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39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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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차 때 박유성은 2,078경기에 출전해 2,216개의 안타를 때려내며 0.310이라는 통산 타율을 기록했다.
통산 도루도 522개.
74.5퍼센트의 도루 성공률로 당대 최고의 대도 소리를 들었다.
교타자의 대명사로도 불렸으니 야구 선수로서 분명 성공한 삶이었지만 박유성은 만족하지 못했다.
“태수 녀석이 나보다 연봉을 더 받는 게 말이 돼?”
보다 나은 대우를 받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2회차 때 곧바로 거포로 전향했다.
하지만 야심 차게 시작한 2회차는 순탄치 않았다.
몸만 불리면 홈런 40개는 거뜬히 때려낼 것 같았는데 정작 시즌 30홈런을 넘긴 적이 없었다.
물론 그 정도로도 1회차보다는 나은 대우를 받았지만.
준수한 선구안과 정확도 높은 타격으로 롱런했던 이글스의 레전드 김태윤을 닮았다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이게 아니었는데 하는 한숨만 나왔다.
어쨌거나 20년을 버틴 2회차 성적은 2,527경기에 출전해 2,445안타와 334홈런.
그리고 시즌 평균 타율 0.286.
장타 욕심을 버리고 정교한 타격에 집중했다면 더 나았을 거라는 지적을 받았을 때는 뭔가 한계에 부딪힌 기분이 들었다.
1회차 시절에는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해 홧김에 야구 때려치우고 싶었다면.
2회차 때는 꽉 막힌 듯한 실력 때문에 현타가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박유성의 옆에서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며 힘이 되어줬던 게 바로 장태수였다.
비록 이번 3회차 때는 서로 다른 리그에서 뛰게 되겠지만.
메이저리그로 떠나기 전에 박유성은 어떻게든 장태수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어쩌면 다저스를 상대하는 오늘이 장태수의 야구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될 것 같았다.
“좋아, 좋아! 잘 보고 있어! 이제 까다로운 공 들어오니까 정신 바짝 차려!”
박유성이 더그아웃에서 떠들자 장태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엄마도 아니고 진짜 왜 저래?”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최고의 야구 선수가 될 박유성의 절친이라는 게 더없이 자랑스럽지만.
저럴 때마다 부끄러움은 자신의 몫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스타즈에서 3년을 보내며 박유성의 잔소리에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약간 반발심이 들었지만 박유성에게 조언을 받은 타자들마다 성적을 내는 걸 보고 박유성의 말이라면 팥이 아니라 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으려 했다.
‘까다로운 공이라고 했지? 그럼 미리 테이크 백을 해놓자.’
타석에 선 장태수는 보폭을 줄이고 방망이를 미리 파워 포지션에 끌어놓았다.
그러고는 몸 쪽 낮은 코스로 커터가 들어오자 재빨리 방망이를 휘둘렀다.
따악!
방망이 안쪽에 걸린 타구가 1루 베이스 바깥쪽으로 빠져나갔고.
“하아…….”
“후…….”
크리스 반스와 장태수의 입에서 서로 다른 의미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번에도 파울. 지금 154㎞/h짜리 커터가 들어왔는데요. 장태수 선수가 이번에도 걷어냈습니다.
-장태수 선수. 집중력이 상당한데요? 방금 공은 사실 마지막 순간에 스트라이크 존을 파고드는 공이었는데요. 그대로 놔뒀으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느린 화면으로 다시 나오고 있는데요. 공이 손잡이 부분에 걸린 것 같습니다.
-지금 보니까 포심 패스트 볼 타이밍으로 휘두른 게 아니라 공을 보고 친 것 같거든요? 이렇게 되면 크리스 반스 선수도 몸 쪽 공을 던지기가 까다로워질 것 같습니다.
좌완투수인 크리스 반스가 좌타자를 상대로 몸 쪽 커터를 던질 경우 스트라이크 존으로 공이 꺾여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구속이 느릴 경우 오히려 좌타자의 먹잇감이 될 수 있는 코스였지만 크리스 반스가 던지는 커터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빠르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거기에 160㎞/h의 포심 패트스볼까지 던지니 타자 입장에서는 커터보다 빠른 공에 타이밍을 맞출 수밖에 없고.
빠른 공에 타이밍을 맞춰 방망이를 휘두르면 필연적으로 방망이 안쪽에 공이 걸려서 1루수 땅볼이나 1루 쪽 파울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장태수는 포심 패스트 볼을 노리다 파울을 낸 게 아니었다.
