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399화
46. 썬세이션(5)
-지금 구심이 다시 한번 경고를 주고 있는데요.
-당연히 저렇게 해야 합니다. 대충 구두 경고로 끝내면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하마터면 박유성 선수가 데뷔전에 빈볼을 맞고 부상을 당할 뻔했습니다.
-지금 현지 중계석에서도 구심이 적절한 판단을 내렸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요.
-만약에 국내 경기였다면 바로 퇴장이 나왔을 겁니다. 방금 공은 누가 봐도 의도적이었습니다. 박유성 선수가 괜히 타석에서 발을 뺀 게 아니에요.
-이선철 해설위원께서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죠. 빈볼인지 아닌지는 타자가 가장 잘 안다고요.
-투수는 스트라이크 존 주변으로 공을 던지도록 꾸준히 훈련해 온 선수들입니다. 방금처럼 터무니없는 공은 던지고 싶어도 던질 수가 없어요. 만약에 평소에도 저런 실수를 해왔다면 또 모르겠는데 그런 투수는 메이저리그 무대에 설 수가 없죠.
-실제로 피터 페츠 선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제구가 좋기로 정평이 나 있는 투수인데요.
-그러니까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피터 페츠 선수는 좌타자를 상대로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명품 투심을 던지는 투수입니다. 게다가 장타를 피하기 위해 공을 낮게 던지려고 노력하는 투수예요.
-설사 손에서 공이 빠졌다 하더라도 머리 쪽으로 날아가는 건 변명이 불가능한 거네요.
-박유성 선수가 괜히 타석에서 몸을 피한 게 아닐 겁니다.
그때 현지 중계 화면에 박유성의 사구 개수가 나왔다.
지난 3년간 고작 6개의 공을 맞았다는 사실에 현지 중계석에서 웃음이 흘러나왔지만.
대한민국 중계석은 저 숫자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스타즈에서 3년을 뛰면서 박유성 선수가 공을 맞고 1루 베이스로 출루한 건 6번뿐입니다.
-저걸 가지고 일본 쪽에서는 국내 투수들이 일부러 승부를 피한 게 아니냐고 말하는데 터무니없는 소리죠. 박유성 선수 하이라이트 영상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흔히들 박유성 선수가 몸 쪽 공을 잘 치기 때문에 투수들이 바깥쪽 승부를 많이 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데이터상으로 봤을 때 리그 평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 게 박유성 선수는 스트라이크 존 주변으로 들어오는 공을 다 잘 칩니다. 몸 쪽과 바깥쪽을 가리지 않고 낮은 코스와 높은 코스를 가리지 않아요. 박유성 선수의 히팅존을 한 번이라도 찾아보신 분이라면 아실겁니다.
-스트라이크 존뿐만 아니라 그 주변까지 전부 새빨갛죠.
-몸 쪽으로 두 개쯤 깊숙이 들어오는 공도 기술적으로 안타를 때려낼 수 있는 타자입니다. 반대로 바깥쪽으로 도망치는 공도 완벽한 타이밍으로 때려내죠. 박유성 선수가 사구가 적은 건 자동고의4구가 자주 나와서입니다.
-보통 위기 때 투수들이 흔들리게 마련인데요. 그럴 때마다 벤치에서 자동 고의4구나 고의4구를 지시하는 경우가 많았죠.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박유성 선수가 터무니없이 잘해서 사구가 나올 상황 자체가 적었던 거지 박유성 선수가 편하게 야구를 한 게 절대 아닙니다.
메이저리그 중계진에 합류한 이선철 해설위원이 열변을 토해내는 사이 경기가 재개됐다.
보통 잠시 경기가 멈췄다가 재개될 경우 홈 관중들의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오게 마련이지만.
자이언츠 파크는 자이언츠의 홈구장이 맞나 싶을 만큼 불편한 침묵 속에 빠져 있었다.
“젠장. 왜 저러는 거야?”
“내가 말했잖아. 피터 페츠는 퇴물이야. 다저스에서 쫓겨나서 자이언츠로 온 거라고.”
“다저스에서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온 게 틀림없어.”
“설마 벤치에서 사인이 나온 건 아니겠지?”
일부 팬들은 피터 페츠가 박유성을 맞히려 했다는 데 화를 냈고.
“맞힐 거면 진즉에 맞히든가. 쓰리 볼이 됐잖아!”
“썬은 발이 빠른 타자야. 루상에 내보내면 분명 도루를 할 거라고.”
