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371화
42. 도쿄 찍고 미국으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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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100여 명의 기자들까지 들어올 수 있는 인터뷰 룸은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만 들어와! 밀지 말라고!”
“가드들은 뭘 하는 거야? 출입증이 없는 기자는 내쫓아!”
어쩌면 오늘 박유성의 메이저리그 진출 선언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출입증을 발급받지 못한 기자들까지 인터뷰 룸으로 밀고 들어왔고.
현장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그 와중에 일부 기자들이 대한민국 기자를 사칭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아임 코리안! 아임 코리안!”
“뭐야, 저 사람은?”
“어이! 거기! 한국 기자면 한국 말을 해봐요. 정말 한국 기자 맞아요?”
“아임 코리안!”
“미친. 아임 코리안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경호원들에게 붙잡혀 끌려 나가는 기자를 보며 대한민국 기자들이 코웃음을 쳤다.
박유성을 팔아서 기자 회견장에 들어오려는 속셈은 알겠지만 이곳은 일본이고 일본 야구의 성지라 불리는 도쿄 돔의 브리핑 룸이었다.
일본 대표팀이 대한민국 대표팀을 꺾고 설욕을 한 것도 아니고 11 대 0, 대패를 당한 상황에서 한국인임을 앞세워 봐야 반겨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때 나영진 기자가 공윤경 기자를 보며 말했다.
“공 기자. 여기.”
“이게 뭐예요?”
“내가 질문할 거였는데 겹치는 거 빼고 네가 대신 해.”
“선배는요?”
“저 인간 따라가 봐야지. 기자들 다 있는 데서 저런 추태를 보였으니까 누군지는 확인해야 할 거 아냐?”
“뭐 하러 그래요. 쫓겨났는데.”
“단순히 인터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 거라 해도 저건 아니야. 한국 망신을 시킨 거라고.”
“그럼 제가 갈 테니까 선배가 인터뷰해요.”
“뭐? 네가?”
“여기자잖아요. 여자 화장실이라도 들어가면 어떻게 하려고요? 그리고 선배 영어밖에 못 하잖아요?”
자신의 질문지를 나영진 기자에게 건넨 공윤경 기자는 서둘러 쫓겨난 여기자를 쫓았다.
그사이 장내가 정리됐고.
강기태 감독과 송찬우, 박유성이 입장하면서 30여 분간 지체됐던 기자 회견이 시작됐다.
“최대한 많은 분들의 질문을 받을 예정입니다. 다만 중복되는 질문은 최대한 피해주세요.”
진행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거의 모든 기자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진행자가 가장 앞쪽에 있는 일본 기자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우미우리 신문의 오츠카 켄타입니다. 일단 한국의 우승을 축하합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힘들었던 팀과 가장 힘들었던 투수를 말씀해 주세요.”
일본 기자의 질문이 영어로 번역되어 다른 기자들에게 전해지자 이곳 저곳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의도가 다분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튜브 생방송을 통해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국내 야구팬들의 반응은 달랐다.
황인국 – 진짜 어딜가나 저런 기자들은 꼭 한 명씩 있네. ㅋㅋㅋ
유성펜735 – 우리 유성이 인터뷰 스킬도 만렙인 거 모르나?
일구일생 – 다른 선수도 아니고 갓유성한테 저런 뻔한 질문을 던지다니 실수했네.
유성펜284 – 예상 멘트 >> 이번 대회에 참가한 모든 팀들이 다 강했습니다. 어느 한 팀을 뽑을 수가 없네요.
유성펜9215 – 이거지 ㅋㅋㅋ
조영철 – 음성 지원 무엇? ㅋㅋㅋ
외쳐갓유성 – 그래서 박유성 팬들은 박유성 MVP 인터뷰할 때 딴짓하잖아요. 매번 똑같은 말만 해서. ㅋㅋㅋ
일본에서 열리는 국제 대회였고 일본이 결승전까지 올라왔던 만큼 립서비스나마 일본을 추켜세워 줄 만도 했지만.
박유성은 모두의 예상대로 모범적인 답을 늘어놓았다.
