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나의 이름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끈질기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코볼트가 얼굴을 내밀었다.
개 머리에 사람 몸통.
비정상적으로 큰 머리와 달리 몸은 고블린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설명만 들으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나 직접 보고 있는 입장에서는 기괴할 따름이었다.
“크르륵.”
한 손에 들린 석궁과 옆구리에 달아놓은 화살통.
6개 정도의 볼트가 들어 있다.
놈의 덩치에 맞게 그리 크지는 않다.
그렇다 한들 위력적인 건 맞지만.
“킁킁!”
코볼트가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냄새를 맡는다.
개 머리가 달린 만큼 직접 보는 것보다는 후각으로 판단하려는 경향이 짙은 거 같은데.
나한테는 좋은 일이었다.
‘조금만 더 와라.’
난 숨죽여 기다렸다.
사냥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인내심이라지.
쪼그리고 있는 탓에 다리가 저렸지만 참은 보람이 있다.
놈이 천천히 내가 파 둔 함정에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조금만 더. 조금만.
“크륵!”
돌연 코볼트가 멈춰 섰다.
날 발견한 건가?
순간 몸을 굳힌 채 긴장했지만 다행히 나를 눈치챈 건 아니었다.
그저 타깃을 확인했을 뿐.
그 증거로 놈은 나무 뒤로 숨은 채 석궁에 볼트를 장전했고.
-퉁!
그대로 목표를 향해 석궁을 쐈다.
맹렬한 속도. 뛰어나지는 않지만 충분한 살상력을 가지는 위력.
-콰악!
그것이 정확히 흉부를 꿰뚫었다.
방어구를 꼈다면 모를까 일상복으로 볼트를 막는 건 불가능.
심하면 쇼크로 즉사. 그러지 않더라도 죽는 건 예견되어 있었다.
놈의 완벽한 승리다.
저게 내가 만든 인형만 아니었다면.
‘저거 만드느라 고생 좀 했다, 개 대가리야.’
저건 미끼다.
내 옷에 수풀을 넣어 진짜 사람인 것처럼 만들어 놨다.
같은 사람이 봐도 멀리서 보면 헷갈릴 만하게 정성 들여서 말이지.
가뜩이나 눈이 안 좋은 코볼트기에 제대로 확인하기란 불가능했을 거다.
“크르릉!”
역시나 신이 나서 달려오는 코볼트.
고기를 뜯을 생각에 잔뜩 들떴겠지.
사람이든 몬스터든 하나에 꽂히면 시야가 좁아지는 법이다.
-타앗
코볼트가 인형을 향해 달려가는 타이밍.
난 나무에서 뛰어 내리며 놈의 정수리를 향해 단검을 뻗었고.
-빠각!
-으드드득
중력과 체중이 실린 일격에 놈의 머리통이 깨지며 목이 부러졌다.
고급지진 않아도 단단한 단검이다.
손잡이까지 박힌 단검 위로 피와 뇌수가 터져 나왔다.
말할 것도 없는 즉사.
[코볼트 처치 (1/1)]
[2층 클리어]
알림을 확인하고 나서야 난 깔고 앉다시피 한 놈에게서 일어섰다.
“아이고 허리야. 어차피 죽을 거 빨리 좀 오지.”
이놈 하나 잡으려고 나무 위에서 몇 시간을 기다린 건지.
그냥 곱게 잡혀 주면 좀 좋아?
몸을 비틀자 뼈 소리가 요란하다.
다리도 저리고……. 그래도 무사히 잡았으니까 만족한다.
“으. 찝찝해.”
이 냄새만 없었으면 더 좋았을 거 같긴 하지만.
난 손으로 몸에 묻은 진액을 닦아 냈다.
혹시라도 놈이 날 발견할까 봐 온몸에 발라 놨었다.
그뿐이랴. 배낭에 있는 로프를 꺼내 이파리를 엮어 위장까지 했다.
조악한 길리 슈트라고나 할까.
코볼트가 눈이 안 좋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철저해서 나쁠 건 없으니.
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인형을 만드느라 팬티 차림으로 있었더니 생각보다 춥다.
감기 걸린 건 아니겠지. 컨디션 떨어지면 안 되는데.
“옷부터 입자.”
인형 등짝에 박힌 볼트를 뽑아낸 난 옷을 입고 배낭을 챙겼다.
이제 좀 사람다워졌다.
[포탈이 생성됩니다.]
준비된 것에 맞춰 알림이 떠올랐다.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포탈.
저걸 지나면 곧장 3층으로 갈 수 있었지만 난 좀 더 기다렸다.
아직 받을 게 더 있으니까.
설마 이것마저 거짓말이 아니라면 말이지.
이제는 믿지 않기로 한 튜토리얼 공략법.
거기에는 층마다 부여되는 보상도 적혀 있었다.
