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379화 (379/412)

타자 인생 3회차! 379화

43. 최종 협상(4)

“7년 계약이라면 총액 2억 달러 정도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2억 달러나?”

“쏭은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 2루수입니다. 연평균 2,500만 달러로 잡더라도 1억 7,500만 달러고요.”

“흠……. 그렇게 되면 두 사람에게만 10억 달러를 쓰는 셈인데 괜찮을까?”

“당분간 사치세는 피하기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전력 보강 효과가 확실하다면 상관없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지. 월드 시리즈 우승만 할 수 있다면 그깟 사치세 쯤이야.”

메이저리그 노사 협약에 따른 사치세는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이지만.

월드 시리즈 우승으로 얻을 수 있는 막대한 수입에는 미치지 못했다.

애당초 최종 협상 대상 구단들은 박유성을 영입하는 순간 막대한 사치세는 감당해야 했다.

그렇다면 사치세를 조금 더 내더라도 팀 전력을 확실하게 강화해서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게 나았다.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하면 포스트 시즌 보너스와 구단 매출 증대를 기대할 수 있지만 애매하게 돈을 아꼈다가 월드 시리즈는 구경조차 하지 못한다면 그땐 쏟아지는 팬들과 언론의 질타를 각오해야 했다.

“좋아. 쏭과는 7년 계약으로 가자고.”

“그렇게 되면 피터 페츠와의 재계약은 자연스럽게 불가능해집니다.”

마크 월트 구단주가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에게 약속한 선수 영입 자금은 최대 12억 달러.

박유성과 송현민에 피터 페츠의 재계약까지 감안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금액을 줄여서 알려주었다.

“최대 10억 달러 선에서 해결해야 해.”

조쉬 애버튼의 귀에 불필요한 정보가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로이 홀랜드 보좌역을 비롯한 직원들은 피터 페츠와의 결별을 기정사실화했다.

“피터 페츠의 빈자리는 어떻게 메꿔야 할까?”

“벤들 윌리엄을 1선발로 돌리는 건 시기상조입니다. 벤들도 부담스러워 할 테고요.”

벤들 윌리엄은 피터 페츠보다 2살 어린 우완 투수였다.

2025년 드래프트 1라운드로 뽑혀 2028년부터 메이저리그에 합류했고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하는 중이었다.

지역 언론에서는 벤들 윌리엄을 레드삭스의 코비 스펜스에 빗대 평가하고 있지만.

2년 안에 크리스 반스를 넘어설 거란 코비 스펜스와 달리 벤들 윌리엄은 전형적인 2, 3선발 투수였다.

피터 페츠를 넘어설 재능도 아니거니와 제 실력을 발휘하려면 에이스의 그늘이 필요했다.

“폴은 이번에 올리기로 확정된 거지?”

“캠프에서 대형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선발로 키울 계획입니다.”

올 시즌 다저스는 4선발까지만 고정으로 돌아갔다.

피터 페츠를 시작으로 벤들 윌리엄과 카일 그린, 게라드 카릴로로 선발진을 채우고 5선발 자리는 수많은 유망주들의 시험대로 돌렸는데 최종적으로 103mile/h(≒165.8㎞/h)의 빠른 공을 던지는 우완 폴 라이언이 살아남았다.

올해 선발진이 건재하다면 피터 페츠의 빈자리만 채우면 되겠지만.

게라드 카릴로의 방출을 내부적으로 결정한 상황이라 선발 투수를 한 명 더 구해야 했다.

“내년에도 유망주들에게 기회를 줘야 하나?”

“썬과 쏭이 팀에 합류한다면 공격력과 수비력은 확실히 좋아질 겁니다. 폴 라이언 이외에도 팜에 좋은 투수들이 많으니까 이번 기회에 미래를 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포스트 시즌에는 5선발이 필요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피터 페츠의 빈자리만 채우면 된다는 건데…….”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일부러 뜸을 들였다. 그러자 피트 샘퍼스가 입을 열었다.

“피터 페츠와 퀄리파잉 오퍼 계약을 하는 건 어떨까요?”

“퀄리파잉 오퍼? 과연 피터 페츠가 받아들일까?”

