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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386화 (386/412)

타자 인생 3회차! 386화

45. Adios(2)

크리스 반스가 짓궂게 웃었다.

마음 같아서는 전성기 시절로 돌아갈 때까지 박유성을 상대하고 싶었지만.

자이언츠와의 개막전 등판에 선발로 나서야 하는 만큼 지금부터 슬슬 컨디션 조절을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벤들 윌리엄도 카일 그린, 폴 라이언과 함께 박유성의 비공개 훈련에 참가했다.

“썬. 크리스를 엄청나게 괴롭혔다며?”

“제가요? 그럴 리가요. 크리스가 엄살을 부리는 겁니다.”

“미리 말하지만 연습이라고 해서 살살 던질 생각 없어. 그러니까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거야.”

“바라던 바입니다. 최선을 다해주세요. 저도 실전 경기라고 생각할게요.”

다저스 구단이 따로 마련한 실내 연습장에서 박유성을 타석에 세워두고 공을 던진다고 생각하니까 꼭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벤들 윌리엄은 초구부터 몸 쪽 빠른 공을 붙여 넣었다.

96mile/h(≒154.5㎞/h)까지 끌어올린 이 공이라면 박유성을 움찔 놀라게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박유성은 마치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간결하게 방망이를 휘둘렀고.

따악!

빠른 스윙에 걸린 공은 총알처럼 실내 연습장 천장을 때리고 떨어졌다.

“플라이! 플라이 맞지?”

벤들 윌리엄이 구경하던 크리스 반스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크리스 반스가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노란 선 보이지? 저길 넘어가면 홈런이야.”

“후우. 그럼 홈런은 아닌 거네?”

박유성의 타구는 천장에 그려진 노란색 라인 안쪽을 맞고 떨어졌다.

단순히 평범한 타구였다면 플라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플라이라고 생각해. 그래야 마음이 편할 테니까.”

“젠장할!”

이어지는 크리스 반스의 짓궂은 말에 벤들 윌리엄은 이맛살을 찌푸려야 했다.

그렇게 세 차례.

시범 경기를 건너뛴 박유성을 상대하면서 벤들 윌리엄은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는 자신의 커맨드가 생각보다 형편없다는 것.

다른 하나는 제아무리 박유성이라 해도 모든 공을 다 완벽하게 때려내지는 못한다는 것.

포수 마이클 리드가 바깥쪽으로 파고드는 백도어성 슬라이더 사인을 내자 벤들 윌리엄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좌타자를 상대로 과감한 몸 쪽 승부를 즐기는 편이지만.

박유성은 보통의 좌타자가 아니었다.

“후우…….”

길게 숨을 내쉰 벤들 윌리엄이 침착하게 공을 내던졌고.

퍼억!

마이클 리드가 바깥쪽으로 멀리 돌아들어 온 공을 끌어 잡으면서 구심의 스트라이크 콜을 이끌어냈다.

-초구는 스트라이크. 구심이 이 공을 잡아주네요.

-바깥쪽을 타고 들어가는 슬라이더였는데요. 박유성 선수가 무리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저런 공은 초구보다는 스트라이크를 잡아놓은 상황에서 던지게 마련인데요.

-그만큼 벤들 윌리엄 선수도 여유가 없다는 이야기겠죠. 스트라이크 존으로 평범하게 들어오는 공은 얻어맞을 확률이 높으니까요.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은 상황에서 벤들 윌리엄 선수가 2구를 던집니다. 이번에는 몸 쪽! 낮게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박유성 선수가 참아냅니다.

“후우…….”

타석 밖으로 한 발 물러난 박유성이 길게 숨을 골랐다.

시즌이 코앞이라서일까.

라이브 배팅 때 봤던 공보다 확실히 움직임이 좋았다.

‘확실히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공은 다르다니까.’

구단의 배려로 연습 경기와 시범 경기를 건너뛰면서 박유성은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공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국제 대회에서 9할이 넘는 타격을 보여줬으니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공을 치는 건 식은 죽 먹기 아니겠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벤들 윌리엄처럼 다양한 변화구로 승부를 보는 스타일의 투수들은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싸우며 데이터를 쌓아야 했다.

조금 전 공도 마찬가지.

릴리스 포인트가 낮아서 완전히 빠질 줄 알았는데 마이클 리드가 쭉 뻗어 든 미트 속으로 걸쳐 들어갔다.

만약에 릴리스 포인트가 조금만 더 높았다면 스트라이크 콜도 나올 수 있는 상황.

투 스트라이크 이후였다면 꼼짝없이 삼진을 먹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벤들 윌리엄은 스트라이크 존을 적극적으로 공략할 마음이 없었다.

