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탑에 갇혀 고인물-1화 (프롤로그) (1/740)

프롤로그

이 세상 누구든 헌터가 되기 전에 탑을 오른다.

1층부터 100층까지.

올라가는 만큼 강해지는 시스템.

튜토리얼조차 통과하지 못한 이가 80퍼센트를 넘었고.

10층대에서 탈락한 자는 E급 헌터로 분류되었으며.

20층대까지 오른 자는 D급 헌터.

30층대는 C급.

40층대는 B급.

현재 S급으로 명성을 얻은 이는 60층대까지 올라선 인물이었다.

그리고 나는.

100층 공략을 눈앞에 두고 있다.

1화 진입

던전. 게이트가 열리며 생겨난 공간.

수많은 몬스터가 서식하며 동시에 헌터라는 초인이 사냥을 하는 격전지.

어느덧 몬스터가 나타난 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인류 역시 변화한 세상에 맞춰 발전했고.

헌터와 일반인. 이제는 서로에게 꽤 익숙해진 상태였다.

처음에는 갈등도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헌터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중.

“와, 미쳤다.”

난 핸드폰으로 뷰트브를 보며 감탄했다.

화면에 보이는 건 S급 헌터 김한성.

국내에서 손꼽히는 강자였으며.

“새끼, 잘생겼네. 그래. 다 가져라. 다 가져.”

준수한 외모와 올곧은 심성으로 만인의 연인이었다. 실제 수많은 광고에 얼굴을 비치기도 했고.

강한 헌터는 힘을 얻는다. 목숨을 걸고 일하는 만큼 돈도 많이 번다.

국가의 지원도 끊이질 않는다. 그들이 없으면 몬스터를 막을 수 없으니까.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헌터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였다.

그런 이들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있는 사람이 김한성이다.

절제된 동작. 차분하지만 확실하게 몬스터의 목숨을 끊는 단호함.

존나 카리스마 있다.

“61층.”

난 짧게 중얼거렸다. S급 헌터인 김한성이 오른 층수다.

모든 헌터는 각성하기 전에 탑에 소환된다.

초기에는 몬스터가 쏟아져 국가가 마비됐던 상황인지라 단순 실종 처리됐었으나 그것도 잠시.

잊혔던 이들이 능력자가 되어 돌아왔다.

이해할 수 없는 이능을 부리고,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괴력을 보이는 초인들.

그들은 말했다.

[탑을 올라라, 가능한 높이.]

[높이 오를수록 더욱 강한 힘이 주어질 것이다.]

[코인. 주어진 코인에 따라 가능성이 달라진다. 아직 탑에 오르지 못했다면 빌어라. 최대한 많은 코인을 받게 해 달라고.]

코인. 그건 개인에게 주어진 도전 기회였다.

코인이 1개라면 등반 도중 죽어도 다시 한번 오를 수 있다.

2개라면 두 번 죽어도 다시 도전할 수 있고.

한 번을 오르든, 두 번을 오르든 탑에 있는 동안 가장 높이 오른 층수를 기점으로 헌터의 강함이 정해졌다.

수많은 헌터가 한탄했다.

단 1층이라도 더 오를걸, 그때 그 실수만 아니었어도 상위 헌터가 됐을 텐데 하면서.

“현실에서는 강해지는 데 한계가 있으니까.”

수많은 헌터가 증언했다.

현실에서도 던전을 돌며 강해질 수 있지만 탑과 비교할 건 아니라고.

10년 동안 던전을 도는 것보다 탑 1층을 더 오르는 게 많이 성장한다고.

“나도 탑만 오를 수 있다면.”

난 어느새 끝나 버린 동영상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세상. 찢어 죽일 몬스터들. 부조리한 삶.

그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다.

바뀌어 버린 세상. 법보다 주먹이 앞선다는 말은 더 이상 농담이 아니었으니까.

-빠악!

“크흑!”

홀로 잡념에 빠졌을 때, 둔탁한 통증이 머리를 타고 전해졌다.

얼얼한 머리를 붙잡으며 고개를 돌리자, E급 헌터 박선학이 얼굴을 구긴 채 날 노려보고 있었다.

입꼬리를 올린 채 건들거리는 모습이 딱 양아치의 그것이다.

몸을 숙여 나와 눈높이를 맞춘 놈이 손가락으로 내 머리를 밀기 시작했다.

