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367화 (367/412)

타자 인생 3회차! 367화

41. 슈퍼라운드(11)

미국 ESPM의 간판 스포츠 프로그램, 월드 베이스볼은 방송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해 가며 편파 판정 논란을 보도했다.

“먼저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심판은 기계가 아닙니다. 사람이죠. 그래서 누구나 실수를 할 수는 있습니다.”

“맞아요. 한두 번 실수한 것으로 편파 판정이라고 몰아붙이는 건 잔인한 짓이에요. 심판 역시 초긴장 상태에서 경기를 지켜보다 보니까 자신도 모르게 판단의 혼돈이 올 때가 있거든요.”

“스트라이크 판정도 사실 예민한 부분입니다. 마이너리그에서 도입해 사용하고 있는 로봇 심판이라면 스트라이크와 볼을 칼같이 판단하겠지만 인간 심판은 사람마다 스트라이크를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거든요.”

“어떤 심판은 몸 쪽 공에 인색하고 바깥쪽 공을 잘 잡아주지만 어떤 심판은 반대로 몸 쪽 공에 후하기도 하죠. 높은 코스의 공을 잘 잡아주는 심판이 있는가 하면 낮은 코스에 유독 손이 올라가는 심판도 있고요.”

“마이너리그에서 충분히 효용성을 인정받은 로봇 심판이 메이저리그에 도입되지 않은 이유도 그래서죠. 야구란 스포츠는 결국 인간들이 하는 겁니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심판 판정 역시 야구의 일부분이라 말하는 것도 그래서고요. 하지만 이번에는 도를 넘었습니다.”

“지금 블레이튼과 앤디가 울분을 토해내고 있는데요. 정확하게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요?”

사회자 애니 카브너가 블레이튼 커쇼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블레이튼 커쇼가 상기된 얼굴로 대답했다.

“8회부터 잘못됐다고 봐야겠죠. 8회 스즈키 지로의 체크 스윙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것부터가 잘못이었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그때 3루심이 제대로 판단을 했다면 8회 말 일본의 공격은 끝났을 겁니다.”

“6 대 2인 상황에서 9회 초에 대만 대표팀이 점수를 뽑아냈다면, 어쩌면 대만이 경기를 잡아냈을지도 몰라요.”

블레이튼 커쇼에 이어 앤디 존슨도 목소리를 높였다.

만에 하나 대만이 경기를 뒤집었다면 미국의 타이 브레이크 기회 역사 날아가는 상황이었지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과 함께 야구를 대표하는 양대 국제 대회로 자리를 잡은 프리미어 12에서 노골적인 편파 판정이 나왔다는 사실을 참지 못했다.

“스즈키 지로의 스윙이 인정되지 않으면서 스즈키 지로는 결국 볼넷을 얻어냈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점수 차이를 5점으로 벌렸죠.”

“이 5점이 큰 게 일본이 타이브레이크 전에 올라올 수 있는 유일한 경우의 수가 대만을 상대로 5점 차 이상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만약 8회 말에 5점 차이를 만들지 못했다면 설사 대만을 잡더라도 TQB상 3위로 밀릴 테고 그럼 미국과 도미니카 공화국이 타이브레이크 경기를 치르게 됐을 겁니다.”

“일각에서는 8회 말 추가 득점을 하지 못했다면 일본이 고의로 실점을 했을 거라는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일본 입장에서 4점 차 이하로 대만을 이기는 건 패배나 다름없으니까요. 억지로 동점까지 만들어놓고 9회 말 공격에서 다득점을 노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요.”

“어쨌거나 일본은 스즈키 지로의 밀어내기 볼넷으로 7번째 득점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2점을 추가했죠. 9 대 2로 앞선 상황에서 9회 초 대만의 마지막 공격이 이어졌는데요. 대체 9회 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끔찍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정말 끔찍했어요. 정말로.”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레전드 좌완 투수인 블레이튼 커쇼와 앤디 존슨이 한목소리로 고개를 가로저을 만큼 9회 초의 상황은 충격적이었다.

7점 차로 앞선 상황에서 일본 대표팀의 아나바 이쓰노리 감독은 확실한 승리를 위해 마무리 투수, 야부타 슈타를 투입했다.

야부타 슈타가 미리 몸을 풀고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이 역사적인 승리의 마침표는 팀의 마무리 투수가 찍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야부타 슈타가 순식간에 두 개의 아웃 카운트를 잡아낼 때까지만 해도 모든 게 아나바 이쓰노리 감독의 계획대로 되는 듯했다.

하지만 야부타 슈타가 8번 타자 왕즈하오를 맞히면서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몸 쪽으로 붙여 넣은 포크볼이 제구가 되지 않으면서 왕즈하오의 무릎에 맞은 건데 왕즈하오는 그 자리에서 괴성을 내지르며 쓰러진 뒤에 들것에 실려 나갔다.