“프리미어 12 본선에 참가한 나라들은 그만한 실력을 갖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매 경기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상대했던 투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좋은 투수들이었고 좋은 투수들과 싸울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박유성의 대답이 전문 통역을 통해 전달되자 일본 기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뭐야? 제대로 통역을 한 거야?”
“지금 우리 신문사 기자가 동시통역 중인데 일본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어.”
“하아. 젠장할.”
“처음부터 그런 질문은 아니었어.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질 때 던졌어야 했다고.”
박유성의 입을 통해 일본 야구의 자존심을 지켜보려 했던 일본 기자들은 저마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사이 한국에서 온 기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야구가 좋다 서예림 기자입니다. 이번 프리미어 12까지 우승하면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는데요. 개인적인 소감과 대한민국 야구가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트리플 크라운이면 지난 LA 올림픽부터 포함인 거죠? 그때는 제가 고등학생 신분으로 출전해서 형들 덕분에 금메달을 받았는데 이번 대회때는 프로 선수로서 밥값은 한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우승 비결을 물어보셨는데요. 아마 여기 계신 분들도 다 아는 얘기일 겁니다. 감독님 이하 코치님들과 선수들, 그리고 뒤에서 대표팀을 케어해 준 많은 분들이 하나가 된 결과입니다.”
“박유성 선수의 인터뷰는 언제 들어도 참 한결같네요.”
“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미국 쪽 기자들은 주로 메이저리그 진출과 관련한 질문을 쏟아냈다.
“이미 포스팅 신청을 한 상태인데요. 특별히 가고 싶은 구단이 있습니까?”
“포스팅 시스템은 먼저 제게 관심이 있는 구단들의 오퍼를 받는 게 순서라고 알고 있습니다. 일단 정식으로 제안을 해온 구단이 있다면 그 구단들 중에서 제게 맞는 구단을 선택하겠습니다.”
“썬! 구단을 선택하는 첫 번째 조건이 뭡니까? 역시 돈입니까?”
“프로 선수들은 본래 보다 나은 조건을 위해 팀을 옮깁니다.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팀이 아니라 리그 자체를 옮기는 상황이다 보니까 여러 조건들을 잘 따져볼 생각입니다.”
“항간에는 벌써 다저스와 구두 계약이 완료됐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이 자리를 빌려 다저스의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님께 감사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소속 선수를 대신해 직접 저희 집까지 찾아와서 사과를 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대회를 치르는 중이라 제대로 인사를 못 했는데요. 질문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아직 다저스와 그 어떤 이야기도 오간 게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다저스의 호의는 잘 받았습니다. 특별한 선물도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저스의 이야기가 나와서 추가 질문합니다. 피터 페츠가 인터뷰를 통해 했던 발언이 문제가 됐다고 알고 있는데요. 해당 인터뷰를 들었을 때 썬의 기분은 어땠나요?”
“글쎄요. 프로 선수로서 실력에 대한 평가는 겸허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만 일방적인 비난이나 무시는 곤란하겠죠. 솔직히 개인적인 문제라고 여기고 넘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다저스 구단에서 진정 어린 사과를 해주어서 개인적으로 감동을 받았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에 담담히 대답하면서도 박유성은 다저스에 대한 호감을 숨기지 않았다.
피터 페츠의 인터뷰를 떠나서 메이저리그 최고의 구단 중 하나인 다저스가 직접 몸을 낮춰 찾아와 줬으니 마음이 기우는 게 당연했다.
“만약에 다저스보다 더 좋은 계약 조건을 제시하는 구단이 나온다면 어떻게 할 예정입니까?”
“다저스에 대한 고마움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것입니다. 계약은 에이전트와 충분히 상의한 이후에 결정할 생각입니다. 물론 그전에 오퍼부터 받아야겠지만요.”
“메이저리그에 가면 한국에서처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제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라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 대만 기자 하나가 다급히 손을 들었다.
