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376화 (376/412)

타자 인생 3회차! 376화

43. 최종 협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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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송광철 대표는 송현민의 에이전트 자격으로 레인저스 관계자를 만났다.

당시 가장 유력한 행선지로 지목됐던 다저스에게 기대 이하의 제안을 받고 실망하던 차였는데 레인저스 관계자가 이런 말을 했다.

“레인저스의 모든 팬들은 쏭을 원하고 있습니다. 존 다니엘 사장도 쏭을 만나길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중이고요.”

당시 에이전트 경험이 없었던 송광철 대표는 레인저스 관계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래서 다른 구단들이 추가 협상을 요청한 걸 전부 거절하고 송현민을 레인저스로 데려갔다.

하지만 송현민이 레인저스에서 뛰는 4년간 송광철 대표가 존 다니엘 사장을 만난 건 손에 꼽힐 정도였다.

입단식 때 한 번. 마이너리그 강등설이 돌았을 때 한 번.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로 초청됐을 때 한 번.

“또 있나?”

한참 동안 머리를 쥐어짜 내던 송광철 대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물론 존 다니엘 사장이 사적으로 선수들을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레인저스에서 홀로 타선을 이끌어 왔던 송현민의 에이전트로서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다저스하고 자이언츠, 레드삭스는 단장이 같이 움직인다고 합니다.”

“양키즈하고 레인저스는?”

“양키즈는 부사장이 오고 레드삭스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언론에서 별 얘기 없는 걸 보면 존 다니엘 사장은 안 올 모양이네.”

송광철 대표의 예상대로 존 다니엘 사장을 제외한 협상단이 들어오자 송광철 대표가 보란 듯이 물었다.

“혹시 존 다니엘 사장님은 안 오셨나요?”

“아, 네. 존은 개인 일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아쉽네요. 서울에서 만나게 되면 진득하게 술 한잔하기로 했었는데…… 아무래도 인연이 아닌가 봅니다.”

“……!”

인연이 아니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재차 확인한 카를 메켄 사장 보좌역은 다급히 해명에 나섰다.

“피치 못한 사정으로 한국에 오지 못했지만 레인저스는 진심으로 썬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 비슷한 얘기를 어디서 들었던 거 같은데 저만의 착각일까요?”

“……네?”

“송현민 선수 영입 제안할 때도 그랬거든요. 그런데 지금 레인저스 팬들이 송현민 선수에 대해 화가 단단히 나 있다는 게 사실인가요?”

“그건…….”

뭐라 변명을 하려던 카를 메켄 보좌역이 입을 다물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송현민의 삼촌이자 에이전트인 송광철 대표에게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프리미어 12 슈퍼 라운드 경기 이후 송현민과 브룩 로우의 충돌이 재점화됐다.

정확하게는 브룩 로우가 한 지역 방송에 출연해 송현민에 대해 언급한 게 문제가 됐다.

“솔직히 그때는 쏭을 때려주고 싶었습니다. 국제 경기라고 해도 선수 간에 매너는 지켜야 하잖아요? 하지만 쏭은 미국 대표팀의 분란을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저는 그걸 참을 수가 없었어요.”

브룩 로우의 변명 아닌 변명을 들은 대다수 야구팬들은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일부 레인저스 팬들은 프리미어 12 패배의 원흉 중 한 명으로 지목되고 있는 브룩 로우를 두둔하며 송현민을 비난하고 있었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미국에서 다수와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서 문제 삼을 필요는 없었다.

다만 그런 여론을 대하는 레인저스의 태도가 문제였다.

“크릭스.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입니다. 쏭. 못 본 사이에 더 멋있어진 것 같습니다.”

“요 며칠 협상 때문에 잠도 못 잤는데 더 멋있어진 것 같다고요? 농담이죠?”

“그랬나요? 그러고 보니까 눈이 좀 빨개진 것 같습니다.”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만 물을게요. 송현민 선수는 완전히 FA 시장에 나온 거죠?”

“쏭. 그 얘기는 지금 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갑작스럽게 화제가 송현민으로 향하자 크릭스 영 단장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송현민의 일로 송광철 대표가 협상을 방해한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송현민의 행선지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은 건 다름 아닌 박유성이었다.

