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363화 (363/412)

타자 인생 3회차! 363화

41. 슈퍼라운드(7)

피터 페츠도 마운드를 걷어차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젠장할!”

무사 3루 상황에서 조이 패런트가 요구한 공은 몸 쪽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

일단 땅볼이나 헛스윙을 유도한 뒤에 상황을 지켜보자는 계산이었다.

사인이 나왔을 땐 피터 페츠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바로 눈앞에서 박유성이 서 있는 상황이라 레퍼토리를 진지하게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손끝을 빠져나간 공이 살짝 몰려 들어갔고.

그 공을 민병규가 놓치지 않고 잡아당겨 안타로 만들어내자 모든 게 조이 패런트의 잘못처럼 느껴졌다.

“미치겠네. 왜 이렇게 집중을 못 하는 거야?”

조이 패런트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배드 볼 히터인 민병규가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나올 걸 예상하고 일부러 몸 쪽 유인구를 주문했건만.

피터 페츠의 손끝을 빠져나온 공은 민병규의 옆구리 쪽으로 날아들었다.

심지어 무브먼트마저 밋밋해서 단타로 끝난 게 다행이라 느껴질 정도였다.

“피터! 진정해!”

피터 페츠가 한참 만에 마운드로 돌아오자 조이 패런트가 크게 소리쳤다.

한 점을 내주긴 했지만 이제 겨우 1회 초였다.

아직 9번의 공격 기회가 남아 있는 만큼 실점한 건 잊고 경기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피터 페츠의 귀에는 그 말이 꼭 자신을 향한 질책처럼 들렸다.

“닥쳐, 조이! 방금 안타는 네 잘못이라고.”

“뭐?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네가 뻔한 사인을 내서 얻어맞은 거잖아!”

피터 페츠가 갑자기 급발진을 하자 야수들이 다급히 둘 사이를 가로막았다.

“피터! 지금 경기 중이야.”

“그래 피터. 조금만 흥분을 가라앉혀.”

마크 스테리를 대신해 1루 수비에 나왔던 코리 베츠(다저스)와 유격수 케빈 모랄(파이어리츠)이 피터 페츠를 감싸 안았고.

“조이! 이러지 마. 피터가 연속 안타를 맞고 예민해져서 저러는 거야.”

3루수 바비 데이브(레드삭스)는 얼굴이 벌게진 조이 패런트를 달랬다.

그렇게 급작스러웠던 상황이 진정되려던 순간.

“헤이! 쏭! 왜 비웃는 거야?”

2루수 브룩 로우(레인저스)가 갑자기 송현민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자신의 타석 전에 내분이 일어난 미국 대표팀을 보며 어이없어하는 모습이 팀 동료인 브룩 로우를 자극한 것이다.

“브룩! 너 갑자기 왜 이래?”

당황한 송현민이 뒷걸음질을 쳤지만 브룩 로우는 마치 송현민의 멱살이라도 움켜쥘 기세로 덤벼들었다.

때마침 박준수와 구심이 끼어들면서 브룩 로우를 뜯어말렸지만.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 절반 이상이 더그아웃 밖으로 뛰쳐나왔을 만큼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이어졌다.

“헤이, 브로! 무슨 일이야?”

3루타를 치고 더그아웃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박유성도 더그아웃 난간을 뛰어넘었다.

그러고는 브룩 로우를 매섭게 노려보며 송현민의 옆에 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조이 패런트가 나섰다.

“썬! 썬!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진정해! 브룩! 뒤로 물러서! 어서!”

“뭐?”

“뒤로 물러서라고! 지금 뭐 하자는 거야?”

같은 편을 들어줘도 모자랄 조이 패런트가 박유성을 감싸고 돌자 브룩 로우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미국 대표팀 선수들 중에 이번 대회가 끝나고 메이저리그로 넘어올 게 확실시되는 박유성과 감정적으로 부딪치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 지금 잠시 소란이 있었는데요. 이제 정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야구 해설만 20년을 넘게 해왔는데 이런 상황은 처음이네요.

-지금 채팅창 반응도 혼란스럽기 그지없는데요. 이선철 해설위원께서 간략하게 정리를 해주시죠.

