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406화
47. 밥값은 해야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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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를 사랑하시는 야구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캐스터 장호영입니다. 오늘도 이선철 해설위원을 모시고 메이저리그 경기를 중계해 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선철입니다.
-오늘 메이저리그 승률 전체 1위인 다저스와 지구 라이벌 자이언츠의 7차전 경기가 치러질 예정인데요. 일단 어제 경기는 자이언츠가 5연패 끝에 잡아냈습니다.
-8연승을 달리는 동안 카일 앤더슨 선수가 무려 6번의 세이브를 따냈거든요. 하지만 어제 경기에서는 팀의 마무리 투수로서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투 아웃을 잘 잡아놓고 볼넷과 홈런을 허용하면서 자멸했는데요.
-홈런보다도 루이스 넬슨 선수에게 볼넷을 준 게 컸습니다. 맞지 않으려고 도망다니는 피칭을 하다가 결국 그렇게 됐거든요.
-어제 경기에서 마무리 투수라면 설사 큰 걸 얻어맞더라도 자신감 있게 피칭해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차라리 루이스 넬슨 선수에게 홈런을 허용했다면 동점 상황에서 뒤를 바라볼 수 있었을 겁니다. 다저스 불펜이 약한 것도 아니니까 연장으로 가면 승산은 충분했거든요.
-하지만 자이언츠의 4번 타자 클레버 볼트 선수에게 역전 3점 홈런을 내주면서 패전 투수의 멍에를 쓰게 됐습니다.
-심지어 클레버 볼트 선수는 어제 홈런이 첫 홈런이었습니다. 시즌 초반 타격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언론에서 타순을 조정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죠.
-다저스의 9회 말 공격도 아쉬웠는데요.
-어제는 전반적으로 데이브 로빈 감독의 판단 미스가 많았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카일 앤더슨 선수는 8연승 기간 동안 6세이브를 거두며 메이저리그 전체 세이브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겠습니까?
-거의 매 경기 등판했다고 봐야겠죠.
-물론 제 얘기를 듣는 일부 시청자들은 아직 시즌 초반인데 체력적으로 문제가 될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즌 초라고 해서 연투의 피로가 없는 게 아닙니다.
-현지 언론에서도 카일 앤더슨 선수에게 휴식을 주지 않았던 걸 패착으로 보고 있는데요. 실제로 첫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하면서부터 피칭이 흔들렸습니다.
-아니죠. 첫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할 만큼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이후 알렉스 카리오 선수와 제이미 데이비스 선수를 범타로 잡아내긴 했지만 압도하는 느낌은 아니었으니까요.
-심지어 카일 앤더슨 선수는 작년 셋업으로 뛰다가 올 시즌 마무리 투수로 보직을 변경한 상황인데요. 아무래도 뒤가 있는 셋업 포지션보다 점수를 내주면 패배로 직결되는 마무리 투수가 더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죠. 그렇다고 어제 한 경기만 가지고 카일 앤더슨 선수를 탓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원래 블론 세이브가 적지 않은 선수였고 또 어제 경기를 빼고는 잘해줬으니까요. 다만 지구 라이벌인 자이언츠를 상대로 블론 세이브를 기록한 게 트라우마로 남을까 걱정입니다.
때마침 현지 중계 카메라가 다저스의 더그아웃을 살폈다.
메이저리그 전체 1위를 달리고 있어서일까.
8연승 행진이 끝나긴 했지만 선수들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하지만 데이브 로빈 감독의 얼굴만큼은 잔뜩 굳어 있었다.
이를 두고 채팅창으로 명장병이라는 글들이 올라오자 장호영 캐스터가 말을 이었다.
-어제 경기가 끝나고 일부 지역 언론에서 데이브 로빈 감독의 용병술을 지적하는 기사가 나왔는데요. 이선철 해설위원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저도 지도자 생활을 했던 입장에서 8승 1패의 성적을 거두고 있는 감독에 대해 평가한다는 게 옳은 일인가 싶지만 솔직히 말해서 지난 다이아몬드백스전 때부터 뭔가 조급한 느낌이 들긴 했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신다면요?