“저도 그게 궁금했는데 대표님이 대신 말씀해 주셨네요. 그런데 반응을 보니까 레인저스와는 완전히 끝난 거 같은데요?”

“내가 말했잖아. 그렇지 않고서야 팬들에게 억울하게 욕먹는 걸 내버려 둘 리가 없지.”

“저도 나중에 그렇게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겠네요.”

박유성은 물론이고 송광철 대표도 영어를 준수하게 구사했지만.

두 사람은 철저하게 한국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러자 중간에 낀 통역이 바빠졌다.

“노노! 아닙니다, 썬. 오해입니다.”

“정확하게 어떤 부분이 오해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러니까 그게…….”

이렇다 할 답을 찾지 못한 크릭스 영 단장이 카를 메켄 보좌역을 바라봤다.

하지만 카를 메켄 보좌역이라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썬. 쏭과 썬은 다릅니다. 물론 쏭도 좋은 선수지만 썬과 비교할 수가 없어요.”

“저를 좋게 평가해 주시는 건 고맙지만 송현민 선수와의 비교는 사양하도록 하겠습니다. 송현민 선수는 제가 존경하고 닮고 싶은 선수니까요.”

“이런,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레인저스가 이번 최종 협상 테이블에 가지고 나온 조건은 15년 기준 8억 달러.

계약 기간을 1년 늘리면서 연봉 총액의 앞자리를 바꿔 버렸다.

이 정도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지만 정작 박유성은 송현민 건에 대해 대답을 회피하는 레인저스 구단을 상대로 협상을 이어갈 마음이 없었다.

그렇게 레인저스가 빈손으로 협상장을 나오자 양키즈 쪽에 비상이 걸렸다.

“썬의 에이전트가 존 다니엘 사장이 오지 않은 이유를 물어봤다는데요?”

“뭐? 그게 정말이야?”

“젠장할. 이렇게 되면 우리도 감점을 받는 거 아냐?”

“꼭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진정성 있게 협상단을 꾸렸으니까요.”

“그 기준을 우리 쪽에 잡으면 안 됩니다. 썬이 서운해하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럼 지금이라도 브라이언이 와야 하는 거 아닐까요?”

“전용기를 타고 날아와도 시간 내에 도착하기 힘들어. 이대로 우리끼리 해내는 수밖에 없다고.”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박유성을 두고 다저스와 양키즈, 레드삭스, 레인저스가 경쟁할 거라고 전망했다.

자이언츠도 최종 협상 명단에 포함됐지만 나머지 네 구단을 상대로 승리하는 건 어려울 거라 내다봤다.

양키즈 역시 자이언츠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추가로 월드 시리즈 진출과 거리가 먼 레인저스도 빼버렸다.

박유성의 메이저리그 적응을 도와줄 최고의 조력자까지 놓쳤으니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울 거라 여겼다.

그 예상대로 레인저스는 일찌감치 짐을 싸는 분위기였지만.

그렇다고 양키즈에 마냥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일단 브라이언과 연락해서 화상 미팅이라도 준비하자고.”

“그걸로 될까요?”

“안 되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해. 최소한 썬이 레드삭스 유니폼을 입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레인저스를 제외한 나머지 네 팀은 지역 라이벌로 엮여 있었다.

양키즈와 레드삭스는 아메리칸 리그 동부 지구 소속이고.

다저스와 자이언츠는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에서 매년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그래서 양키즈는 다저스보다 레드삭스 쪽을 더 신경 썼다.

박유성이 다저스나 자이언츠로 간다면 월드 시리즈만 걱정하면 되지만 라이벌 구단인 레드삭스에 뺏기면 지구 우승부터 힘들어지기 때문이었다.

다저스도 같은 이유로 자이언츠의 협상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자이언츠 협상단이 들어간 지 얼마나 됐지?”

“아직 삼십 분 정도 더 남았어요, 앤드류. 제발 좀 진정해요.”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만에 하나 자이언츠가 웃으며 나온다면 큰일이라고.”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안심해요. 자이언츠에서 위조지폐를 찍어낸다면 모를까 불가능한 일이에요.”

로이 홀랜드 보좌역의 예상대로 협상장을 나온 자이언츠 관계자들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지난 1차 제안보다 고작 5천만 달러가 오른 정도로는 송광철 대표의 마음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자이언츠에서 15년에 7억 5천만 달러를 제시했다고 합니다.”