정확하게는 섣불리 덤벼들다가 얻어맞을까 봐 겁이 났다.

‘체인지업에 꿈쩍도 하지 않았어. 빠른 공을 노리고 있는 거야.’

몸 쪽 빠른 공 사인에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은 벤들 윌리엄은 마이클 리드가 바깥쪽 커브를 요구하자 즉시 투구 자세를 잡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팔을 내던졌다.

후앗!

큰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든 공은 스트라이크 존 바깥쪽에서 붙잡혔다.

그러자 3루 쪽 관중석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벤들! 뭐 하는 거야?”

“스트라이크를 던져! 볼을 던져서는 썬을 이길 수가 없다고!”

“벤들! 겁먹지 마! 자신 있게 던지라고!”

“승부해! 벤들!”

그 소리를 들은 벤들 윌리엄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썬에게 정면 승부를 하라고? 웃기지 마. 그건 크리스 반스도 못 하는 거라고.’

메이저리그에서는 돈이 곧 실력이었다.

실력이 좋은 선수가 더 많은 돈을 받고.

연봉이 높은 선수가 실력이 더 좋았다.

총액 8억 달러에 계약한 박유성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였다.

반면 올 시즌 FA를 앞둔 벤들 윌리엄의 연봉은 800만 달러.

지난해보다 100퍼센트 인상된 금액이었지만 박유성과 비교하면 1/7 수준이었다.

‘체인지업을 바깥쪽으로 빼보자.’

느린 커브를 보여줬으니 이번에는 빠른 공 타이밍이었지만 벤들 윌리엄은 정석대로 가지 않았다.

앞서 세 번의 라이브 피칭을 통해 뻔한 승부로는 박유성을 잡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상태였다.

그런 벤들 윌리엄의 속내를 읽은 마이클 리드가 바깥쪽 낮게 미트를 내밀었다.

박유성도 공 3개를 연속해서 지켜봤으니 하나쯤은 건드릴 때가 됐다고 여겼다.

하지만 박유성은 이 공까지 골라내며 볼카운트를 더 유리하게 만들었다. 그러고는.

퍼억!

“볼!”

바깥쪽 높게 찍힌 포심 패스트 볼까지 참아낸 뒤에 볼넷을 골라냈다.

-아, 이번에도 볼. 결국 박유성 선수가 1루로 나갑니다.

-초구 슬라이더 이후에 공 4개가 전부 볼이 됐습니다만 나쁘지 않은 승부였다고 생각합니다. 벤들 윌리엄 선수는 박유성 선수가 속을 만한 까다로운 공을 잘 던졌고 박유성 선수도 유인구에 속지 않고 잘 참아냈습니다.

-박유성 선수의 호쾌한 안타를 기대한 분들은 조금 아쉬운 결과일 텐데요.

-정확하게는 메이저리그 10승 투수인 벤들 윌리엄 선수가 안타를 맞더라도 정면승부를 해주길 기대하셨을 것 같은데 글쎄요. 아무리 이벤트 경기라 해도 미국 전역에 생중계되고 있는데 경기 시작부터 얻어맞고 싶은 투수는 없을 겁니다.

-이렇게 되면 이제 박유성 선수가 시동을 걸 텐데요.

-타석에 선 박유성보다 무서운 게 루상에 나간 박유성인데요. 초구부터 뛸지 지켜봐야겠습니다.

1루 베이스를 밟은 박유성은 주루용으로 글러브를 바꿨다. 그러고는 시답잖은 농담을 거는 코리 베츠를 뒤로하고 성큼성큼 리드를 벌렸다.

“이봐, 썬! 너무 멀리 갔어. 그러다 죽는다고.”

코리 베츠가 잔소리를 했지만 박유성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란 듯이 반 발을 더 내디디며 벤들 윌리엄을 숨 막히게 만들었다.

“젠장할!”

당황한 벤들 윌리엄이 다급히 투구판에서 발을 뺐다.

나름 주자 견제 능력이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서 박유성이 함부로 뛰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리드를 할 줄은 몰랐떤 것이다.

-벤들 윌리엄 선수. 어이가 없다는 표정인데요.

-메이저리그에서도 박유성 선수만큼 적극적으로 리드하는 선수는 손에 꼽힐 테니까요. 더욱이 이벤트 경기니까 더 어이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박유성 선수는 이벤트전이라고 해서 봐주지 않습니다. 당장 작년 올스타전만 봐도 알 수 있으니까요.

작년.

어쩌면 박유성의 마지막 프로 야구 올스타전이 될지도 모르는 경기에서 드림 리그 투수들은 박유성과의 승부를 피했다.

MVP를 떠나 박유성에게 잘못 얻어맞았다가 경기가 확 기울어 버릴 수 있으니 아예 안타를 주지 않는 작전을 쓴 것이다.

