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384화
44. Go! Dodgers!(4)
“자기 정말 괜찮아?”
“괜찮아. 언론에서 저러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뭘.”
“그래도 심하잖아.”
“자기야. 심한 걸로 치면 국내 언론이 더 심했어.”
박유성이 데뷔 시즌을 0.749로 마무리 짓자 국내 언론들은 2년 차 징크스를 운운하며 성적 하락을 예상했다.
2년 차가 끝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즌 타율 0.762로 커리어 하이를 갈아 치운 만큼 3년 차 때는 부침이 찾아올 거란 전망들이 끊이질 않았다.
프로 야구에서 3년 내내 검증에 시달렸던 박유성에게 메이저리그 언론들의 보수적인 잣대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물론 예상 성적을 너무 후려친 감이 없지 않지만.
‘그만큼 실력으로 보여주면 되니까.’
1월 말.
박유성은 송현민과 함께 하와이로 개인 훈련을 떠났다.
본래는 송현민과 단둘이 몸을 만든 뒤에 스프링 캠프에 합류할 생각이었지만.
“뭐야, 박유성. 못 본 사이에 얼굴이 반쪽이 됐네. 신혼 생활이 버겁냐?”
“태수 너는 여기 왜 있냐?”
“짜식이 심심할까 봐 와 줬더니 나 그냥 간다?”
“얼른 가. 여기 호텔비 비싸다.”
“야! 나도 그 정도 돈은 벌거든?”
신성 고등학교 동기인 장태수, 손지원을 시작으로 송찬우와 김혜성, 박경호, 이동엽, 최일준, 장영호까지 스타즈 주전 선수들이 전부 하와이로 넘어와 있었다.
심지어 스타즈 직원들과 의료진들까지 합류했다.
“트레이너님도 오셨어요?”
“저도 용돈 벌이 좀 하러 왔습니다. 하하.”
“제 예약도 받아주시나요?”
“어휴, 그럼요. 대신에 비용은 따불입니다.”
“따따불도 가능합니다.”
구단에서 경비를 지불하는 스프링 캠프와 달리 개인 전지 훈련은 모든 경비를 선수 본인이 책임져야 했다.
그래서 연봉 상황에 맞춰 개인 훈련 장소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통합 3연패를 달성한 스타즈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다른 구단에서 볼멘 목소리를 낼 정도로 높은 편이었다.
FA인 송찬우와 박준수, 박경호, 최일준은 차치하더라도.
신인 최저 연봉으로 시작했던 김혜성은 2억(18승)에서 4억(20승), 그리고 5억 5천만 원(19승)으로 수직 상승했고.
마찬가지로 최저 연봉을 받았던 손지원 역시 1억 7천만 원(15승)에서 3억 2천만 원(16승)을 찍고 올해 4억 5천만 원(17승)에 도장을 찍었다.
3루수로 자리를 옮기면서 거포로 거듭난 장영호는 지난해 40홈런 고지를 밟고 6년 160억 장기 계약을 맺은 상황.
심지어 6번을 치는 청소년 대표팀 동기 이동엽도 1억 5천에서 2억 5천으로, 다시 4억까지 연봉을 끌어올렸다.
“여기서는 태수 네가 제일 못 받네.”
“지금 8억 달러 받는다고 유세 부리는 거냐?”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짜식. 삐졌냐?”
“아니. 안 삐졌는데?”
“안 삐지긴 뭘 안 삐져? 딱 봐도 삐졌는데?”
“아닌데? 나 하나도 안 삐졌는데?”
“그러지 말고 이리 와봐. 줄 거 있으니까.”
장태수의 2029년 연봉은 1억 3천만 원.
홈런을 9개나 더 때려낸 이동엽과 2천만 원 차이라면 감사해야 했지만 정작 장태수는 자신의 미래 가치를 알아봐 주지 못한다며 서운해했다.
“두고 봐. 내가 무조건 동엽이 딴다.”
그 각오가 통했던지 2030시즌 성적은 장태수가 조금 더 나았다.
이동엽이 시즌 초반 극심한 슬럼프에 빠지자 6번 타자까지 꿰차면서 0.288에 27홈런, 87타점으로 골든 글러브 지명타자 부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득표를 받아냈다.
그 결과 이동엽과 똑같은 2억 5천만 원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때 내 모든 걸 불태웠어.”
남들이 2년 차 때 겪는 2년 차 징크스를 3년 차 때 제대로 겪으면서 이동엽과의 연봉 격차가 다시 1억으로 벌어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대체 연봉은 왜 오른 거냐?”
“3연패 보너스다. 이 자식아.”
