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365화 (365/412)

타자 인생 3회차! 365화

41. 슈퍼라운드(9)

3

박유성은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 일행이 집에 찾아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전달받았다.

“다저스 사장이요?”

“그렇다니까? 어제 급하게 서울 온다는 연락을 받아서 아까 점심때 너희 부모님하고 만났대.”

“그런데 왜 저한테 연락을 안 해준 거예요?”

“다저스 쪽에서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나 봐. 개인적으로 사과하고 싶다고 해서. 그리고 어제 미국하고 경기했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제가 없는 저희 집에 와서 사과를 하고 가는 게 말이 돼요?”

박유성은 순간 어이가 없었다. 피터 페츠 일로 다저스가 조급해진 건 알겠지만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 반칙 같았다.

하지만 먼저 메이저리그를 겪은 송현민의 생각은 달랐다.

“유성아. 다저스가 그만큼 너한테 진심인 거야.”

“이게요?”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꼭 지켜야 할 선수가 있으면 선수 가족부터 챙겨. 단순히 구단 직원 시켜서 생일 챙기는 수준을 넘어서서 딥하게 들어간다고.”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잖아요.”

“그래. 나도 트윈스에 있을 땐 엄청 챙겨줬어. 그래서 더 막판에 지랄한 건지도 모르고. 너도 스타즈에서 특별대우 받고 있잖아?”

“아니라는 말은 못 하죠.”

“그러니까 그런 느낌으로 이해하는 게 좋다는 거야. 물론 우리 사고방식상 무턱대고 집에 찾아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을 수는 있지만 다저스가 진짜로 생색을 내려 했다면 미국 언론에 먼저 터뜨렸을걸?”

“그야 뭐…….”

“게다가 다저스 사장이 직접 왔어. 다저스 사장이 누군 줄 알지?”

“앤드류 프라이드맨이잖아요.”

“그래. 그 유명한 양반이 피터 페츠가 사고 치기가 무섭게 바로 수습하러 온 거라고. 하아. 이거 말하다 보니까 현타 오네.”

“갑자기 웬 현타요?”

“어제 그 난리를 쳤는데 우리 사장은 나한테 전화 한 통 하고 끝이더라.”

어제 벤치 클리어링 사태의 시발점은 다름 아닌 송현민이었다.

대기 타석에 있던 송현민이 피터 페츠와 조이 패런트 언쟁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고.

그걸 본 브룩 로우가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면서 양 팀 선수들이 몰려든 것이다.

다행히 박유성의 등장과 조이 패런트의 중재로 유혈 사태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레인저스 소속 선수들 간의 마찰이 전 세계에 생중계됐음에도 불구하고 레인저스 존 다니엘 사장은 대수롭지 않아 했다.

“사장이 직접 전화 한 게 어디예요?”

“야, 그것도 삼촌이 말 그대로 지랄을 해서 나한테 연락한 거야. 그리고 삼촌한테는 사장이 아니라 단장이 전화했고.”

“레인저스도 존 다니엘 사장이 실질적인 단장이죠?”

“단장이 있긴 하지만 중요한 일들은 사장 허락을 받아야 해. 다저스도 마찬가지고.”

메이저리그를 가리켜 단장의 야구라 부르지만 모든 메이저리그 단장의 권한이 절대적인 건 아니었다.

다저스나 레인저스처럼 규모가 큰 구단의 경우 기존 단장이 운영 사장으로 올라가면서 단장의 권한을 대신하곤 했다.

만약 레인저스가 아닌 다른 구단에서 단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면 그만큼 신경을 썼다는 의미겠지만.

존 다니엘 사장 대신 크릭스 영 단장이 연락을 했다면 송현민 입장에서는 충분히 기분이 나쁠 수 있었다.

“잠깐 말이 새긴 했지만 메이저리그 단장들은 팀의 주축 선수들만 챙겨. 이 선수를 뺏기면 난리 나겠다 싶은 선수들만 직접 케어한다고.”

“그러니까 다저스에서 입단도 하지 않은 저를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거죠?”

“그렇다고 봐야지. 내가 메이저리그 생활을 오래 한 건 아니지만 난 다저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 그렇다고 여길 올 거야?”

“아직 경기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여길 오면 이상하죠.”

“내 말이 그 말이야. 그렇다고 언론 통해서 유감이라고 발표하면 네 기분은 어떨 거 같아?”

“뭐 그냥…… 그러려니 하겠죠?”

“프리미어 12 끝나면 바로 포스팅인데 다저스는 만회할 시간이 없잖아? 그렇다고 언론 동원해서 언플하면 진정성이 떨어질 거고. 당황스러운 네 입장도 충분히 이해는 하는데 다저스가 노력했다는 건 인정하자는 거야.”

