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388화
45. Adios(4)
서울 일정의 메인 이벤트는 다저스 대 스타즈였다.
대한민국 대표팀과 다저스의 친선 경기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 추가된 경기일 뿐이었다.
물론 미국 야구팬들은 다저스가 실추된 미국 야구의 자존심을 세워주길 바라겠지만.
프리미어 12에 출전했던 미국 대표팀을 박살 낸 대한민국 대표팀을 상대로 이긴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었다.
그래서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피터 페츠를 대신해 에이스 자리를 꿰찬 크리스 반스를 내일 경기로 돌렸다.
스타즈의 에이스인 송찬우가 오늘 경기에 나서는 만큼 내일 경기에 올인하는 편이 더 나을 거라 여겼다.
“팬들 반응은 어때?”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옆에 앉은 로이 홀랜드 보좌역을 바라봤다.
그러자 로이 홀랜드 보좌역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떨 거 같으십니까?”
“욕이 쏟아지나 보네.”
“2회인데 벌써 5 대 0입니다. 욕을 안 할 수가 없죠.”
로이 홀랜드 보좌역이 들고 있던 태블릿을 내보였다.
인터넷 중계 화면보다 채팅창을 더 크게 띄워놨는데 분노에 찬 다저스 팬들의 채팅이 어지럽게 올라오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한국 대표팀하고 붙은 거야?
└앤드류! 이게 당신이 말하는 새로운 다저스인가요?
└하아. 집어치워! 이건 메이저리그 망신이라고!
└다들 적당히 해! 지금 다저스가 상대하고 있는 건 한국 대표팀이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과 프리미어 12에서 우승한 주축 멤버라고!
└그래서? 한국이 뭐? 우리는 다저스야! 우리는 다저스라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다저스 경기만 보지 말고 국제대회도 좀 챙겨 봐. 오늘 한국의 선발 투수는 지난 프리미어 12 최고의 투수였어. 지금 바로 메이저리그에 와도 잘할 거라고.
└난 처음 보는 투수인데? 너 혹시 한국인이야?
└한국의 쏭을 모른다고? 그러면서 지금 채팅을 치고 있는 거야?
└한국의 쏭은 아시아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이야. 물론 이 의견을 일본인들이 싫어하겠지만 명백한 사실이야.
└한국 투수를 추켜세워서 지고 있는 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포장하지 마! 역겨우니까.
└하아. 이제 2회가 끝났어. 아직도 7이닝이 남았다고!
└포기해. 다저스가 한국 대표팀을 상대로 역전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무섭네.”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기대했던 것보다 경기력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팬들이 이 정도로 분노할 줄은 몰랐다.
“그나마 썬이 잘해주고 있으니까 이 정도인 겁니다. 만약에 썬이 부진했다면…… 그다음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도 다행이야. 썬이 제 실력을 보여줘서.”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화제를 돌렸다.
오늘 경기가 이대로 끝이 난다면 다저스 선수들은 욕을 먹겠지만 박유성의 실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들은 쑥 들어갈 것 같았다.
그 예상대로 경기 직후 메이저리그 주요 커뮤니티에는 다저스에 대한 조롱과 박유성에 대한 극찬이 동시에 쏟아졌다.
└오늘 다저스 경기 본 사람 있어? @Braveboys
└인터넷 중계로 대충 보긴 했는데 11 대 2로 진 거 맞지? @Virgg
└세계 최강인 한국을 상대로 고작 9점 차이로 진 거야? 다저스 강한데? ㅋㅋ @Drewbaca
└한국에서 6회부터 후보 선수들을 내보냈어. 썬도 그때 교체됐다고. @Cleon299
└두 점은 어떻게 뽑은 거야? 쏭을 공략한 거야? @epicgiraf324
└아니. 쏭은 6이닝 무실점으로 투구를 마쳤어. @Hect Diaz
└제발 쏭을 사줘! 우리에게는 쏭이 필요하다고! @ryan snag
└쏭이라면 이미 계약하지 않았어? @zzul0845
└2루수 쏭 말고 투수 쏭! 한국에는 왜 이렇게 쏭이 많은 거야? @Metsssss
└쏭은 스타즈와 6년 계약을 했어. 옵트 아웃 조건이 포함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계약이 끝났을 때는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일 거라고. @Dodgers SN
