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402화
46. 썬세이션(8)
-좌중간을 꿰뚫는 안타! 코리 베츠 선수가 오늘 경기 첫 안타를 때려냅니다!
-송현민 선수는 홈으로 들어올 것 같은데요.
-송현민 3루를 돌아 홈으로! 공은 2루에서 커트됩니다. 스코어 3 대 0! 다저스가 다시 한 점을 벌립니다.
-제가 이번 이닝에서 분위기를 살려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는데요. 이렇게 되면 오늘 경기는 다저스가 잡을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2번 타자 송현민이 피터 페츠의 초구를 잡아당겨 우익수 키를 넘기는 2루타를 때려낸 데 이어 코리 베츠의 적시타까지 터지자 TV를 통해 경기를 지켜보던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테이블을 두드리며 좋아했다.
“봤지? 내가 뭐랬어? 썬이 흐름을 만들어줄 거라고 했지?”
“안타는 쏭과 코리 베츠가 쳤는데 아직도 썬입니까?”
“썬이 아니었으면 과연 저 안타가 나왔을까?”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죠.”
언제나처럼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의 옆을 지키던 로이 홀랜드 보좌역이 애써 딴죽을 걸었다.
야구는 9회 말 투아웃부터라는 말처럼 경기 분위기는 언제든 바뀔 수 있었다.
박유성의 솔로 홈런을 시작으로 3연타석 안타가 나온 건 사실이지만.
앞서 1회 초에는 박유성의 홈런 이후 세 타자 연속 범타로 끝이 났으니 모든 걸 박유성과 결부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로이 홀랜드 보좌역의 입가에 걸린 웃음을 놓치지 않았다.
“실실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면 설득력이 떨어지는데?”
“이기고 있어서 웃은 것뿐입니다.”
“그래서? 정말 썬의 홈런이 없었더라도 추가 득점이 나왔을 거라고 생각해?”
“썬의 홈런이 상당 부분 영향을 끼친 건 사실이죠. 다만 너무 그쪽으로만 보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선수들이 서운해할 거라는 거지? 하하. 로이.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야.”
“……?”
“로이, 자네 말고도 날 보좌하는 사람은 많아. 하지만 지금 내 옆에 앉아 있는 건 자네뿐이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그야…… 제가 일을 잘해서죠.”
로이 홀랜드 보좌역이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그러자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가 일을 잘하는 건 사실이지. 나와 대화가 잘 통하기도 하고 말이야.”
“갑자기 비행기를 태우시니까 벌써부터 어지러운데요?”
“다저스의 사장 보좌역이 이 정도로 어지러우면 쓰나? 어쨌거나 조만간 실적이 부족한 보좌역 몇 명을 정리할 생각이야.”
“보좌역을 새로 뽑으실 생각이십니까?”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난 여전히 자네를 신뢰하고 있으니까.”
짓궂게 웃어대는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을 보며 로이 홀랜드 보좌역은 고개를 흔들었다.
빙 돌려 말하긴 했지만 결국 자신을 총애하는 것처럼 박유성을 편애하겠다는 얘기였다.
구단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특정 선수를 싸고도는 건 팀 캐미스트리에 악영향을 줄 수 있었다.
단장과 감독의 애정은 힘이 되고.
선수가 그 힘을 권력처럼 휘두르면 클럽하우스 분위기가 엉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앤드류. 썬에 대한 언급은 최대한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플레이에 대한 칭찬은 어쩔 수 없겠지만 다른 선수들이 박탈감을 느끼는 발언은 삼가야 합니다.”
“박탈감을 느낀다라. 글쎄. 그건 썬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얘기 아닐까?”
“……?”
“생각해 봐. 시범 경기도 건너뛰고 데뷔전을 치른 슈퍼 루키가 데뷔전에서 연타석 홈런포를 때려냈어. 그것도 지난해까지 우리 팀에서 뛰었던 피터 페츠를 상대로 말이야. 저런 실력을 보고도 썬을 인정하지 않는 선수라면 계속 데리고 갈 이유가 있을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제 우리 팀의 중심은 썬이라는 이야기야. 그러니까 다른 선수들을 신경 쓰라는 둥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 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다저스의 단장으로 부임한 이래 지금껏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의 야구단 운영 원칙은 간단했다.