“그거 모르는 사람이 여기 누가 있어?”
“저 멍청이들. 모르니까 쓰리 볼까지 끌고 왔겠지.”
일부 팬들은 박유성이 볼넷으로 나갈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짜증을 냈다.
“피터! 괜찮아!”
“자신 있게 던져!”
그나마 자이언츠 더그아웃에서 독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피터 페츠에게는 눈꼽만큼도 힘이 되지 않았다.
답답한 건 조이 패런트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뭘 던져야 하지?’
투구를 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선택해야 하는 건 코스였다.
몸 쪽인가 바깥쪽인가.
높은 코스인가 낮은 코스인가.
물론 구종을 선택한 다음에 코스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그 공으로 타자를 잡아낼 자신이 있을 때의 이야기이고 박유성처럼 맞히는 재주가 탁월한 타자의 경우에는 코스 선택이 가장 중요했다.
초구와 2구는 바깥쪽.
그리고 3구는 몸 쪽.
이 3구 중에 단 하나라도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듯 들어가는 공이 있었다면 그걸 바탕으로 빌드업을 했겠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은 이뤄놓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초구와 2구는 프레이밍이 의미가 없을 만큼 바깥쪽으로 빠져나갔고.
3구는 빈볼처럼 날아가 구심에게 경고를 들었다.
피터 페츠는 다시 한번 몸 쪽 승부를 걸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몰릴 가능성이 높아.’
물론 피터 페츠가 미친 척하고 박유성에게 다시 빈볼을 던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중징계가 내려질 가능성이 높았다.
박유성에게 복수를 하는 것만큼이나 올 시즌 화려하게 재기하고 싶어 하던 피터 페츠라면 더 이상의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터.
결국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해야 하는데 지금의 피터 페츠가 박유성을 상대로 완벽한 공을 보더 라인에 정확하게 찔러 넣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바깥쪽으로 승부를 걸자니 박유성을 속일 방법이 없었다.
초구와 2구째 연달아 보여준 포심 패스트 볼은 박유성의 눈에 익은 상태.
‘슬라이더? 아니야. 조금만 몰리면 장타야. 그렇다고 체인지업으로 도박을 걸 수도 없고…….’
한참을 고민하던 조이 패런트는 피터 페츠가 거의 던지지 않는 공을 꺼냈다.
“커브를 던지라고? 그것도 한복판으로?”
가끔 강타자들을 상대로 허를 찌르듯 느린 공을 던지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박유성은 리그에서 7할을 쳤을 만큼 정확도가 높은 타자.
요행을 바라며 한복판에 커브를 던지느니 차라리 칠 테면 쳐보라며 포심 패스트 볼을 던지는 게 나았다.
“어차피 고개를 저어봐야 쓸데없는 사인을 내겠지. 그렇다면…….”
피터 페츠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글러브 안에서 포심 패스트 볼 그립을 쥐었다.
박유성도 쓰리 볼에서 공 하나쯤은 지켜볼 터.
이럴 때 빠른 공으로 정신을 쏙 빼놓아야 했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박유성이 피터 페츠의 뻔한 수에 당할 리 없었다.
오히려 다소 허술하게 타격 자세를 잡아 피터 페츠의 방심을 유도한 뒤에.
후앗!
피터 페츠의 손끝을 빠져나온 공이 한복판으로 날아들자 망설이지 않고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렇게 새하얀 공과 시커먼 방망이가 한 점에서 충돌했고.
따아악!
방망이에 제대로 찍힌 공은 그대로 방향을 바꿔 자이언츠 파크 센터를 향해 솟구쳤다.
-아아! 큽니다! 이 타구가 쭉쭉 뻗어 나갑니다!
-이건 넘어갔어요.
-중견수 뒤로! 중견수 뒤로! 중견수……가 잡을 수 없는 곳으로 떨어집니다! 홈런! 다저스의 박유성 선수가 데뷔 첫 타석에서 선제 솔로 홈런을 때려냅니다!
-역시 박유성 선수네요.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왔던 공을 놓치지 않고 때려냈습니다.
-지금 느린 화면으로 다시 나오고 있는데요. 무려 98mile/h(≒157.7㎞/h)의 빠른 공을 완벽하게 때려냈습니다.
메이저리그 중계석에서도 감탄이 터져 나왔다.
-8억 달러의 사나이가 자신이 8억 달러를 받아야 하는 이유를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정말 끝내주는 홈런이에요. 히팅 포인트부터 시작해 발사 각도, 타구 속도까지 완벽했습니다.
