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366화
41. 슈퍼라운드(10)
4
-대만 대표팀의 에이스, 천신위 선수가 마운드를 내려갑니다.
-지금 도쿄 돔의 모든 관중들이 일어나서 천신위 선수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있는데요. 천신위 선수. 오늘 경기에서 정말 눈부신 호투를 보여줬습니다.
-이제 관건은 7회 등판 여부가 될 텐데요.
-투구 수가 적지 않은 상황이지만 오늘 경기를 잡아내기만 한다면 결승에 진출할 수 있으니까요. 대만 대표팀 벤치도 고민이 될 것 같습니다.
6회까지 천신위의 투구 수는 총 97구.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전부 소환한 일본 대표팀 타선을 상대로 장타와 볼넷 없이 단타만 2개 허용하며 완벽에 가까운 피칭을 선보였다.
대만 중계석은 물론이고 일본 중계석에서조차 천신위가 아시아 최고의 투수라는 탄식에 가까운 찬사가 흘러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대만 대표팀의 왕 다이강 감독은 천신위를 한 이닝 더 끌고 갈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쉽기만 했다.
7회 말 일본 대표팀의 공격은 3번 타자 곤도 타쿠야부터 시작됐다.
매리너스에서 뛰고 있는 곤도 타쿠야는 일본 야구의 간판급 타자.
비록 올스타 선수로 성장한 송현민에게 밀리긴 했지만 여전히 매리너스 클린업 타선의 한 축을 맡을 만큼 한 방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천신위가 이번 이닝까지만 막아줬다면 좋았을 텐데.”
왕 다이강 감독이 푸념하듯 주절거렸다. 그러자 장멍츠 수석 코치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올해 투구 이닝이 많았잖습니까.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대회에 합류했으니 바꾸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시즌 천신위는 195이닝을 소화하며 16승 6패 2.81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였던 2028 시즌을 뛰어넘었다.
덕분에 필리스도 와일드 카드 순위에 이름을 올리며 가을 잔치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지만
시즌 막판에 연패의 늪에 빠지면서 포스트 시즌 진출을 내년으로 미루게 됐다.
그런 상황에서 곧바로 프리미어 12에 참가하게 됐으니 천신위도 체력적인 부담이 컸다.
앞선 미국 전은 미국 대표팀 타자들이 적극적으로 덤벼준 덕분에 이닝을 길게 끌고 갈 수 있었지만.
천신위의 약점이 체력이라는 걸 간파한 일본 대표팀은 안타를 못 치더라도 투구 수를 늘리기 위해 악착같이 물고 늘어졌다.
“하아…….”
왕 다이강 감독의 시선이 전광판으로 향했다.
현재 스코어는 2 대 0.
일본을 상대로 두 점을 앞서 있는 상황이지만 자신감보다는 불안한 마음이 더 컸다.
니키타 쇼우를 상대로 3회 두 점을 쥐어짜 낸 것 이후로 고작 2안타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7회가 부담스러웠다.
3번 타자 곤도 타쿠야부터 시작해 4번 타자 야마카와 겐스케, 그리고 5번 타자 도노사키 료마에 이르기까지 한 방을 갖춘 타자들이 이를 가는 중이었다.
클린업 트리오만, 아니 야마카와 겐스케 까지만이라도 천신위가 처리해 준다면 참 좋았겠지만.
5회부터 힘이 빠지는 게 눈에 보인 천신위를 무리해서 끌고 갈 수가 없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천홍위가 잘해줄 겁니다.”
파이어리츠 더블 에이에서 뛰고 있는 천홍위는 최고 구속 156㎞/h를 던지는 파이어볼러.
천신위처럼 하드 싱커를 던지지는 못하지만 대신 고속 슬라이더와 스플리터를 구사하는 투수였다.
지난가을, 메이저리그 콜업이 유력하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을 만큼 실력이 급성장했으니 천신위를 대신해 남은 3이닝도 충분히 잘 막아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빠르기만 한 천홍위의 공으로는 경험 많은 일본 대표팀 타자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따악!
선두 타자 곤도 타쿠야가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를 치고 나간 데 이어 야마카와 겐스케가 볼넷을 골라내자 대만 벤치에 비상이 걸렸다.
“천홍위로는 안 돼. 투수를 바꿔야 해.”
“아직 몸이 덜 풀려서 그렇습니다. 조금만 더 맡겨 보시죠.”
“그러다 경기가 뒤집히면? 그때는 어떻게 하려고?”
