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405화 (405/412)

타자 인생 3회차! 405화

47. 밥값은 해야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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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저스가 박유성 영입전의 최종 승자가 됐을 때.

모든 다저스 팬들이 만세를 불렀던 건 아니었다.

“이건 미친 짓이에요. 5억 달러도 아니고 8억 달러라고요.”

“주요 언론에서 합리적인 선에서 계약을 맺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데 마크의 생각은 다른 거죠?”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아시아 선수로 꼽히는 오타니 쇼헤는 4억 5천만 달러에 계약했어요.”

“하지만 그 계약은 8년 전 계약이잖아요?”

“대신 오타니 쇼헤는 투타 겸업이었죠. 타자는 물론이고 투수로서도 훌륭한 성적을 거뒀어요. 과연 썬이 타격으로 투타 겸업을 한 오타니 쇼헤를 넘을 수 있을까요? 저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2020년 다저스와 12년 3억 6,500만 달러의 장기 계약을 맺었던 마크 베츠는 다저스가 지나치게 많은 돈을 박유성에게 지불했다고 주장했다.

2018년 레드삭스에서 리그 MVP를 수상한 자신조차 총액 3억 달러에 그쳤는데 메이저리그 경력이 전혀 없는 박유성이 총액 8억 달러(14년)를 받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언성을 높였다.

박유성이 시범 경기를 전부 거르자 마크 베츠의 비난도 거세졌다.

“다저스는 썬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공개하지 못하고 있어요.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긴 하지만 썬의 몸에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썬의 몸에 문제가 있었다면 과연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었을까요?”

“둘 중 하나입니다. 썬이 부상 부위를 숨겼거나 다저스가 부상 정도를 가볍게 여겼겠죠. 어느 쪽이든 다저스 팬들은 걱정이 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여차하면 8억 달러를 허공에 뿌리는 결과로 이어질수도 있으니까요.”

지역 언론들은 마크 베츠가 독설가 이미지를 고수하기 위해 박유성을 타겟으로 삼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마크 베츠는 박유성에 대한 평가를 바꾸지 않았다.

“마크. 서울 이벤트전을 봤나요?”

“다저스가 엉망진창으로 깨진 경기요? 물론 잘 봤습니다. 선수들이 시차 적응을 전혀 하지 못한 모습이었어요.”

“시차 적응의 문제라고 하기에는 너무 일방적으로 밀렸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벤트전은 말 그대로 이벤트일 뿐입니다. 다저스 선수들은 구단의 상술에 끌려다닌 죄밖에 없어요.”

“그래도 썬이 두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건 희소식이 아닐까요?”

“글쎄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시범 경기에서 맹타를 휘두른 루키들 중에 개막전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는 선수가 몇 명이나 있죠?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썬은 다저스 선수입니다. 다저스 투수들도 썬을 상대로 악착같이 승부를 하긴 어려웠겠죠.”

“이벤트전 결과를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네요.”

“개막전이 코앞입니다. 썬의 실력은 그때 가서 확인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마크 베츠가 다저스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던 서울 이벤트전까지 부정하자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도 분통을 터뜨렸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뭐가 문제야?”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은퇴를 했지 않습니까.”

“마크는 다저스에서만 10년을 뛰었어. 그 정도면 구단에서도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 준 셈이라고.”

“하지만 마크 베츠는 계약 기간을 다 채우고 다저스에서 영예롭게 은퇴하고 싶었을 겁니다. 만약에 그랬다면 썬을 두 팔 벌려 환영했을지도 모르죠.”

마크 베츠의 12년 계약 마지막 해는 2031년.

만약에 마크 베츠가 계약 기간을 다 채웠다면 박유성에게 바통 터치를 하는 훈훈한 그림이 나왔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박유성에게 완전히 빠져 버린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겠다고 선언하면서 에이징 커브에 빠진 마크 베츠가 타겟이 됐다.

자존심이 상한 마크 베츠는 트레이드를 요구했지만.

30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고액 연봉자를 군말 없이 받아줄 구단은 없었다.

접촉한 모든 구단이 연봉 보조나 추가 트레이드를 요구하면서 협상은 결렬됐고.

구단의 태도에 회의감을 느낀 마크 베츠는 2030시즌을 앞두고 은퇴를 선언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썬을 비난하는 건 아니잖아?”

