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374화
42. 도쿄 찍고 미국으로(7)
이틀 후.
송 에이전시는 기자회견을 통해 최종 협상 구단을 공식 발표했다.
“30개 구단의 제안서를 면밀히 검토한 끝에 다저스와 양키즈, 레드삭스, 레인저스, 자이언츠 구단과 추가 협상을 진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소식이 전해지자 최종 협상에서 탈락한 팀들의 팬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뭐야? 왜 메츠의 이름이 빠진 거야? @Metsssss
└이런 미친! 대체 얼마를 썼기에 최종 협상 테이블에 초대받지 못한 거야? @GSDStax42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내가 이럴 줄 알았다고! @Drewbaca
└내셔널스는 대체 뭘 한 거야? 썬을 데려올 자신이 있다며? @Anomi2135
└항간에 떠돌던 소스가 정확하게 맞았어. 7억 달러 근처를 제시한 구단들만 초대를 받은 거라고. @Cleon299
└블루제이스는 뭐라고 말 좀 해봐! 썬을 잡기 위해서 프랜차이즈 스타 둘을 내보냈는데 대체 이게 뭐냐고! @Jayho2813
└지금 제일 심각한 건 에인젤스야. 오타니 쇼헤를 대신해 팀을 이끌어 줄 타자가 필요한데 구단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아! @AngerHR
2차 협상을 노리던 에인젤스 게리 메사나 단장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30개 구단이 신청을 했는데 곧바로 최종 협상이라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렇지 않아도 담당자와 통화를 했는데 단계별로 협상을 진행할 이유가 없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최종 협상 구단으로 선택된 구단들과 금액 차이가 컸던 것 같습니다.”
“젠장할! 그게 말이 돼?”
포스팅 신청을 앞두고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뉘었다.
다저스와 양키즈를 비롯해 돈으로 찍어 누르려는 빅마켓들과 지역 언론과 팬들의 눈치 때문에 형식적으로 신청서를 낸 스몰마켓들.
그리고 그 중간에 낀 미들 마켓.
오타니 쇼헤를 잡으면서 연봉 지출이 많은 메이저리그 10대 구단에 이름을 올리게 됐지만 에인젤스는 본래 과잉투자를 하는 곳이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협상 담당 부서에서는 에인젤스의 수준에 맞는 계약안을 들고 왔다.
10년에 5억 원.
연평균 5천만 달러에 각종 보너스를 포함하면 5,200만 달러까지 수령이 가능한 현 메이저리그 최고 계약.
언론에서 떠도는 최저 7억 달러와는 차이가 있었지만 빅마켓 구단들도 계약 기간을 늘려 금액을 채울 테니 실질 조건으로는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평소였다면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을 게리 메사나 단장이 불같이 화를 냈다.
“이게 최선이야? 이게 최선이냐고! 이따위 계약으로는 썬을 절대 잡을 수 없어!”
이후로도 두 번이나 더 계약서를 집어 던진 끝에 게리 메사나 단장은 만족스러운 조건을 받아냈다.
13년 계약에 6억 2천만 달러.
연평균 금액을 4,770만 달러 선으로 낮추면서 총액은 빅마켓에 버금가는 조건으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이 조건을 과연 썬이 받아들일까요?”
“중요한 건 총액이야. 다저스나 양키즈도 처음부터 7억 달러를 부르지는 못할 테니까 최대한 비슷하게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일단 2차 협상에 올라간 다음에 조건을 조정하자는 얘기네요.”
“바로 그거야! 30개 구단 전체가 덤벼들었으니 한 번에 최종 협상 구단을 정하긴 부담스러울 거야. 썬의 에이전트도 판을 키우고 싶겠지. 일단은 다음 라운드에 올라가서 판세를 읽을 필요가 있어.”
평균 연봉을 낮춘 대신 옵트 4년 차와 7년 차 때 두 번의 옵트 아웃 조건을 넣었다.
대신 8년 차 이후로는 구단에서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바이아웃 조건도 포함시켰지만.
이 정도면 최소한 2차 협상 대상 구단에는 꼽힐 거라 여겼다.
실제로 연봉 총액만 따졌을 때 에인젤스의 조건은 미들 마켓 구단들 중에서 가장 좋았다.
그러나 다른 미들 마켓들도 예상치를 웃도는 계약을 제안하면서 게리 메사나 단장의 노림수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에인젤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며?”