-수많은 언론에서 썬의 장타력에 대해 의문을 품었는데요. 첫 타석에서 스탠드 상단에 떨어지는 초대형 홈런을 때려냈습니다.
-방금 홈런에 올 시즌 1호 홈런인데요. 정말이지 대단한 선수임에는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라운드를 천천히 돌던 박유성은 3루 베이스를 밟으며 3루 쪽 관중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박유성의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보기 위해 찾아왔던 수백여 한인들이 목이 찢어져라 함성을 내질렀다.
“크아아아! 유성아아아아!”
“박유서어어어엉!”
그렇게 당당히 홈플레이트를 밟은 박유성은 송현민과 격렬한 하이 파이브를 나눈 뒤에 3번 타자 코리 베츠와도 미리 준비한 홈런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아, 박유성 선수가 지금 코리 베츠 선수와 세리머니를 함께하고 있는데요. 저건 또 언제 준비했을까요?
-일부 언론에서 박유성 선수의 적응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었는데요. 지금 보니까 팀에 완벽하게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경기를 지켜보던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도 세리머니 장면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둘이 언제부터 저렇게 친해진 거야?”
“아시잖습니까. 코리는 야구 잘하는 선수를 좋아하는 거.”
“벌써 썬을 인정한 거야?”
“프리미어 12 때부터 썬이 최고라고 말했습니다.”
“그래?”
“코리 말이 TV로 봐서는 썬의 진짜 실력을 알기 어렵다고 합니다. 현장에서 적으로 만나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고요.”
“내가 이래서 썬을 데려온 거야. 어때? 썬을 1번 타자로 쓰는 기분이?”
“솔직히 기대 이상입니다. 자이언츠 원정 경기를 이렇게 편하게 지켜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5년간.
다저스는 자이언츠 원정에서 4할 승률을 거두지 못했다.
본래 홈보다 원정 경기가 까다로운 편이라지만.
자이언츠 파크에서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다 보니 자이언츠 원정 경기가 끝나면 뜬금없는 연패에 빠지곤 했다.
오죽하면 다저스 팬들조차 시즌 첫 시리즈가 자이언츠 원정이라는 사실에 한탄했을 정도.
하지만 오늘 경기는 분위기가 달랐다.
이제 고작 한 타석 끝났을 뿐이지만 작년까지 다저스의 에이스로 활약하던 피터 페츠를 상대로 선제 솔로 홈런을 때려내면서 자이언츠 원정에서 리드를 잡게 됐다.
비록 송현민과 코리 베츠, 미구엘 호네즈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외야 플라이로 잡히며 1회 초가 끝났지만.
“후우…….”
리그를 바꿔 원정 개막전 선발로 나서게 된 크리스 반스는 더없이 마음이 편했다.
-이제 1회 말 자이언츠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선두타자는 알렉스 카리오. 지난 시즌 0.303의 타율을 기록한 바 있습니다.
-홈런도 17개나 때려냈을 만큼 일발장타를 갖춘 타자입니다.
대한민국 중계석은 물론이고 현지 중계석에서도 알렉스 카리오를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박유성과 특별 훈련을 통해 폼을 끌어올린 크리스 반스는 초구부터 99mile/h(≒159.3㎞/h)짜리 패스트 볼을 꽂아 넣으며 알렉스 카리오를 윽박질렀다.
-이번에는 바깥쪽! 크리스 반스 선수가 선두 타자 알렉스 카리오 선수를 3구 삼진으로 돌려 세웁니다!
-오늘 크리스 반스 선수 컨디션이 상당히 좋아 보이는데요. 저 빠른 공에 빨리 대처하지 못한다면 오늘 경기, 자이언츠 타자들이 상당히 고전할 것 같습니다.
1번 타자 알렉스 카리오에 이어 2번 타자 제이미 데이비스까지 삼진으로 아웃되자 3번 타자 루이스 넬슨은 초구부터 방망이를 휘둘렀다.
따악!
빠른 공을 예상하고 휘두른 방망이에 공이 걸리면서 2루수와 중견수 뒤쪽으로 타구가 떨어졌지만.
촤라라랏!
타격음이 울리기 전에 한발 앞서 앞쪽으로 움직였던 박유성이 슬라이딩 캐치로 공을 걷어내면서 루이스 넬슨의 시즌 첫 안타를 지워 버렸다.
“좋아! 그거야, 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