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368화
42. 도쿄 찍고 미국으로(1)
1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캐스터 장호영입니다. 오늘은 대한민국 대표팀 대 일본 대표팀, 일본 대표팀 대 대한민국 대표팀의 프리미어 12 결승전 경기를 생중계해 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오늘도 제 옆에는 이선철 해설위원께서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이선철입니다.
-계속되는 중계로 이선철 해설위원의 목이 많이 상해 있는데요. 오늘 컨디션은 어떻습니까?
-제 컨디션이 중요하겠습니까? 우리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의 컨디션이 더 중요하죠.
-일단 대한민국 대표팀은 조별 리그 예선을 포함해 7전 전승으로 결승전에 올라왔습니다. 반면 결승전 상대인 일본은 정말 극적으로 결승 티켓을 손에 넣었는데요.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기 때문에 대만전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겠지만 결과적으로 일본 대표팀이 대만 대표팀을 5점 차로 잡아내면서 대한민국 대표팀을 제외한 5개 팀이 2승 3패가 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 경우 승자승 원칙을 적용하기도 불가능한 상황인데요.
-성적이 동률인 팀이 두 팀일 경우에는 간단하게 승자승이 적용됩니다. TQB를 적용해도 마찬가지라서요.
-TQB, 팀 퀄리티 밸런스라 불리는 이 공식에 따르면 총 공격 이닝에서 총득점을 나눈 수를 총 수비 이닝에서 총실점으로 나눈 수로 빼게 되는데요. 이게 순위가 같은 팀끼리의 득실만 따지기 때문에 순위 동률이 두 팀일 경우 TQB나 승자승이 같은 의미가 됩니다.
-결국 순위 동률 팀 간의 한 경기만 놓고 따지게 되는 거죠.
-하지만 이번처럼 5개 팀이 순위 동률인 경우는 프리미어 12 역사상 처음 나왔는데요.
-일각에서는 프리미어 12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처럼 토너먼트 형식으로 대회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만 국제 대회 방식이 모두 똑같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경우의 수를 놓고 진출 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니까요.
-어쨌거나 5팀의 순위가 같아지면서 TQB를 따지게 됐는데 미국이 1위, 일본이 2위를 차지했습니다.
-예전이었다면 TQB 1위 팀인 미국이 결승전에 올라왔겠지만 대회 규칙이 바뀌면서 순위 결정전을 치르게 됐는데요.
-그렇습니다. 이번처럼 결승 진출 티켓을 두고 5팀이 물린 경우에 TQB 상위 두 팀이 타이브레이크 경기를 치르는 게 기본 규칙인데요. 그래서 어제 미국과 일본이 2위 결정전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미국을 7 대 3으로 꺾고 오늘 이 자리에 올라오게 됐습니다.
때마침 중계 화면으로 어제 경기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펼쳐졌다.
5분간의 하이라이트 영상에 모습이 찍힌 일본 투수는 모두 11명.
대만전에 선발로 나왔던 니키타 쇼우와 마무리 투수 야부타 슈타를 제외한 모든 투수들이 마운드를 밟았다.
-영상에서도 나옵니다만 어제 일본은 총력전을 펼쳤습니다.
-일본 대표팀 입장에서는 어렵게 올라온 순위 결정전인 만큼 결승전에 욕심이 났을 겁니다. 어쨌거나 프리미어 12는 일본에서 열리는 대회니까요.
-미국이 주도하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뒤처지지 않게 상금 규모를 무려 3천만 달러로 끌어올렸는데요. 우승 상금만 1,200만 달러에 달하는데 한화로 160억이 넘습니다.
-160억이라. 어마어마하네요.
-이미 프로 야구 협회에서 우승 상금 전액을 대표팀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에게 전액 지급하는 뜻을 밝혔는데요. 대한민국 대표팀이 이대로 전승 우승을 차지할 경우 신성 그룹을 비롯한 후원사에서 내건 포상금까지 더해 1인당 10억 상당의 포상금을 받을 거란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김혜성 선수를 비롯해 신인급 선수들은 자신들의 연봉보다 훨씬 더 많은 포상금을 받게 되는 셈인데요.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의 연봉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금액은 아닙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이야 1년에 수천만 달러씩 받아가니까요. 메이저리그 평균 연봉에 비하면 부업 정도인 게 사실일 겁니다.
-다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상금이 어떻게 책정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어쨌거나 세계 최대 규모의 상금이 걸린 오늘 경기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꼭 이겨줬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중계 화면이 바뀌고 마운드가 잡혔다.