[클리어 보상-커뮤니티가 활성화됩니다.]
“그렇지!”
난 주먹을 움켜쥐었다.
다행히 보상 내용은 거짓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1층과 달리 2층부터는 시스템 관련한 보상이 주어진다.
이제부터는 튜토리얼을 깰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으로 분류된다는 걸까.
아무튼.
시스템 관련 보상 그중 첫 번째는 커뮤니티.
“커뮤니티 오픈.”
난 곧장 화면을 열었다.
허공에 나타나는 반투명한 홀로그램.
[메인 서버-대한민국]
-튜토리얼을 마치지 않았습니다.
-기능 일부가 잠깁니다. (10층 이하 채널만 사용 가능.)
채널 제한이라.
대충 예상했다. 떠도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난 아직 각성도 하지 못한 초짜다. 이 정도 페널티는 감수해야지.
6층에 올라가면 제한도 전부 풀릴 거고.
“어디 한번 봐 볼까.”
이 지랄맞은 탑에 불려온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다.
나와 같이 올라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보다 먼저 탑으로 소환된 사람들도 있겠지.
그 말은 곧 먼저 탑을 올라간 현지인들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란 뜻이기도 했다.
더불어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난이도의 튜토리얼을 겪었는지 확인할 수도 있고.
꾸욱. 10층 이하 채널을 눌렀다.
-주르르륵
화면이 바뀌며 글 목록이 떠올랐다.
생각보다 글이 많다.
-이번 기수는 몇 명이나 살아남을까?
-7층 도전할 사람 찾습니다.
-피닉스 길드 개새끼들 죽었다.
-아 똥 마렵다. 이때 뷰튜브 봐 줘야 되는데 ㅈ 같네.
-나 방금 S급 아이템 떴음 ㄹㅇ.
대체로 별 영양가 없는 내용이었지만.
커뮤니티가 그렇지 뭐.
심지어 이곳은 탑. 핸드폰도 없고 인터넷도 없다. 심심할 만도 했다.
“누군 심심할 틈이 없는데 말이지.”
고블린한테 칼 맞으랴, 코볼트한테 볼트 맞으랴 아주 바빴다.
어째 층을 오르면 오를수록 죽을 것 같다.
고작 2층을 클리어했음에도 절로 한숨이 나온다.
나도 한때는 튜토리얼 구간 클리어 확률이 20퍼센트라는 말에 왜 이리 적냐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지만.
20퍼센트면 엄청 많이 산 거였다.
“도대체 무슨 수로 통과한 거야.”
장비를 가지고 올라온 나도 이 고생인데.
따지고 보면 정부와 길드에서 뿌린 튜토리얼 공략법만 아니면 생존율이 더 올랐을 거 같다.
이제는 확신이 든다.
이 새끼들 일부러 헌터의 수를 조절하고 있다.
튜토리얼을 이용해서. 같잖은 공략법을 퍼트려서 말이지.
분명 나 말고도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 있을 거다.
그 흔적을 찾자.
난 코 박고 글 목록을 살피기 시작했고.
“음?”
미묘한 제목을 찾아냈다.
-ㅅㅂ, 이게 난이도냐. 다들 5층 어케 통과했누.
클릭.
[니머리 탈모]: 이런 미친새끼들아! 어떤 씨벌레미가 1층에 고블린 한 마리 나온다고 했냐, 제발 똥통에 대가리 박고 뒤져라, 제발 시발.
“나만 겪은 게 아니었구만.”
왠지 마음이 놓였다.
혹여나 지금까지 했던 의심이 사실이 아닐까 걱정했었다.
알고 봤더니 나한테만 일어난 사고였다든가.
운이 더럽게 없어서 기출 변형으로 튜토리얼이 나왔다든가와 같이.
그런데.
“댓글 상태가 왜 이러지?”
난 미간을 찌푸렸다.
동질감을 느낀 것도 잠시.
글 아래 달려 있는 댓글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팍 상했다.
-ㅈㄹ ㄴ.
-꼭 후배들 들어오면 분탕 치는 ㅅ끼가 있어
-뉴비인 척하면 좋아요, 아저씨?
-병먹금────────.
-니 같은 애들이 정보 흐려놔서 애들 죽는다고 간접 살이마야.
└살이마 X, 살인마 O.
└ㅗ.
-저런 새낄 조져야 되는데. 님 몇 층? 니 올 때까지 기다리게.
공격적이다.
아니, 아예 탈모의 말 자체를 안 믿는 것 같은데.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댓글에 글쓴이가 뭐라 뭐라 항변해 보지만 물량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는지 금방 묻히고 말았고.
-아니;; 됐다. 나 지금 3층 간다. 다들 올라가서 보자.
이 말을 끝으로 글을 내렸다.
