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2화 (2/740)

2화 어?

묘하게 건조한 공간. 몸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피 냄새.

입술을 핥으니 딱딱하게 굳어 있던 피딱지가 녹아내렸다. 짭짤하네.

등은 또 왜 이렇게 배기는지.

“허억!”

-벌떡!

정신이 든 난 급하게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반사적으로 몸을 만지자 적당히 자리 잡은 근육이 느껴졌다.

불가능한 일. 분명히 난 하운드 무리에 둘러싸여 물어뜯겼을 텐데.

그 증거로 내가 입고 있던 옷은 엉망진창이었고, 피로 절어 있었다.

끝까지 놓치지 않았던 단검 역시 내 손에 들려 있었고.

꿈인가? 그런 거치고는 너무 생생하다.

더듬더듬 팔다리가 멀쩡한 것을 확인하며 머리를 굴렸다.

조금씩 상황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탑에 들어온 건가.”

죽었다고 생각하던 타이밍. 그 순간 메시지가 보였었다.

탑의 초대를 받았다고.

그렇다면 여기는.

[반갑습니다, 조현수 님. 탑에 들어오신 걸 환영합니다.]

내 의문을 해소해 주기에 충분한 알림창이 울렸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그토록 고대하던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는군.”

만약 탑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죽은 목숨이었을 테니까.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살아남았다는 것도 살아남은 거지만, 박선학과 기타 양아치 놈들에게 한 방 먹여 줬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다.

한 방 먹인 정도가 아니지. 놈들은 사지가 물어뜯긴 채 죽었으니까.

나도 비슷한 처지가 될 뻔했으나 결과적으로 보면 살아남았으니 나쁠 건 없다.

놈들을 죽게 만든 죄책감?

쥐뿔도 없다.

그딴 놈들은 죽어도 싸다.

있어 봐야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나 주고 범죄나 저지를 놈들이니까.

무엇보다 내 목숨을 가지고 놀았으면 그만한 대가는 치러야지.

“그건 그거고.”

난 눈앞의 알림창을 향해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별다른 저항감 없이 통과되는 손.

말로는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신기하다. 홀로그램 같은 건가.

[현재 위치는 1층입니다.]

[튜토리얼 구간, 1~5층.]

[탑을 오르십시오.]

내가 알림창을 면밀히 살피는 사이 연달아 메시지가 올라왔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

언젠가는 탑의 부름을 받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탑은 17세에서 35세 사이에 있는 사람을 불러 모으니까.

내 나이 28세. 충분히 가능성 있는 나이였다.

“나도 괜히 준비하고 있던 게 아니라는 말이지.”

헌터에 관해, 탑에 대해 많이도 알아봐 뒀다.

탑에 불려간다면 헌터가 되어 활동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정부에서도 가능한 많은 정보를 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렇게 사이 나쁜 길드도 최대한 협력하고 있었고.

하긴 괜히 입 다물고 있어 봐야 사람들한테 욕이나 더 먹지.

정부나 길드나 민심은 무서운 법이었다.

탑에서 나온 헌터들도 저마다 공략법을 공개한 만큼 마음만 먹는다면 이론은 빠삭하게 알 수 있었다.

“통하는 건 딱 5층까지지만.”

왜냐.

탑이란 곳은 알고 있다고 깰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거든.

어떤 적이 나오고 어디에 함정이 숨어 있는지 안다고 해서 무조건 깰 수 있다는 법은 없었다.

현실은 게임이 아니고, 움직이는 건 캐릭터가 아닌 뼈와 살이 있는 나 자신이니까.

“그러니까 아직 70층도 못 올랐지.”

현재 최고 공략층은 65층.

미국의 데미 다이얼이라는 S급 헌터가 이룬 업적이다.

국내에 있는 S급 헌터 김한성과 고작 4층 차이였지만 능력에서 꽤 차이가 있었다.

탑이란 곳은 그랬으니까.

단 1층이라도 더 높이 올라간 자가 더 많은 힘과 능력을 지니는 것.

특히나 위로 올라갈수록 난이도가 급격히 올라간다.

-꿀꺽

난 침을 삼켰다.

과연 나는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탑의 꼭대기는 100층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반이 조금 넘는 60층대만 올라가도 S급 헌터가 되는데 나라고 도전하지 못할 건 없었다.

뭐, 그렇다고 탑을 쉽게 보는 건 아니지만…….

“탑으로 불려온 사람 중 80퍼센트는 튜토리얼에서 탈락하니까.”

가장 많은 탈락자가 발생하는 구간.

이것만 봐도 탑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알 수 있다.

옛말에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탑에서는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난다고 한다.

그렇다고 지레 겁먹고 포기할 수는 없다.

딱 5층. 튜토리얼 구간을 넘기지 못한 사람들은 각성하지 못한 채 밖으로 나가게 되니까.

아무런 능력도, 아이템도 얻지 못한 채 말이다.

난 절대 그렇게 될 생각이 없었다.