-결과적으로 다이아몬드백스와의 홈 3연전을 스윕하긴 했지만 경기 내용이 좋았던 건 아니었거든요. 타순이 바뀌면서 공격 흐름이 끊기는 경우가 많았고 수비도 불안했어요.
-박유성 선수의 뒤에서 4할을 치던 송현민 선수를 무리해서 6번으로 보내면서 타선의 밸런스가 깨졌다는 말이 많았는데요.
-디에고 후리오 선수를 빼고 카일 홀리데이 선수를 기용한 것까지는 이해가 갑니다. 디에고 후리오 선수가 자이언츠와의 4연전 내내 아쉬운 수비를 보여줬으니까 변화를 시도할 필요는 있었겠죠. 하지만 카일 홀리데이 선수가 코너 외야수로서 안정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다저스 팬들은 그래도 디에고 후리오 선수보다 카일 홀리데이 선수가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팬들의 입장은 그럴 수 있습니다. 원래 박유성 선수를 영입하지 않았다면 중견수 자리에 카일 홀리데이 선수를 박아놓고 키워야 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카일 홀리데이 선수를 무리하게 기용하면서 수비도 흔들리고 공격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최근 경기를 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카일 홀리데이 선수가 의욕 넘치는 플레이를 하다가 박유성 선수와 부딪칠 뻔한 상황이 거의 매 경기 나오고 있습니다. 무리한 다이빙 캐치 시도가 실패로 끝나면서 실점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고요.
-사실 어제 경기도 5 대 1의 경기가 5 대 3까지 좁혀진 게 카일 홀리데이 선수의 무리한 플레이 때문이었죠. 그래도 언론들은 메이저리그 좌익수들 중에 최악의 수비를 보여주었던 디에고 후리오 선수보다 수비적으로는 낫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진짜 문제는 공격입니다.
-카일 홀리데이 선수가 송현민 선수를 대신해 2번 타순에 들어가면서 박유성 선수와 클린업 타선의 연결고리가 헐거워졌는데요.
-박유성 선수가 워낙에 잘해주고 있으니까 2번 타자를 바꿔도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 글쎄요. 잘못 생각해도 단단히 잘못 생각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대표팀에서 2번을 치고 있는 민병규 선수가 이런 말을 했죠. 대표팀 2번 타자 자리가 소속팀에서 3번을 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그만큼 중압감이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박유성 선수가 없다면 민병규 선수는 2번이 아니라 1번을 쳐줘야 하는 선수거든요? 하지만 박유성 선수가 1번 타자로 나서면서 어쩔 수 없이 2번 타순으로 배치가 된 겁니다.
-단순히 타격 재능만 놓고 보자면 1번을 쳐도 될 타자가 박유성이라는 괴물 때문에 2번으로 밀렸다는 말씀이신데요.
-편하게 이야기하자면 그렇습니다. 민병규 선수의 타격 재능은 송현민 선수와 비견될 정도로 훌륭하죠. 그래서 박유성 선수와 클린업을 연결하는 2번 타자의 중임을 맡긴 겁니다.
처음 민병규를 2번 타자로 내세우겠다고 발표했을 때.
랜더스 팬들은 물론이고 대다수 야구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리그에서 가장 잘 치는 민병규를 클린업이 아닌 2번으로 돌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강기태 감독은 민병규를 쓰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양해를 구했지만.
이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우승 기념 다큐멘터리에서 자세한 속내를 드러냈다.
“유성이는 국제 대회에서 9할을 치는 타자입니다. 3할도 4할도 5할도 아니고 9할이에요. 쉽게 말해 매 타석마다 출루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발도 빠르죠. 유성이가 나가면 상대 투수들은 보통 그로기 상태에 빠집니다. 하지만 에이스급 투수들은 어떻게든 후속 타자를 잡아내고 아웃 카운트를 늘리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2번 자리가 힘듭니다. 3할을 치는 1번 타자 다음이라면 부담감이 적지만 매 타석 출루하는 박유성의 다음에 치는 타자는 죽을 맛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해줘야 클린업으로 연결이 되니까요. 그 부담감을 이겨내고 2번을 쳐줄 타자가 병규뿐이었습니다.”