“피터 페츠도 지금 성적으로는 시장에 나가기 부담스러울 겁니다. 1년 재수를 하더라도 다저스에서 명예 회복을 하는 게 나을 겁니다.”

“흠…….”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피트 샘퍼스를 빤히 바라봤다.

현재 박유성 측에 양해를 구하고 협상 시간을 쪼개가며 구단의 미래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는 상황인데 느닷없이 퀄리파잉 오퍼 얘기를 꺼내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현 상황에서 피터 페츠에게 퀄리파잉 오퍼를 제안하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았다.

말로는 박유성의 계약 이후 상황을 주시한다고 하지만 프리미어 12 결승 실패 이후로 피터 페츠의 이미지가 좋지 않은 터라 제아무리 조쉬 애버튼이라 해도 원하는 수준의 계약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 무리하게 팀을 옮기는 것보다는 내후년을 기약하며 다저스에서 재기를 노리는 게 나을 터.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피터 페츠에게만 좋은 일이었다.

“제이크. 자네 생각은 어때?”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오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제이크 베노이가 선을 긋듯 말했다.

“저는 피터 페츠에게 퀄리파잉 오퍼를 제안하는 거 반대합니다. 피터 페츠의 대체자를 찾지 못한 상황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은 퀄리파잉 오퍼를 고려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이크. 피터 페츠는 다저스의 에이스입니다. 다저스를 위해 오랫동안 헌신한 선수라고요. 게다가 아직 에이징 커브가 온 것도 아닙니다.”

“피트. 정신 차려. 우리가 한국에 온 목적은 썬을 잡기 위해서야. 그리고 썬을 잡으려면 피터 페츠는 포기 할 수밖에 없어.”

“저는 지금도 썬과 쏭을 함께 영입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아시아 선수들은 에이징 커브가 빠른 편입니다. 썬이라면 모를까 서른을 앞둔 쏭과 7년 계약이라니요. 차라리 쏭과 2년 계약을 추진하고 피터 페츠를 잡는 게 나을 겁니다.”

“이것 참 말이 안 통하네.”

제이크 베노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원래부터 피트 샘퍼스가 피터 페츠를 비롯한 백인 선수들을 편애하긴 했지만 설마하니 여기까지 와서 고집을 부릴 줄은 미처 몰랐다.

당혹스러운 건 로이 홀랜드 보좌역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협상단에 피트 샘퍼스를 포함시킨 게 다름 아닌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피트. 정말 다저스를 위해 피터 페츠를 데려가야 한다고 생각해?”

“당연하죠. 지난 2년간 부진하긴 했지만 피터 페츠보다 잘 던지는 투수가 몇이나 됩니까? 피터 페츠는 프랜차이즈 스타입니다. 다저스 팜에서 성장한 투수라고요. 그런 선수를 내치는 건 잔인한 짓입니다.”

“그럼 게라드 카릴로는?”

“게라드요?”

“게라드 카릴로를 방출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잖아? 게라드 역시 다저스 팜을 거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어. 그리고 피터 페츠보다 더 오래 다저스를 위해 헌신해 왔지.”

“게라드 카릴로는 나이가 많지 않습니까? 에이징 커브도 찾아왔고요.”

“에이징 커브가 의심되는 건 피터 페츠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게라드와 피터 페츠는 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아. 생일로 따지면 그보다 적을걸?”

“대신 기대치가 다릅니다. 피터 페츠는 20승도 가능한 투수지만 게라드 카릴로는 잘해야 10승이죠.”

“그래서 피터 페츠가 게라드 카릴로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고 있잖아? 연봉 대비 기여도는 둘 다 비슷해. 게다가 게라드 카릴로는 포스트 시즌 때 불펜으로 뛰기도 했어.”

“아무리 그래도 피터 페츠와 게라드 카릴로를 비교하는 건 억지입니다.”

“억지는 자네가 부리고 있는 거 같은데?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 2루수에게 2년 계약을 제안해야 하는 이유가 뭐야? 백인이 아니라서? 미국인이 아니라서?”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꼭 말로 뱉는다고 해서 인종차별이 아니야.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인종차별이라고.”

로이 홀랜드 보좌역이 언성을 높이자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다급히 나서서 상황을 수습했다.