보통 이 정도 상황이면 투수의 멘탈 보호를 위해 교체를 해주는 편이었지만.

아나비 이쓰노리 감독은 그대로 야부타 슈타를 밀어붙였고.

방금 전 몸에 맞는 공을 떨쳐내지 못한 야부타 슈타의 빠른 공이 한복판으로 몰리면서 극적인 투런 홈런이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

7점 차이의 점수가 5점 차이로 좁혀진 것에 불과했지만.

홈런을 때려낸 가오진더는 마치 프리미어 12 우승이라도 차지한 것처럼 양팔을 뻗어들며 환호했고.

도쿄 돔은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이후 타석에 들어선 1번 타자 장즈샹까지 야부타 슈타의 포크 볼을 걷어 올려 안타를 때려내자 일본 대표팀 더그아웃에 비상이 걸렸다.

“벤치는?”

“이제 막 오노가 뛰어갔습니다.”

“얼마나 걸리는 거야?”

“일단 한두 타자는 더 상대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일 있을 미국과의 타이브레이크 경기를 위해 불펜을 아끼려 했던 아나바 이쓰노리 감독이 서둘러 불펜을 가동하는 사이 야부타 슈타는 계속해서 주자를 쌓아 나갔다.

여기서 1점이라도 더 내주면 일본의 결승 진출 희망이 사라지는 상황이라 자신 있게 공을 던지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2번 타자 천용지와 3번 타자 니즈셩이 볼넷으로 출루하면서 2사 만루 상황이 만들어지자 퇴장당한 왕 다이강 감독을 대신해 벤치를 지키던 대만의 장 멍츠 수석 코치는 내심 역전까지 바라봤다.

“한 점이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점만 더 뽑아내면 돼!”

이 5점 차 리드만 깨면 일본 대표팀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추가 실점 전략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동점을 만든 다음에 역전까지 해버린다면 대만 대표팀이 3승으로 프리미어 12 결승전에 올라가게 될지도 몰랐다.

심지어 바뀐 투수 오노 마사토마저 볼 2개를 연거푸 던지자 장 멍츠 수석 코치는 기다리라는 사인을 냈다.

“섣불리 건드릴 필요 없어. 쫓기는 건 일본이라고.”

오노 마사토의 손끝을 빠져나간 공이 바깥쪽 낮게 날아들자 장 멍츠 수석 코치가 박수까지 치며 좋아했다.

그런데 갑자기 구심이 굽혔던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다.

“뭐? 이게 스트라이크라고?”

장 멍츠 수석 코치가 더그아웃 앞까지 나와 강하게 항의했지만 구심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히 하지 않으면 왕 다이강 감독처럼 퇴장시키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코치님. 그냥 넘어가요. 아슬아슬했어요.”

타석에 선 4번 타자 린즈시엔도 피식 웃고 말았다.

구와하라 세이지가 막판에 절묘하게 미트를 들어 올린 것에 구심이 속았을 수도 있다고 이해했다.

하지만 뒤이어 날아든 바깥쪽으로 빠진 포심 패스트 볼마저 스트라이크 콜을 받자 린즈시엔이 폭발했다.

“이게 왜 스트라이크야? 이게 어떻게 스트라이크냐고!”

화가 난 린즈시엔이 중국어로 강하게 쏘아붙이자 구심은 다시 린즈시엔에게 퇴장을 선언했고.

더그아웃을 뛰쳐나온 장 멍츠 수석 코치도 항의를 하다 함께 퇴장이 됐다.

그리고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경기가 재개됐는데 오노 마사토가 바깥쪽으로 뺀 빠른 공을 구심이 일관성 있게 잡아버리면서 경기는 9 대 4, 일본 대표팀의 승리로 끝이 났다.

우여곡절 끝에 5점 차 승리를 거둔 일본은 도미니카 공화국을 밀어내고 미국이 기다리고 있는 2위 결정전(타이브레이크)에 진출했다.

반면 억울한 판정으로 결승에 진출할 가능성을 날려 버린 도미니카 공화국과 대만은 국제 스포츠 중재재판소에 제소하겠다며 강하게 반발하는 중이었다.

프리미어 12를 공동 주관하는 일본 야구 기구의 사이토 아츠키 커미셔너가 직접 나서서 유감을 표명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일본의 승리를 누구보다 바랐던 미국마저 비난을 쏟아낼 만큼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이러다 내일 경기를 치를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게요. 막말로 미국에서 보이콧하면 경기 치를 상대가 없잖아요?”

경기를 지켜보던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단 분위기도 뒤숭숭해졌다.