실력이 우선이다.
팀에 대한 애정도 좋고 인성도 좋고 팬서비스도 좋지만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를 의리만으로 끌고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실례로 지금은 팀을 떠난 브라이언 조던은 다저스 선수들 중에서 팬서비스가 가장 좋기로 유명했다.
피터 페츠는 다저스 팬들이 영구결번 선수로 꼽은 프랜차이즈 스타였으며 부진한 피터 페츠를 대신해 에이스 역할을 해줬던 2선발 게라드 카릴로 역시 조국인 멕시코에 자비를 들여 야구장을 지어줄 만큼 인성이 훌륭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세 선수 모두 지금은 다저스를 떠나 다른 팀에서 뛰고 있었다.
브라이언 조던은 로열스로 갔고 게라드 카릴로는 타이거즈에 둥지를 틀었으며.
수많은 다저스 팬들의 심금을 울렸던 피터 페츠는 지구 라이벌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이를 두고 일부 팬들과 지역 언론은 선수들을 소모품 취급한다고 맹비난하지만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로이. 빅마켓 구단과 미들 마켓, 스몰 마켓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해?”
“그야 재정 규모죠.”
“그래. 얼마나 쓰느냐에 따라서 마켓이 나뉘지. 그럼 우승을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뭘까?”
“좋은 선수와 좋은 환경입니다.”
“나쁘지 않은 대답인데 조금 더 쉽게 생각해 봐.”
“……구단의 의지?”
“그래. 바로 그거야. 구단의 의지. 우승을 목표로 하는 구단은 그만큼 돈을 써서 좋은 선수들을 데려와야 해. 시설에 투자해서 더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찾아오게 만들어야 하고.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더 좋은 선수들을 사고 그렇게 팀을 꾸려서 월드 시리즈에 도전하는 게 핵심이라고.”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의 말에 로이 홀랜드 보좌역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소 뻔한 이야기이긴 했지만 다저스가 빅마켓으로 불리는 가장 큰 이유는 우승을 향한 의지가 확고해서였다.
“그렇다면 스몰 마켓은 어떨까? 우승에 대한 의지가 없을까?”
“빅마켓만큼 확실한 목표를 정하고 달리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잘 키운 유망주들을 중심으로 어떻게든 기회를 잡으려고 하겠죠.”
“그래. 바로 그거야. 스몰 마켓도 미들 마켓도 목표는 우승이야. 오히려 저들은 부담이 없지. 우리처럼 많은 돈을 쏟아붓지 않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우린 달라. 이미 천문학적인 돈을 썼고 당분간 막대한 사치세를 내야 해. 그걸 감당하는 길은 단 하나뿐이야.”
“우승.”
“그래. 우승. 그리고 그 우승의 키는 누가 뭐래도 썬이 쥐고 있어.”
“흠…….”
“자네 생각은 어때?”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훅 치고 들어오는 질문에 로이 홀랜드 보좌역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개막전 경기를 치르는 상황이고.
오늘 경기가 이대로 끝날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박유성이라는 세계 최고의 타자가 합류하면서 다저스의 분위기가 달라진 건 부정하기 어려웠다.
로이 홀랜드 보좌역이 수긍하자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TV 쪽으로 손을 뻗었다.
때마침 피터 페츠의 얼굴이 잡혔는데 이제 3회 초임에도 불구하고 포스트 시즌에 연투로 혹사당한 투수처럼 상당히 지쳐 보였다.
“지금 피터 페츠의 투구 수가 몇 개지?”
“58구입니다.”
“그래. 아직 80구도 던지지 않았어. 하지만 보라고. 과연 피터 페츠가 몇 회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래도 5회까지는 던지지 않을까요?”
“5회에 또다시 썬을 만나게 될 텐데?”
“그래도…….”
뭔가 말을 하려던 로이 홀랜드 보좌역이 이내 입을 다물었다.
2030시즌과 2031시즌.
피터 페츠가 2년 연속 기대 이하의 성적을 기록했을 때도 다저스 팬들은 피터 페츠를 에이스로 인정하고 존중했다.
에이스로서 팀 내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해 줬기 때문이다.
