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395화
46. 썬세이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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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성의 최종 협상 대상 구단으로 다저스가 확정됐을 때.
대다수 언론은 박유성 영입전의 최대 피해자로 양키즈와 레드삭스를 지목했다.
연봉 지출로만 따졌을 때 양키즈와 레드삭스는 메이저리그 첫손가락을 다투는 빅마켓 구단.
단기전의 특성상 흐름이 중요한데 큰 경기에 강한 박유성이 다저스에 입단해 버렸으니 월드 시리즈에 올라가더라도 우승을 차지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우려가 쏟아졌다.
하지만 정작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양키즈도 레드삭스도 레인저스도 아닌 자이언츠였다.
30개 팀이 속한 메이저리그는 양대 리그 체제로 운영 중이다.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 리그.
각 리그마다 3개 지구, 5개 팀이 지구 우승을 두고 경쟁을 치르는데 자이언츠와 다저스는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에서 오랫동안 앙숙으로 지내왔다.
지난 2년간.
자이언츠는 다저스의 에이스 피터 페츠의 부진을 틈타 2년 연속 지구 우승을 거머쥐었다.
지구 2위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2029년에는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다저스를 꺾고 월드 시리즈에 올랐고.
2028년에는 지구 1위로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으니 최근 5년간의 성적은 자이언츠가 다저스에 크게 앞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이언츠의 파르한 제이디 사장도 공격적인 투자로 자이언츠를 월드 시리즈 우승권 팀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통합 우승을 차지한 2028시즌, 장기 계약 문제로 시끄러웠던 레즈의 영건, 호세 가르시아를 데려와 팀의 에이스로 만들었고.
잉여 자원을 넘기는 조건으로 필리스 팜에서 재능을 썩히던 지미 우드를 영입해 3선발로 키워냈다.
1루수 제이슨 보우저가 발목 부상으로 수비에 나설 수 없는 상황에 놓이자 타이거즈의 간판타자로 성장 중이던 클레버 볼트를 하이재킹한 건 역대급 영입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
그런 파르한 제이디 사장이 박유성의 영입에 올인하겠다는 뜻을 밝혔을 때 대다수 자이언츠 팬들은 영입 전쟁의 승자가 자이언츠가 될 거라고 확신했다.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는 다저스의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보다 파르한 제이디 사장의 능력이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메이저리그가 단장의 야구라 해도 단장의 능력만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건 아니었다.
효율적인 계약으로 박유성을 잡겠다던 파르한 제이디 사장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 반면.
에이스와의 재계약을 미루면서까지 박유성에게 모든 걸 쏟아부었던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의 바보짓은 박유성 영입이라는 해피 앤딩으로 이어졌다.
“대책을 세워야 해.”
박유성 영입전에서 참패한 파르한 제이디 사장은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그리고 보좌진들에게 수습안을 내놓으라고 닦달했다.
“현실적으로 가장 좋은 방법은 5년을 기다리는 겁니다.”
“썬이 다시 시장에 나오길 기다리자는 거야?”
“썬은 무조건 5년 후에 옵트 아웃으로 나올 겁니다. 5년 후면 20대 중반이니까 다시 한번 대박을 터뜨리려고 하겠죠.”
“그건 썬이 기대만큼 해줬을 때나 가능한 시나리오 아니야?”
“설사 썬이 기대 이하의 활약을 펼친다 해도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두 시즌 이상 부상으로 경기에 뛰지 못하거나 2할대 초반의 극심한 타격 부진에 빠진다면 모르겠지만요.”
흔히들 옵트 아웃의 사용 여부를 성적으로 결정짓곤 하지만.
옵트 아웃의 핵심은 선수의 나이였다.
20대 중반이냐, 후반이냐에 따라 장기 계약 여부가 달라지고.
29살과 30살은 전혀 다른 선수 취급을 받는 메이저리그에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다시 시장에 나간다는 건 어마어마한 이점이었다.
다저스에서 허락한 박유성의 옵트 아웃 시점은 5년 차와 7년 차, 9년 차, 11년 차.
이 중 시장에 나왔을 때 가장 좋은 계약 조건을 받을 수 있는 시기는 당연하게도 5년 차 이후였다.