일본의 선발 투수는 니키타 쇼우.
대만전 선발 이후 고작 이틀 만에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그래서일까.
연습구를 던지는 니키타 쇼우의 표정은 평소보다 굳어 있었다.
-국내 커뮤니티에서 일본의 선발 투수를 두고 새벽까지 많은 얘기들이 나돌았는데요. 많은 분들의 예상처럼 니키타 쇼우 선수가 나왔습니다.
-지난 대만과의 슈퍼 라운드 마지막 경기에 선발 등판해 3이닝을 버티지 못하고 물러났는데요. 오늘 일본 대표팀의 우승을 위해 다시 선발로 나섰습니다.
-대한민국 대표팀 입장에서 니키타 쇼우 선수는 임찬기 선수 같은 포지션일 텐데요.
-그렇습니다. 임찬기 선수와 니키타 쇼우 선수 모두 자국 내 최고의 좌완 투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에 맞서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발 투수는 송찬우 선수입니다.
-스타즈로 이적한 이후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 반열에 올라섰는데요. 개인적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한 게 아쉽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일본 대표팀에서도 송찬우 선수에 대한 경계령을 내린 상태인데요. 오늘 하루 동안 일본의 수많은 매체에서 송찬우 선수를 집중 보도했습니다.
-마운드 사정이 좋지 않은 일본 대표팀의 사정상 어떻게든 송찬우 선수를 빨리 끌어내려야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글쎄요. 그전에 박유성 선수부터 시작되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공격을 막는 게 먼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선철 해설위원의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중계 카메라가 타석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텅 비어 있던 왼쪽 타석으로 박유성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이제 대한민국의 선공으로 프리미어 12 결승전이 시작되겠습니다. 1회 초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두 타자는 1번 타자 박유성 선수. 이번 대회 6경기에 나와 16타수 15안타에 타율 0.938를 기록 중입니다.
-이제는 터무니없다는 표현도 물릴 정도로 이번 대회에서도 엄청난 활약을 펼치고 있는데요. 지난 일본과의 예선전에서도 일본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오타니 쇼헤 선수를 상대로 홈런을 때려낸 바 있습니다.
박유성이 타석에 들어서자 6만여 명의 관중이 들어찬 도쿄 돔이 고요해졌다.
일본을 만날 때마다 사고를 친 일본 킬러, 박유성의 첫 타석에 우승의 향방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후우…….”
니키타 쇼우도 박유성을 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 맞붙었을 때만 하더라도 애송이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달랐다.
대한민국 프로 야구에서 3년 연속 7할이 넘는 타율과 타격 8관왕을 쓸어 담은 괴물로 성장해 버린 박유성이 이제는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다.
그런 니키타 쇼우의 부담감을 읽은 포수 구와하라 세이지가 초구에 바깥쪽 사인을 냈다.
-니키타 쇼우 선수가 초구를 던집니다. 초구는 볼. 스트라이크 존을 크게 벗어납니다.
-방금 공은 손에서 빠진 걸까요? 무슨 의도로 던진 공인지 모르겠네요.
구와하라 세이지의 요구보다 공이 빠지자 이선철 해설위원은 헛웃음을 흘렸고.
일본 중계석에서도 쓴소리가 터져 나왔다.
-니키타 쇼우. 승부를 해야 합니다. 박유성을 상대로 도망쳐서는 안 돼요!
-벤치에서 거르라는 사인이 나온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죠. 니키타 쇼우 선수가 조금 더 집중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구와하라 세이지도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제스처를 내보이며 다시 한번 바깥쪽으로 미트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니키타 쇼우의 손끝을 빠져나간 공은 이번에도 스트라이크 존을 크게 벗어났다.
“뭐야?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아나바 이쓰노리 감독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하마노 나오키 수석 코치가 변명하듯 말을 받았다.
“불펜에서 몸을 풀 때는 좋았는데…… 조금 긴장한 것 같습니다.”
“긴장? 프로 1년 차 투수도 아니고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녀석이 긴장해서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한다는 게 말이 돼?”
“이렇게 된 거 박유성을 거르는 게 어떨까요?”
“지금 6만 명이 지켜보는 결승전에서 그런 소리가 나와?”
아나바 이쓰노리 감독이 하마노 나오키 수석 코치를 노려봤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으리라 마음을 굳혀서일까.
오늘 경기만큼은 실력 대 실력으로 제대로 대한민국 대표팀을 꺾고 싶었다.
