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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375화 (375/412)

타자 인생 3회차! 375화

42. 도쿄 찍고 미국으로(8)

다년 계약으로 꼼수를 부린 건 자이언츠만이 아니었다.

다저스를 비롯해 양키즈와 레드삭스, 레인저스 등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모든 구단들은 초반 연봉을 낮추는 식으로 위험 부담을 줄이려 했다.

“우리도 연차별 연봉에 차등을 주긴 했지만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썬의 에이전트는 무슨 생각일까?”

미국의 에이전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바로 계약서로 장난을 치는 것이었다.

애매한 독소조항을 넣거나 합의되지 않은 마이너스 옵션을 슬쩍 추가하면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첫해 연봉이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인 4,500만 달러로 시작하는 다저스의 조건과 비교했을 때 자이언츠의 조건은 코웃음이 날 정도였다.

하지만 송 에이전시는 최종 협상 테이블에 자이언츠를 앉혔다.

“이유가 뭘까?”

“나머지 구단의 계약 조건이 들어오는 대로 분석해 봐야겠지만 자이언츠의 조건 중에서 마음에 드는 내용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그렇다고 봐야겠지?”

“일단 보너스 옵션은 확실히 자이언츠 쪽이 좋습니다. 리그 MVP 보너스도 300만 달러나 됩니다.”

“우리도 200만 달러를 걸었잖아?”

“중요한 건 연속 수상을 할 경우 보너스가 늘어난다는 겁니다.”

“연속 수상? 그러니까 2회 연속 수상이면 보너스를 더 준다는 거야?”

“네. 물론 구간마다 초기화가 되긴 하지만 썬이 첫 5년간 MVP를 싹쓸이하면 무려 2,500만 달러를 수령할 수 있습니다.”

“2,500만 달러라. 허, 자이언츠가 머리를 잘 썼는데?”

메이저리그에서 연봉 외 옵션 계약은 일반적이었다.

특히나 고액 연봉자들의 경우 먹튀를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다양한 옵션을 걸어서 동기를 부여하는 편이었다.

다저스만큼 박유성에게 확신이 없었던 자이언츠는 박유성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옵션에 신경을 썼다.

“MVP뿐만 아니라 타격 관련 옵션도 비슷하게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래 봐야 5년 차까지잖아?”

“만약에 썬이 5년 연속 MVP에 타격 5관왕을 차지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자이언츠와 연장 계약할까요?”

박유성이 지난 3년간 리그에서 때려낸 홈런은 무려 241개.

연평균 80개꼴이었다.

하지만 박유성의 열렬한 팬인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조차 박유성이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왕을 차지할 가능성을 낮게 봤다.

박유성의 타석 당 홈런은 10.8퍼센트 정도.

소수점 첫 번째 자리를 반올림해서 11퍼센트로 놓고 봐도 9타석 중에 1번 홈런을 때려냈다.

타석 당 홈런 비율만 놓고 보자면 다저스의 간판타자인 코리 베츠는 물론이고 아메리칸 리그 홈런 괴물들인 마크 스테리나 로비 마르티네즈보다도 앞섰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로 넘어온 송현민의 타석 당 홈런 생산력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는 걸 감안했을 때 박유성이 지난 3년간의 퍼포먼스를 유지할 가능성은 낮았다.

홈런 타이틀은 힘이 좋은 타자들에게 내줄 테고.

덩달아 타점도 줄어들 테니 박유성이 현실적으로 노려볼 수 있는 타격 타이틀은 5개였다.

최다안타에 이은 타격, 득점, 출루율, 그리고 도루.

박유성이 3할 중반대의 타격만 유지해도 충분히 달성 가능했다.

“타격 5관왕이면 MVP가 가능할까?”

“홈런을 낀 타격 5관왕이면 100퍼센트겠지만 홈런과 타점이 빠진 상태라면 조금 더 봐야 합니다. 근소하게 1위를 차지한 거라면 홈런과 타점 1위에게 밀릴 수도 있겠죠.”

“근소한 차이가 아니라면?”

“한국에서만큼은 아니더라도 4할에 가까운 타격을 보여준다면 그땐 썬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까요?”

