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382화
44. Go! Dodgers!(2)
“여긴 유성이가 운동할 공간이 거의 없는데요?”
“대신 아가씨가 생활하기시 편리합니다. 박유성 선수야 시즌 중에는 대부분 경기장에 있을 거라서요.”
“저는 신경 쓰지 마요. 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유성이가 중요하다고요.”
“아가씨. 저희는 회장님과 아가씨가 더 중요합니다.”
박유성의 다저스행이 확정된 이후.
비서실에서 매물로 나온 집들을 전부 체크해 리스트를 올렸다.
하지만 신민아의 마음에 쏙 드는 곳은 없었다.
인프라가 좋은 곳은 집이 작거나 연습을 할 환경이 부족했고.
집이 넓고 연습 환경이 갖춰진 곳은 외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렇다고 타협점을 찾자니 이도 저도 아닌 느낌이었다.
그래서 신민아는 과감하게 자신의 편의를 포기했다.
“제 학업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솔직히 말해서 유학 때문에 미국에 온 게 아니잖아요? 유학은 핑계고 제 남편하고 같이 지내려고 온 거예요. 그러니까 최대한 유성이한테 맞춰주세요.”
신민아의 요구에 비서실은 난감함을 감추지 못했다.
정작 박유성은 아내인 신민아에게 최대한 맞추라고 주문했기 때문이다.
“저는 시즌 중에 절반을 호텔에서 머무를 거예요. 홈경기라고 해서 매일 집에 오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까 민아가 편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세요. 특히 보안에 철저히 신경 써 주시고요.”
비서실의 고충을 전해 들은 신상욱 회장은 씩 웃었다.
“이 녀석들이 벌써부터 콩을 볶느라 일을 어렵게 만드는 거 같은데 안 되겠어. 내가 나서야지.”
그렇게 미국으로 직접 날아간 신상욱 회장은 NFL 램스에서 뛰고 있는 로빈슨 테일러의 집을 찾아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이 집을 사고 싶어서 왔습니다.”
“이 집을요? 하하. 이 집이 얼마인 줄 알고는 있습니까?”
“4천만 달러면 어떻습니까?”
“4천만…… 달러요?”
“그 돈이면 고향인 텍사스에서 선수 인생을 마무리 지을 수 있지 않을까요?”
“……!”
21세기에 창단한 텍산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던 로빈슨 테일러는 FA 때 8년 2억 4천만 달러를 제안받고 램스로 이적했다.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던 텍산스를 떠나 우승권 전력을 보유중이던 램스에서 슈퍼볼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5년차 때 큰 부상을 당해 수술을 받은 이후로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로빈슨 테일러는 어떻게든 램스에서 재기해 우승에 기여하고 싶어 했지만.
이미 작년부터 램스는 로빈슨 테일러를 전력 외 선수로 분류하고 방치하는 중이었다.
그런 로빈슨 테일러의 처지를 안쓰럽게 여긴 텍산스에서 이적을 제안했고.
로빈슨 테일러가 불명예스러운 은퇴와 수치스러운 귀향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신상욱 회장이 직접 담판을 짓기 위해 들이닥친 것이다.
“정말 4천만 달러를 주겠다고요? 이 집의 가치에 대해 알아봤습니까?”
“2500만 달러에 내놓았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당신의 이미지 때문에 사려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도 들었고요.”
“젠장할. 난 운이 없었을 뿐이에요. 내가 정말로 먹튀를 할 생각이었다면 이렇게 호화로운 저택을 짓지도 않았다고요!”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조우 몬태나를 동경해 이 저택을 만들었다는 것도 말입니다.”
조우 몬태나는 NFL의 전설적인 쿼터백으로 LA에 초호화 저택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로빈슨 테일러도 램으로 이적하기가 무섭게 부동산에 매물로 나온 집 여러 채를 사들인 뒤 전부 허물고 지금의 저택을 지었다.
규모는 조우 몬태나 저택의 40퍼센트 수준에 불과했지만 지어진 지 채 3년 밖에 되지 않은 곳이라 손 볼 곳이 많지 않았다.
“어떻습니까? 집을 팔겠습니까?”
“잠깐만요. 생각할 시간을 좀 주세요.”
“여기 말고도 눈여겨본 집이 두 곳 더 있습니다. 추가로 500만 달러 더 드리죠. 결정하세요.”