“또, 또 핸드폰 만지고 있네. 하여간 얼빠진 새끼들은 이게 문제야. 개념이 없다니까? 좀 있으면 던전 입장인 거 몰라? 확 씨, 조져 버릴 수도 없고.”

순 억지다. 던전 입장까지는 30분도 더 남았으니까.

슬쩍 놈의 뒤를 보니 동료 헌터들 역시 낄낄거리면서 이곳을 보고 있다.

그냥 심심해서 이러는 거다, 쓰레기 새끼들.

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내뱉을 수는 없었다.

등급이 낮다고는 하나 저들은 헌터.

일반인인 내가 대들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특히나 던전이란 곳은 사실상 무법 지대. 사람이 수시로 죽어 나가는 곳이다.

나 같은 짐꾼 하나 죽어 봤자 사고사로 처리될 거라는 뜻.

“어쭈? 눈깔 보소. 요즘 짐꾼 안 쓰는 거 알지?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아, 아닙니다. 제가 눈매가 더럽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난 최대한 해맑은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감사는 얼어 죽을, 아공간 주머니 살 돈도 없는 밑바닥 헌터면서.

어금니를 물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 역시 제대로 된 직장도 없이 짐꾼으로 먹고살고 있었으니.

내가 유독 게을러서 이렇게 된 건 아니었다.

빌어먹을 몬스터 때문에 모든 걸 잃은 것뿐이지.

흔한 이야기였다.

어느 날 출근했더니 회사건물이 사라져 있는 경우.

규모가 있는 곳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중소기업 같은 경우는 그대로 공중분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나쁜 일은 몰아서 일어난다고, 직장을 잃은 날 터져 버린 몬스터 웨이브로 가족들까지 목숨을 잃었다.

그때가 2년 전, 26살 때 이야기다.

“야, 야. 적당히 놀고 안으로 들어가자.”

장난감처럼 박선학의 손찌검에 고개가 이리 돌아가고 저리 돌아가고 있는데 놈의 동료가 그를 불렀다.

뺨이 얼얼하다. E급 헌터라도 일단은 헌터인지라 가볍게 툭툭 쳤는데도 입안이 살짝 터진 것 같다.

퉤.

침에 피가 섞인 걸 보니 진짜 터졌네, 개 같은 새끼.

“벌써? 아직 30분 남았잖아.”

“나 소개팅 잡혔어. 후딱 끝내고 가야 해.”

“어차피 가 봤자 못생겨서 까이잖아.”

“여물어라. 너보단 잘생겼으니까.”

지네들끼리 모여서 시시덕거리는 놈들이 내게 눈짓을 보냈다.

가방을 챙기라는 뜻.

내 역할은 짐꾼, 부산물과 잡다한 아이템을 챙기는 역할이었다.

지금부터는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저놈들은 모르겠지만 일반인인 나의 목숨은 작은 위협에도 위태로울 수 있으니까.

하나하나 확실하게 장비를 점검했다.

경량화 가방 양호하고, 저놈들이 쓸 포션이랑 장비들도 지정된 공간에 잘 배치했다.

마음 같아서는 포션 대신 독약이라도 던져 주고 싶었지만…….

‘저놈들이 살아야 나도 살지.’

더러워도 어쩔 수 없다. 일반인의 몸으로 던전에서 살아 돌아올 가능성은 0에 수렴하니까.

-철컹

마지막으로 허리에 찬 호신용 단검을 확인했다.

40센티미터 정도 되는 쇳덩이일 뿐인데 마음이 든든해진다.

이걸로 준비 끝.

“야! 인벤토리 일로와. 이번에는 뒤처지지 마라. 뒤진다, 진짜.”

“알겠습니다.”

저놈들은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분명히 내 이름을 알고 있음에도.

딴에는 신박한 유머라도 되는지 질리지도 않고 웃어 댔다.

‘오늘도 버티자.’

언젠가는 나도 탑의 부름을 받을 테니까.

난 놈들을 따라 눈앞의 던전으로 진입했다.

* * *

던전에 진입한 지 3시간.

“헉! 허억!”

난 긴장하고 있었다.

흐르는 식은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 모든 원인은 놈들에게 있었다.

“으하하하하! 이 새끼 표정 좀 봐.”

“저러다 진짜 오줌 지리는 거 아니냐?”