5년 차 시즌을 마쳤을 때 박유성의 나이는 26세.
서른이 되기까지 4년이 남았으니 10년 이상의 장기 계약을 맺을 가능성이 높았다.
반면 7년 차 시즌 이후에 옵트 아웃을 행사하면 10년 계약은 쉽지 않았다.
박유성이 다시 한번 대박을 터뜨리려면 무조건 5년 차 때 옵트 아웃 권한을 사용할 터.
“5년 후에 썬이 나온다면 그때 영입하자는 이야기야?”
“상황을 봐야겠죠. 다만 다저스가 다시 썬을 붙잡긴 어려울 겁니다. 양키즈와 레드삭스가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요.”
이번 박유성 쟁탈전 패배를 두고 양키즈 팬들과 레드삭스 팬들은 실망감 이상의 모멸감을 받아야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돈 싸움에서 다저스에 밀렸다는 걸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양키즈와 레드삭스 모두 써야 할 돈들이 많았기 때문에 박유성 한 명에게 올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피터 페츠와의 계약까지 미루고 박유성과 송현민을 동시에 영입한 다저스의 재정 형편 역시 양키즈, 레드삭스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는 게 문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5년 후에 박유성이 건강한 몸 상태로 옵트 아웃을 행사할 경우 다저스가 다시 박유성을 잡을 수 있을까?
“쉽진 않겠지. 당장 다저스는 5년간 사치세 때문에 골치가 아플 테니까.”
“바로 그겁니다. 결국 다저스는 현실적인 선택을 할 겁니다. 썬의 영입으로 5년 연속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도 썬과 쏭, 크리스 반스를 포기하고 팀의 재건에 나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카일러 하셀 보좌역이 침을 튀기며 말한 이야기의 결론은 하나였다.
박유성은 5년 후에 다저스를 떠난다.
박유성이 평생 다저스 맨으로 남게 된다면 큰 골칫거리겠지만 5년 후에 다른 팀으로 이적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근시안적으로 팀을 운영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박유성이 메이저리그 평균보다 조금 더 나은 톱타자였다면 파르한 제이디 사장도 고개를 주억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프리미어 12에서 보여준 박유성의 실력은 세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들 어떻게 생각해?”
파르한 제이디 사장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러자 피트 샌더스 단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지난 시즌 우리는 다저스를 상대로 7경기 차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지난해 자이언츠의 시즌 성적은 97승 65패.
내셔널리그 전체 3위에 해당했다.
내셔널리그 중부지구의 컵스가 100승을 찍었고 아메리칸 리그에서 회춘한 오타니 쇼헤를 앞세운 에인젤스가 98승을 거뒀으니 자이언츠가 압도적으로 강하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언론에서 예상하는 썬의 시즌 WAR은 8 이상입니다. 쏭은 지난 4년간 평균 WAR 4를 기록했고요. 반면 작년 다저스의 중견수 포지션과 2루수 포지션의 WAR 합은 1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썬과 쏭의 합류만으로 11승을 더 올릴 수 있다는 말이지?”
“산술적으로 따지면 그렇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그 11승 중에 3승 이상을 우리에게 따낸다면 격차는 더 벌어질 겁니다.”
언론의 예상대로 다저스가 11승을 더 거둔다면 시즌 성적은 101승으로 지난해 메이저리그 전체 1위 팀이었던 컵스보다 앞서게 된다.
반면 자이언츠는 97승을 거둔다는 보장이 없었다.
같은 지구 소속이라 다저스와 19경기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었다.
작년과 상대 전적이 같다면 다저스와 4경기 차.
작년보다 3경기를 더 내준다면 다저스와 7경기 차.
큰 경기 차이로 지구 우승을 차지했다는 올해의 평가가 고스란히 뒤집히는 셈이었다.
“그래봐야 최대 7경기 차이입니다.”
“7경기 앞서던 게 7경기 뒤처지게 되는 겁니다. 팬들 입장에서는 14경기 차이처럼 느껴질 겁니다.”
“시즌이 끝나면 승패는 리셋되는데 그런 계산을 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렇게 따지면 시즌이 끝났으니 우리 팬들도 우월감을 가져선 안 되겠죠. 안 그래요, 파르한?”
