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390화 (390/412)

타자 인생 3회차! 390화

45. Adios(6)

지난겨울.

박유성이 8억 달러에 다저스에 입단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크리스 반스는 만감이 교차했다.

일단 박유성이 레드삭스에 입단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만에 하나 레드삭스가 8억 달러 규모의 대형 계약을 진행했다면 그 여파로 여러 선수가 팀을 떠나게 될 터.

어쩌면 그 속에 자신이 포함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일단 내려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박유성과 송현민을 영입한 다저스가 월드 시리즈 우승 후보로 급부상하고.

최종 협상 테이블에 앉았던 빅마켓 구단들이 서둘러 전력 보강에 들어가면서 그 여파가 크리스 반스에게까지 미쳤다.

“크리스.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할 거 같아.”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설마 트레이드입니까?”

“지금은 뭐라고 답을 줄 수가 없어. 다만 모든 가능성을 전부 열어두고 협상 중이니까 조금만 기다려 줘.”

그 누구보다 레드삭스를 사랑하고 그 누구보다 레드삭스에서 뛰는 걸 자랑스러워 하는 크리스 반스였지만 에이전트인 제롬 하트에게 화를 내지 못했다.

메이저리그는 단장의 야구.

야구단을 이끄는 단장의 구상에 포함되지 못하는 선수는 팀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크리스 반스도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거라 여겼다.

비록 지난 두 시즌은 부상으로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레드삭스에 입단해 지금껏 보여준 게 있으니 구단도 함부로 자신을 내치지는 못할 거라 여겼다.

하지만 다저스와 결별을 선언한 피터 페츠가 시장에 나오자 상황이 달라졌다.

└썬을 잡지 못했으니 피터 페츠라도 데려와야 해! @GoBoSox19

└좋은 생각이야. 피터 페츠가 온다면 코비 스펜스의 뒤를 받쳐줄 수 있다고. @Rawliell

└코비와 피터 페츠의 조합이라. 이 정도면 메이저리그 최고의 원투 펀치가 되지 않을까? @Madison45

└뭐야? 다들 크리스를 잊어버린 거야? @Captain Redsox

└크리스는 부상에서 회복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 지금까지 크리스가 잘해준 건 사실이지만 현실을 봐야 한다고. @Ban Scott

└피터 페츠가 크리스보다 두 살 어려. 게다가 다소 부진하긴 했지만 부상을 당한 건 아니라고. @Tereca Car

└크리스 반스는 3선발에서 뛰면 돼. 크리스는 레드삭스를 사랑하니까 충분히 이해해 줄 거야. @Raul R.

└아마 크리스가 우리보다 피터 페츠의 영입을 반길걸? @frogman72

부상으로 잠시 코비 스펜스에게 1선발을 넘겨주긴 했지만.

크리스 반스는 레드삭스의 에이스를 포기한 게 아니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했던 이야기들은 어디까지나 립서비스였다.

아직 부상에서 완벽하게 회복하지 못했는데 자신의 뒤를 이을 코비 스펜스와 에이스 자리를 두고 다투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크리스 반스의 속내를 알지 못하는 레드삭스 팬들은 전력 강화에만 혈안이 됐고.

기자들도 레드삭스의 선발 로테이션을 멋대로 구상하며 크리스 반스의 자존심을 긁었다.

“3선발로도 모자라 4선발? 이 인간들이 단체로 미쳤나?”

“진정해요. 제롬. 이번 시즌에 보여주면 됩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하지만 구단주가 대대적인 리빌딩을 원하고 있어.”

“그 리빌딩에 저도 포함되는 겁니까?”

“일단 구단주의 생각은 그런 거 같아. 애런은 처음에 반대했는데 시장에 매물들이 쏟아지는 걸 보고 고민하는 것 같고.”

박유성의 영입 전까지 FA 시장은 고요했다.

보통 최대어라 불리는 S급 매물들이 계약하기 전에 알짜 매물들의 계약이 이루어지며 FA 시장에 불을 지피는 게 일반적인데 이번에는 그런 움직임조차 없었다.

구단들은 행여라도 섣불리 움직였다가 박유성의 눈 밖에 날까 봐 몸을 사렸고.

FA 선수들과 그들을 대신하는 에이전트들은 최대한 좋은 조건을 받아내기 위해 때를 기다렸다.

그러다 박유성의 행선지로 다저스가 결정되기가 무섭게 숨죽이던 FA 시장이 활기를 되찾았다.