└경기를 마련해 준 한국에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는 6회부터 경기를 보지 않았어. @dills smith
└나도 마찬가지야. 썬이 경기에서 빠지니까 더 봐야 할 이유를 모르겠더라고. @Hect Diaz
└오늘 썬은 어땠어? 8억 달러를 받을 만한 실력이었어? @linda K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찾아보지 그래? @Sepulve
└왜 이렇게 뾰족해? 난 그냥 의견을 물었을 뿐이라고. @linda K
└8억 달러를 운운하며 실력 타령 하는 건 결국 부정적인 답을 기대하는 인간들이잖아. 아니야? @Sepulve
└말하는 걸 보니까 오늘 썬이 못했구나? ㅋㅋㅋ @linda K
└썬이 못했다고? ㅋㅋㅋ @Dodgers SN
└오늘 썬은 최고였어. 다저스가 8억 달러를 쓰면서까지 썬을 잡았던 이유를 정확하게 보여줬지. @AngerHR
└오늘 썬의 성적. 4타석 3타수 3안타 2홈런(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 포함) 4타점 4득점 3도루. 경기 MVP. @go Dodgers
└와우, 썬이 이렇게 잘했다고? @Level23
└한국은 썬이 뛰는 동안 8점을 냈어. 6회 이후 점수는 3 대 2라고. @Whiteheart77
└썬을 뺏겨서 화나고 심통 난 거 이해해. 하지만 인간적으로 썬의 실력은 까지 마. 그건 썬을 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너희 구단의 진심을 부정하는 짓이니까. @dills smith
└이 말이 맞아. 썬은 이번 FA 최고의 매물이었고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가 될 자격이 충분한 선수야. @go Dodgers
└고작 한 경기 가지고 평가가 후한데? 다저스가 월드 시리즈 우승팀이라도 되는 거야? @Go Giants!!
└다저스는 오늘 썬과 쏭의 자리를 비워놓고 경기를 치렀어. 그리고 썬과 쏭은 오늘 나란히 홈런을 치며 활약했지. 그 둘이 타선에 합류한다면 아마 엄청날걸? @go Dodgers
└그래서 난 내일 경기가 기대돼. 내일은 분명 다저스가 이길 거야. @Dodgers SN
└내일은 썬과 쏭이 다저스에서 뛰는 거지? @Whiteheart77
└쏭만. 썬은 스타즈와 다저스 양쪽에 다 출전할 거야. @Dodgers SN
└그게 가능한 거야? @Hect Diaz
└애당초 그 조건에서 출발한 경기였을걸? @go Dodgers
└양쪽에서 합의했으니까 아무 문제 없어. 우린 그냥 즐기면 되는 거야. @Dodgers SN
다음 날.
스타즈 파크에서 스타즈와 다저스의 친선전이 열렸다.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오늘 경기는 특별 룰이 적용됩니다.
-박유성 선수가 양쪽 팀에서 다 뛸 예정이죠?
-박유성 선수의 환상적인 수비를 좋아하시는 팬분들도 많겠지만 오늘 경기에서는 그 모습을 보실 수 없을 거라는 점 미리 안내드립니다.
-경기 후반에도 수비로 투입되지 않는다고 한 거죠?
-네. 오늘 경기에서 박유성은 모든 에너지를 오롯이 공격에 쓰게 됩니다.
중계 카메라가 스타즈 파크의 전경을 훑었다.
어제는 1루 쪽과 3루 쪽에 다양한 유니폼을 입은 야구팬들이 자리한 반면.
오늘 경기는 스타즈의 홈경기처럼 스타즈 유니폼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관중들이 가득 찼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대부분의 관중들이 스타즈 팬이라는 점이겠죠.
-오해를 하시는 분들이 있을까 봐 미리 말씀드리자면 애당초 이번 다저스 방한 경기는 오늘 경기가 메인 이벤트였습니다. 티켓팅 또한 스타즈 홈페이지에 가입한 분들을 대상으로 랜덤 추첨을 통해 예매 기회가 부여됐고요.
-다른 구단의 팬들 입장에서는 역차별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스타즈 팬들 입장에서도 지난 3년간 함께한 박유성 선수를 메이저리그로 떠나보내는 고별전이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오늘 경기 수익 전액은 박유성 선수의 이름으로 유소년 야구 발전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때 중계 카메라가 가볍게 방망이를 휘두르는 박유성을 비췄고.
그 모습이 구장 전광판에 떠오르자 경기장을 찾은 3만여 팬들이 열화와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오늘 경기의 주인공, 박유성 선수입니다.
-유니폼이 재밌네요. 반반 유니폼을 입었어요.
-서로 다른 팀을 응원하는 부부가 아이에게 반반 유니폼을 입혀서 유명세를 탄 게 기억이 나는데요. 스타즈의 유니폼도 기본적으로 파란색이라서일까요? 다저스의 유니폼과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스타즈의 홈 유니폼은 다저스와 마찬가지로 흰색에 진한 파랑으로 구단명이 박혀 있었다.
