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377화
43. 최종 협상(2)
“양키즈는 썬이 활약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제임스 모이아와 마츠다 유이토가 지키는 선발진은 아메리칸 리그에서도 첫손에 꼽히고 마크 스테리가 버티는 타선 역시 어느 팀에 뒤지지 않습니다. 여기에 썬이 합류한다면 월드 시리즈 우승도 문제없을 겁니다.”
“하지만 레드삭스는 다릅니다. 에이스인 크리스 반스가 부진한 상태고 로비 마르티네즈는 기복이 심한 편이죠. 우리는 썬이 양키즈의 일원이 되길 바라지만 레드삭스는 썬을 용병 취급 할 겁니다.”
“썬. 레드삭스의 악성 팬들은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물어뜯을 겁니다. 정말이에요. 이건 겪어보지 않고서는 말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양키즈 팬들은 다릅니다. 예전에는 다소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았지만 요즘 양키즈 팬들은 신사숙녀입니다. 당신의 모든 걸 존중하고 사랑해 줄 겁니다.”
“기형적인 레드삭스 파크에서 뛰는 것보다는 양키즈 파크가 백번 낫습니다. 여기 이 터무니없는 외야 라인을 보세요. 레드삭스로 가게 되면 이 경기장에서 해마다 81경기를 치러야 해요. 피로감 자체가 다릅니다.”
“뉴욕은 미국 최고의 도시입니다. 그만큼 한인들도 많이 살고 있죠. 뉴욕의 수많은 한인들은 썬의 경기를 보러 올 준비가 됐습니다. 그들을 위해 양키즈도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고요.”
양키즈의 장점에 대해 늘어놓으면서도 비교 대상은 라이벌 구단인 레드삭스였다.
그나마 레드삭스는 양키즈라면 학을 뗀다는 애런 스와슨 단장이 대화를 주도해서 그러려니 했지만.
돌아가며 레드삭스를 깎아내리는 양키즈 협상팀과 마주하다 보니까 라이벌 그 이상의 광기마저 느껴졌다.
“자이언츠와 다저스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대단들 하네.”
“아무래도 양키즈와 레드삭스 쪽 악연이 더 깊으니까요. 관련 에피소드도 더 많고요.”
“양키즈 조건은 얼마야?”
“이번에는 레드삭스의 조건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14년에 7억 6,800만 달러입니다.”
“레드삭스보다 200만 달러가 적네?”
“아무래도 레드삭스의 꼼수에 양키즈가 당한 느낌입니다.”
“다른 조건들은 어때?”
“거의 비슷합니다. 옵트아웃 시기부터 시작해 추가된 바이아웃 보너스, 그리고 각종 추가 보너스까지 세세한 차이는 있지만 큰 틀에서 놓고 보면 우열을 가리기 어렵습니다.”
“박 팀장, 자네가 두 구단 중 한 구단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딜 고르겠어?”
“그야…… 총액이 조금 더 높은 쪽이 낫지 않을까요? 비밀에 부쳐도 결국 계약 조건이 어느 정도는 알려질 텐데 더 적게 쓴 양키즈를 선택하는 건 이상하잖아요.”
“흠…….”
송광철 대표는 갑자기 머리가 아파졌다.
앞선 1차 협상에서 양키즈가 레드삭스보다 200만 달러를 더 쓴 걸 두고 사전에 계약 조건이 유출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많았다.
이를 두고 레드삭스 쪽에서는 연일 양키즈를 비난했고.
양키즈는 사실무근이라면서도 설사 그런 일이 있다면 내부 단속을 못 한 레드삭스의 잘못이라고 비꼬았다.
그런데 만약에 이 모든 게 레드삭스의 계략이었다면?
그리고 이 200만 차이로 박유성의 행선지가 레드삭스로 정해진다면?
단순히 선수 한 명 뺏긴 것 이상의 후폭풍이 몰아칠 가능성이 높았다.
