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380화
43. 최종 협상(5)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박유성을 다른 팀에 빼앗길 거라는 생각을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지만.
로이 홀랜드 보좌역은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몇 가지 팀 체질 개선 계획을 세워 보고했다.
그중 하나가 피터 페츠를 비롯해 문제가 있는 선수들을 일시에 정리하고 박유성이 시장에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다저스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레드삭스 역시 박유성을 빼앗기면 차선책으로 리빌딩을 선택할 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썬을 영입한 다음에 레드삭스와 접촉해야 하나?”
“레드삭스가 리빌딩을 원한다 하더라도 에이스인 크리스 반스를 트레이드 카드로 쓰진 못할 겁니다. 레드삭스 팬들이 두고만 보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요.”
다저스 팬들에게 민심을 잃은 피터 페츠와 달리 크리스 반스는 여전히 많은 레드삭스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얼마 전 홈페이지를 통해 실시된 올 시즌 최고의 투수 투표에서 에이스 노릇을 했던 코비 스펜스에 이어 근소한 차이로 2위를 기록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제 생각에 레드삭스가 크리스 반스를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뿐입니다.”
“그게 뭔데?”
“옵트 아웃.”
“그러니까 크리스 반스가 스스로 레드삭스를 나와야 한다는 거지?”
“네. 크리스 반스가 제 발로 시장에 나와줘야 합니다.”
7년 계약 중 4년 계약을 마친 크리스 반스는 옵트 아웃을 행사할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주요 언론들은 크리스 반스가 3년 1억 달러라는 계약을 포기하고 레드삭스를 나올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다.
부상 이력이 있는 만큼 어디를 가더라도 잔여 계약보다 좋은 조건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크리스 반스와 직접 접촉을 해야겠군.”
“일단 썬을 영입한 다음에 크리스 반스와 대화를 나눈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현시점에서 크리스 반스가 다저스 이적을 고려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레드삭스에서 쫓겨났다면 또 모르겠지만.
레드삭스가 먼저 계약을 포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미국 반대편에 있는 팀을 선택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하지만 다저스가 박유성과 송현민을 영입하고 피터 페츠를 정리한다면 이야기는 달랐다.
“크리스 반스도 우승을 원할 거라는 거지?”
“메이저리그 모든 구단이 썬을 잡기 위해 덤벼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월드 시리즈 우승이지.”
“썬은 지난 3년간 소속팀에게 통합 우승을 안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참가하는 국제 대회마다 전부 정상에 올랐죠. 아마 크리스 반스도 레드삭스가 썬을 영입하길 그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겁니다.”
지난 2027년.
크리스 반스는 사이영상과 월드 시리즈 우승을 동시에 이뤄내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홀로 2승을 거둔 크리스 반스는 월드 시리즈 MVP로 선정됐고.
추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짜릿한 맛을 잊지 못한다며 은퇴하기 전까지 사이영 상과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를 2개씩 추가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당시에는 리그를 평정한 에이스로서 충분히 세울 수 있는 목표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2028년 월드 시리즈에서 준우승에 그친 데 이어 2029년 17승 6패에 평균자책점 2.29의 호성적에도 불구하고 사이영상 투표 2위에 그치자 입방정을 떤 결과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세간의 비웃음을 잠재우기 위해 2030년 무리를 하다 부상을 당했고.
후반기에 복귀한 올해는 한창때보다 못한 세부 지표를 보이면서 크리스 반스도 한물갔다는 조롱이 더해졌다.
한때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던 크리스 반스로서는 어떻게든 명예 회복을 하고 싶을 터.
그 욕심이 레드삭스에 대한 애정보다 크다면 옵트 아웃을 행사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계약 조건은? 얼마가 좋겠어?”
“적어도 레드삭스에서 보장해 주는 것보다는 더 줘야 합니다. 그래야 크리스 반스도 이적할 명분이 생길 테니까요.”
“그렇다면 2년에 7,000만 달러는 어때? 추가로 보너스 옵션을 두둑이 챙겨주면 괜찮을 것 같은데?”
“크리스 반스의 에이전트와 대화를 나눠봐야겠지만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그 두 시즌 안에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한다면 장기 계약으로 전환할 수도 있을 테고요.”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과 로이 홀랜드 보좌역이 박유성에게 어필할 다저스의 새로운 청사진을 그리는 동안.
송광철 대표와 박유성도 다저스의 제안을 꼼꼼히 살폈다.
“계약 조건은 14년에 8억 달러가 맞습니다.”