‘커터를 노렸어.’
장태수야 박유성의 조언을 듣고 공을 끝까지 지켜보며 간결하게 스윙한 것 뿐이지만.
크리스 반스의 눈에는 자신의 커터를 노려 친 것처럼 보였다.
로이 스미스도 어설프게나마 크리스 반스의 커터에 대응한 장태수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뭐야? 설마 사인이 유출된 건가?’
오늘 경기를 앞두고 다저스 선수들은 스타즈를 상대로 어제의 패배를 만회하자고 다짐했다.
스타즈의 1번 타자로 박유성이 나서지만 그건 다저스도 마찬가지인 상황.
박유성이 양쪽에서 엇비슷한 활약을 펼친다고 가정했을 때 에이스가 등판한 다저스가 토종 2선발 김혜성을 앞세운 스타즈를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딱히 거를 타자가 없었던 대한민국 국가대표팀과 달리 스타즈는 박유성과 박준수, 다니엘 브리토, 장영호 정도만 조심하면 되는 상황.
그래서 일부러 공격적인 리드를 했던 건데 누군지도 모를 장태수가 크리스 반스의 공을 때려내기 시작하니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바깥쪽으로 하나 빼야 하나? 아니야. 여기서 투구수를 늘릴 수는 없어.’
한참을 고민하던 로이 스미스가 바깥쪽 꽉 찬 코스의 슬라이더 사인을 냈다.
부상 이후 횡적인 무브먼트가 좋아진 크리스 반스의 슬라이더는 스위퍼라 불려도 될 만큼 위력적이었다.
다른 구종에 비해 완성도가 다소 떨어져서 자주 던지지는 않지만.
지금처럼 타자가 빠른 공에 타이밍을 맞춘 상황이라면 역으로 허를 찌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사인을 확인한 크리스 반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빠른 공으로 승부를 하는 것도 좋지만 일단은 왠지 모르게 껄끄러운 장태수를 치우고 싶었다.
그런 다저스 배터리의 속내를 읽은 것일까.
“태수야! 넓게!”
박유성이 짧게 한마디 했다.
장태수가 방금 공에 휘둘렸다면 다시 한번 몸 쪽을 노렸겠지만.
제법 날카로운 스윙을 보여줬던 만큼 높은 확률로 바깥쪽 승부를 걸 것 같았다.
‘넓게. 넓게.’
박유성의 주문을 되뇌며 장태수가 방망이를 들어 올렸다.
그 순간 크리스 반스가 빠르게 투구판을 박차고 나왔고.
후앗!
크리스 반스의 손끝을 빠져나간 공이 한복판을 지나 바깥쪽으로 도망치듯 움직였다.
만약 박유성의 조언이 없었다면 몸 쪽 공을 기다리다 타이밍을 놓쳤겠지만.
따악!
장태수는 힘들이지 않고 결대로 밀어 쳐 3유간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장태수 선수의 안타! 스타즈가 무사에 주자를 내보냅니다!
-방금 공은 횡으로 꺾이는 슬라이더였는데요. 살짝 몰려 들어왔습니다.
-오타니 쇼헤 선수가 유행시킨 스위퍼를 던진 것 같은데요.
-크리스 반스 선수의 슬라이더는 빠르고 날카롭게 꺾이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최근에 추가한 레퍼토리 같습니다.
장태수가 안타를 때려내자 3번 타자 박준수도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따악!
몸 쪽으로 파고드는 포심 패스트 볼을 1, 2루 간으로 잡아당겨 장태수를 2루까지 보냈다.
뒤이어 타석에 들어선 4번 타자 다니엘 브리토가 내야 플라이로 물러났지만.
따악!
5번 타자 장영호가 바깥쪽을 파고드는 슬라이더를 가볍게 밀어 때려 우중간에 떨어뜨리면서 장태수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촤라라랏!
마지막에 멋들어진 슬라이딩까지 선보인 장태수가 새 용병 조이 헤럴드와 격렬한 하이 파이브를 나눴다.
그러고는 더그아웃으로 들어와 박유성의 옆자리에 앉았다.
“봤냐?”
“스타트가 그게 뭐야?”
“이만하면 잘했지 왜 또 시비야?”
“더 잘할 수 있으니까 잔소리하는 거잖아.”