그 후로 목록을 살펴봤지만 나와 같이 2층을 클리어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몇몇 어그로 글이 있긴 했지만 허탕이었고.
어쩌면 나처럼 분위기를 읽고 글을 올리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건 감안하더라도 글이 하나밖에 안 올라왔다는 건.
“생각보다 내가 빨리 올라왔다는 건데.”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
난 장비도 있고 S급 권능도 있다.
뭐, 그거 얻겠다고 소모한 시간도 꽤 있지만.
그래도 남들보다 유리한 입장인 건 맞다.
그런 나와 비슷한 속도로 탑을 오르고 있다라.
“탈모맨은 일단 주시해야겠어.”
상황에 따라 난적이 될 수도 있고 든든한 아군이 될 수도 있다.
속단하기는 이른 만큼 섣불리 다가가지는 말자.
“일단 물건부터 챙길까.”
난 코볼트가 가지고 있던 석궁과 볼트를 챙겼다.
마음 같아서는 놈이 쐈던 볼트도 챙기고 싶은데 길을 잃을까 봐 못 챙기겠다.
인형에 쏜 것만 더 챙겨야지.
“그래도 볼트 6개면 나쁘진 않군.”
장비를 점검한 후 기지개를 켰다.
같은 자세로 계속해서 커뮤니티를 봤더니 눈이 피로하다.
몸도 좀 뻣뻣한 거 같고.
무엇보다 아까부터 눈에 들어오는 알림창이 있다.
[코볼트의 왼손 약지 손톱을 뽑으세요.]
[어쩌면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권능을 통해 떠오른 창.
난 쓰러진 코봍트를 내려다봤다.
다른 손가락과는 확연하게 차이 나는 색깔의 약지 손톱.
매니큐어라도 칠한 건지 옅은 보라색이다.
“좋은 일이라.”
일단 챙기자.
권능이 말한 거면 뭐가 있어도 있는 거겠지.
혹시나 상할까 곱게 뽑아서 배낭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화살도 안에 넣고. 석궁은 언제든 사용할 수 있게 배낭 겉에 고정했다.
원거리 무기가 생겨서 그런가 조금은 든든한 느낌.
“일단 좀 쉬다 갈까.”
[2층 클리어]
-2층은 안전합니다.
권능도 안전하다고 말하고 말이야.
배도 고프고, 잠도 자야 한다.
물도 좀 마셔야 하고.
가혹한 환경일수록 적절한 휴식은 중요한 법.
3층에 오르기 전에 충분히 쉴 생각이다.
전투 식량이 좀 있으니 문제 될 건 없었다.
“겸사겸사 필드도 좀 돌아보자.”
혹시 아는가.
아까 전 진액처럼 유용한 것이 있을지.
포인트도 얻으면 좋고.
안전하다고 알림이 뜬 만큼 더 이상의 놀은 없을 거다.
-우뚝
간만에 느긋한 마음으로 돌아다니는 것도 잠시.
난 다시 커뮤니티를 열었다.
“쉴 때는 쉬더라도 뭔가 방안을 마련해야겠어.”
탈모인 말고 또 다른 생존자가 나올 수 있으니까.
일단 우리보다 먼저 위층으로 올라간 사람들은 튜토리얼이 잘못됐다는 말에 적대적이다.
하지만 직접 겪은 우리들은?
어쩌면 지금이 동료를 얻을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이 아닐까?
“다 떠나서 생존자는 많을수록 좋아.”
이런저런 이유를 떠나서 정부와 길드의 농간에 다른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꼴도 보기 싫었고.
그놈들만 아니었으면 더욱 많은 헌터들이 있었을 테니까.
불규칙하게 나타나는 게이트도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는 건 물론이고, 몬스터 웨이브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일도, 내 직장이 사라지는 일도 없었을 텐데.
-뿌득
개자식들.
난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뭘 해야 생존자를 늘리고 튜토리얼의 문제점을 알릴 수 있을까.
머리를 굴려 봤지만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그때 떠올린 것 하나뿐이었다.
난 망설임 없이 글쓰기를 눌렀고.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닉네임이 필요합니다.]
“음?”
알림창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커뮤니티는 익명제라고 했던가.
잘된 일이다.
내 정체를 밝히지 않아도 되니까.
탑도 따지고 보면 무법 지대다.
상황에 따라서, 혹은 이해득실에 따라서 언제든지 위험한 놈들과 마주칠 수 있다는 이야기.
괜히 튀어서 위험해질 필요는 없겠지.
“흐음. 닉네임이라, 닉네임.”
턱을 문지르며 고민했다.
가장 나 자신을 감추면서 특정 짓기 힘든 그런 게 없을까.
난 잠시 고민했고.
“등록한다.”
결정을 내렸다.
“닉네임은 쁘띠공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