심지어 스타트도 좋았다.

“장비를 그대로 짊어지고 왔으니.”

망할 놈들. 그 새끼들 때문에 고생한 건 억울했지만 덕분에 탑에 불려올 때 완전무장을 할 수 있었다.

덤으로 놈들이 짊어지게 한 잡다한 물품과 포션까지 있는 상황.

난 어깨에 둘러멘 배낭의 무게에 안도했다.

운이 나쁜 사람들은 샤워하다가 끌려오기도 했으니까.

정말 옷도 없이 맨손으로 탑을 오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거다.

-우우우웅

알림창이 사라지며 눈앞에 포탈이 열렸다.

저곳을 넘으면 본격적으로 탑을 올라야 한다.

“분명 1층에서는 고블린이 나온다고 했었지.”

아무런 무기도 없는 고블린 한 마리. 그놈을 죽이면 1층을 클리어한다고 들었다.

그 정도야 쉽지.

호되게 당했던 하운드와 같이 1성급 몬스터인 고블린이지만 그 위력은 무리에서 나온다.

하물며 놈들의 트레이드마크인 독침조차 없다면 내가 유리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장비 확인부터.”

남들보다 압도적으로 좋은 상황인 건 맞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법.

나도 오늘 죽을 위기에 처할 줄은 몰랐었다.

“최하급 포션 4개, 최루 구슬 3개. 로프 있고, 나이프 오케이. 잡다한 것들이랑 식량은 별로 없네. 길어 봐야 이틀 정도?”

아무래도 하운드에 이리 뜯기고 저리 뜯기면서 물품을 잃은 모양.

가방도 군데군데 찢어졌다. 바느질 세트로 어떻게 해 놔야지.

운이 나쁘다면 물건들을 줄줄이 흘리면서 이동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나,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경량화 마법이 걸린 가방을 꿰매는 사이 의문이 들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곳, 1층 로비에는 회복 효과가 없다.

말 그대로 시작 지점이니까.

괜히 튜토리얼 구간 클리어 확률이 20퍼센트인 게 아니다.

몸의 컨디션, 부상의 유무, 장비의 격차를 무시한 채 랜덤으로 소환되기 때문이지.

그리고 난 죽기 직전이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 멀쩡하다는 건.

“이미 한 번 죽었다는 거네.”

그리고 부활한 거겠지.

내게 부여된 코인을 소모해서.

입맛이 쓰다.

대부분의 사람은 코인 3개를 부여받는다.

운 나쁜 사람은 2개고.

많으면 4개.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은 5개 이상의 코인을 받는 사람도 있다고는 하는데, 그런 사람은 정말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행운아니까 패스하자.

“나도 얼마나 받았는지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보유 코인량은 튜토리얼 구간이 끝나고 각성한 이후에나 알 수 있다.

지금은 일단 무사히 올라갈 생각만 하면 된다는 뜻.

코인 하나를 이미 쓴 만큼 각별히 주의해야지.

“후우.”

난 심호흡했다. 오늘로 뷰티풀 헌터 라이프 시작이다.

한 손에는 단검을. 포션은 주머니에. 가방 뒷부분에는 혹시 몰라 나이프를 배치했다.

이 정도 무장으로 5층도 못 뚫으면 나가 죽어야지.

“진입한다.”

난 망설임 없이 포탈 안으로 들어갔고.

-스아아아아

[1층]

[고블린 처치 (0/1)]

시야가 바뀌며 새로운 공간에 들어섰다.

초원이라고 해야 할까.

드문드문 보이는 나무와 허리까지 오는 수풀.

비교적 깔끔하게 정돈된 공터에는 고블린 한 마리가 서 있었다.

“큭! 크륵!”

나를 발견한 고블린이 기분 나쁘게 웃는다.

마치 자기와 한 판 붙자는 것처럼 입꼬리를 올린 채 손가락을 까딱인다.

“허. 참.”

어이가 없어서.

고블린이라는 몬스터는 기본적으로 겁이 많다.

자신이 이기지 못할 대상이라고 판단되면 동료고 뭐고 도망치니까.

고로 저놈의 행동은.

“나보다 자기가 강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덩치부터가 이렇게 차이 나는데?

탑에 불려갈 날을 기다리며 잡다한 공부와 운동을 병행했던 나다.

헌터들의 짐꾼 노릇을 한 것 역시 간접적으로나마 실전을 겪어 보기 위함이 컸고.

끝은 썩 안 좋았지만. 어쨌든.

130센트미터 정도 되는 고블린과 178센티미터인 나.

상식적으로 내가 더 강하지 않겠니?

“됐다. 안 도망치면 나야 이득이니까.”

난 누누이 읽었던 1층 공략법을 상기했다.

고블린을 죽이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다만 도망치기 시작하면 극히 까다로워질 수 있다.

그러니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제압해 해치워라.

-파앗!

빠르게 앞으로 달려갔다.

넌 죽었다.

“키헤엑!”