소싯적에 불도저라 불렸던 신상욱 회장은 앉은 자리에서 로빈슨 테일러를 몰아붙였다.
그러자 로빈슨 테일러가 졌다며 두 손을 들었다.
“좋습니다. 팔죠. 그런데 당신이 살 생각입니까?”
“나와 내 손주 부부가 함께 살 예정입니다.”
“손주 부부요?”
“혹시 다저스 좋아합니까?”
“다저스요? 당연히 좋아하죠. 텍사스에서 태어났지만 난 레인저스보다 다저스가 더 좋아요.”
“그렇다면 썬을 알겠네요.”
“당연히 알다마다요. 그런데 썬은 왜……? 서, 설마 그 손주 부부라는 게……?”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된 로빈슨 테일러가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부동산 담당자를 불렀다.
“바로 계약하죠. 팔겠습니다. 5백만 달러는 필요 없으니까 4천만 달러만 줘요.”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당연히 괜찮죠! 그렇지 않아도 고향팀으로 돌아갈 명분이 필요했는데 썬에게 집을 팔면 아마 팬들도 저를 용서해 줄 겁니다. 램스 팬들의 상당수가 다저스를 좋아하니까요.”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로빈슨 테일러의 저택을 사들인 신상욱 회장은 한용준 비서실장을 보며 말했다.
“시즌 전까지 수리가 가능할까?”
“살릴 수 있는 시설을 최대한 살리는 쪽으로 공사하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내가 머무를 곳은 아까 봤던 그 별관이 좋을 거 같아.”
“정말 따로 지내실 생각이십니까?”
“이 나이에 신혼부부 사이에 껴서 눈칫밥 먹으라고?”
“이 저택의 주인이 회장님이신데 누가 눈칫밥을 주겠습니까?”
“이거 내 집 아니야. 예전에 옵션 계약 무르면서 지원해 주기로 약속했잖아? 유성이가 언제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뛸지 모르겠지만 은퇴하고 나면 유성이 앞으로 돌려줄 거야.”
신민아도 로빈슨 테일러의 집을 보며 엄지를 들어 올렸다.
“할아버지 최고! 어떻게 이 집을 살 생각을 하셨어요?”
“이 녀석아. 신성 그룹을 고스톱 쳐서 세운 줄 알아? 원래 부동산은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하는 거야.”
신상욱 회장에게 통 큰 선물을 받은 박유성은 다저스 입단식에서 그 고마움을 아낌없이 전했다.
“오늘 이 자리가 있기까지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주신 분이 계십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신성 그룹 신상욱 회장님이 아니었다면 아마 더 먼 길을 돌아와야 했을 겁니다. 할아버지. 정말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전 세계 메이저리그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성 그룹이 언급되면서 박유성의 메이저리그 진출로 최근 하향세였던 신성 그룹 주가가 다시 급상승했다.
유니폼을 입겠다고 잠시 노출했던 태극기 문양이 은은하게 새겨진 언더 셔츠는 온라인 매장에서 단숨에 품절됐고.
테이블 위에 슬그머니 올려놓았던 에너지 드링크 120%에도 관심이 쏟아졌다.
기자 회견 한 번으로 분위기가 바뀌자 박유성에게 너무 많은 돈을 쓴다던 일부 신성 그룹 임원들의 불만도 쑥 들어갔다.
그러자 신현민 부회장의 입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아니 무슨 신성 그룹이 구멍가게도 아니고 말 한마디 했다고 이 난리야? 이게 말이 돼?”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러다 은퇴하고 나서 경영하겠다고 설치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그건 말도 안 되지. 경영이 장난이야? 어디 공놀이나 하던 게 경영에 끼어들어?”
신현민 부회장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룹을 동생인 신현준 부회장에게 물려주겠다는 것도 어이가 없을 지경인데 아들도 아닌 사위까지 경영에 참여시키는 꼴은 절대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러자 김태국 비서실장이 달래듯 말했다.
“부회장님. 진정하십시오. 박유성 선수가 회사일에 관여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습니다.”
“방법?”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게 지원하면 됩니다.”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헛소리가 아닙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인지도 높은 스포츠 스타들은 개인 사업보다 협회 행정이나 방송 쪽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국민적인 성원에 보답해야 한다는 부담이 클수록 그룹 경영에 나서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까 좋은 이미지가 결국 발목을 잡는다는 거지?”