현대 야구에서 에이스가 갖춰야 할 가장 큰 덕목은 많은 승리를 따내는 것도 아니고 최대한 점수를 주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바로 긴 이닝을 소화하는 것.
승리야 실력보다 운이 중요해서 사이영 상 선정 기준에서 후 순위로 밀린 지 오래고.
평균자책점 역시 압도적인 탈삼진 능력을 가진 투수가 아니고서야 야수들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보니 절대적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닝은 달랐다.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해 부상 없이 꾸준히 던지려면 자기 관리가 필수였다.
그런 점에서 다저스 팬들은 지난 2년간 비슷한 그래프를 그리던 크리스 반스와 피터 페츠를 비교하는 걸 질색했다.
크리스 반스는 부상을 당해 두 시즌을 날린 반면.
피터 페츠는 에이스로서 꾸역꾸역 이닝을 먹어주었기 때문이다.
자이언츠에서 피터 페츠를 비싼 돈에 데려간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닝 이터로서의 장점을 높이 평가해서였다.
그런데 박유성에게 10구 승부 끝에 홈런을 얻어맞은 이후로 피터 페츠가 무너지고 있었다.
송현민과 코리 베츠에게 연속 안타를 허용한 것도 피터 페츠 특유의 견고함에 금이 간 결과였다.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타자는 코리 베츠도, 로비 마르티네즈도 아니야.”
“마크 스테리죠.”
“그래. 마크 스테리. 만약에 마크 스테리가 우리 팀에 있었다면 지난 5년간 최소 두 번은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했을 거야.”
“실력으로만 놓고 보자면 코리 베츠도 마크 스테리 못지않습니다.”
“물론 그렇지. 데이터만 보면 말이야. 하지만 각 구단의 1, 2선발만 놓고 보면 마크 스테리가 최고야. 로비 마르티네즈가 바짝 따라붙고 있긴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상대 팀 에이스의 결정구를 공략해 경기 분위기를 바꾸는 건 마크 스테리를 따라올 타자가 없어. 아니, 없었지.”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냉큼 말을 정정했다.
지난해까지는 리그가 달랐기 때문에 박유성에 대한 평가와 마크 스테리에 대한 평가를 따로 했지만.
박유성이 8억 달러를 받고 메이저리그에 합류한 지금은 달랐다.
“보라고. 단 두 개의 홈런으로 피터 페츠를 무너뜨렸어. 그것도 고작 3회 만에 말이야.”
“앤드류.”
“알아.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어. 자이언츠 타선은 강해. 크리스 반스를 상대로 충분히 점수를 뽑아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썬이 있는 한 오늘 경기가 뒤집힐 일은 없어. 설사 동점이 되고 경기가 뒤집히더라도 썬의 타석에 돌아온다면 뭐든 해줄 거라고.”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의 말은 씨가 됐다.
1사 2루 상황에서 4번 타자 미구엘 호네즈가 잡아당긴 타구가 유격수 직선타로 잡히면서 성급하게 2루를 비웠던 피터 페츠까지 아웃이 되고 만 것이다.
“괜찮아! 3점이면 충분해!”
크리스 반스가 일부러 웃으며 선수들을 독려했지만.
따악!
조이 패런트가 초구를 잡아당겨 왼쪽 담장 밖으로 넘겨 버리면서 경기가 이상해졌다.
“살짝 몰렸나?”
고개를 갸웃거리던 크리스 반스는 8번 타자 타일러 보이트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9번 타자로 타석에 선 피터 페츠에게 3유간을 꿰뚫는 안타를 내주면서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 이 타구가 유격수 옆을 빠져나갑니다.
-빨리 아웃 카운트를 늘리고 싶은 심정은 이해가 가는데 크리스 반스 선수가 서둘러도 너무 서둘렀어요. 피터 페츠 선수가 타격이 약한 선수는 아니거든요.
-앞서 이선철 해설위원께서 투수 타석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 조언이 크리스 반스 선수에게 닿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감독이나 코치가 마운드를 한번 올라가 봐야 할 것 같은데요.
-하지만 지금 다저스 벤치는 조용합니다. 이대로 크리스 반스 선수에게 맡길 생각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