1차 협상 때 13년에 7억 2천만 달러를 제안했던 다저스는 메이저리그 구단들 중 유일하게 8억 달러라는 총액을 제시했다.
1년 차와 2년 차 연봉은 5천만 달러로 동일하고 3년 차와 4년 차는 5,500만 달러, 5년 차부터 12년 차까지는 6천만 달러. 그리고 마지막 2년은 5,500만 달러를 수령하는 구조였다.
계약 기간 14년 중에 옵트 아웃 옵션은 총 4번.
5년 차와 7년 차, 9년 차, 11년 차에 들어 있었다.
다저스 구단도 10년 차 이후 매해 바이 아웃을 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최악의 상황에 대비했다.
바이 아웃 보너스는 연차마다 다른데 10년 차 2천만 달러를 시작으로 해가 지날 때마다 5백만 달러씩 늘어났다.
13년째 계약을 마치고 다저스가 박유성과의 계약을 해지할 경우 지불해야 하는 금액은 무려 3,500만 달러.
14년 차 보장 연봉의 60퍼센트가 넘는 금액이었다.
“보너스는 어때? 지난번과 동일해?”
“아닙니다. MVP 보너스가 500만 달러인데 연속 수상 시 추가 보너스 옵션이 붙었습니다.”
“그래? 자이언츠를 참고했나?”
“자이언츠만큼 터무니없진 않은데 5회 연속 MVP를 수상하면 1,500만 달러입니다. 이후로는 동일하고요.”
“타이틀도 마찬가지야?”
“네. 지난번보다 전부 보너스가 인상됐습니다.”
“다저스도 애를 많이 썼네.”
전반적인 조건들을 확인한 송광철 대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총액 8억 달러를 제시한 순간부터 다저스 이외의 구단은 안중에도 없게 됐지만.
다소 아쉽게 느껴졌던 옵션 보너스 부분도 협의 전에 알아서 보강해 온 걸 보니까 박유성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다.
박유성은 가족들에게 최대 월 2회씩 항공편과 숙박료를 제공하겠다는 대목이 마음에 들었다.
다른 구단은 다들 월 1회나 연 8회 중에 고르는 정도였지만.
다저스는 1년에 최대 16번이나 가족들을 초대할 수 있게 해주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유신이 녀석은 미리미리 메이저리그를 접하는 게 좋겠지.”
잠시 후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과 로이 홀랜드 보좌역이 자리로 돌아오자 잠시 멈추었던 최종 협상이 빠르게 진행됐다.
“지금 말씀드린 조건들을 수정해 주실 수 있습니까?”
“네. 원하시는 조건을 최대한 수용해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에이전트로서 몇 가지 요구 사항을 추가한 송광철 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나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과 악수를 나누었다.
“박유성 선수에게 좋은 제안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선수에게 좋은 제안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그보다 오늘 중으로 협상 결과가 나올까요?”
“네. 3시간 후 기자회견이 예정되어 있으니까 그때 발표할 생각입니다.”
“이거 떨리는데요?”
“하하. 좋은 결과를 기대하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다저스 구단을 끝으로 신성 호텔에 마련됐던 협상장의 문이 닫혔다.
그리고 정확하게 3시간 후.
“심사숙고 끝에 박유성 선수는 다저스에 가게 됐습니다.”
송광철 대표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박유성의 행선지를 발표했다.
소식이 전해지자 베이스볼 파크가 술렁거렸다.
└내가 뭐랬음? 다저스라고 했죠?
└저도 다저스 협상단 표정 밝다는 기사 보고 다저스일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ㅋㅋ
└끝까지 레드삭스일 거라고 우기던 분들 다 어디 가셨나요?
└와, 다저스를 가네.
└그러게요. 피터 페츠 때문에 절대 안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집까지 찾아와서 사과했잖아요.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사과한 거지 피터 페츠는 사과 안 하지 않았음?
└어차피 피터 페츠는 이적 확정입니다. 박유성에게 8억 달러 써서 피터 페츠 잡을 돈이 없어요.
└다저스가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설마 피터 페츠 잡을 돈이 없을까봐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유성아. 다시 생각해 보자.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렇지 자존심을 버리면 안 돼!
└저도 유성이한테 조금 실망함 ㅠ.ㅠ
└윗분들 뭐라는 겁니까? 당장 스톱 옥션 1억 챙겨준다면 좋다고 이직할 거면서.
└1억이 뭡니까. 연봉 1천만 원만 올려줘도 무조건이죠.