신상욱 회장이 메이저리그 구단들 중에서 다저스를 특별히 좋아해서 다저스 유니폼을 벤치마킹한 결과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스타즈와 다저스의 영문 이름이 절묘하게 결합하면서 ‘stadgers’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이제 다저스의 1회 초 공격으로 오늘 경기가 시작됩니다. 선두 타자는 1번 타자 박유성 선수.
-지금은 스타즈가 아니라 다저스의 박유성 선수입니다.
-지난겨울 총액 8억 달러라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 금액을 받고 포스팅을 통해 다저스에 입단했습니다. 박유성 선수가 상대할 투수는 김혜성 선수. 지난 3년간 연평균 19승을 거둔 리그 최고의 좌완 투수입니다.
-송찬우 선수와 함께 스타즈의 토종 원투 펀치로 활약 중인데요. 박유성 선수 효과를 봤다고 해도 3년 연속 20승에 가까운 성적을 낸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프로 야구 역사상 3년 연속 18승 이상을 거둔 좌완 투수는 김혜성 선수가 최초인데요. 오늘 박유성 선수를 상대로 어떤 공을 던질지 기대가 됩니다.
“후우…….”
마운드에 선 김혜성이 길게 숨을 골랐다.
스프링 캠프와 포스트 시즌 자체 청백전 때 상대 팀이 된 적은 몇 번 있었다.
그런데 막상 수많은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박유성을 상대로 공을 던진다고 생각하니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래도 처음 봤을 때는 애였는데. 언제 저렇게 큰 거야?”
타석으로 들어오는 박유성은 6년 전에 봤던 고등학생이 아니었다.
그때도 야구 하나는 기막히게 잘했지만 3년 연속 프로 야구 MVP와 타격 8관왕을 쓸어 담고 다저스로 이적한 지금은 거대한 산이나 다름없었다.
박유성이 방망이를 들어 올리자 포수 박경호가 바깥쪽 공을 요구했다.
좌타자들을 상대할 때는 보통 몸 쪽 빠른 공이나 커터 사인이 나왔지만 아무래도 상대가 박유성이다 보니 박경호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혜성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경호 형. 여기서 공을 빼면 어제 꼴 나요.”
옛말에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고 했다.
전날 열렸던 다저스와 대한민국 대표팀의 경기가 딱 그랬다.
경기 초반에 박유성이 벤들 윌리엄을 무너뜨리면서 다저스는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무너졌다.
경기 후반에 쫓아간 두 점도 연속 안타가 아니라 볼넷에 이은 투런 홈런으로 만든 것이었다.
오죽하면 평소보다 몇 배나 비싼 티켓값을 지불하고 직관을 간 팬들 사이에서 야구 돈이 아깝다는 소리가 쏟아졌을 정도.
‘맞을 때 맞더라도 정면 승부해요. 우리.’
김혜성의 의지를 확인한 박경호가 이내 몸 쪽으로 미트를 붙였다.
그러자 김혜성이 기합성을 내지르며 공을 내던졌다.
순간 박유성도 망설이지 않고 방망이를 휘둘렀고.
살짝 앞쪽에서 맞은 타구는 3루 쪽 그물망 상단을 때리고 떨어졌다.
-초구는 파울. 김혜성 선수가 시작부터 몸 쪽으로 공을 붙였습니다.
-156㎞/h의 빠른 공인데요. 저 선수가 몇 년 전까지 입스로 고생을 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습니다.
-김혜성 선수 말로는 그 입스를 이겨내는 데 도움을 준 게 박유성 선수라고 하던데요.
-그 에피소드는 기사를 통해 몇 번 나왔으니까 찾아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지금 중요한 건 스타즈 배터리가 박유성 선수를 상대로 정면승부를 선택했다는 건데 이번 타석 결과가 정말 궁금해집니다.
이선철 해설위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혜성이 다시 한번 몸 쪽으로 슬라이더를 붙였고.
박유성이 무릎 높이로 떨어지는 공을 걷어내면서 두 번째 스트라이크 램프에 불이 들어왔다.
-볼카운트는 노 볼 투 스트라이크. 투수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볼카운트가 됐습니다만 타석에 서 있는 선수는 박유성 선수입니다. 지난 3년간 통산 타율이 0.761에 달하는, 말 그대로 타격의 신이나 다름없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박유성 선수가 지난 3년간 단 한 번도 삼진을 당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다른 타자들은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삼진에 대한 부담 때문에 몸을 사리지만 박유성 선수는 정확도 높은 타격으로 오히려 투수를 몰아붙이는 스타일이거든요. 어찌 보면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