“네. 팬들이 단장의 경질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준비한다고 합니다.”
“그 여파가 나한테까지 오진 않겠지?”
“그럴 일 없도록 썬을 꼭 잡아야겠죠.”
“그럼 목숨 걸고 잡아야겠네.”
다저스의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씩 웃었다.
메이저리그 모든 구단이 달려들면서 장기 레이스가 될 거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생각보다 빨리 경쟁자들이 정리되어서일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에인젤스가 6억 2천만 달러를 썼다지?”
“보너스를 포함하면 6억 5천만 달러 규모라고 합니다.”
“생각보다 무리했는데?”
“프리미어 12에서 오타니 쇼헤가 무너졌지 않습니까. 오타니 쇼헤의 대체자를 원하는 팬들의 눈높이를 맞추려면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2023년 겨울.
4억 5천만 달러(10년)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받고 에인젤스에 잔류한 오타니 쇼헤의 계약은 이제 2년밖에 남지 않았다.
9년차 계약부터 구단에서 바이 아웃을 행사할 수 있다지만.
에인젤스에서 12년을 뛴 간판선수를 매정하게 내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3년 전부터 타자보다 투수 쪽에 집중하고 있는 오타니 쇼헤는 여전히 에인젤스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부상이 없다면 에이스인 마그너스 휴이의 뒤를 받쳐줄 가능성이 높은 상황.
만으로 서른여덟이 되는 투수가 팀 내 2선발 자리를 맡아준다면 존경을 표해야 마땅하겠지만.
오타니 쇼헤가 해마다 받아가는 4,50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연봉을 고려했을 때 마냥 박수를 보낼 수가 없는 게 현실이었다.
“올해는 몇 타석이나 설 수 있을까?”
“아마 100타석 미만일 겁니다. 타자로 풀타임을 소화하는 건 체력적으로 쉽지 않겠지만 대타로는 여전히 유용하니까요.”
“작년에 대타로만 홈런을 11개나 때려냈지?”
“그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고 보면 오타니 쇼헤도 대단해. 아시아 선수 중에 오타니 쇼헤만큼 잘한 선수도 드물잖아?”
“그전에 스즈키 이치이로가 있었죠. 한국의 추도 좋은 활약을 펼쳤고요.”
“추까지 내려가면 거론해야 할 선수들이 너무 많아.”
“오타니 쇼헤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솔직히 없다고 봐야 할 거 같습니다. 스즈키 이치이로도 대단했지만 오타니 쇼헤는 투웨이 플레이어니까요.”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임팩트만 놓고 봤을 때 지금까지 아시아에서 넘어온 선수들 중에 오타니 쇼헤를 능가할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라면 이야기는 달랐다.
“로이. 자네는 에인젤스에서 얼마나 쓸 거라고 생각했어?”
“솔직히 말씀드려서 10년에 4억 5천만 달러 정도 예상했습니다. 아직 오타니 쇼헤와의 계약이 끝나지 않았고 내년 시즌에 마그네스 휴이와 재계약해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2025년에 드래프트를 통해 입단한 마그네스 휴이는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우완 투수.
대학 시절 때 오타니 쇼헤처럼 투타 겸업을 했지만 2년간의 마이너리그 생활을 거치며 투수에 전념했고 그 결과 에인젤스의 에이스 자리를 꿰찼다.
정면 승부를 즐기는 스타일이라 피홈런이 많은 게 흠이긴 하지만 에인젤스 입장에서는 젊은 에이스를 붙잡지 않을 수 없는 상황.
“마그네스 휴이도 장기 계약을 원하는 중이지?”
“네. 에이전트가 조쉬 애버튼이니까요.”
“게리 메사나 단장 입장에서는 나름 승부수를 던진 것일 텐데 결과가 이래서 아쉽겠어.”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사장실 출입 금지를 시킨 조쉬 애버튼은 에인젤스에서도 요주의의 인물로 찍힌 상태였다.
2029년 시즌 직후 에인젤스 구단에서 마그네스 휴이와 장기 계약을 맺으려 했던 걸 조쉬 애버튼이 끼어들어 망쳤기 때문이다.
당시 조쉬 애버튼은 조언을 해준다는 핑계로 마그네스 휴이에게 접근해 사인 직전까지 갔던 계약을 거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오타니 쇼헤를 방출하라고 압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만약에 에인젤스가 최종 협상 구단에 포함됐다면 똥줄이 타는 건 조쉬 애버튼이었겠죠.”