왕 다이강 감독은 다급히 투수 교체를 주문했다.
그러나 천신위만 믿고 있던 대만 대표팀 불펜에는 몸을 풀고 있던 투수가 없었고.
뤄즈셩이 구원 등판했을 때는 경기가 3 대 2로 뒤집혀 있었다.
“와, 이 경기가 이렇게 된다고?”
“이 정도면 주작급 아니에요?”
슬그머니 박유성의 방으로 몰려든 선수들은 저마다 혀를 내둘렀다.
설마하니 천홍위가 이런 식으로 불을 지를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박유성은 천신위가 내려갈 때부터 일본 대표팀의 반격을 예상하고 있었다.
“경기 초반에 실점한 걸 빼면 사실 분위기는 반반이었어요. 대만이 분위기를 주도하지 못했잖아요.”
“그건 일본도 마찬가지 아니야?”
“일본은 애당초 목표가 하나였어요. 천신위를 빨리 끌어내리는 것. 일본은 처음부터 경기 후반을 봤어요. 반대로 대만은 천신위가 있을 때 최대한 많은 점수를 뽑아내야 했고요.”
“이렇게 되면 누가 올라오는 거야?”
“일단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일본과 대만, 둘 다 탈락이에요. TQB에 따라 미국과 도미니카 공화국이 타이브레이크 경기를 치르게 되고요.”
“대만은 애당초 이기는 것 이외에 결승 진출 가능성이 없지 않았어?”
“대만은 득실이 같은데 수비 이닝이 1이닝 적은 게 컸어요. 그래서 TQB로는 전체 4위예요.”
그때 자막으로 TQB를 감안한 순위표가 올라왔다.
1위 미국 0.0833
2위 도미니카 공화국 0.0768
3위 푸에르토리코 –0.0005
4위 일본 –0.0168
5위 대만 –0.0539
“4위가 아니라 5위인데?”
“일본에게 밀려서 5위로 내려간 거잖아요. 암튼 대만은 결승 진출 힘들어 보여요.”
“그럼 남은 건 미국과 도미니카 공화국, 그리고 일본이네.”
“푸에르토리코는 왜 빼는 거야?”
“멍청아. 푸에르토리코는 경기가 다 끝났잖아. 일본은 앞으로 몇 점을 더 뽑아내느냐에 따라 TQB를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 변수인 거지.”
“와, 뭐가 이렇게 복잡해?”
이때다 싶어 싸워대는 민병규와 박준수를 뒤로하고 송현민이 나직이 물었다.
“이대로 가면 미국은 타이브레이크 확정이고. 누가 올라왔음 좋겠냐?”
“기왕이면 일본이 낫지 않겠어요? 미국하고 도미니카 공화국은 결과가 뻔하잖아요.”
“그렇지? 도미니카 공화국은 타이브레이크에서 미국 잡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모양이지만 슈퍼 라운드 들어와서 미국과 푸에르토리코한테 다 졌잖아.”
“힘대힘으로 맞붙으면 도미니카 공화국은 승산이 없어요. 아무래도 투수력이 약하니까요.”
일본 대표팀이 대만 대표팀을 꺾을 경우.
2승 3패 팀이 4팀이 나오면서 타이브레이크 경기가 확정된다.
결승전 전날에 치르는 경기인 만큼 서로 치열하게 물어뜯고 싸워야 결승에 선착한 대한민국 대표팀에게 유리한데 미국과 도미니카 공화국이라면 미국이 어렵지 않게 승리를 거둘 것 같았다.
반면 일본이 올라오면 이야기는 달랐다.
“미국이 일본하고 붙으면 장담 못 하겠지?”
“일본은 미국을 상대하는 요령을 아니까요. 미국 대표팀이 아시아 팀 상대로 전패 중이기도 하고요.”
조별 리그를 전승으로 올라온 미국 대표팀은 슈퍼 라운드에서 대한민국 대표팀과 대만 대표팀, 일본 대표팀에게 전패를 당했다.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결승에 올라간 대한민국 대표팀은 예외로 치더라도.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 여겼던 대만 대표팀에게 1 대 0으로 진 것만 보더라도 아시아 야구에 대한 공부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된 거 그냥 일본이 올라와라.”
“그게 낫죠. 만약에 일본이 올라오면 타이브레이크 결정전도 볼 만할 거예요.”
박유성과 송현민의 바람대로 일본 대표팀은 7회에 두 점을 추가하며 TQB 순위를 3위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이어진 8회 말.