“그럴 거면 내 연봉을 올려줬어야지.”
“그럴 거면 스타즈에 남았어야지.”
“내가 스타즈에 남았으면? 너 주전 자리 위험했을 수도 있어.”
“와, 이 자식. 네가 이러고도 친구냐?”
“친구니까 이런 말도 해주는 거지. 암튼 너 홈런 욕심 줄여라. 동엽이 신경 쓰지 말고 네 타격을 해. 동엽이도 타율에 신경 쓰는 데 네가 왜 탐욕 스윙을 해?”
“모두가 예스라고 말할 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몰라?”
“강아지 풀 뜯어 먹는 소리 말고 네 스윙은 내가 봐줄 테니까 진짜 기본부터 갈아엎자. 넌 기본이 안 되어 있어.”
만약 다른 동기가 이런 말을 했다면 코웃음을 쳤겠지만.
“하아. 7할 타자라 뭐라고 말도 못 하겠네.”
장태수는 자신의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고맙게 생각해, 이 자식아. 친구만 아니었으면 나 몰라라 했을 거야.”
“그래서? 네 말대로 하면 5할 침?”
“5할은 불가능하지만 3할은 치게 해줄게.”
“3할? 고작 3할?”
“아니면 계속 탐욕 스윙하다가 2군으로 내려가시든가요. 동엽이는 아마 내년쯤에 장기 계약을 할 텐데…….”
“스톱. 1절만 해라. 나도 존심이 있어.”
1회차와 2회차 시절 장태수는 친구이기 이전에 선의의 경쟁자였다.
1회차와 2회차 때 20년 가까운 프로 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장태수가 함께 버텨주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내가 너의 목표가 되어 주마.’
물론 따라잡기란 쉽지 않겠지만.
3주간의 개인 훈련 기간 동안 박유성은 장태수의 모든 걸 뜯어고쳤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장태수도 막바지에 김혜성의 빠른 공을 가볍게 때려내며 성공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거 잘하면 6할까지 치겠는데?”
“3할이나 치고 까불어라.”
“암튼 시키는 대로 했는데 3할 못 치면 네가 책임져라. 알았지?”
“7할 타자가 가르쳐 줬는데 3할도 못 치면 야구 때려치워야지. 와서 내 경호원이나 해라.”
“월급 많이 주냐?”
“남들 받는 거 두 배 줄게.”
“X발. 솔깃한데?”
하와이 개인 훈련을 마친 박유성은 송현민과 함께 애리조나 캠프로 넘어갔다.
다른 선수들은 스프링 캠프를 시작하기 전에 가족들과 잠시 시간을 보내는 편이었지만.
박유성은 하와이에 머무는 내내 신민아와 함께했고.
송현민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여자 친구가 없었다.
“형.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면 안 돼요. 알죠?”
“거참. 알았다니까 그러네. 무슨 삼촌보다 잔소리를 더 하냐?”
“형이 걱정되니까 그렇죠. 형은 진짜 형을 다 이해해 줄 수 있는 여자 만나야 해요. 예쁘고 몸매 좋다고 눈 돌아가면 안 된다고요.”
“다 좋은데 네가 그런 얘기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냐?”
“제가 왜요?”
“야, 제수씨 정도면 연예인급이잖아.”
“그래서 7할 타자 만나잖아요.”
“와, 이 자식 할 말 없게 만드네?”
“암튼 형 소원대로 같은 팀에서 뛰게 됐으니까 우리 잘해봐요. 둘 중의 한 명만 못해도 같이 욕을 먹을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 너 욕 먹이지 말라는 거지?”
“저도 형 욕먹지 않게 최선을 다할 겁니다.”
박유성과 송현민이 캠프에 도착하자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하와이에서 바로 캠프로 넘어왔다면서?”
“정말? 열정이 대단한데?”
“썬은 하와이에서 피앙세와 함께 지냈잖아. LA에 들를 필요가 없었을 거야.”
“그런 식으로 썬의 열정을 깎아내리지 마. 개인 훈련이 끝나면 누구나 며칠쯤은 쉬고 싶을 거라고. 그걸 참아내고 캠프로 온 거잖아.”
“그런데 피부색은 그대로인데? 열심히 훈련하긴 한 거야?”
“요즘 누가 촌스럽게 태닝해 가며 훈련을 해? 썬크림이 있는데.”
“썬에게 시비를 걸 거면 저쪽으로 꺼져.”
“왜 이래? 우리는 썬을 취재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메이저리그 기자들은 8억 달러의 사나이가 얼마나 시즌 준비를 했는지 궁금해했다.
