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7화 (7/740)

7화 3층

당당하게 외친 그 이름.

쁘띠공듀.

[한번 설정한 닉네임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

[등록하시겠습니까?]

“예.”

재차 정말로 그 닉네임을 쓰겠냐고 묻는 알림을 보며 난 고개를 끄덕였다.

진정으로 비밀스러운 닉네임이란 남들 앞에서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는 닉네임이다.

실수로라도 나는 쁘띠공듀다! 이렇게 외치지는 않을 테니까.

올해 나이 28세, 군필, 178센티미터의 건장한 대한민국 청년인 나를 떠올리기 어렵기도 하고.

기능만 보면 완벽하다고 볼 수 있다.

“크흠.”

난 헛기침을 했다.

이 나이 먹고 이러는 게 창피하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으나 무시하자. 이게 다 전략이고 생존 능력이다.

“한번 살펴볼까.”

잡념도 지울 겸 커뮤니티를 좀 더 둘러보기로 했다.

일단 나를 제외하고 2층을 통과한 사람은 니머리 탈모.

닉네임은 이상하지만 실력은 있는 모양.

객관적으로 보면 나보다 뛰어날 가능성이 높다.

내가 2층을 클리어할 수 있던 것은 S급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 덕분이었으니까.

만약 진액의 효과에 대해 알지 못했다면 이렇게 무사히 클리어하지는 못했겠지.

초반에 볼트를 맞지 않았다면 또 모르지만.

그건 넘어가고.

니머리 탈모. 대충 탈모맨은 더 이상 글을 올리고 있지 않았다.

댓글로 공격하는 사람이 많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

저 사람들 모두 우리보다 위에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보다는 강하다고 봐야겠지.

척을 져서 좋을 게 하나 없다.

그렇다고 친해져야 하느냐? 그건 아니다.

“결국에는 익명이야. 누가 누군지도 모른다고.”

인터넷에서 친해졌다고 현실에서 도와주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같은 이치다.

만약 내가 소속이 있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그 경우에는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타이쿤_피닉스]: 선배님들 혹시 포션 남는 거 있으십니까! 저 지금 뒤지기 직전인데.

[방패 전사_피닉스]: 개인 거래 걸어라. 구라면 넌 진짜 뒈져.

[타이쿤_피닉스]: 감사합니다! 선배님의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길드 이름을 뒤에 붙여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그 경우다.

같은 길드인 만큼 서로 돕고 사는 모양.

유독 길드 소속 헌터들의 등반율이 높은 이유 중 하나다.

길드 이름을 사칭해서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겠지만.

“걸리는 순간 집단 린치를 받겠지.”

따지고 보면 길드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거니까.

듣기로는 길드마다 서로를 확인하는 암호가 있다고 들었다. 그 밖에도 몇 가지 검증 장치가 있다는 것도 같고.

안 걸릴 수가 없다는 거다.

위층에 있는 선배 길드원한테도 목록이 넘어갈 테니 사실상 탑 등반은 물 건너갔다고 보면 된다.

보아하니 모두가 길드 이름을 달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지만.

[보송송이]: 이번에 새롭게 올라오신 분들! 혹시 핑크펑크 신곡 나왔나요?ㅠㅠ 여신님들 보고 싶어요, 아흐흑.

-님 올라온 지 좀 됐나 보네? 걔네 강제 해체됨.

-저번 달인가 몬스터 웨이브로 기획사 무너졌어.

-멤버도 두 명인가 죽었을걸? 한 명은 입원했고.

-아…….

[호롱불]: 님들 엌ㅋㅋㅋ 소가 타면 뭐게요?

└탄소랍니닼ㅋㅋㅋ.

-아재요… 나가 뒈지십쇼.

[무림ZI존]: 아 NPC 진짜 깐깐하네. 걍 들이박아? 어?

-니 닉네임부터 어떻게 해 봐… 언제적 사람이야 대체.

저마다 주제를 가지고 떠드는 사람들.

밖의 소식을 듣기도 하고 뻘소리를 하기도 한다.

저 사람들이 길드 소속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무소속도 섞여 있겠지.

탑이 길드 사람들만 뽑아가지는 않으니까.

이상할 정도로 대형 길드 소속 일반인들이 잘 뽑혀간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확인된 건 없으니 넘어가고.

“지금은 미끼만 조금 뿌리자.”

혹시 모른다. 저들 중에 튜토리얼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어째서 사람들이 튜토리얼이 잘못됐다는 사실에 공격적으로 반응하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겠지.

겸사겸사 그걸 인연 삼아 도움을 받으면 더 좋고.

나와 함께 튜토리얼을 오르고 있는 이들과도 어느 정도 교류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적어도 커뮤니티 안에서는 말이지.

생각을 마친 난 빠르게 글을 입력해 나갔다.