“박유성 선수에게 질문하겠습니다. 대만인들은 아시아 최고의 타자는 박유성 선수이고 아시아 최고의 투수는 천신위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이 의견에 동의합니까?”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일본 기자들 쪽에서 거센 항의가 터져 나왔지만 대만 기자는 꿋꿋이 박유성만 바라봤다.
편파 판정으로 인해 대만의 결승 진출이 좌절된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고 싶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박유성은 이번에도 대만 기자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았다.
“저를 높이 평가해 준 대만분들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천신위 선수뿐만 아니라 오타니 쇼헤 선수, 마츠다 유이토 선수, 니키타 쇼우 선수 모두 아시아 최고의 투수라 불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급한 선수들 중에 한 명만 꼽아주세요.”
“그렇다면 저는 제 옆에 앉은 송찬우 선수를 꼽겠습니다. 비록 메이저리그에서 뛰지는 않지만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피칭은 최고였다고 생각합니다.”
갑작스러운 박유성의 호명에 송찬우가 다급히 자세를 바로 잡았다.
처음에 대한민국 기자들에게 형식적인 질문을 받은 이후로 박유성에게 질문이 쏟아져서 살짝 소외감이 들었는데 박유성이 이렇게 자신을 띄워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자 미국 기자 한 명이 손을 들어 송찬우에게 질문을 했다.
“쏭. 쏭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계획이 없는 건가요?”
“저는 제 가족을 사랑합니다. 제가 야구 선수가 되기까지 가족들이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와줬거든요. 그래서 제 가족들 옆에서 야구를 하고 싶습니다.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고 싶은 욕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보다 큰 건 아닙니다.”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해도 되지 않을까요?”
“박유성 선수가 쟁쟁한 선수들 사이에 제 이름을 포함시켜 줘서 지금 엄청 가슴이 뛰는데요. 저는 박유성 선수처럼 메이저리그에 가서도 충분히 통할 만한 실력을 갖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박유성 선수를 포함해 좋은 동료들을 만났고 그 덕분에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박유성 선수가 메이저리그로 떠나고 나면 아마 내년부터 진짜 제 실력을 평가받게 될 텐데요. 일단은 내년 시즌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나올 만한 질문이 거의 다 나오자 사회자가 슬쩍 일본 기자들 쪽을 바라봤다.
본래라면 기자 회견을 마쳐야 했지만.
일본 기자들에게 따로 받은 부탁을 잊지 않았다.
그러자 일본 극우 언론사 중 하나인 산자이 신문의 기자가 주먹 쥔 손을 들어 올렸다.
“산자이 신문의 난바 켄타로입니다. 결승전 첫 타석에서 손등에 공을 맞고 출루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후 귀루하는 동작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예민한 질문이 나오자 모든 기자들의 시선이 박유성에게 향했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 사이에서도 박유성이 헐리우드 액션으로 빈볼을 얻어낸 게 아니냐는 말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자 박유성이 웃으며 말했다.
“손등에 스친 건 사실이지만 심각하진 않았습니다. 솔직히 계속 타격을 이어가고 싶었습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좋은 투수들을 상대하는 건 타자로서 즐거운 일이니까요. 하지만 심판이 몸에 맞는 공을 선언했고 1루로 나가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가볍게 스치는 정도였다는 겁니까?”
“제가 마지막 순간에 몸을 피한 덕분에 천만다행히도 큰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그때 조금만 늦게 반응했다면 아마 이 자리에 앉아서 이렇게 인터뷰를 하지 못했을 겁니다.”
박유성의 말실수를 기다렸던 난바 켄타로가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까지처럼 적당히 웃어넘기면 도덕성의 문제로 끌고 가려고 했는데 원인 제공을 한 니키타 쇼우를 끌고 들어와 버리니 더는 따질 수가 없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기자가 다시 손을 들었다.
“지금 니키타 쇼우 선수가 고의로 빈볼을 던졌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니키타 쇼우 선수는 제구가 좋은 선수지만 이틀 전 등판으로 많이 지쳐 보였습니다. 체력적인 문제로 제구가 잘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처럼 제구가 불안정할 때는 타자의 몸 쪽 깊숙이 공을 던지는 건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