-제가 그라운드에 있는 게 아니라서 정확하게 설명을 해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일단 투포수 간에 언쟁이 있었습니다.

-피터 페츠 선수와 조이 패런트 선수 말씀이시죠?

-다들 아시겠지만 피터 페츠 선수는 다저스의 에이스입니다. 조이 패런트 선수는 자이언츠의 주장이고요.

-지구 우승을 두고 치열하게 다투는 라이벌 팀의 에이스 투수와 주전 포수가 공교롭게도 배터리를 이루게 됐는데요.

-아마 방금 민병규 선수에게 적시타를 얻어맞은 걸 두고 언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불똥이 송현민 선수에게 튀었습니다.

-지난 경기까지 4번을 치던 송현민 선수가 오늘은 특별히 3번으로 전진 배치가 됐는데요.

-아무래도 송현민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뛰다 보니까 전략적으로 박준수 선수와 타선을 맞바꿨는데요. 송현민 선수와 같은 팀에서 뛰고 있는 브룩 로우 선수가 갑자기 송현민 선수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지금 화면이 나오고 있는데요. 송현민 선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거든요?

-어쩌면 같은 팀 동료로서 송현민 선수가 상황을 방관하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는데…… 참. 무슨 말을 해도 납득이 되지 않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조이 패런트 선수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습니다.

-조이 패런트 선수가 소속 팀에 이어 대표팀에서도 주장을 맡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선 거 같습니다만 이 장면도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메이저리그의 벤치 클리어링은 프로 야구보다 훨씬 더 과격하기로 유명한데요.

-우리야 따지고 보면 초중고등학교 때 함께 야구 했던 선후배들이니까요. 벤치 클리어링이 발생하더라도 심각해지는 경우가 드물지만 메이저리그는 다릅니다. 국적과 언어가 다른 선수들이 한데 모여 있다 보니 누구든 불을 댕기면 펑 하고 터져 버리죠.

-그래서 이선철 해설위원이 아까 박유성 선수를 말려야 한다고 악을 쓰셨는데요.

-악까지는 아니고 갑자기 박유성 선수가 뛰쳐나와서 놀랐습니다.

양 팀 선수들이 벤치로 물러나자 구심이 양 팀 주장을 따로 불렀다.

“더 이상 경기를 방해하고 소란을 피우면 경고 없이 퇴장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팬들이 놀랐을 테니까 악수하고 마무리하죠.”

구심의 주문에 조이 패런트와 송현민이 서로 손을 맞잡았다. 그때 조이 패런트가 웃으며 말했다.

“미안해. 쏭. 브룩이 지나치게 흥분했던 거 같아.”

“괜찮아. 조금 놀라긴 했지만 별일 없었으니까 됐어.”

“혹시 브룩하고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

“그럴 리가. FA가 되긴 했지만 지난 4년간 우린 키스톤 콤비였다고.”

“쏭. 너에 대한 이야기는 나도 많이 들었어. 다들 널 좋은 선수라고 칭찬하더라고.”

“그래? 이거 자이언츠로 이적해야 하나?”

“그래주면 나야 좋지. 기왕이면 썬과 함께 오면 더 좋고.”

“하하. 결국 본론은 그거였구나?”

“어쨌거나 오늘 경기 잘 마무리 짓자.”

“그래. 서로 최선을 다해보자고.”

조이 패런트와 송현민이 악수에 이어 가볍게 포옹을 하자 도쿄 돔을 가득 채운 관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쳐주었고.

이 장면은 실시간으로 미국 주요 매체들을 통해 보도가 됐다.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도 인천 국제공항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기사를 확인했다.

“뭐?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다고?”

“정확하게는 일어날 뻔했습니다.”

“그래서? 썬은?”

“썬이 제때 나서서 잘 해결됐습니다.”

“썬이 제때 나섰다니? 그게 무슨 일이야?”

서울에 파견을 나가 있었던 직원 스콧 알슨이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전달했다.

“그러니까 피터 페츠와 조이 패런트 사이에 언쟁이 있었는데 갑자기 불똥이 쏭에게 튀었다는 거지?”

“네. 브룩 로우를 취재한 기자의 말에 따르면 쏭이 이죽거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둘이 같은 팀 아니었어?”