이곳 저곳에서 계약 소식이 들려왔고.

그 여파로 팀을 옮기겠다고 선언한 선수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2년간 부상으로 신음했던 고액 연봉자를 마냥 데려가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

“그보다 몸 상태는 어때? 정말 괜찮아?”

“지난번에 말했잖아요. 아주 좋아요. 수술 결과도 좋고 컨디션도 좋아요. 예전처럼 던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선발로 뛰는 데는 아무 문제 없어요.”

“그럼 다른 구단들의 오퍼를 받아보자. 어때?”

“연락이 오는 구단이 있을까요?”

“말은 안 했는데 다섯 곳에서 연락이 왔어.”

“다섯 곳에서요?”

“그중에 세 구단은 스몰마켓이야. 완전 영입보다는 트레이드를 원하고 있어. 레드삭스가 연봉의 일부를 보전해 준다면 널 받아주겠다는 거지.”

처치 곤란한 고액 연봉자의 연봉 일부를 보조해 주는 조건으로 스몰 마켓에 트레이드하는 건 예전부터 흔하게 활용되던 방법이었다.

원 소속 구단은 연봉 총액을 낮출 수 있어서 좋고.

선수를 받는 구단은 저렴한 가격에 이름값 있는 선수를 데리고 와서 성적과 티켓 판매를 동시에 노릴 수 있으니 서로 윈윈이었다.

하지만 애런 스와슨 단장 성격에 그런 트레이드를 받아줄 리 없었다.

“나머지 두 곳은요?”

“하나는 양키즈.”

“최악이네요.”

“옵트 아웃을 한다면 계약할 의사가 있다고 해.”

“만약 그 일이 이루어진다면 제 유니폼이 전부 불타겠네요.”

“대신에 확실한 선발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어. 양키즈도 선발이 탄탄한 편은 아니니까.”

마크 스테리라는 간판 타자를 보유한 양키즈이지만 선발의 무게감은 레드삭스에 비해 떨어졌다.

크리스 반스보다는 못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에이스 제임스 모이아는 30대에 접어든 상태였고.

아시아 출신인 2선발 마츠다 유이토 역시 양키즈 팬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크리스 반스가 양키즈로 이적한다면 든든한 삼각편대가 만들어지겠지만.

“양키즈에서 그만한 보상을 해준대요?”

“그랬으면 진즉 말을 꺼냈지.”

“그렇다면 갈 이유가 없네요.”

비슷한 대우를 받고 지구 라이벌 팀으로 옮기는 건 바보 같은 짓이나 다름없었다.

“나머지 한 팀은요?”

“기운 내. 크리스. 그래도 제일 나은 팀에게 연락이 왔으니까.”

“제일 나은 팀이요? 설마 다저스?”

“그래. 다저스. 다저스에서 널 원해.”

순간 크리스 반스의 눈빛이 달라졌다.

박유성과 송현민을 영입해 타선을 보강해 월드 시리즈 우승 0순위로 꼽히는 다저스에서 연락이 왔다니.

레드삭스에 대한 애정과 충성심을 떠나 그 순간만큼은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건은요?”

“아직 정확한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단기 계약이 될 가능성이 높아. 썬과 쏭을 데려오는 데 10억 달러를 썼으니까.”

“그래도 퀄리파잉 오퍼보다는 많이 주겠죠?”

“협상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계약 기간을 2년으로 맞춘다면 남아 있는 보장 금액만큼 받을 수도 있을 거야. 옵션을 포함해서 조금 더 받는 것도 가능할 테고.”

“나쁘지 않네요.”

“그런데 괜찮겠어?”

“어디요? 다저스요?”

“평소에 다저스 싫어했잖아.”

“정확하게는 우리 가족들이 싫어했죠. 양키즈 다음으로요.”

크리스 반스는 레드삭스를 응원하는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다.

손자가 야구에 재능을 보이자 레드삭스의 열혈 팬이었던 조부가 사재까지 털어서 전폭적으로 지원해 줬다는 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일화였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팀에 입단해서 은퇴하고 영구결번이 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는 제롬이야말로 왜 다저스 관계자를 만난 거예요? 며칠 전에 난 기사, 사실이었던 거죠?”

“솔직히 반반이었어. 다저스 쪽에서 연락이 오기에 무슨 일인가 싶었던 거지. 내가 관리하는 선수는 너뿐만이 아니니까. 그런데 딱 찍어서 널 원할 줄은 나도 몰랐다고.”