“일단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어요.”

박유성은 일단 신민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제 다저스 사람들 왔다 갔었다면서?”

-난 회사에 일이 있어서 못 봤는데 아버님하고 어머님은 엄청 좋아하시던데?

“그래? 다저스에서 뭐라고 했는데?”

-기자하고 메이저리그 사무국 사람도 같이 와서 사과만 했대. 계약 관련 이야기는 전혀 없었고.

“그렇다면 다행이네.”

-그런데 다저스에서 선물이라고 유니폼을 가져왔거든?

“유니폼?”

-이건 말로 하긴 그렇고. 내가 사진을 찍어서 보내 줄 테니까 봐봐.

잠시 후.

깨톡으로 신민아가 보낸 사진이 도착했다.

1번이 박힌 박유성의 유니폼을 중심으로 아버지 박민철과 이선영, 박유선, 박유신, 신민아의 유니폼이 둥글게 놓여 있었다.

하지만 박유성의 시선을 잡아끈 유니폼은 따로 있었다.

SONG YEONJOO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니폼이 가족들의 유니폼 속에 자연스럽게 놓여 있었다.

“뭐야.”

순간 박유성은 만감이 교차했다.

3회차를 살면서 친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뒤로 밀어 놨는데 막상 유니폼을 보니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뭘 이렇게까지 해?”

처음에는 다저스가 깜빡이도 없이 훅하고 치고 들어온 것 같아 화가 났지만.

피터 페츠 건으로 마음이 급한 다저스에서 친어머니의 유니폼까지 준비했다고 생각하니까 한편으로 고마웠다.

그때 다시 깨톡이 울렸다.

[자기야. 자기가 걱정하는 그런 일은 없었으니까 안심하고 내일 경기에 집중해. 내일 이겨서 꼭 전승 우승하자. 알았지?]

“그래. 일단 경기에 집중하자.”

박유성은 머리를 식힐 겸 TV를 켰다.

때마침 미국과 도미니카 공화국의 경기가 펼쳐졌는데 미국이 5회 초에 9 대 2로 리드 중이었다.

“이 흐름대로라면 미국이 무난하게 이기겠네. 그럼 2승 3패인가?”

박유성의 예상과는 달리 미국 대표팀은 경기 후반 불펜이 무너지면서 도미니카 공화국을 10 대 8, 두 점 차로 따돌리고 가까스로 승리를 챙겼다.

그리고 이어진 일본과 푸에르토리코의 경기는 경기 막판 터진 역전 적시타에 힘입어 푸에르토리코가 일본을 8 대 7, 케네디 스코어로 꺾었다.

프리미어 리그 5일 차 경기가 끝이 나자 미국 언론들은 앞다투어 결승 진출 가능성을 계산했다.

“일단 한국은 결승 진출이 확정입니다. 내일 경기에서 패배하더라도 한국은 무조건 결승에 올라가요.”

“오오, 지미. 제발 그런 끔찍한 가정은 집어치워요. 내일 한국이 도미니카 공화국에게 패배한다면 우리의 가능성도 사라진다고요.”

“내일 경기에서 썬이 결장한다 하더라도 도미니카 공화국이 한국을 이기긴 쉽지 않을 테니까 걱정 마요.”

“그럼 일단 한국이 도미니카 공화국을 잡는다고 가정하고 계산을 하면 되는 거죠?”

“그렇죠. 그렇게 되면 일단 한국을 제외한 모든 팀이 2승 3패가 되면서 TQB를 따지게 됩니다.”

대한민국과 도미니카 공화국, 대만과 일본전을 남겨놓은 슈퍼 라운드 성적은 다음과 같았다.

1위 대한민국 4승

2위 대만 2승 2패

2위 도미니카 공화국 2승 2패

4위 미국 2승 3패

4위 푸에르토리코 2승 3패

6위 일본 1승 3패

남은 경기에서 대한민국이 도미니카 공화국에게 패배하고 대만이 일본을 잡아낸다면 대만과 도미니카 공화국이 3승 2패가 되면서 승자승 원칙에 따라 도미니카 공화국이 결승전에 진출한다.

앞선 조별 리그에서 도미니카 공화국이 대만을 9 대 5로 꺾은 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언론의 바람대로 대한민국이 도미니카 공화국을 잡아주고 일본이 대만을 잡는다면 타이브레이크까지 끌고 갈 수 있었다.