“이제 다저스만 남은 건가?”
“네. 다저스가 마지막입니다.”
“차라리 다저스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해주면 좋겠는데.”
송광철 대표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박유성의 본가까지 찾아왔을 만큼 정성을 쏟았던 다저스가 계약 조건으로도 신경을 써준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았다.
그런 송광철 대표의 속내를 읽은 것일까.
“다저스의 계약 조건은 14년 기준 8억 달러입니다.”
협상 시작부터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꺼낸 한마디에 송광철 대표의 표정이 밝아졌다.
“조금만 살펴봐도 될까요?”
“그럼요.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그 동안 저는 썬과 대화를 좀 나누겠습니다.”
“대화요?”
“얘기를 들어 보니 스타즈 구단에서도 썬의 컨설팅을 받고 외국인 선수를 영입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팀도 지금 몇몇 선수들을 내보낼 예정이라서요. 썬의 지혜를 빌렸으면 합니다.”
“……!”
순간 송광철 대표는 건네받은 자료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을 바라봤다.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웃으며 말했지만 그 진의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다저스의 선수단 구성에 박유성의 조언을 구하겠다.
다시 말해 박유성이 원하는 선수를 영입할 의사가 있다는 의미였다.
지금껏 담담하게 자리를 지켰던 박유성도 이때만큼은 표정이 흔들렸다.
“앤드류 사장님. 죄송한 말이지만 저는 다저스의 사정을 잘 알지 못합니다.”
“썬. 괜찮으니까 편하게 이름을 불러줘요. 사장이라는 호칭은 직원들이 하는 겁니다. 나는 썬의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여기에 온 거예요.”
“좋아요. 앤드류. 제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다저스는 좋은 팀이라는 겁니다.”
박유성이 애써 침착하게 말을 받았다. 하지만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그런 박유성의 성격과 화법에 대해 충분히 공부를 하고 온 상태였다.
“그렇다면 피터 페츠와 재계약을 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저는 피터 페츠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습니다.”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말은 호감도 없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제가 잘못 이해한 걸까요?”
“피터 페츠는 지난 경기 때 처음 봤으니까요. 잘 모른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코리 베츠는 어때요? 경기가 끝나고 잠깐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코리는 성격이 좋아 보였습니다. 그 성격처럼 야구도 호쾌하게 잘하는 거 같고요.”
“하하. 그렇다면 코리 베츠는 합격이로군요. 혹시나 코리 베츠까지 트레이드해야 하나 걱정했습니다.”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의 말에 박유성은 다시 말문이 막혔다.
뒤늦게 로이 홀랜드 보좌역이 적당히 하라며 핀잔을 줘서 분위기가 풀렸지만.
FA 시장에 나온 피터 페츠에 이어 팀의 간판타자인 코리 베츠까지 내보낼 수 있다는 농담은 결코 농담처럼 들리지가 않았다.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의 공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참, 미스터 쏭. 내일 스케줄은 어떻게 됩니까?”
“내일이요? 내일은 특별한 약속이 없습니다.”
“그럼 쏭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게 어떨까요? 아, 물론 미스터 쏭이 아니라 레인저스의 쏭을 말하는 겁니다.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우리는 쏭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내일 바로요?”
“다른 단장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저는 제가 할 일을 뒤로 미뤄두고 한국에 왔습니다. 물론 억지로 온 건 아니니까 부담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저와 다저스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일을 하러 온 거니까요. 그래서 한국에 머무는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가지고 돌아가려고 합니다.”
“송현민 선수와의 계약을 염두에 두고 오신 겁니까?”
“당연하죠. 저는 레인저스처럼 썬을 외롭게 만들지 않을 겁니다. 물론 썬의 모든 계약이 끝날 때까지 쏭과 함께한다는 보장은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쏭이 우리의 기대만큼만 실력을 보여준다면 썬을 위해서라도 함께 갈 마음은 가지고 있습니다.”