“그럼 레드삭스 구단에서도 다저스에서 날 원하는 걸 알고 있다는 거네요?”

“아마 그럴 거야. 처음에 양키즈에게 연락이 오고 나서 바로 애런에게 전화가 왔거든? 양키즈는 절대 안 된다면서 말이야. 그런데 다저스와 관련해서는 별다른 얘기가 없어.”

“내가 다저스에 가길 바란다는 거네요.”

“다저스는 리그도 다르고 연봉을 보전해 달라는 얘기는 하지 않을 테니까.”

“후우……. 일단 가족들과 얘기 좀 해 볼게요.”

레드삭스와 다저스는 미국 땅의 끝과 끝에 위치해 있었다.

다른 가족들은 몰라도 크리스 반스의 경기를 직관하는 게 인생의 낙이라던 할아버지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정작 크리스 반스의 할아버지는 당연하다는 듯이 다저스행을 권했다.

“크리스. 썬, 그 녀석은 보통이 아니야. 네 공을 때려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타자라고. 그러니까 다저스로 가라. 가서 썬과 함께 우승을 차지해.”

“일단 우승하고 난 다음에 다시 레드삭스로 돌아오라는 말씀이시죠?”

“아니. 절대 돌아오지 마. 레드삭스 팬들이 널 박대했던 걸 평생 후회하게 만들어주라고. 알겠어?”

“그러면 할아버지가 원하던 영구결번은 어려울지 몰라요.”

“넌 레드삭스에서 할 만큼 했어. 그리고 다저스에서 열심히 해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면 레드삭스에서도 영구결번을 받아낼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다저스로 가. 가서 네가 누구의 손자인지 제대로 보여주라고.”

그렇게 크리스 반스는 남은 3년 계약을 포기하고 옵트 아웃을 신청했다.

그리고 다저스와 계약 기간 2년에 7,0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엇비슷한 보장 금액을 포기하고 다저스로 간 것을 두고 레드삭스 팬들조차 의견이 갈렸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크리스 반스가 있는데 피터 페츠에 왜 욕심을 낸 거야? @Good Apple

└크리스 반스는 지난 9년간 레드삭스를 위해 최선을 다했어. 하지만 욕심 많은 구단과 팬들은 에이스를 존경하지 않았지. @Raul R.

└그런데 왜 옵트 아웃을 신청한 거야? 연봉은 차이가 없잖아? @Ban Scott

└크리스 반스는 3년간 1억 달러를 수령할 수 있어. 반면 다저스에서는 2년에 7천만 달러지. 연평균 금액은 다저스 쪽이 조금 높겠지만 이후를 생각하면 바보 같은 결정을 한 거야. @Tereca Car

└다들 크리스 반스를 짐짝 취급했잖아? 그래놓고 이제 와서 다저스로 이적한 걸 탓하는 거야? @Nat Gofod

└이번 옵트 아웃은 올 시즌이 끝난 다음에 제대로 된 평가가 나올 거야. 만약에 크리스 반스가 다저스의 에이스 자리를 꿰차고 다저스의 월드 시리즈 우승에 기여한다면 현명한 판단을 내린 거겠지. @Captain Redsox

└만약에 월드 시리즈 우승에 실패하고 개인 성적도 형편없다면? @GoBoSox19

└그때는 마음껏 비웃어도 좋아. 하지만 썬과 쏭이 합류했는데 과연 그럴 가능성이 있을까? @Captain Redsox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구단과 팬들은 크리스 반스를 원하지 않았지만 강력한 우승 후보인 다저스는 크리스 반스가 필요했어. 그래서 크리스 반스가 다저스로 간 것뿐이라고. @RS8042

└이게 정답이야. 크리스 반스도 우승 반지를 원할 거야. 9년간 우승 반지 1개는 너무 볼품없다고. @Captain Redsox

└어쩌면 크리스 반스는 양대 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하게 될지도 몰라. @frogman72

다저스로 넘어온 크리스 반스는 박유성이 자신을 원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전해 들었다.

“썬이요?”

“썬은 크리스, 당신의 부활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썬이 저를 원했다고요?”

“모든 걸 다 오픈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난 협상 때 구단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고 그 때 썬이 당신을 언급했습니다. 그래서 구단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게 된 거고요.”

처음에는 포수를 타는 투수가 전담 포수를 요구한 것 같아서 살짝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박유성과 함께 훈련을 하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