드림 리그 투수들은 슈퍼 스타인 박유성이 충분히 이해해 줄 거라 생각했지만.

3년 연속으로 배척(?)을 당한 박유성은 빠른 발로 분풀이를 했다.

-아, 박유성 선수가 홈으로 뜁니다! 홈에서……! 홈에서 아웃! 박유성 선수가 홈에서 잡힙니다!

연이은 도루로 3루까지 파고든 박유성은 스플리터 타이밍 때 과감하게 홈을 파고들었다.

박준수를 속이기 위해 바운드가 되는 공을 던질 거라 예상한 것이다.

그런데 그 공을 포수 나경석이 완벽하게 포구하면서 박유성은 자연 태그 아웃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비공식이나마 첫 주루사를 남겼다.

경기 직후 인터뷰에서 박유성은 자신의 과욕을 인정했다.

“준수 형이 스윙을 해주면 충분히 틈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공이 제 예상보다 높게 들어오더라고요. 사인 미스는 아니었습니다. 제 판단이었고 제 실수였습니다. 저를 욕해주세요.”

하지만 야구팬들 중 누구도 박유성을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박유성의 심정을 충분히 인정한다며 올스타전까지 볼넷 작전을 남발하는 드림 리그 투수들을 비난했다.

└진짜 박유성 타석 때 기대감 1도 안 생기더라.

└저도요. 어차피 볼넷인 거 아니까 김새더라고요.

└원래 올스타전은 공에 맞아도 안 맞았다고 우기지 않음?

└차라리 몸 쪽으로 공을 붙이면 박유성이 스윙이라도 하죠. 아예 치지 못할 공을 던지는데 어떻게 합니까?

└진짜 올해는 좀 심했음.

└인정. 작년까지만 해도 양심껏 빼더니 올해는 아예 확 빼던데요?

└솔직히 박유성이 친다면 얼마나 친다고 그러냐? 박유성 혼자 뭐 홈런 4개씩 치고 히트 포 더 사이클 밥 먹듯이 하고 루상에 나가서 투수 멘탈 터뜨리고 그래?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정도는 아니잖아!

└ㅋㅋㅋ

└이거 보니까 드림 리그 투수들 심정도 조금은 이해가 되네요.

└그래도 3년 연속 최다 득표 갈아 치웠는데 타격 기회조차 안 준다는 건 너무했어요. 오죽하면 박유성이 홈스틸을 했을까요.

└그런데 그 홈스틸도 계산하고 뛴 거라면서요?

└조해민이 스플리터 던질 줄 알고 뛰었다고 함.

└그걸 어떻게 알아요? 혹시 사인 훔치기?

└ㅋㅋㅋ 사인 훔치면 7할 칠 수 있음? 그리고 사인을 훔쳐서 타자한테 알려준 것도 아니고 그걸 역으로 이용해 홈스틸을 시도한 건데 뭐가 문제임?

└워워, 진정들 하세요. 조해민 스플리터 던질 때 특유의 버릇이 있다고 합니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거래요.

└까놓고 다이노스 팬들도 다 압니다. 투스트라이크 잡아놓고 빠른 공 하나 빼고 몸 쪽 스플리터. 그거 그냥 공식이에요.

└그런데 박유성 홈스틸은 본헤드 플레이로 봐야 함?

└한국 시리즈나 시즌 성적이 걸린 중요한 경기라면 100퍼 본헤드 플레이. 하지만 올스타전이었고 이기고 있었기 때문에 퍼포먼스라고 봐야 할 듯?

└퍼포먼스가 맞죠. 중계 화면에 나온 관중들 표정 안 봤어요? 다들 지루해 죽으려고 하는데 박유성 홈스틸 때문에 난리 났잖아요.

└저 직관 다녀왔는데 관중들이 전부 세이프 외침. 그래서 구심이 비디오 판독 한 거잖아요.

└저도 경기장에서 직접 봤는데 박유성 홈스틸 없었으면 진짜 돈이 아까웠을 거임. 아니 평소에 경기를 그렇게 하지. 무슨 올스타전에 진지 빨고 있는지 이해가 안 감.

└신성 그룹에서 후원해서 올스타전 상금이 엄청나게 크게 걸렸잖아요. 다들 돈에 눈이 뒤집힌 거라고 생각합시다.

이미 국내 야구팬들 앞에서 한 성깔(?) 한다는 걸 보여준 박유성은 벤들 윌리엄이 왼 다리를 들어 올리기가 무섭게 2루를 향해 내달렸다. 그러고는.

촤라라랏!

레그 벤트 슬라이딩으로 단숨에 2루 베이스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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