“썬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앤드류를 비난하는 겁니다. 결국 썬의 영입을 추진한 건 앤드류니까요.”

“아무튼 마크에게 전해. 계속 이런 식이면 재미없을 거라고.”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의 경고에 마크 베츠는 코웃음을 쳤다.

“난 해설가이자 칼럼니스트로서 이번 스토브리그에 크게 실망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증명해 봐요. 날 납득시켜 보라고요.”

다저스와 자이언츠의 개막전 경기가 다저스의 승리로 끝이 나자 수많은 다저스 팬들이 마크 베츠의 SNS를 검색했다.

경기 전 무안타 경기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떠들어댔던 마크 베츠가 어떤 반응을 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크 베츠는 메이저리그에 온 걸 환영한다는 짧은 메시지만 올렸다.

“이게 무슨 의미지?”

“말 그대로 메이저리그에 온 걸 환영한다는 이야기지.”

“그걸 누가 몰라? 그래서? 썬을 인정한다는 거야?”

“그럴 리가. 만약에 썬을 인정했다면 다른 감정을 드러냈을걸?”

“그렇지? 아직 성에 안 찬다는 뜻이겠지?”

“개막전에서 3연타석 홈런을 때려낸 건 놀라운 일이지만 계속 그럴 수는 없을 테니까. 조금 더 지켜보자는 거 같은데?”

기자들의 예상대로 마크 베츠는 박유성에 대한 평가를 아꼈다.

자이언츠 원정 4연전 내내 박유성이 잘하기란 쉽지 않을 터.

1차전은 피터 페츠가 덤벼준 덕분에 박유성이 3개의 홈런을 때려냈지만 2차전부터는 다를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데뷔전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박유성의 방망이는 꺾이지 않았다.

-안타! 박유성 선수가 올 시즌 10번째 안타를 때려냅니다.

-이제 겨우 세 번째 경기를 치르는 중인데요. 벌써 안타 공장이 가열차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자이언츠와의 4연전에서 박유성이 만들어낸 안타는 총 13개.

홈런 5개에 2루타 3개, 3루타 1개를 때려냈다.

박유성이 시즌 타율 0.684로 메이저리그 전체 타격 1위에 올라서자 마크 베츠도 태도를 바꿨다.

“아직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자이언츠 원정에서 보여줬던 썬의 활약은 대단했습니다.”

“주요 언론에서 3할대 중반의 타율을 예상했는데 거의 그 두배를 때려냈죠.”

“물론 6할의 타율을 시즌 끝까지 유지하기란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썬이 좋은 타자라는 건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8억 달러를 받을 만하다고 인정하는 건가요?”

“아뇨. 아직까지는 아닙니다. 하지만 4할 이상의 타율로 4월을 버텨낸다면 그때는 제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유성의 활약에 놀라워하면서도 마크 베츠는 박유성의 기대치를 4할 정도로 잡았다.

잘해야 4할 극초반 정도.

자이언츠 원정 때에 박유성을 잘 모르는 투수들이 멋모르고 승부를 걸어준 덕분에 안타가 많이 나왔지만.

박유성에 대한 경계령이 떨어진 이후에도 지금의 타격 페이스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을 거라고 내다봤다.

그 예상대로 다이아몬드백스와의 홈 3연전에서 박유성은 9타수 4안타 1홈런이라는 평범한(?) 성적에 그쳤다.

다이아몬드백스 투수들이 정면 승부를 피하면서 타격 기회 자체도 적었지만.

박유성 역시 홈 팬들에게 뭔가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욕심을 부려 타율을 까먹었다.

“마크. 썬의 활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제 생각보다는 순조로운 적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려했던 것처럼 분석을 당하면서 자이언츠 원정때만큼의 안타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다저스가 7연승을 달리는 데 공격과 수비, 주루에서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렇다면 썬에 대한 평가는 바뀐 건가요?”

“아직은요. 이번 자이언츠와의 홈 4연전이 관건입니다.”

마크 베츠는 다저스와 자이언츠 간 리턴 매치를 초반 분수령으로 잡았다.

메이저리그에서 동일 지구팀 간 경기는 총 19번.

맞대결 전적이 일방적으로 밀릴 경우 지구 우승은 물론이거니와 포스트 시즌 진출도 장담하기 어려웠다.