하지만 다저스 구단은 언론이 박유성을 두고 입방아를 찧게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썬의 경기 출장은 당분간 없습니다. 실력이 검증된 썬보다 다저스의 유망주들을 체크하는 게 먼저입니다.”
일부 기자들이 박유성의 몸에 이상이 있는 게 아니냐며 다저스 구단을 도발했지만.
다저스 구단은 8억 달러를 주고 데려온 박유성이 혹시라도 캠프에서 부상을 당할까 봐 특별히 신경 썼다.
평소였다면 새로 합류한 선수의 실력을 궁금해했을 다저스 팬들도 다저스 구단의 결정을 두둔했다.
“캠프가 치러지는 그라운드를 보긴 한 거야? 아무리 개보수를 해도 다저스 파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어. 그런 곳에서 썬이 경기를 치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야?”
“썬의 경기를 보고 싶다고? 그럼 닥치고 티켓을 끊고 다저스 파크로 오라고.”
“그럴 필요도 없어. 어차피 시범 경기 막판에 한두 경기 출전할 거니까.”
“그런데 정말 썬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겠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지금 쏭을 보라고. 연습 경기에서 맹타를 휘두르고 있잖아?”
“하긴. 썬과 같이 훈련한 쏭의 컨디션이 좋은데 썬에게 문제가 있을 리 없지.”
다저스 구단으로부터 특별 대우를 받는 박유성과 달리 송현민은 캠프에 적응하기가 무섭게 연습 경기에 투입됐다.
박유성을 취재하지 못한 기자들은 꿩 대신 닭이라며 송현민에게 달려들었지만 송현민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레인저스 시절에 이미 네 번이나 스프링 캠프를 치른 터라 무리하지 않고 자신의 실력을 선보였다.
“쏭의 수비 범위가 좀 줄어든 거 같은데?”
“캠프잖아. 쏭이 루키들처럼 몸을 날릴 이유가 없지.”
“수비로 트집 잡을 생각 말고 저 팔뚝을 봐. 작년보다 더 굵어졌다고.”
“확실히 스윙 소리가 더 날카로워졌어.”
“본인 말로는 4㎏을 키웠다면서?”
“썬만큼은 아니지만 쏭도 2억 달러(7년)에 계약했잖아? 당연히 준비를 잘해야지.”
시범 경기가 시작된 이후에도 송현민의 뜨거운 방망이는 멈추지 않았다.
-아, 이건 넘어갔습니다!
-쏭! 현! 민! 오늘 경기 세 번째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합니다.
-몸쪽으로 꽉 차게 들어온 97mile/h(≒156.1㎞/h)의 빠른 공이었는데요. 쏭의 방망이에 제대로 걸렸습니다.
나오는 경기마다 멀티 안타를 때려내며 다저스의 시범 경기 연승 행진을 이끌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다저스 구단도 골치가 아파졌다.
“쏭이 너무 잘하는데요?”
“그러게 말이야. 저렇게 잘 칠 줄 알았으면 4년 전에 데려오는 걸 그랬어.”
“어쨌거나 쏭 때문에 썬의 기대치도 높아졌습니다.”
“2억 달러를 받고 들어온 쏭이 4할을 치고 있는데 썬이 그 이상 치길 바라는 건 당연하잖아.”
계약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를 하기는 어렵지만.
박유성이 첫 7년간 받는 총연봉은 3억 9천만 달러로 송현민의 2배에 가까웠다.
송현민보다 연봉이 2배 높으니 송현민보다 2배 잘해야 한다는 건 억지 논리에 가깝겠지만 경기 출전 대신 컨디션 관리에 주력하고 있는 박유성에 대한 기대 심리가 높아지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된 거 썬의 데뷔전을 서울 경기로 미루시죠.”
“뭐? 서울로?”
“어차피 두 경기 모두 스타즈 파크에서 치르기로 했지 않습니까? 스타즈 파크라면 썬도 조금 더 마음이 편할 겁니다.”
로이 홀랜드 보좌역의 제안에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유성이 시범 경기에서 보란 듯이 활약해 준다면 참 좋겠지만.
한 경기라도 부진하면 그걸 만회하기 위해 무리하다가 컨디션 난조에 빠질 가능성이 높았다.
“하긴. 우리가 원하는 건 시즌 내내 활약해 줄 썬이지 시범 경기에서 오버 페이스 할 썬이 아니니까.”
결정을 내린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언론의 반발을 무릅쓰고 박유성의 쇼 타임을 서울 이벤트전으로 미뤘다.
그리고 3월 말.
시범 경기를 마친 다저스 주축 선수들은 전용기를 타고 한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