연거푸 쏟아지는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의 폭탄 발언을 피해 송광철 대표가 로이 홀랜드 보좌역을 바라봤다.
보좌역은 모시는 상사가 실언하거나 실수하지 않도록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필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으니 당연히 말려줄 거라 여겼다.
하지만 로이 홀랜드 보좌역의 표정은 당혹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게임은 우리가 이겼어.’
이미 협상장의 분위기가 양키즈 쪽으로 넘어온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선 것도 박유성을 너무 곤란하게 만들지 말라는 의미일 뿐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을 막으려는 건 결코 아니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저는 썬과 함께 쏭도 영입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 팀에는 미카엘 로하스 선수가 있지 않습니까?”
“지난번에도 잠깐 얘기했지만 미카엘 로하스는 발목이 좋지 않은 상태입니다. 게다가 쏭보다 나이도 많죠. 쏭을 영입한다면 미카엘 로하스는 정리를 할 계획입니다.”
“미카엘 로하스 선수의 다저스 사랑이 대단하다고 알고 있는데요.”
“다저스를 사랑하는 선수는 메이저리그에 많습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허락한 로스터는 최대 40명입니다. 그중 26명만이 메이저리그 경기를 뛸 수 있고요. 썬은 물론이고 쏭도 그 26명 안에 충분히 포함될 선수입니다. 다만 미카엘 로하스는 제 구상대로 팀이 재편될 경우 40인 로스터에서 버티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대화가 너무 진지해지자 팀장 하나가 송광철 대표에게 메모를 건넸다.
[대표님. 주제를 바꾸시죠.]
하지만 다저스의 운영을 총괄하는 운영 사장이 직접 와서 다저스의 청사진에 대해 설명하는데 말을 자르기란 쉽지 않았다.
“피터 페츠 선수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미스터 쏭은 피터 페츠의 재계약에 반대입니까?”
“제가 감히 그것까지 간섭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피터 페츠 선수가 박유성 선수와 송현민 선수를 존중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최대한 정중하게 말했지만.
결국은 피터 페츠가 있는 한 다저스와 계약하지 않겠다는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로이 홀랜드 보좌역은 냉큼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의 표정을 살폈다.
피터 페츠와 브라이언 조던의 에이전트인 조쉬 애버튼에게 시달릴 대로 시달린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과민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걱정됐다.
하지만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오히려 송광철 대표의 속내를 알게 되어 다행이었다.
“만약에 썬과 쏭을 영입하게 된다면 피터 페츠는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저 역시도 팀의 캐미스트리를 깨뜨리는 선수는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조건을 달긴 했지만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피터 페츠와 함께 갈 생각이 없었다.
설사 피터 페츠가 에이전트를 바꾼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프리미어 12에 참가했다가 최악의 피칭으로 메이저리그 팬들의 조롱을 받는 투수에게 비싼 돈을 주고 재계약을 하고 싶지 않았다.
“피터 페츠뿐만이 아닙니다. 브라이언 조던과 미카엘 로하스도 정리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썬과 쏭이 입단한다면 선수단은 물론이고 다저스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국의 문화와 예절에 대해 교육할 생각입니다.”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에 이어 로이 홀랜드 보좌역이 말을 이었다.
“한국에 대한 교육뿐만 아니라 다저스에 새로운 선수가 들어올 때마다 그 선수의 모국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겠습니다. 그래야 서로를 이해하고 하나가 될 테니까요.”
“흠……. 그렇게 된다면 고질적인 인종 차별 갈등도 조금은 줄어들겠네요.”
송광철 대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송현민처럼 성격 있는 선수도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는 게 메이저리그였다.
그래서 최종 협상 구단들을 상대로 인종 차별 문제에 대해 공통된 질문을 해왔는데 다저스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때 박유성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정말 제가 원하는 선수를 영입할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