이미 홈 개막 4연전을 전부 내준 자이언츠 입장에서는 다저스 원정 4연전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4연패 이후 위닝 시리즈로 지구 순위 4위로 처져 있기 때문에 이번 시리즈마저 허무하게 내준다면 와일드 카드도 장담하기 어려웠다.

만약에 이 전쟁에서 박유성이 유의미한 성적을 낸다면 그때는 박유성에 대한 평가를 일부 조정해야겠지만.

“쉽지 않을 거야.”

에이스인 피터 페츠의 등판 일정까지 조정해 가며 복수를 다짐한 자이언츠가 호락호락 당해줄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썬의 예상 성적은?”

“다이아몬드백스 투수들이 했던 때처럼 까다롭게 승부하면 썬도 안타를 치기 힘들 거야.”

“돌려 말하지 말고. 예상 성적은?”

“15타수 5타 정도? 아마 그렇게 시즌 타율이 조정되겠지.”

자이언츠 원정에서 7할을 바라보던 박유성의 시즌 타율은 다이아몬드백스와의 3연전을 거치면서 0.586까지 떨어졌다.

이번 4연전에서 15타수 5안타 정도를 친다면 5할대 시즌 타율의 앞자리가 4로 바뀌게 될 터.

그렇게 된다면 박유성을 찬양하기 바쁜 지역 언론과 다저스 팬들도 8억 달러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될 거라 여겼다.

하지만 박유성은 자이언츠와의 홈 시리즈 첫 경기부터 히트 포 더 사이클을 작렬하며 다저스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봤어? 봤냐고! @Dodgers SN

└썬의 플레이라면 봤지. 지금도 돌려보는 중이야. 하하하. @go Dodgers

└메이저리그 역사상 데뷔전에 3연타석 홈런을 때려내고 8경기 만에 히트 포 더 사이클을 기록한 괴물이 있을까? @Whiteheart77

└없지. 그래서 썬이 괴물인 거고. @Sepulve

└뭐야? 고작 히트 포 더 사이클로 호들갑을 떠는 거야? @epicgiraf324

└맞아. 썬은 한국에서 뛸 때 3시즌 동안 50번의 히트 포 더 사이클을 완성시켰다고. 벌써부터 흥분할 필요 없어. 썬은 앞으로도 밥 먹듯이 대기록을 달성할 거니까. @Dodgers SN

└난 다른 것보다 썬의 시즌 타율이 7할까지 올라가서 너무 좋아. @CappDrop34

└시즌 타율 7할? OPS를 잘못 본 거 아니지? @Marc_3272

└미안하지만 썬의 올시즌 OPS는 2.133이라고. 아직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다른 타자들을 어린애로 만드는 중이야. @zzul0845

└썬은 도핑 검사를 해야 해. 이건 말도 안 되는 퍼포먼스라고. @truebluefan745

└이미 썬은 국제 대회마다 수없이 도핑 검사를 받았어. 하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지. @Hect Diaz

└썬의 실력이 약물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바보들이 아직도 있는 거야? @dills smith

└둘 중 하나겠지. 최종 협상 때 떨어진 구단들의 팬이거나 머저리거나. @mario033e

└난 다른 것보다 자이언츠를 상대로 5연승을 달리고 있다는 게 꿈만 같아. @go Dodgers

└나도. ㅎㅎㅎ 역시 자이언츠는 이기고 봐야 한다니까? @MomsOopsBaby

자이언츠와의 홈 4연전 첫 경기를 잡아내며 8연승 행진을 달린 다저스는 다음 날 충격의 역전패를 당했다.

5 대 3으로 앞선 상황에서 마무리 투수인 카일 앤더슨이 역전 홈런을 얻어맞은 것이다.

9회 말 공격이 박유성까지 이어졌다면 어떻게든 반전의 기회를 만들어 봤겠지만 애석하게도 9번 타순에서 마지막 아웃 카운트가 잡히면서 자이언츠에 시즌 첫 패배를 내주고 말았다.

“내일 선발은 피터 페츠입니다.”

겨우 한숨 돌리게 된 자이언츠의 게빈 케플러 감독은 언론의 예상대로 5선발을 생략하고 1선발 피터 페츠를 선발 예고했다.

그렇게 박유성과 피터 페츠가 구장을 바꿔 다시 격돌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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