박찬오와 류현신이 거쳐간 만큼 좋은 선택을 했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야구팬들이 피터 페츠와 한솥밥을 먹게 되는 걸 걱정했다.
하지만 다음 날.
[박유성 잡은 다저스, 송현민도 품에 안는다!]
[올스타 2루수 송현민! 7년 총액 2억에 다저스 행!]
송현민의 이적 소식이 전해지자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와, 대박! 박유성에 이어 송현민까지?
└골수 트윈스 팬이라 송현민 경기를 봐야 하나 박유성 경기를 봐야 하나 고민했는데 고민 해결! ㅋㅋㅋㅋ
└다저스 판단 미쳤네요. 박유성 도우미로 송현민 데려간 거잖아요?
└박유성 송현민 국대 캐미 좋은 거 보고 영입했을 가능성 99.9퍼센트! ㅋㅋㅋ
└지금 일본 커뮤니티 열폭하고 난리도 아님 ㅋㅋ
└거긴 또 왜요?
└박유성 8억 달러 계약 소식에 충격받았는데 정신차리기도 전에 송현민 2억 달러 터져서 다들 멘붕옴. ㅋㅋ
└이렇게 되면 송현민이 아시아 전체 2위임?
└오타니 쇼헤가 있어서 전체 3위요.
└오타니 쇼헤는 투타겸업이니까 빼야죠. 타자 중에서는 박유성 다음이 맞을 거임.
└1번 타자 박유성에 2번 타자 송현민이라. 벌써 가슴이 웅장해지네요.
└송현민 클린업 칠 가능성은 없음?
└다저스 클린업도 짱짱해서 아마 2번 칠 듯?
└2번이면 더 좋죠. 박유성 덕분에 타율 엄청 오를 거임.
└박유성 출루 후 도루, 그리고 송현민 안타. 이제 대표팀에서만 보던 걸 메이저리그에서 매일 볼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다저스 서울 개막전 한 번 해줘야 하는 거 아님?
└그렇지 않아도 기사 났어요.
└무슨 기사요?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진지하게 논의해 본다고 함.
박유성에 이어 FA 최대어 중 한 명으로 꼽히던 송현민까지 다저스에 합류하자 다저스 팬들은 축제 분위기에 빠졌다.
└맙소사! 꿈이 아닌 거지? 정말 썬과 쏭이 다저스로 오는 거지? @Dodgers SN
└이 말도 안 되는 계약을 성사시킨 앤드류에게 건배를! @Whiteheart77
└나는 예전부터 쏭이 다저스에 오길 바랐어. 쏭의 타격은 호쾌한 맛이 있다고! @CappDrop34
└쏭은 썬의 롤모델이자 룸메이트야. 아마 썬의 메이저리그 적응에 큰 도움을 줄 거야. @go Dodgers
└자이언츠! 봤지? 이게 다저스야! 이게 다저스라고! @Mark B
└양키즈 팬인데 다저스의 승리를 축하해. 부디 내년 이맘때에도 웃을 수 있길 바랄게. @YKgogo
└하하. 그냥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 썬이 아무리 부진해도 3할 후반은 칠 거니까. @MomsOopsBaby
일부 팬들은 피터 페츠를 언급하며 우승 전력의 마지막 퍼즐이라고 떠들어댔지만.
피터 페츠 때문에 하마터면 박유성을 놓칠 뻔했다는 걸 기억하고 있는 대다수 팬들은 피터 페츠를 언급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런데 뜬금없는 기사가 다저스 팬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브랜든 킹스턴 단장. 보스턴에서 크리스 반스 만나.]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크리스 반스가 옵트 아웃을 선언하자 FA 시장이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렇게 된 이상 크리스 반스라도 영입해야 해!”
“크리스 반스라면 여전히 15승은 기대할 수 있다고.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시키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거야.”
박유성 영입에 실패한 구단들은 앞다투어 크리스 반스에게 달려들었다.
특히나 자이언츠는 크리스 반스에게 7년 총액 2억 5천만 달러를 제안하며 크리스 반스를 무조건 데려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정작 크리스 반스의 선택은 다저스였다.
“제 야구 인생이 몇 년 남았을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내년 시즌이 마지막일지도 모르죠. 그래서 우승을 할 수 있는 팀을 선택했습니다.”
피터 페츠의 빈자리를 크리스 반스가 대체하면서 다저스는 이번 스토브 리그 최고의 승자로 등극했다.
그리고 박유성도 우승이 가능한 환경 속에서 메이저리그 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