“네. 현재 박유성 선수의 인지도는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던 송흔민 선수를 넘어선 상황입니다. 메이저리그에서 안정적인 활약을 보여준다면 스포츠 영웅이 될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민아도 경영에 끼기가 쉽지 않겠네?”
“나중에 라면 몰라도 박유성 선수가 한창 활동할 때는 몸을 사릴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신현준 부회장 쪽은…….”
“민철이 하나만 남는 거지.”
“네. 지금이야 신민철 본부장이 그룹의 신뢰를 받고 있지만 그룹 경영이라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한두 차례 실수를 하다 보면 다시 신주승 본부장에게 기회가 올 겁니다.”
김태국 비서실장의 말에 신현민 부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기회에 박유성을 찬양하는 신현준 부회장 세력을 좀 눌러줄까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럼 난 뭘 하면 될까? 유성이 그놈을 광고 모델로 쓸까?”
“그렇게 된다면 부회장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헷갈릴 겁니다.”
“그냥 내버려 둬라?”
“메이저리그는 국내 프로 야구와 다릅니다. 송흔민 선수도 득점왕을 차지한 다음 해 부진하지 않았습니까?”
“결국 알아서 부침을 겪을 테니까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란 소리로군.”
“대신 부회장님께서 자리를 지켜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다들 미래를 내다볼 수 있습니다.”
김태국 비서실장은 머잖아 신현민 부회장의 시대가 올 거라 확신했다.
신상욱 회장을 대신해 전면에 선 신현준 부회장은 아직 보여준 게 많지 않은 상황이고.
뒤로 물러나긴 했지만 여전히 막강한 입김을 행사하고 있는 신상욱 회장은 죽을 날이 머지않아 보였다.
신상욱 회장이 죽고 신현준 부회장이 힘겹게 그룹을 이끌어 나갈 때 박유성마저 부진에 빠진다면 신현준 부회장 체제는 흔들리게 될 터.
그때 신현민 부회장이 다시 치고 나간다면 빼앗겼던 왕좌를 충분히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괜히 박유성을 자극할 필요 없어. 이런 식으로 언론에서 떠들면 신현준 부회장에게만 좋은 일이라고.’
김태국 비서실장의 조언대로 신현민 부회장은 별도로 만들었던 박유성 전담팀을 해체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박유성과 적당히 거리를 두며 잘 지내라고 주문했다.
그런 신현민 부회장의 움직임은 신상욱 회장과 신현준 부회장의 귀에 들어갔다.
“현민이 녀석이 무슨 꿍꿍이지?”
“제가 따로 알아봤는데 회사 주가가 올라간 것 때문에 몸을 사리는 것 같습니다.”
“주가가 올라가면 좋아해야지 몸을 왜 사려?”
“그룹하고 제가 관리하고 있는 회사들만 올랐으니까요.”
“유성이가 건설 쪽 하고는 관련이 없는데 반사 이익을 바라는 건 너무 염치없는 거 아냐?”
“아버지. 이미 증권사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습니다.”
“무슨 소문?”
“증권사 표현을 빌리자면 박유성주와 반박유성주인데 제가 장인이라고 제가 관리하는 회사들만 사라고 독려를 하더라고요.”
“그것참. 요즘은 뭘 숨길 수가 없단 말이야.”
신상욱 회장은 신성 일가의 치부가 외부로 드러나는 걸 원치 않지만.
박유성을 사위 삼은 신현준 부회장이 장남인 신현민 부회장을 밀어내고 신성 그룹의 전권을 쥔 순간부터 형제의 난이 시작됐다고 떠드는 이들이 많았다.
신성 그룹 법무팀과의 면담이 두려워 대놓고 신현준 부회장과 신현민 부회장을 운운하지 않지만.
박유성을 끼워 넣어 교묘하게 경쟁 관계를 부추기는 중이었다.
“어쨌거나 이번에 거의 다 회복한 거지?”
“비서실 말로는 최고점보다는 살짝 떨어졌다고 합니다. 근래에 빠진 건 거의 다 만회했고요.”
“허허. 이거 이러다 유성이한테 회장 자리 물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