6 대 2.
4점 차로 벌어진 2사 주자 만루 상황에서 1번 타자 스즈키 지로가 타석에 들어서자 도쿄 돔의 모든 관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8회 말의 마지막 아웃 카운트가 남은 상황입니다. 만약에 이번 타석에서 점수를 뽑아내지 못한다면, 일본 대표팀의 결승 진출은 사실상 불가능해집니다.
-물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다만 9회 초에 대만 대표팀이 최소 동점 이상을 만들어줘야 9회 말 공격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5점 이상의 점수를 뽑아내야 하는데요. 쉽지 않은 일이겠죠.
-그래도 아직 경기가 끝난 건 아닙니다. 대한민국에 박유성이 있다면 일본에는 스즈키 지로가 있으니까요.
-스즈키 지로. 이번 대회 4할에 가까운 맹타를 휘두르고 있습니다. 오늘 경기도 천신위를 상대로 안타를 때려냈는데요. 이번 타석에서 다시 한번 시원한 안타를 때려줬으면 좋겠습니다.
-밀어내기 볼넷도 좋습니다. 펑융지 선수가 흔들리고 있으니까요. 나쁜 공을 건드릴 필요가 없어요.
-펑융지. 길게 호흡을 고른 뒤 투구에 들어갑니다. 초구는 볼. 공이 살짝 빠졌습니다.
-지금 앞선 니시모토 준야 선수 타석부터 5연속 볼인데요. 스즈키 지로. 잘 골라냈습니다.
9회에 구원 등판한 펑융지의 제구가 흔들리자 일본 대표팀에서는 기다리라는 사인을 냈다.
2사 만루 상황인 만큼 펑융지가 무리하게 승부를 걸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대만 리그에서 특급 불펜 투수로 통하는 펑융지도 프리미어 12를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2구는 스트라이크. 몸쪽 꽉 찬 공이 들어옵니다.
-스즈키 지로 선수. 저건 쳤어야죠.
-거의 한복판으로 들어오는 빠른 공이었는데요. 스즈키 지로 선수가 전혀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6구만에 스트라이크를 잡아낸 펑융지는 바깥쪽으로 예리하게 슬라이더를 찔러 넣었고.
따악.
그 공을 스즈키 지로가 걷어내면서 볼카운트가 뒤집혔다.
원 볼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대만 배터리의 선택은 몸쪽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좌타자들이 가장 잘 속는 구종이었지만 스즈키 지로가 가까스로 배트를 멈추면서 볼카운트가 균형을 맞췄다.
“저거 돌아간 거 아냐?”
“돌아간 거 같은데?”
포수 가오진더의 요청에 3루심이 양팔을 벌렸지만.
느린 화면으로 본 장면은 달랐다.
“에이, 돌아갔네.”
“3루심 뭐 하냐? 또 편파 판정이야?”
왕 다이강 감독이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지만 애석하게도 비디오 판독 기회를 전부 써버린 탓에 더는 따질 수가 없었다.
이닝을 끝낼 기회를 날린 펑융지의 5구는 바깥쪽으로 빠졌고.
6구째 몸쪽으로 빠른 공을 붙여 넣었지만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지 못하면서 일본 대표팀이 밀어내기로 다시 한 점을 추가하게 됐다.
“볼이라고? 이게 볼이라고?”
참다못한 왕 다이강 감독이 구심에게 덤벼들었지만 결과는 번복되지 않았다.
오히려 구심은 그 자리에서 왕 다이강 감독에게 퇴장을 명령했고.
경기는 일본의 9 대 4, 진땀 승리로 끝이 났다.
“오늘 경기는 진짜 구심이 다 했다. 다 했어.”
“몸쪽 공을 잘 안 잡아주긴 했잖아요.”
“그랬으면 9회 초에도 똑같이 안 잡아줘야지. 일본은 잡아주고 대만은 안 잡아주는 게 말이 돼?”
스즈키 지로의 밀어내기 득점 이후 2번 타자 모리타니 게이토의 2타점 적시타로 7점 차이까지 달아났을 때만 해도 심판의 편파 판정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스즈키 지로의 체크 스윙을 놓친 건 흔히 있는 실수였고.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한 몸쪽 공도 포수 가오진더가 삼진을 확신하고 일찍 몸을 빼면서 판정이 불리해진 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어진 9회 초 공격에서 연이어 나온 편파 판정은 전 세계 야구팬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