“보나 마나 계약서를 들고 단장실로 들이닥쳤겠지.”
“그리고 최고의 계약을 운운하며 서명을 종용할 테고요.”
“확실히 그런 쪽으로는 메이저리그 최고라 불릴 만해.”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피터 패츠가 최근 두 시즌 부진한 피칭을 이어갔으니 망정이지 사이영 상급 퍼포먼스를 선보였다면 아마 피터 페츠와 박유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 머리를 잡아 뜯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이도 조쉬 애버튼을 게리 메사나 단장에게 떠넘길 수 있게 됐다.
“피터 페츠에 대한 얘기는 없지?”
“네. 전혀요.”
“개인적으로 연락 온 것도 없어?”
“피터한테요? 몇 번 전화가 오긴 했습니다만 의미 있는 대화는 아니었습니다.”
“피터가 들으면 엄청 서운해하겠는데?”
“서운해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어쩌면 에인젤스 대신 우리가 빠졌을지도 모르니까요.”
냉정하게 말하는 로이 홀랜드 보좌역을 보며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피식 웃었다.
“조만간 내 자리를 맡겨도 되겠는데?”
“그런 재미없는 얘기는 썬을 잡고 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거 같은데요?”
“그래. 그러자고.”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뒤늦게 로이 홀랜드 보좌역이 가져온 서류를 살폈다.
서류 안에는 로이 홀랜드 보좌역이 인맥을 총동원해 알아낸 타구단의 계약 조건들이 담겨 있었다.
“자이언츠는 딱 7억 달러를 썼군.”
“대신에 계약 기간이 15년입니다. 연평균 금액은 에인젤스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총액은 자이언츠가 에인젤스보다 8천만 달러 더 많지만.
연평균으로 따지면 반대로 에인젤스가 자이언츠보다 100만 달러 정도 더 높았다.
상식적으로 따졌을 때 총액보다는 연평균 금액이 높은 쪽과 계약하는 게 더 낫겠지만 스포츠의 세계는 달랐다.
제아무리 관리를 잘하는 선수라 하더라도 누적된 피로에서 오는 부상과 실력 부침은 피하기 어려운 법.
그런 상황을 여유롭게 헤쳐 나가려면 연평균 금액을 조금 손해 보더라도 계약 기간을 길게 가져가는 쪽이 여러모로 나았다.
하지만 10년 이상의 장기 계약이 유력해진 상황에서 자이언츠의 계약 조건이 딱히 매력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내가 썬의 에이전트라면 자이언츠의 제안을 가장 밑으로 뺄 거야.”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7억 달러 중에 6천만 달러가 계약 이행 보너스입니다. 첫 5년간 받을 수 있는 금액도 1억 7천만 달러뿐이고요.”
자이언츠가 제안한 15년의 계약은 세 기간으로 나뉜다.
첫 5년과 다음 6년. 그리고 마지막 4년.
기간이 끝날 때마다 옵트 아웃과 바이 아웃이 가능한데 상호 합의에 의해 계약을 연장하면 3천만 달러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6천만 달러를 빼면 6억 4천만 달러.
그 금액을 다시 15년으로 나누면 4,267만 달러다.
오타니 쇼헤가 연평균 4,500만 달러를 받는 상황에서 실질적으로는 그보다 못한 금액을 제시한 셈이다.
첫 5년간의 연봉도 헛웃음이 절로 났다.
2032년 3,000만 달러
2033년 3,200만 달러
2034년 3,400만 달러
2035년 3,600만 달러
2036년 3,800만 달러 + 계약 이행 보너스 3,000만 달러.
자이언츠는 계약 이행 보너스까지 포함해 5년간 최대 2억 달러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겠지만.
박유성과 자이언츠가 두 번째 계약 진행에 합의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박유성이 초반 5년의 계약에 불만을 품을 만큼 지나치게 잘해서도 안 되고.
자이언츠가 다음 6년 계약을 진행하기 싫을 만큼 지나치게 못해서도 안 된다.
서로가 원해서 계약을 연장해야만 보너스를 받을 수 있다 보니 사실상 5년간 받을 수 있는 평균 연봉은 3,400만 달러라고 봐야 했다.
“이런 뻔한 수로 썬을 낚을 생각을 하다니. 자이언츠도 대단해.”
“문제는 자이언츠가 최종 협상 대상에 포함됐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