메이저리그의 인종 차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특히나 MVP 투표권을 가진 백인 기자들은 백인 선수들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사명이라도 가진 것처럼 백인 선수들에게 유리한 투표를 행사했다.

박유성이 월등하게 잘하지 않는 한 홈런왕에게 MVP를 빼앗길 수 있다는 것도 그런 의미였다.

하지만 로이 홀랜드 보좌역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앤드류.”

“……?”

“썬이 아슬아슬하게 타격왕을 차지할 거라면 이렇게까지 무리해서 잡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하긴. 썬이 그 정도였다면 이렇게까지 유난을 떨 필요도 없겠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자이언츠의 전략은 간단합니다. 5년간 썬을 최대한 활용해 월드 시리즈 정상에 오른 뒤에 제대로 된 투자를 한다.”

“썬이 메이저리그에서 자신의 실력을 확실히 보여준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쏟아붓더라도 팬들이 반대하지 않을 거라는 거지?”

“자이언츠도 빅마켓 구단이긴 하지만 전통의 빅4에 비하면 아직 효율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니까요.”

지난해 자이언츠가 선수단 연봉으로 지출한 금액은 3억 1백만 달러.

다저스, 양키즈, 레드삭스, 레인저스에 이어 5번째로 3억 달러를 돌파하며 5대 빅마켓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다저스의 작년 연봉 지출은 3억 9백만 달러.

금액적으로는 고작 8백만 달러 차이지만 다저스와 자이언츠는 돈을 쓰는 게 달랐다.

박유성을 염두에 둔 2028시즌 이후로 다저스는 철저하게 사치세 절감에 나섰다.

2027년 메이저리그 노사합의 때 2028년 사치세 기준이 예상보다 높은 2억 8천만 달러로 결정됐지만 다저스는 웃을 수가 없었다.

다음 노사합의 때까지 해마다 1천만 달러씩 사치세 상한선을 증액한다고 발표했지만 사치세 누진제가 강화되면서 빅마켓 구단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구단 주축 선수들을 정리하지 않고 박유성을 영입할 경우 사치세 상한선을 넘길 게 뻔한 상황에서 누진제를 통한 사치세 상승은 엄청난 압박이었다.

본래는 사치세 구간이 4단계까지 있었지만.

해외 아마추어 선수 자격 기준 완화를 받은 선수 노조에서 사치세 강화를 요구하면서 구간이 7단계까지 늘어난 것이다.

2028년 당시 다저스의 연봉 총액은 3억 1,500만 달러.

2억 8천만 달러 기준의 사치세 상한선을 3,500만 달러 초과하면서 1,500만 달러 단위로 나뉘는 3단계 사치세를 물게 됐다.

새로 개정된 사치세 가산금은 1차 20퍼센트, 2차 35퍼센트, 3차 50퍼센트, 4차 70퍼센트, 5차 90퍼센트, 6차 120퍼센트, 그리고 7차는 무려 150퍼센트.

게다가 사치세를 계속 낼 경우 해마다 페널티가 늘어나기 때문에 다저스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었다.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조쉬 애버튼을 멀리했던 것도 구단의 재정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장기 계약만 요구했기 때문.

어쨌거나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의 노력 덕분에 다저스는 재작년 2억 9,900만 달러를 지출하며 사치세를 피했다.

그리고 작년에도 1천만 달러만 증액하면서 2년 연속으로 사치세를 내지 않고 있었다.

이건 다른 빅마켓 구단들도 마찬가지였다.

레인저스도 다저스와 함께 2년 연속 사치세 대상에서 빠졌고.

양키즈와 레드삭스는 올해 뼈를 깎는 교통정리를 감행하며 사치세 기준점 밑으로 연봉을 떨어뜨렸다.

반면 2027년 노사 협약 이후 단 한 번도 사치세를 낸 적이 없던 자이언츠는 해마다 연봉 지출을 늘리며 빅5에 합류했으니 같은 처지라고 말할 수 없었다.

“최종 협상 테이블에 앉긴 했지만 자이언츠는 우릴 따라오지 못할 거야.”