민병규도 팀에서 3번을 치는 것보다 대표팀에서 2번을 치는 게 훨씬 더 어렵다고 토로했다.
“솔직히 저희 팀에서는 제가 제일 잘 치거든요? 그래서 주자를 불러들이지 못해도 팬들이 어느 정도는 이해해 줍니다. 민병규가 못 치면 다른 타자도 못 칠 거다, 뭐 그런 게 있죠. 근데 대표팀은 달라요. 유성이 저 자식이 밥 먹듯 나가니까 안타를 못 치면 엄청 스트레스예요. 죽어도 그냥 죽으면 안 됩니다. 최소한 진루타라도 때려줘야 하는데 차라리 4번을 치는 게 낫지 2번 진짜 힘들어요. 못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이 상상 이상입니다.”
송현민도 2번으로 발탁됐을 때 기대보다 우려를 드러냈다.
“레인저스에서 2번을 치긴 했지만 사실 전혀 다른 타순이라고 봐야 합니다. 레인저스는 1번 타자가 자주 바뀌기도 했고 유성이만큼 출루를 해주는 편도 아니어서 오히려 홀가분하게 칠 수 있었지만 유성이 다음 타석은 달라요. 유성이가 찬스를 만들어주는 만큼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크고 상대 팀의 견제도 심할 겁니다.”
하지만 데이브 로빈 감독은 올 시즌 이적해 온 두 명의 한국인 타자가 스포트라이트를 몰아받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카일. 잘할 수 있지?”
“네. 감독님.”
“부담 갖지 마. 편하게 치라고. 썬이 출루해서 흔들어주면 공간이 생길 거야. 그 공간으로 타구를 보낸다고 생각해. 어때? 쉽지?”
“아, 넵.”
“그래. 오늘은 안타를 하나 쳐보자고.”
오늘도 2번 타순에 박아 넣은 카일 홀리데이를 불러놓고 데이브 로빈 감독은 그럴 듯한 조언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지난 4경기 선발로 출전해 단 하나의 안타도 때려내지 못한 카일 홀리데이는 편하게 하라는 말이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단순히 안타를 때려내지 못한 걸로 끝이라면 루키답게 씩씩하게 덤벼보겠지만.
박유성이 만들어낸 득점 기회를 연결하지 못하다 보니 19타수 무안타라는 성적이 더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데이브 로빈 감독이 준 기회를 이대로 포기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든 버텨야 해. 그래야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
방망이를 움켜쥔 카일 홀리데이는 애런 바츠 타격 코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피터 페츠를 상대할 방법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다저스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피터 페츠의 공을 공략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카일. 욕심부리지 말고 상황을 지켜봐. 안타가 급한 건 알겠지만 팀이 이기는 게 먼저야. 알았지?”
“물론이죠.”
“그리고 수비할 때 썬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마. 어제 경기 같은 일이 다시 한번 벌어진다면 마이너리그로 내려가게 될 거야.”
“어제는 제가 의욕이 과했습니다.”
“안타를 치지 못한 실수를 수비로 만회하려 들면 무조건 실수하게 되어 있어. 내 말 명심하라고.”
다저스의 3번 타자 코리 베츠는 박유성을 구석으로 끌고 가 오늘 경기에서 승리할 비책을 내놓았다.
“2루타만 치라고?”
“정확하게는 2루까지만 가라는 거야. 그래야 카일에게 데이브가 번트 사인을 낼 테니까.”
“카일은 안타를 치고 싶어 할 텐데?”
“썬. 카일이 2번을 치고 나서 우리 팀 득점력이 반토막 났어. 난 지난 자이언츠 원정 때처럼 경기를 즐기고 싶어. 물론 매 경기 그럴 수는 없겠지만 널 활용하지 못하는 바보 같은 경기는 그만 보고 싶어.”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이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야. 대다수 다저스 팬들의 바람이라고. 내 SNS로 온 메시지를 보면 아마 깜짝 놀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