이번 프리미어 12까지 석권해서 국제 대회 그랜드 슬램(올림픽,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프리미어 12 우승)을 달성할 계획이었는데 판정 논란이 터졌으니 설사 우승을 차지한다 해도 입맛이 씁쓸할 것 같았다.

“그런데 미국은 왜 저렇게 난리인 거예요? 솔직히 대만이 이겼으면 미국도 탈락이었잖아요?”

“미국은 그래도 야구 종주국이잖아. 지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도 논란 만들지 않겠다고 중립 심판들만 배치했는데 하필 일본전에서 편파 판정이 나왔으니까 예민할 만하지.”

“게다가 하필 심판이 호주 팀이었잖아.”

“일본하고 호주하고 뭐 있어요?”

“나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커뮤니티 글들 보면 그러더라. 호주 심판이 대놓고 일본 편들어준 거라고.”

“미국도 이번 기회에 결승전 올라오고 싶을 거예요. 우리한테 지더라도 준우승이 낫지 2승 3패로 결승 탈락은 모양 빠지잖아요.”

“저 말도 일리가 있는 게 결승전 심판은 정해졌지만 타이브레이크 경기 심판은 아직 미정이거든?”

“3, 4위전 대신 치러지는 경기니까 우리 나라 심판 아니에요?”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일본 언론에서 난리더라. 우리나라 심판은 안 된다고.”

“하긴. 괜히 심판 봤다가 우리 때문에 졌다는 말 나오면 골치 아프긴 하겠네요.”

미국 언론에서조차 보이콧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대회가 중단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컸지만.

오심 사고를 친 호주 심판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 사과의 뜻을 전달하고 프리미어 12 조직위원회에서 도미니카 공화국과 대만에 합당한 보상을 하겠다고 약속하면서 가까스로 사태가 봉합됐다.

그리고 다음 날 열린 2위 결정전에서 일본 대표팀은 미국 대표팀을 7 대 3으로 꺾고 천신만고 끝에 결승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힘겹게 결승전에 오른 일본 대표팀을 향해 일본 야구팬들은 찬사보다 불만을 쏟아냈다.

└아나바 이쓰노리 이 멍청아! 당장 사퇴해! (RQ32W1E45T)

└오타니 쇼헤로도 모자라 마츠다 유이토에 니시카와 가즈키까지 써버리면 결승전은 누굴 내보내겠다는 거야? (N32E5W72FG)

└우리집 고양이에게 감독을 맡겼어도 아나바보다는 잘했을걸? (M83W0K3Q6T)

└다들 침착해. 오타니 쇼헤는 나이 때문에 애당초 긴 이닝을 맡길 수가 없었고 니시카와 가즈키로는 미국 대표팀을 막을 수가 없었다고. (IEJ534A6D2)

└그렇다면 처음부터 마츠다 유이토를 투입하고 오타니 쇼헤를 결승으로 돌렸어야지. 왜 오타니를 내보낸 거야? (RQ32W1E45T)

└미국 타자들에 대한 노하우는 오타니 쪽이 조금 더 위잖아. 아나바 감독 입장에서도 어쩔 수가 없었을 거라고. (IEJ534A6D2)

└여기서 아나바 이쓰노리를 두둔하는 인간들은 전부 춍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할복을 시켜도 시원찮은 인간의 편을 들 리가 없다고! (DK351KAB55)

└제발 야구는 야구로 볼 순 없을까? 언제까지 추잡하게 굴 거야? (K32NFT2G45)

└추잡하다고 여기는 걸 보니 춍이구나? (DK351KAB55)

└제발 입 닥쳐. 멍청아. (P145EI6D7K)

└그래서? 내일 결승전 선발은 대체 누구야? (K92W5I3R6K)

└아직 발표되지 않았어. 어쩌면 니키타 쇼우가 다시 나올지도 몰라. (O1Q5K7W88K)

└뭐? 니키타 쇼우? 제정신이야? (P62O4QK1F7)

└니키타 쇼우는 대만전에서 40구만 던졌어. 힘들겠지만 국내 투수들을 올리느니 메이저리거인 니키타 쇼우에게 기대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 (K32NFT2G45)

└하아. 이럴거면 그냥 슈퍼 라운드에서 탈락하는 편이 나았어. (L83K2JW7K9)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 욕을 얻어먹으며 올라왔는데 선발이 없다니. 이래서는 한국만 좋은 일 시킨 거잖아. (DFS231AD23)

└이번 프리미어 12 결승전은 역대 최악의 결승전이 될 거야. 확실해. (P6Q2O5W6K7)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어. (P145EI6D7K)

여론이 들끓자 아나바 이쓰노리 감독은 이번 프리미어 12를 끝으로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대표팀 감독으로서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대표팀을 꺾고 우승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마땅한 선발 투수를 내세우지 못한 일본 대표팀에 대한 기대는 지난 한일전보다 더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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