“인벤토리, 뭘 쫄고 있어. 한 방 먹여 줘.”

빌어먹을 놈들의 비웃음과 조롱. 간간이 날아오는 돌멩이와 가래침.

수치스럽고 모욕적이다. 욕이라도 시원하게 갈겨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크르르륵!”

내 눈앞에는 침을 질질 흘리며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하운드가 있었으니까.

‘미친 새끼들! 나보고 저놈이랑 붙으라고?’

반복적인 사냥만 하다 질린 걸까. 아니면 드디어 맛이 가 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웬일로 얌전히 사냥하나 했더니만 이런 짓을 벌일 줄이야.

일명 투견장.

일반인, 혹은 헌터와 몬스터를 무대에 올려 싸움을 붙이는 범죄자들이 있다는 소문은 들었었다.

설마 이놈들도 그런 놈들일 줄이야.

‘또라인 거는 알았지만.’

이건 완전히 막 나가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나가서 신고하면 빌런으로 등록될 거고 특수 처리반의 처벌을 받게 될 거니까.

다르게 말하면.

‘날 죽이겠다는 거지.’

살려 둘 생각이 없다는 거다.

도대체 왜? 내가 뭘 잘못했다고.

노려봐서? 그게 죽을 이유가 되나?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놈들에게는 이런 짓마저 하나의 유흥에 불과하다는 걸까.

헌터 중에 정신 나간 놈들이 많다고는 들었지만 이건 아니지 않은가.

“아. 좀 뭐라도 해 봐.”

“월월! 똥개야, 물어. 사진이라도 좀 찍게.”

“저 새끼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그냥 빨리 뒤져.”

야유를 하는 헌터놈들.

사람 목숨을 아주 벌레 취급하는구나.

시발, 돈 몇 푼 벌겠다고 나왔다가 이게 뭔 꼴인지.

새삼 내 팔자 한번 기구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난 정신을 차렸다.

이대로는 못 죽는다. 억울해서라도 이렇게는 못 끝낸다.

-처억

난 단검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하운드. 짐승형 몬스터. 그중에서도 최하급 몬스터였지만 괜히 몬스터로 분류된 게 아니다.

홀쭉한 배와 달리 근육으로 꽉 찬 다리. 한번 물면 끝까지 놓치지 않는 악독함.

심지어 덩치마저 진돗개보다 크다. 대형견과 맞먹을 정도.

그냥 들개한테도 물려 죽는 사람이 나오는 마당에 저런 놈을 일반인인 내가 상대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하운드 역시 내 뒤에 있는 놈들을 신경 쓰느라 섣불리 달려들지 않는다는 것.

힐끔.

난 놈들을 살폈다. 박선학을 필두로 만들어진 팀. 총 세 명.

전원 E급 헌터였고, 굳이 따지자면 초인보다는 운동선수에 가까운 신체 능력을 지녔다.

‘1성 몬스터인 하운드라도 뭉치면 위협적이지.’

어차피 눈앞에 있는 하운드를 죽여도 못 빠져나간다. 저놈들이 뒤를 잡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파앗!

“크르르륵!”

난 곧장 하운드를 향해 달렸다.

울부짖으며 반응하는 하운드.

이빨을 들이미는 놈을 향해 난 단검을 휘둘렀다.

공격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위협하려는 것이지.

역시나 재빠르게 몸을 돌리며 공격을 피해 낸다. 바라던 대로.

찰나의 틈. 난 배낭에서 구슬을 꺼내 그대로 바닥에 던졌다.

-파하아아악!

“깨갱! 깽!”

“저, 저 새끼가!”

“크학! 매워!”

최루 구슬. 하운드가 나오는 던전을 공략할 때 챙기는 물건이다.

개과 몬스터답게 냄새에 민감하니까.

멍청한 새끼들, 날 엿 먹일 거였으면 배낭부터 뺏었어야지.

난 팔꿈치 안쪽으로 코를 막은 채 난 죽자 살자 달렸다.

“잡아!”

“아씨, 눈 따가워!”

도망치는 날 잡기 위해 놈들이 무기를 들고 쫓아온다.

그래. 따라와라.

“죽어도 나 혼자는 안 죽어.”

난 목에 걸어 두었던 호루라기를 입에 물었고.

-삐이이이이이익───!

힘껏 불었다.