탈모맨처럼 직설적이지는 않게. 적당히 어그로는 끌면서 다른 이들이 댓글로 난리 치지 않을 묘한 경계선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쁘띠공듀]: 쁘띠공듀 등☆장!

여러분의 요정 쁘띠공듀가 찾아왔어요.

튜토리얼을 오르는 친구들 모두 저와 함께 힘내 볼까요? 으쌰! 으쌰!

콘셉트에 출중한 서두. 항마력이 딸렸지만 굳건한 의지로 버텼다.

지금은 이게 중요하니까.

조금은 장난스러운, 진지하지 않고 가벼움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콘셉트질이라는 인식을 심어 공격을 피한다.

기존에 탑에 올라온 사람들이 피식 웃고 뒤로 가기를 누를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잡소리를 내뱉으며 시선을 분산시키고.

[쁘띠공듀]: 두근두근 탑 라이프의 시작.

1층의 고블린은 쁘띠 하지만 저처럼 요정 같지는 않죠! 초록 껌딱지들이 우글우글 모여 오면 참 징그러울 거예요. 안 그런가요?

중간중간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1층에 고블린이 여러 마리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건지, 고블린이 무리 생활을 한다는 걸 말하는 건지 알 수 없게.

모호함. 그게 포인트다.

마지막으로.

[쁘띠공듀]: 빠르게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뒤통수를 맞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답니닷!

여러분의 뒤통수가 다각형이 될 수도 있다구요.

안 그래도 못생긴 머리 찌그러지면 슬프잖아요. 흑흑.

이미 다들 알고 있겠지만요! (찡긋!)

나 역시 겪었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마무리.

어차피 1층에 있는 사람은 내 글을 읽을 수 없다. 커뮤니티는 2층을 클리어해야 열리니까.

한 마디로 팁 아닌 팁이라는 것.

이미 튜토리얼 구간을 넘어선 이들이라면 이후 고블린을 상대했을 때의 이야기를 말한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나와 같이 튜토리얼을 오르고 있는 사람은.

“내가 1층에서 여러 마리의 고블린을 마주쳤다는 걸 눈치채겠지.”

스쳐 지나가듯 말하긴 했지만 나와 함께 힘내서 튜토리얼을 클리어해 보자고 했으니까.

못 알아차렸으면 어쩔 수 없는 거고.

그 정도 눈치와 관찰력이 없다면 나로서도 어쩔 방법이 없다.

미안한 말이지만 동료로 삼기에도 부족함이 있다고 볼 수밖에.

“과연 어떤 반응이 올지.”

난 어깨를 으쓱였고.

-띠링

오래 지나지 않아 알람이 울렸다.

입꼬리가 올라간다.

클릭.

[니머리 탈모]: ㅇㅈ이지. 된 사람이네 쁘띠공듀! 아니, 요정님!

잠수 탄 줄 알았던 탈모맨이 가장 먼저 반응을 보였다.

역시 운으로 살아남은 건 아닌 모양. 닉네임은 이상해도 확실히 능력은 있다.

남한테 공듀 소리를 들으니 약간 소름 끼치기는 하지만. 그건 내 업보니까 감당하자.

그보다.

“한 명 더 있군.”

[정수리 핥짝]: 고블린 씨이이이벌럼들. 죽는 줄 알았네.

또 다른 닉네임이 등장했다.

난 그의 문장에 주목했다.

고블린 씨이이이벌럼‘들’. 복수 표현. 티 내지는 않았지만 저 사람도 말하고 있는 거다.

여러 마리의 고블린을 만났다고.

“역시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 * *

2층을 클리어한 뒤 난 던전 곳곳을 뒤지고 다녔다.

혹시나 권능을 통해 다른 뭔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포인트를 얻으면 더 좋고.

결과만 말하자면 없었다. 진액 말고는 별 볼 일 없는 곳이었던 모양.

대신 3층을 오르기 전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이미 튜토리얼 공략법은 신뢰를 잃은 상황.

사실상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도전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

[보급품 지급]

[한 끼 든든 밥×1, 식수×1]

탑도 양심은 있었는지 먹을 건 줬다.

주먹밥 비스름한 무언가와 식수.

보아하니 각 층을 공략하면 지급하는 모양.

1층에서는 못 받았던 것 같은데.

[Tip. 튜토리얼 구간에서는 식량이 지급됩니다.]

-보급품은 2층부터 지급됩니다.

내 의문에 맞춰 떠오르는 팁 메시지.

별을 주시하는 눈을 통해 추가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1층은 안 주는 거였구나.

어쨌든 좋다.

배낭 안에 있는 식량을 아낄 수 있으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탑. 아낄 수 있는 건 아끼는 게 좋았다.

“그럼 슬슬 움직여 볼까.”

잠도 잤고 배도 채웠다.

남은 식수는 수통에 넣어 뒀으니 걱정 없고.

“입장.”