“일단 두 사람의 의견은 잘 알았으니까 제이크, 피트를 데리고 나가 있어. 다른 사람들도 자리를 비켜주고.”

“네. 보스.”

“로이. 우리는 마저 이야기를 하자고.”

제이크 베노이가 피트 샘퍼스와 협상팀을 데리고 나가자 휴게실 안에는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과 로이 홀랜드 보좌역만이 남았다.

“죄송합니다. 피트가 저런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아니야. 차라리 잘됐어.”

“네?”

“썬이 오기 전에 정리할 수 있잖아? 만에 하나라도 썬이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면 분명 피트 같은 인간들이 불만을 쏟아내며 여론을 조장할 거야. 난 그런 꼴은 못 봐. 8억 달러를 투자했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

박유성을 영입하기 위해 8억 달러라는 금액을 확정 짓고 직접 서울에 온 순간부터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과 박유성은 운명 공동체였다.

박유성이 최소 MVP급 활약을 꾸준하게 펼치지 못한다면 다저스 팬들의 비난을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고스란히 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박유성이 잘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만 박유성도 사람인 이상 매일 잘할 수는 없다고 여겼다.

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전용기로 원정 경기를 떠나야 한다.

그런 강행군에 익숙해지려면 박유성에게도 시간이 필요할 터.

박유성이 한시라도 빨리 메이저리그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다저스 내부 단속을 철저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돌아가는 대로 문제가 있는 직원들은 정리하겠습니다.”

“썬의 성공이 다저스의 성공이고 우리 모두의 성공이야. 그걸 방해하는 건 그 누구도 용납할 수가 없어.”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 역시 썬에게 제 커리어를 걸었으니까요.”

“좋아. 그 문제는 자네가 브랜든(다저스 단장)과 상의해서 잘 처리하고 피터 페츠의 대체자로 크리스 반스는? 어때? 가능성이 있을까?”

애써 분을 가라앉히며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화제를 돌렸다. 그러자 로이 홀랜드 보좌역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솔직히 썬이 크리스 반스를 언급했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크리스 반스를 데려올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니까요.”

크리스 반스는 레드삭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가족 전체가 레드삭스 팬인 레드삭스 주니어로 태어나 레드삭스 하나만을 바라보며 야구를 해온 레드삭스 맨이었다.

오죽하면 레드삭스를 위해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코비 스펜스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할 정도.

그런 크리스 반스가 레드삭스를 떠나 다저스의 유니폼을 입는다는 게 쉽게 상상이 되지는 않지만 만에 하나 레드삭스가 박유성을 놓친다면 크리스 반스의 거취를 두고 고민할 가능성이 높았다.

“레드삭스도 지금 크리스 반스가 부담스러운 상황인 거지?”

“팔꿈치 수술받은 이후 피장타율이 높아지고 덩달아 실점도 늘었습니다. 썬을 영입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썬을 뺏긴다면 크리스 반스까지 정리하고 대대적인 리빌딩에 들어갈지도 모릅니다.”

“우리처럼 플랜 B로 갈 거라는 거지?”

“현실적으로는 그게 최선입니다. 그 누구도 썬이 다저스에서 14년 계약을 채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요.”

현재 레드삭스는 크리스 반스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3년 연속 월드 시리즈 진출이 좌절된 상태였다.

2029년에는 디비전 시리즈에서 애스트로스에게 발목이 잡혔고.

2030년과 2031년에는 2년 연속 지구 3위를 기록하며 포스트 시즌에서 탈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유성의 영입에 실패한다면 1억 달러의 연봉이 남아 있는 크리스 반스를 정리하고 영건인 코비 스펜스를 중심으로 마운드를 재편할 가능성이 높았다.

메이저리그 장기 계약의 역사상 계약 기간을 모두 채우는 경우는 손에 꼽히고 젊고 재능 있는 선수들일수록 기존 계약을 깨고 더 좋은 계약 조건을 받길 원하는 만큼 박유성을 놓친 팀들은 일단 팀을 재정비한 뒤에 4, 5년 후에 시장에 나올지 모를 박유성을 노리는 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그 재정비 속에는 불필요하게 많은 돈을 받는 선수들의 정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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