“같은 팀입니다. 심지어 키스톤 콤비였고요. 하지만 브룩은 쏭 때문에 레인저스에서 유격수로 뛰고 있습니다. 쏭이 가끔 지명타자로 나설 때만 2루수로 출전하고요.”

“게다가 쏭이 아메리칸 리그 2루수 올스타로 출전했으니 더 짜증이 났겠군.”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대표팀 선수 대부분이 경기 전에 레인저스 구단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전화? 무슨 전화?”

“혹시라도 썬과 대화할 수 있다면 구단을 잘 어필해 달라는 이야기겠죠.”

“우리도 전화했어?”

“경기에 대해 아예 모르십니까?”

“모르지. 비행기 안에서는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가 없잖아.”

“보통은 몰래몰래 합니다만…….”

“그러다 기사라도 나면 무슨 망신이야? 암튼 우리도 전화를 한 거야?”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다그치듯 물었다. 그러자 스콧 알슨을 대신해 한국행에 동행한 로이 홀랜드 보좌역이 대답했다.

“오늘은 마크 스테리 대신 코리 베츠가 1루수로 선발 출전했습니다.”

“그러니까 말을 했다는 거지?”

“말이야 전했죠. 혹시라도 썬을 만나게 된다면 구단의 입장을 잘 설명해 달라고요.”

“그래? 그래서 썬과 코리가 만났어?”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다시 스콧 알슨을 바라봤다.

피터 페츠가 다저스의 에이스라면 코리 베츠는 다저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만약에 코리 베츠가 직접 나서준다면 구단 입장에서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스콧 알슨은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애석하게도 그런 상황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럴 상황이 나오지 않았다니? 썬이 오늘 부진한 거야?”

“아뇨. 그 반대입니다. 펄펄 날아다녔죠. 단타 빠진 히트 포 더 사이클에 홈런을 2개나 때려냈으니까요.”

“그래?”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그러자 로이 홀랜드 보좌역이 다급히 팔을 잡아당겼다.

“뒤에 나오미가 있습니다. 표정 관리 좀 하세요.”

“아참. 그렇지.”

서둘러 서울행을 결정하면서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동행할 기자로 나오미 알렌을 지목했다.

여자이긴 하지만 5년 가까이 다저스 출입 기자로 일하면서 다저스 구단에 우호적인 기사를 많이 써줬기 때문이다.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 덕분에 공짜로 대한민국 관광을 하게 된 나오미 알렌도 별것도 아닌 일로 일을 만들 생각이 없었다.

“앤드류. 오늘 바로 썬의 집에 갈 건 아니죠?”

“그럼. 내일 움직여야지.”

“그렇다면 나는 먼저 호텔에 가 있을게요. 그러니까 내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이야기해요.”

“그래도 괜찮겠어?”

“그럼요. 나도 호텔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푹 쉬고 싶어요.”

나오미 알렌이 알아서 빠져주자 로이 홀랜드 보좌역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앤드류. 제발요.”

“오케이. 알았어. 조심할게.”

대한민국에 도착하면 언행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로이 홀랜드 보좌역의 당부를 떠올린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다급히 두 손을 들었다.

“일단 오늘은 인천에서 자는 거지?”

“네. 인천과 서울은 가까우니까요. 오늘은 인천에서 자고 내일 낮쯤에 서울로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나오미의 객실도 신경 썼지?”

“그럼요. 가장 전망이 좋은 방으로 준비해 달라고 했습니다.”

스콧 알슨의 보고를 받느라 잠깐 걸음을 멈췄던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 일행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스콧 알슨이 로이 홀랜드 보좌역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경기 결과는 알고 계시는 거죠?”

“아니. 몰라.”

“……?”

“썬이 맹활약했다며? 그럼 한국이 이겼겠지. 아니야?”

“네. 한국이 이겼습니다.”

“미국이 진 건 애석한 일이지만 우린 일을 하러 온 거야. 그러니까 스콧도 정신 바짝 차려.”

“아, 넵. 알겠습니다.”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구단에서 잡아놓은 호텔에 도착하고 나서야 경기 결과를 확인했다.

“14 대 3?”

“네.”

“허, 아예 박살이 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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