피트 샌더스 단장의 말에 파르한 제이디 사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에 5개 팀이 존재하지만.
자이언츠 팬들이 비교 대상으로 삼는 건 언제나 다저스였다.
심지어 시즌 막판에 다이아몬드백스에게 루징을 당했을 때도 그 덕분에 다저스가 지구 3위로 밀려나게 됐다고 반기는 분위기였다.
“피트의 말이 맞아. 팬들은 올해도 우리가 다저스보다 7경기는 앞설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만약에 그 격차가 뒤집힌다면 충격은 배가 되겠지.”
“7경기 차이가 날 거라는 것도 최악의 가정일 뿐입니다. 격차는 얼마든지 줄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더 늘어날 수도 있죠. 썬이 자이언츠전에서 펄펄 날아다닐 수도 있습니다. 만에 하나 개막 3연전을 다저스에게 전부 내주기라도 한다면 그때부터는 걷잡을 수 없게 될 겁니다.”
지구 라이벌인 다저스가 영혼까지 끌어모아 박유성과 송현민을 영입했으니 한 템포 쉬어가는 게 현명했지만.
파르한 제이디 사장을 포함해 대다수 운영진들은 그동안 누려왔던 우월감을 포기하지 못했다.
“전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썬을 위해 준비해 둔 자금이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저스는 분명 우릴 상대로 최선을 다할 겁니다. 자칫 잘못했다간 지구 2위 자리도 장담하기 어려워요.”
“양키즈와 레드삭스, 레인저스도 전력 보강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우리도 가만있어서는 안 됩니다.”
“리빌딩을 언급하기에 아직 우리 팀은 젊습니다. 썬 하나 때문에 5년을 숨죽이는 건 바보 같은 짓입니다.”
전력 강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파르한 제이디 사장은 피터 페츠의 에이전트인 조쉬 애버튼에게 전화를 걸었다.
-파르한. 드디어 결정을 내렸습니까?
“피터를 영입하겠습니다.”
-훌륭한 결정입니다. 정말 잘 생각하신 겁니다.
“대신에 계약 기간은 조정했으면 합니다.”
-하하.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는 게 어떻습니까?
당초 조쉬 애버튼이 요구하던 조건은 10년 계약에 3억 5천만 달러.
비록 지난 2년은 다소 부진했지만.
내셔널리그 신인상을 수상했고 해마다 내셔널리그 사이영 상 후보로 꼽히고 있는 만큼 연평균 3,500만 달러 정도는 받길 원했다.
하지만 파르한 제이디 사장은 급하다고 돈을 퍼주는 성격이 아니었다.
“4년에 1억 5천만 달러. 그 이상은 어렵습니다.”
“4년이요? 잠깐만요. 파르한. 지난번과 얘기가 다르지 않습니까?”
“팀 내에서 리빌딩을 원하고 있어요. 썬이 옵트 아웃으로 시장에 나오기 전까지는 성적을 내기 쉽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겁니다.”
“썬은 물론 좋은 선수죠.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피터 페츠가 이탈한다면 어떨까요? 그것도 지구 라이벌인 자이언츠로 말입니다.”
“흠…….”
“다저스의 전력은 마이너스가 되고 자이언츠의 전력은 플러스가 될 겁니다. 다저스가 그 차이를 만회하려면 피터 페츠 같은 투수 두 명을 데려와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일 겁니다.”
“그렇다 해도 장기 계약은 어렵습니다. 내부의 반대가 만만치 않아요.”
박유성을 영입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파르한 제이디 사장은 능숙하게 조쉬 애버튼을 구워삶았다.
그리고 6년 2억 달러라는 나쁘지 않은 조건으로 서명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물론 조쉬 애버튼도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2년 차에 옵트 아웃이요?”
“쉽게 생각해, 피터. 2년이면 다시 옛 구위를 되찾을 거야. 그때 대박을 노리자고.”
“후우……. 좋아요. 그렇게 하죠.”
원하던 초대형 계약이 수포로 돌아가자 피터 페츠는 이를 갈았다. 그리고 모든 신경을 다저스와의 홈 개막전에 집중했다.
“두고 봐. 썬, 그 자식을 3구 삼진으로 잡아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