“그래. 알았다. 알았어. 거참. 그냥 잘했다고 한마디 해주면 안 되냐?”
칭찬을 바랐던 장태수가 입술을 삐죽거렸지만.
1회차 시절과 2회차 시절의 장태수도 박유성에게 좋은 말을 해준 적은 거의 없었다.
“태수야. 난 20년 채울 거거든?”
“뭐? 마흔 살까지 뛴다고?”
“그러니까 너도 약속해라. 나하고 같은 날 은퇴하겠다고.”
“그게 내 맘대로 되냐?”
“어떻게든 해. 양아치처럼 나보다 1, 2년 먼저 은퇴하지 말고. 알았어?”
“갑자기 왜 이래?”
장태수가 뜬금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박유성은 이번 3회차 때도 장태수와 오래 야구를 하고 싶었다.
‘이번에는 내가 앞서 달려줄 테니까 잘 따라와라.’
힘들 때마다 장태수가 든든히 버텨줬던 것처럼.
이번 3회차 때는 장태수를 멱살 잡고 끌고 가 볼 생각이었다.
2
메이저리그 최고의 인기 구단 다저스와 프로 야구 최강팀 스타즈의 맞대결은 스타즈의 8 대 7 승리로 끝이 났다.
대한민국 대표팀으로도 모자라 단일팀에게 패배한 다저스를 두고 메이저리그 망신이라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정작 다저스 팬들은 박유성과 송현민이 합류한 다저스 타선에서 희망을 보았다.
└비록 지긴 했지만 좋은 경기였어. 양 팀 모두 최선을 다했다고. @Dodgers SN
└맞아. 패배를 떠나 볼 맛이 나는 경기였어. @go Dodgers
└마지막에 진짜 아까웠어. 팍의 타구만 잡았다면 다저스가 이겼을 거라고. @CappDrop34
└전적으로 동감해. 브라이언 조던이 너무 앞쪽에서 수비했다고. @Sepulve
└아쉽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아. 어차피 그 자리는 썬의 자리니까. @go Dodgers
└만약에 썬이었다면 그 타구를 잡았을까? @Mark B
└무조건이지. 미튜브에 썬의 수비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라고. 말도 안 되는 플레이가 넘쳐나니까. @Dodgers SN
└썬의 수비 하이라이트 영상도 잘 찾아봐야 해. 화려한 영상만 짜깁기한 게 많거든. @Whiteheart77
└썬은 타구 판단 능력이 예술이야. 남들은 절대 잡지 못할 타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쫓아가서 잡아낸다고. 그것 때문에 루상의 주자들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해. @Sepulve
└수비도 수비지만 오늘 클린업이 5타점을 올린 것도 마음에 들어. @go Dodgers
└썬과 쏭이 합류한 것만으로도 타선이 든든해진 느낌이야. @zzul0845
└그런데 오늘 썬은 스타즈를 상대로 너무 살살 했던 거 아냐? @epicgiraf324
└4타수에 2안타, 1볼넷인데 부진했다고 말하는 거야? @Sepulve
└스타즈에서는 4타수 4안타에 2홈런이었잖아. 만약에 썬이 다저스에서만 뛰었다면 다저스가 더 쉽게 이겼을걸? @LailaSaave19
└나도 그 점이 아쉽긴 하지만 썬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해. 3년간 몸담았던 팀이잖아.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해야지. @truebluefan745
└난 오히려 스타즈가 이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CappDrop34
└나도. 썬이 스타즈 팬들에게 제대로 작별인사를 했으니까 이제부터는 다저스의 썬으로 뛰면 된다고. @zukie78music
└다저스의 썬이라.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Marc_3272
└난 이미 썬의 이름이 박힌 유니폼을 준비해 뒀다고. @Whiteheart77
└나도! 빨리 화요일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야! @Hect Diaz
└나는 이번 자이언츠 원정 때 썬의 유니폼을 입고 응원할 건데? @Dodgers SN
└오오, 그거 좋은 생각인데? @dills smith
└썬이 자이언츠 상대로 얼마나 해줄까? @mario033e
└썬이 오늘만큼만 해준다면 자이언츠 원정 스윕도 기대해 볼 만해. @MomsOopsBaby
경기를 마친 다저스 선수단은 별도의 휴식 없이 곧바로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하루를 푹 쉰 뒤에 지구 라이벌, 자이언츠와 2032 시즌 개막 원전 3연전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