귀를 찌르는 소음.

수 킬로미터까지 울려 퍼지는 호루라기 소리는 날카로웠으며.

-크르르르!

-컹! 컹!

하운드는 귀가 좋다.

지금 내가 한 행동은 간단했다.

몬스터를 불러 모으는 것.

정신없이 달리는 와중에 고개를 돌려 놈들을 바라봤다.

사색이 된 얼굴.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는 걸 느꼈겠지.

수풀 사이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발소리와 하울링.

“시, 시발. 다 같이 죽자 이거야?”

“뒤에 벌써 따라잡혔어!”

“제기랄!”

-커헝!

뒤쪽 수풀이 갈라지며 튀어나온 하운드가 헌터들을 덮쳤다.

검과 창을 휘두르며 반격했지만 모습을 드러낸 하운드만 열 마리가 넘었고.

“끄아아악!”

“내 팔! 포션! 포션이, 제길. 저놈한테 있는데!”

헌터들이 하운드에 둘러싸인 채 물어뜯기는 건 금방이었다.

피가 솟아오르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꼴좋다, 개새끼들.”

나라고 크게 다를 거 같지는 않지만.

하운드 놈들에게 포위된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혼자 죽기 억울해서 일은 벌였지만 상황은 최악이다.

“할 수 있을까.”

침을 삼켰다.

먹잇감을 확보한 놈들이 느긋하게 내 주변을 돈다.

난 아까 썼던 것과 똑같은 최루 구슬을 쥐었다.

남은 수량은 다섯 개. 운이 좋다면 던전 입구까지 도망칠 시간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까득

난 포션 한 병을 입에 물었다.

한 손에는 최루 구슬, 다른 한 손에는 단검을 쥐고 있으니까 한가하게 포션을 일일이 꺼낼 시간 따위는 없을 거다.

뒤로 슬금슬금 빠지면서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간다!

-파하아아악!

최루 구슬을 던지는 동시에 뒤돌아 달렸다.

예상대로 기겁을 하며 자리를 벗어나는 하운드.

-푸욱!

정신 못 차리는 하운드 한 마리의 목에 단검을 찔러 넣고 나무를 스치며 달렸다.

제발 놈들이 오랫동안 무기력했으면 좋겠는데.

-크르르릉!

-커헝!

사방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듣자 하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영리한 놈들. 냄새 범위에 닿지 않는 곳에서 따라붙는다.

“크하아앙!”

빠른 기동력으로 나를 추월한 하운드가 튀어나왔다.

“크흡!”

어떻게든 막아 보겠다고 검을 휘둘렀지만 빗나갔다.

기회를 놓치지 않은 하운드가 아가리를 들이밀었고.

-빠그득!

날카로운 이빨이 팔에 박혔다.

끔찍한 고통이 올라온다. 부르르 떨리는 팔.

-챙강!

난 곧장 입에 물고 있던 포션을 깨물었다.

유리 파편이 입안을 헤집으며 피가 흘러나왔고, 동시에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했다.

유리 조각을 삼킨 건가 목구멍이 따갑다.

“퉷. 이거나 먹어!”

입안에 남은 유리를 뱉어 내며 최루 구슬을 놈의 입에 쑤셔 박았다.

그대로 안에서 터지는 최루 가루.

“케겍! 깽!”

눈물, 콧물을 다 쏟으며 팔을 놓은 놈의 눈을 단검으로 찔렀다.

뇌까지 찔린 것일까 축 늘어지는 녀석.

기쁜 마음은 들지 않았다.

“크하아앙!”

“크르르륵!”

이 한 마리 때문에 지체된 시간.

남은 하운드가 몰려들기에는 충분했으니까.

앞뒤 좌우할 거 없이 달려든다.

최루 가스에 당한 울분이 섞인 것인지 포악하기 그지없는 모습.

나 역시 발악을 하며 단검을 찔러 댔지만.

“으아아아!”

수가 너무 많다. E급이라지만 헌터들도 못 당해 냈는데 나라고 다를 수 있을까.

그래도 살아 보겠다고 목과 머리를 감쌌지만 의미 없는 행동일 뿐.

살점이 덜렁거릴 정도의 상처와 과도한 출혈로 꺼져 가는 의식.

그 속에서 나는 보았다.

[조건이 충족됩니다.]

[탑이 당신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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