“그럼 연평균 5천만 달러잖아?”

“대신에 초반 계약을 6년으로 늘렸습니다. 6년간 수령 가능한 금액은 2억 1천만 달러고요.”

“결국 5년 계약을 6년으로 바꾼 것밖에 안 되잖아?”

“만약에 3번째 순서였다면 레인저스의 조건을 참고했을 텐데 아쉽게 됐네요.”

최종 협상장의 분위기는 취재를 나온 기자들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일단 레인저스와 자이언츠는 탈락 확정인가? @gavriele

└아직 몰라. 남은 구단들 중에 만족할 만한 제안이 없다면 원점에서 다시 논의될 거라고. @Rangers7

└그런데 레인저스는 왜 썬에게 집착하는 거야? 썬도 쏭처럼 한국인이라고. 설마 썬을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Murry

└쏭은 쏭이고 썬은 썬이야. 그런 식으로 트집 잡지 마! @Bleacher7

└난 얼마 전에 한 레인저스 팬이 쏭 때문에 한국인이 싫어졌다고 인터뷰했던 걸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LW1548

└그 여자는 레인저스 팬이 아니야. 일본인이었다고! @joeysports

└브룩 로우의 잘못을 감싸주는 건 레인저스 팬밖에 없을걸? @Jimmy P.

└그렇게 따지면 다저스도 썬을 데려갈 자격이 없어! 가장 먼저 썬을 저격한 건 피터 페츠라고! @mlbteacher324

└미안하지만 피터 페츠는 현재 FA 상태야. 다저스와 재계약하기 전까지는 다저스와 엮지 마. @CappDrop34

└다저스 팬들 대단하네. 썬 때문에 그동안 고생한 에이스를 버리는 거야? @Go Giants!!

└벤치 클리어링이 났을 때 앞장서서 썬을 보호하고 두둔했던 선수는 어디 소속이더라? @Whiteheart77

└이제 남은 건 양키즈와 레드삭스, 다저스뿐이지? @Captain Redsox

└진정한 빅클럽들만 남은 셈이지. 후후. @Dodgers SN

└과연 누가 최종 승자가 될까? @barbie_C77

└썬! 양키즈는 안 돼! RS8042

└썬! 레드삭스는 절대 안 돼! @Coco75448

└싸우지 마, 친구들이여. 썬은 다저스의 품에 안길 테니까. @go Dodgers

└빌어먹을! 다저스에 썬을 뺏기느니 양키즈나 레드삭스가 낫겠어. @linda K

점심시간이 끝나고 세 번째로 협상장에 들어간 레드삭스의 애런 스와슨 단장은 전면에 나서 대화를 주도했다.

“썬. 믿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난 당신의 열렬한 팬입니다. 정말이에요.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증인입니다.”

“고맙습니다. 애런 단장님. 서울까지 직접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당연한 일인걸요. 이런 얘기 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린 양키즈와 다릅니다. 양키즈는 선수를 소모품 취급하며 갈아 치우지만 우리는 선수를 동반자로 여깁니다. 한두 시즌 부진하다고 해서 태도를 바꾸거나 하지 않아요.”

레인저스의 실패를 교훈 삼아 애런 스와슨 단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호감을 끄집어내 박유성에게 어필했다.

하지만 집요하리만치 양키즈를 끌어들이는 애런 스와슨 단장의 화법은 박유성과 송광철 대표에게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웠다.

“일단 레드삭스 조건은 14년에 7억 7천만 달러입니다. 지난 제안보다 3천만 달러 올랐습니다.”

“계약 조건은 나쁘지 않은데 참……. 확 당기지가 않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피터 그렉과 경쟁해야 하는 문제도 남아 있고요.”

“그래도 박유성 선수가 입단하면 피터 그렉이 포지션을 변경하지 않을까요?”

“아까 말했잖아. 선수들을 동반자로 여긴다고. 10년째 톱타자 겸 중견수로 활약 중인데 유성이한테 마냥 양보하려 할까? 톱타자를 받아오면 아마 포지션은 양보해야 할지도 몰라.”

레드삭스에 이어 협상장으로 들어온 양키즈도 레드삭스를 끌어내리려 안간힘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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