“애당초 손에 쥔 칩 자체가 많지 않으니까요. 다저스와 양키즈, 레드삭스가 판을 키우면 레인저스와 함께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단 이 이야기는 나머지 구단들의 조건을 알아낸 뒤에 마저 하자고.”

송현민 대표가 최종 협상까지 준 시간은 고작 일주일.

그 일주일 안에 타 구단의 내부 정보를 빼내어 보다 나은 전략을 세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로이 홀랜드 보좌역은 나흘 만에 레드삭스와 양키즈, 레인저스의 제안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레인저스 14년 7억 3천만 달러(5,214만 달러), 보너스 옵션 5천만 달러.

레드삭스 14년 7억 4천만 달러(5,286만 달러), 보너스 옵션 5천만 달러

양키즈 14년 7억 4,200만 달러(5,300만 달러), 보너스 옵션 4,500만 달러.

“다들 14년 계약을 제시했군.”

“언론에서 최소 7억 달러부터 시작이라고 떠들어댔으니까요. 7억 달러를 쓰는 건 불안하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프리미어 12를 거치며 박유성의 계약 예상 규모가 8억 달러까지 치솟은 상황에서 심리적 상한선인 7억 달러를 고수하기란 쉽지 않았다.

최종 협상 때 화끈한 배팅을 하려면 일단 그 협상 테이블에 초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다저스의 1차 제안 조건(13년 7억 2천만 달러)은 살짝 위험한 느낌마저 들었다.

“연평균 금액으로는 우리가 제일 높긴 하지만 총액은 레인저스에 뒤졌어.”

“이렇게 놓고 보니까 썬의 에이전트가 자이언츠까지 포함시킨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자이언츠를 빼면 우리가 꼴등이니까. 그렇지?”

“네. 썬의 에이전트도 최종 협상에서 다저스가 빠지는 걸 원치 않았을 겁니다.”

전통의 빅마켓 구단들 중에서 지출에 가장 깐깐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운영 수익을 벌어들이고 있는 다저스를 빼면 판을 키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다저스는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직접 한국에 찾아갔을 정도로 박유성에게 공을 들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저스를 기준으로 협상 대상을 정하면 말이 나올 수 있다 보니 자이언츠까지 포함시켰을 가능성이 높았다.

“우리 쪽 조건도 다른 구단에 들어갔겠지?”

“모든 조건을 전부 다 알지는 못하겠지만 기본적인 내용들은 전달이 됐을 겁니다.”

“그럼 이제부터가 진짜 승부겠네.”

“여기까지 온 이상 썬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최종 협상을 이틀 앞두고 다저스는 전 직원 비상 체제에 들어갔다.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을 비롯한 구단 수뇌부들은 호텔 방을 빌려서 협상 전략을 수립했고.

남은 직원들도 야근을 마다하지 않고 다른 구단들과 언론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렇게 치열했던 이틀이 지나고.

신성 강남 호텔에서 최종 협상이 시작됐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 호텔에 먼저 도착한 구단에게 우선권을 드리겠습니다. 원하는 협상 순서를 고르시면 됩니다.”

만약을 대비해 가장 먼저 호텔에 도착한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당연하게도 가장 마지막 순서를 골랐다.

양키즈는 네 번째. 레드삭스는 세 번째 순서를 선택했고 가장 늦게 도착한 자이언츠가 두 번째 순서를 받게 됐다.

“일단 레인저스부터 협상을 시작하겠습니다.”

레인저스 구단의 협상 총책임자는 크릭스 영 단장과 카를 메켄 사장 보좌역.

작년 말부터 박유성의 영입 TF팀을 이끌어왔다.

지역 언론들은 존 다니엘 사장이 직접 움직일 거라고 전망했지만 존 다니엘 사장은 자신보다 담당자들에게 맡기는 게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레인저스 구단에게 주어진 첫 번째 질문은 크릭스 영 단장과 카를 메켄 사장 보좌역의 표정을 굳게 만들었다.

“혹시 존 다니엘 사장님은 안 오셨나요?”

“아, 네. 존은 개인 일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아쉽네요. 서울에서 만나게 되면 진득하게 술 한잔하기로 했었는데…… 아무래도 인연이 아닌가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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