가볍게 몸을 푼 난 포탈을 넘었다.

-고오오오

변화된 시야.

난 자세를 낮췄다.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는데.

“뭐가 없네?”

몬스터로 보이는 건 하나도 없었다.

삭막하다시피한 공간.

공기는 차게 식어 있었고, 돌과 철판으로 얼룩진 긴 복도는 횃불조차 붙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야는 어둡지 않았는데.

“발광석이라. 저것도 은근 비싼 물건 아닌가?”

천장에 박혀 있는 주먹만 한 발광석 덕분이었다.

스스로 빛을 내는 광물. 전자기기가 먹히지 않는 던전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물건 중 하나였다.

[3층]

[함정을 돌파하십시오.]

-위이이이잉!

내가 발광석을 보고 있는 사이 알림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울리는 살벌한 소음.

마치 전기톱이 돌아가는 듯한 소리였고.

“진짜네?”

내 청각은 정확했다.

방금만 해도 텅 비었던 복도가 온갖 흉악한 장비들로 가득 찼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 거대한 톱날.

상하, 좌우 할 것 없이 튀어나왔다 들어가길 반복하고 있다.

그뿐이랴.

-화르르르륵!

무대 특수 효과처럼 위로 뿜어져 나오는 불길.

그것도 대략 10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리가 순차적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열기가 보통이 아니다. 거리가 제법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후끈하게 달아오를 정도였으니까.

조금이라도 늦게 함정을 통과한다면 숯덩이가 되겠지.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제정신인가? 이런 곳을 뛰어들라고?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이 정도다.

3층은 함정 구간.

분명 숨어 있는 함정도 가득할 거다.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이가 없어 웃음조차 안 난다.

“놀리는 것도 아니고 포탈은 또 떡 하니 있네.”

저 멀리, 복도 너머로 보이는 포탈.

어서 오라는 듯 일렁거리고 있다.

정말이지 악질적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구조.

앞만 보고 달려라 이건가?

아니지. 그랬다가는 바로 온몸이 찢겨 죽을 거다.

“천천히 하자, 천천히.”

안전 제일. 생명 존중.

난 미친놈이 아니었고 당연하게도 겁이라는 게 있다.

레고만 밟아도 팔짝 뛰는 게 사람 아니던가.

변태가 아닌 이상 일부러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

심지어 난 아직 각성도 못 한 초짜 중의 초짜다.

스스로 과신하지 말자.

“함정이 뭐가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해.”

그래야 어느 정도 생존 확률이 올라갈 테니까.

튜토리얼 구간인 만큼 함정이 막 바뀌지는 않겠지?

부디 그러길 빈다.

출발선이라는 걸까.

내 앞에는 하나의 선이 그어져 있었고.

-스윽

조심스럽게 앞발을 내민 순간.

-드륵

아주 미세하게 소음이 들렸다.

그와 동시에 번쩍이는 빛무리.

2층에서 봤던 그것과 같은 것이었고.

“제길!”

-카가가가각!

난 발작하듯 몸을 뒤로 뺐다.

볼썽사납게 엉덩방아를 쪘지만 부끄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함정에 기겁했을 뿐.

[창날 함정]

-꼬치구이가 되길 꿈꾸신다면 지금이 기회입니다!

알림이 떠오르기가 무섭게 바닥에서 솟아오른 창날.

창대까지 쇠로 만들어진 그것은 천장까지 파고들었다가 서서히 밑으로 가라앉았다.

-투둑, 툭

어찌나 위력이 살벌한지 천장까지 깨져 버렸다.

정말로 종이 한 장 차이. 빛무리를 보자마자 발을 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물리적으로 공중 부양을 하는 신비로운 경험을 했겠지.

떨어지는 돌조각을 맞으며 난 생각했다.

‘거짓 튜토리얼 공략법에서는 손 뻗어 가며 가라 했었지 아마?’

정신 나간 놈들. 그 말을 따랐다면 바로 팔 한 짝 잃고 시작했다.

이쯤 되면 악의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다.

나도 권능으로 위험을 감지하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

“잠깐만, 쓰면 되잖아?”

내게는 권능이 있다. 숨겨진 정보를 보는 힘.

당연하게도 함정을 파악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쩌면 이번 층은 쉽게 지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으음!”

난 눈에 힘을 주며 복도를 노려봤다.

아직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건 익숙하지 않다.

이번 기회로 연습이 좀 됐으면 좋겠는데.

-지이이이잉

노력이 통한 걸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시야가 바뀌기 시작했다.

눈이 간지럽다. 눈물도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떨려오는 눈꺼풀.

따끔거림을 넘어 작열감이 올라오던 그때.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 (S)이 발동됩니다.]

수많은 빛무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드러나는 함정의 정보.

난 지그시 그 모든 것을 바라봤고.

“허허. 이런 미친.”

헛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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