하지만 3구째 몸 쪽으로 날아든 공마저 낮게 빠지자 아나바 이쓰노리 감독도 승부를 고집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어설프게 스트라이크를 던지면 얻어맞을 겁니다. 그냥 거르시죠.”
“후우…….”
“결승전이라 점수를 많이 내줄 수도 없는 상황이잖습니까.”
평소였다면 박유성에게 두 점쯤은 줄 거라고 계산하고 경기를 구상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자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고 레벨의 야구 대회에서 결승전에 올랐는데 시작부터 허무하게 점수를 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니키타 쇼우가 어떻게든 박유성을 범타로 돌려세웠다면 참 좋았겠지만.
3볼까지 몰린 상황에서 무리하게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하다 장타를 얻어맞느니 볼넷을 주는 편이 나아 보였다.
“후우……. 그렇게 해.”
아나바 이쓰노리 감독의 허락을 얻은 하마노 나오키 수석 코치가 재빨리 사인을 냈다.
그러자 포수 구와하라 세이지가 박유성의 어깨 옆으로 미트를 들어 올렸다.
‘기왕 볼넷을 주는 거, 박유성의 기라도 꺾어놓자고.’
니키타 쇼우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번 대회에서 9할을 치고 있는 박유성을 상대로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
그렇다면 최소한의 투지라도 보여주고 싶었다.
“후우…….”
니키타 쇼우가 뜸을 들이자 박유성은 본능적으로 위협구가 들어올 거라 예상했다.
그래서 니키타 쇼우의 손끝에서 공이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일부러 상체를 세워 타격을 포기했는데.
따악!
박유성의 예상보다 더 붙어 날아든 공이 박유성의 손목 위쪽에 부딪혔다.
“크아악!”
박유성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자 3루 쪽 더그아웃에서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그러자 그라운드에 나가 있던 야수들도 마운드를 향해 몰려들었다.
-아, 지금 박유성 선수가 공에 맞은 것 같은데요.
-지금 방망이 손잡이 부분에 맞은 건지 손에 맞은 건지 정확하게 확인이 되지 않고 있는데요. 박유성 선수. 큰 부상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경기를 지켜보던 전 세계 수많은 야구 팬들의 입에서 욕설이 쏟아지던 그때.
대한민국 대표팀 의료진이 다급히 박유성에게 다가가 상황을 파악했다.
“박유성 선수. 손에 맞았어요?”
“아뇨. 손 바로 위에 맞았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글러브 한번 벗어봐요.”
사구의 공포에서 벗어난 박유성이 괜찮다고 말했지만 의료진은 장갑까지 벗겨가며 박유성의 손 상태를 확인했다.
“여기 좀 부은 거 같은데요?”
“조금 긁혔나요?”
“오늘 경기 계속 뛸 수 있겠어요?”
“뛰어야죠. 결승전인데.”
“다른 데 불편한 곳은 없어요?”
“네. 아까는 진짜 손에 맞는 줄 알고 놀랐는데 안 맞았으니까 다행이죠.”
만에 하나 불안한 예감을 떨쳐내고 타격 자세를 취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배트 손잡이 부분이 아니라 얼굴에 공을 맞았을 것이다.
만약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둔 1회차 선수가 이런 꼴을 당했다면 방망이째로 마운드로 달려갔겠지만.
3회차인 박유성은 흥분 대신 침착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당장에라도 니키타 쇼우를 향해 달려들 것 같은 선수들을 달랬다.
“괜찮으니까 들어가요.”
박유성은 구심에게도 방망이를 맞은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의료진처럼 박유성의 살짝 부어오른 손 상태를 확인한 구심은 곧바로 몸에 맞는 공을 선언했다.
-아, 지금 구심이 박유성 선수가 공에 맞았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지금 리플레이 화면상으로도 손등 바로 윗부분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게 보였으니까요. 박유성 선수가 괜찮다고 해도 규정대로 판정을 내리는 게 당연합니다.
멋쩍은 얼굴로 1루에 나간 박유성이 마운드 쪽을 바라봤다.
프로 야구에서처럼 투수가 모자를 벗어 사과하길 기대한 건 아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니키타 쇼우라면 실투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내비칠 거라 여겼다.
하지만 박유성이 일부러 엄살을 부려 일을 키웠다고 생각한 니키타 쇼우는 박유성을 향해 짜증을 내뱉었다.
“박유성. 메이저리그가 아니라 헐리웃에 가려던 거야?”
마치 들으라는 듯이 영어로 지껄이는 니키타 쇼우를 보며 박유성이 씩 웃었다.
“이래서 일본 애들은 좋아할 수가 없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