“일단 지금까지의 TQB만 놓고 보자면 미국이 전체 1위입니다. 그다음이 도미니카 공화국이고 그다음이 푸에르토리코, 일본과 대만 순입니다.”

“대만은 일본에게 패배하면 사실상 결승 진출이 불가능합니다. 일본을 잡아내고 한국이 도미니카 공화국을 잡아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대만이 일본에게 패배한다면 미국은 TQB 상위 2위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경우 도미니카 공화국, 혹은 일본과 결승 진출 티켓을 두고 단판 승부를 펼치게 되는 거죠.”

“우리에게 최선은 일본이 대만에 근소한 점수 차이로 이기는 겁니다. 일본이 5점 차이로 대만을 잡아준다면 일본 대신 도미니카 공화국을 상대할 수 있어요.”

“반대로 일본이 5점 이상의 점수 차이를 낼 경우 일본과 다시 맞붙게 됩니다.”

“리벤지 매치죠.”

“저는 개인적으로 일본이 올라왔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슈퍼 라운드 때 일본에게 패배했던 걸 설욕하고 결승전에서 한국을 꺾고 우승한다면 최고의 드라마가 될 겁니다.”

마지막 날 경기를 앞두고 미국의 주요 도박 사이트들도 심혈을 기울여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배당률이 어떻게 나왔어?”

“한국이 1.15, 도미니카 공화국이 7.50입니다.”

“그걸 물어본 게 아니잖아!”

“일본이 1.85, 대만이 1.95입니다.”

“거의 차이가 안 나는데?”

“아무래도 대만 선발이 천신위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슈퍼 라운드가 이렇게 흙탕물이 될 줄 예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천신위를 결승전이 아닌 일본전으로 돌린 대만 대표팀의 결정은 신의 한 수로 평가받았다.

대만 대표팀 투수들 중에 일본 대표팀을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건 오직 천신위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도 자국에서 열리는 대회를 슈퍼 라운드 최하위로 마감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일본 선발이 누구야?”

“아직 발표가 나진 않았지만 순서상으로는 니키타 쇼우입니다.”

“오타니 쇼헤는?”

“결승전을 대비해서 일단 아껴놓을 것 같습니다.”

먼저 시작된 대한민국 대표팀과 도미니카 공화국 대표팀의 경기는 싱겁게 끝이 났다.

1회 초, 볼넷으로 출루한 박유성이 연거푸 2루와 3루를 훔치면서 도미니카 공화국 선발 투수 데니 마르티네즈의 평정심을 무너뜨렸고.

민병규와 박준수, 송현민이 연속 안타를 때려내며 1회에만 5점을 뽑아냈다.

대한민국전 승리로 결승 진출을 확정 짓겠다던 호르세 바티스타 감독도 초반부터 경기가 기울자 주전들을 빼고 후보 선수들을 기용했다.

“어차피 한국전은 TQB에 안 들어가. 무리해서 지느니 그냥 포기하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게 나아.”

대만이 일본을 잡아낸다면 대만이 결승전에 올라가는 상황이 나오겠지만 일본의 총력전을 한 수 아래인 대만이 막아내기는 어려울 거라고 판단했다.

실제 다수의 도박 사이트들은 일본이 3점 차 이내로 대만을 이길 거로 예측했다.

5점 차 이상으로 이길 확률은 1퍼센트 남짓.

그 분석대로 일본이 3~4점 차이로 대만을 잡아준다면 TQB에 따라 내일 미국과 타이브레이크 경기를 치르게 되는 것이다.

도미니카 공화국의 호르세 바티스타 감독은 오늘 경기가 없어서 휴식을 취하는 미국과 동등해지려면 주전급 선수들에게 휴식을 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고.

17 대 2라는 굴욕스러운 점수로 대한민국 대표팀에게 패배했을 때도 도미니카 공화국 언론들은 현명한 선택을 했다며 호르세 바티스타 감독을 두둔했다.

뒤이어 펼쳐진 일본과 대만의 경기에서 선발 니키타 쇼우가 3이닝 만에 2실점을 하고 강판당했을 때 도미니카 공화국 언론은 벌써부터 타이브레이크 경기 전망에 들어갔다.

“미국의 선발 투수는 인디언스의 마이크 클루버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이크 클루버 선수도 좋은 투수죠. 하지만 이번 대회 성적은 별로 좋지 않았어요. 예선전에 한 경기 나와서 5이닝 동안 4실점을 했습니다.”

“평범한 피칭이었네요.”

“네. 우리 선수들이 집중만 해준다면 얼마든지 공략해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끝났다고 생각했던 7회 말.

6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친 천신위가 물러나기가 무섭게 일본 대표팀의 반격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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