겁도 없이 마주 달려오는 녀석.

작고 빼곡한 이빨이 얼핏 위협적이었지만 그래 봤자다.

-뻐억!

리치부터 상대가 안 된다.

달려가던 그대로 고블린의 얼굴에 앞차기를 날렸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허공을 돌아 바닥으로 떨어지는 녀석.

꽤 충격이 컸을 텐데도 움찔거리며 일어서려고 한다.

“좋은 선택이야. 어차피 도망쳐 봤자 못 갔을 테니까.”

단검을 빙글 돌리며 슬금슬금 다가갔다.

혹여나 도망치면 투검을 날릴 생각으로.

다행히 놈은 그러지 않았고.

-퍼억!

난 그대로 놈을 덮쳤다.

몸 전체로 내리누르듯이 밀어붙이자 체급에서 밀린 고블린이 뒤로 자빠졌으며.

“키르륵!”

곧장 단검을 찔러 넣으려는 내 팔을 양손으로 잡고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천천히 내려가는 단검.

체중까지 실어 내리누르자 천천히 단검이 놈의 어깻죽지에 파고든다.

반항만 안 했다면 곧장 목을 찔렀을 텐데.

발광하듯이 몸을 들썩거리는 통해 살짝 빗나갔다.

“키헤에에엑!”

그렇다 한들 놈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줬다는 건 변함이 없었지만.

비명을 지르는 고블린이 사력을 다해 들썩거린다.

내 몸까지 살짝 들릴 정도.

눈물겨운 반항이다만.

-뻐억!

“그냥 곱게 잡혀.”

난 단검을 쥐지 않은 손으로 놈의 면상을 후려갈겼다.

손으로 느껴지는 묵직한 감각.

붉은 피가 놈의 입가에서 조금씩 튀어나온다.

-퍽! 퍼억!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주먹을 날렸다.

놈의 이빨이 부러지고 광대가 함몰되고, 놈이 피를 토할 때까지.

주먹이 욱신거린다.

저래 보여도 고블린은 몬스터. 덩치에 안 맞게 제법 튼튼한 몸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피부가 벗겨지고 손가락 마디가 쑤셨다.

주먹을 쥐기 힘들면 팔꿈치로 찍었다.

동정심은 없다.

“몬스터는 다 죽어야 해.”

그러기에는 너무 더러운 꼴을 많이 봤으니까.

끔찍한 모습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고 살아왔다.

내 나이 스물여덟.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세상은 지옥으로 바뀌었고.

“너희만 없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어.”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던 초반 4년은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한 전쟁이었다.

사람을 먹고 사는 몬스터.

친구들이 고깃덩이가 되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장난감처럼 사람을 가지고 놀다 물어뜯는 괴물도 있었다.

살겠다며 학생을 던진 교사도 있었고.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 파견된 군인들은 민간인을 상대로 식량과 돈을 뜯어냈다.

때로는 그 이상의 것도.

“몬스터만큼 역겨운 놈들.”

그들은 힘을 권력 삼아 몬스터나 다를 바 없는 행위를 일삼았다.

탑에 불려갔던 사람들이 헌터가 되어 돌아올 때까지.

각성자가 된 일반인. 헌터.

그들은 죽어 버린 가족과 친구들의 복수를 했으며 그 대상은 몬스터뿐만이 아니었다.

역설적이게도 그 덕분에 사태가 진압되고 정부가 군권을 장악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그런 환경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아남은 건 기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거다.

아니. 부모님의 철저한 희생 덕분이겠지.

결국에는 몬스터 때문에 부모님도 돌아가셨지만.

뿌득. 난 이를 악물었다.

“죽어!”

-빠악!

“키, 키헤엑.”

난 온 힘을 다해 고블린의 턱을 내리쳤다.

기어이 단검을 잡고 있던 손을 놓는 고블린.

초점이 없는 것이 반쯤 그로기 상태인 것 같다.

좋은 기회다.

-푸슉

난 놈의 어깨에 박혀 있던 단검을 뽑았다.

끈적한 피가 흘러내리고.

“잘 가라.”

내가 놈의 목에 칼을 꽂은 순간.

[고블린 처치 (1/1)]

[1층 클리어]

알림창이 떠올랐다.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단숨에 1층 클리어.

이 정도면 할 만하다.

맨손도 아니고 무기까지 쥐고 있는데 고블린 따위야 쉽지.

어쩌면 튜토리얼 통과 확률 20퍼센트 정도 과장된 걸지도 모…….

-푹

“어?”

클리어 알림을 보며 자신감을 얻고 있던 그때.

옆구리에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한순간 숨이 턱 막히고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탈력감.

내 몸에 있어서는 안 되는 물질이 들어왔다는 불쾌함과 함께 머리를 울리는 생존 본능.

미친 듯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식은땀을 닦을 여유도 없이 난 천천히 고개를 돌렸고.

“키르륵.”

나이프를 쥐고 있는 또 다른 고블린을 볼 수 있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