동안 함정은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그린 생존 루트, 그 첫 번째.

‘시작과 동시에 최대한 많은 함정을 돌파하라.’

그렇게 통과한 함정이 다섯 개.

창날 함정 하나, 톱날 함정 하나, 벽에서 찔러 들어오는 칼날 함정이 셋.

난 아무런 상처 없이 돌파해 냈으며, 다음으로 피해야 할 함정은.

-후웅!

쇠구슬.

사람만 한 지름의 쇠구슬 네 개가 각기 다른 타이밍으로 흔들린다.

압도적인 비주얼과 움직일 때마다 불어오는 바람.

보는 것만으로도 주눅이 들 만한 함정이었지만.

‘가장 피하기 쉬운 함정이야.’

난 속도를 늦추지 않고 앞으로 돌진했다.

이번 함정은 비주얼이 전부다. 도전자를 위축시켜 소극적으로 만드는 역할.

당연하게도 멈칫하면 죽는 거다.

쇠구슬은 어느 순간 가속도가 붙은 채 떨어지니까.

다르게 말하면 진자 운동을 하는 만큼 최고점에서의 체공 시간이 길다.

타이밍만 맞춰서 뛰면 앞구르기로도 통과할 수 있다.

물론 안 할 거지만.

-촤아아아아악!

쇠구슬을 통과하는 동시에 나는 바닥으로 슬라이딩했다.

-카가가가각!

그와 동시에 양옆에서 쏘아진 화살이 벽을 맞고 튕겨 나간다.

이 타이밍이 참 지랄 맞다.

전력 질주를 한 상태로 진입하면 고슴도치가 되고 마니까.

유일하게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바닥에 바짝 붙어도 지나가는 것뿐.

“이제 중반.”

화살 함정을 지나친 나는 곧장 일어서 벽에 붙어 섰다.

다른 것과는 달리 사람 한 명 겨우 들어갈 만한 홈이 나 있는 곳.

마치 안으로 들어가라는 것 같았고.

-콰아아아앙!

실제로도 그 용도가 맞았다.

벽 틈으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천장이 떨어져 내렸으니까.

보통 천장도 아니다. 이빨처럼 쇠송곳이 잔뜩 박혀 있었으니까.

그냥 깔려도 죽겠구만 쓸데없이 디테일을 살리고 그러는지.

-쿠르르릉

바닥으로 떨어졌던 천장이 조금씩 올라간다.

지금이 타이밍.

난 그 위로 올라탔다.

왜냐.

-푸슝!

이 함정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타이밍에 정면에서 발리스타가 발사되거든.

벽 틈에 숨어 있다 나올 때를 노리는 함정.

정말이지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조합이다.

가뜩이나 위협적인데 심리전까지 하다니. 양심도 없는 것들.

“그래도 생각보다 할 만해.”

난 입꼬리를 올렸다.

한 번 실수하면 죽어서 그렇지 의외로 함정을 피하는 건 여유가 있다.

막 초 단위로 공략법을 짜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

어쩌면, 정말 어쩌면 신체 능력이 미친 사람은 나처럼 계획을 짜지 않아도 통과할지도 몰랐다.

부상은 좀 입겠지만.

-구르르릉, 쿵

난 천장 함정이 닫히기 전에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지금은 잠시 쉬는 타이밍.

함정지대의 중앙부.

세 걸음 거리에 설치된 화염 함정을 시작으로 후반부가 시작된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어떻게 발동되는지 모르는 함정이 두 개 있지.”

땅구덩이 함정과 블랙 타일.

난 침을 삼켰다.

여전히 심장이 뛰었지만 겁은 나지 않았다.

대신 기분 좋은 흥분과 적당한 긴장감이 온몸을 채웠다.

이미 머릿속에는 두 함정을 피할 방법이 마련되어 있었으니까.

“간다.”

숨을 고른 난 앞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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