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358화
41. 슈퍼 라운드(2)
“한국은 예상대로 푸에르토리코를 가볍게 이겼습니다. 반면 우리는 천신위를 넘지 못했어요.”
“타자들의 침묵이 너무 답답합니다. 시즌이 끝난 다음이라 베스트 컨디션이 아니라는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너무 무기력했어요. 이대로 가다간 내일 일본전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당초 에릭 지터 감독의 요구대로 컨디션이 좋은 선수들 위주로 선발을 했어야 해요. 언론에 떠밀려 선수 선발을 하니까 이런 결과로 이어진 겁니다.”
“이렇게 된 이상 내일 있을 일본전은 무조건 잡아야 합니다. 일본만 잡아내도 결승 진출의 희망은 남아 있어요.”
김혜성의 호투와 박유성의 결승 홈런으로 푸에르토리코를 꺾은 대한민국 대표팀은 2승으로 슈퍼 라운드 단독 1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대한민국 대표팀의 경기가 없던 2일 차 첫 경기에서 푸에르토리코가 도미니카 공화국을 꺾으면서 대한민국 대표팀을 제외한 모든 팀이 패배를 안게 됐다.
“도미니카 공화국이 졌으니까 이제 일본만 잡으면 돼.”
“미국만 이기면 결승에 올라갈 수 있어.”
서로 동상이몽 속에 진행된 미국 대표팀과 일본 대표팀의 맞대결은 일본 대표팀의 승리로 돌아갔다.
선발 투수 오타니 쇼헤가 5이닝을 1실점으로 틀어막고 마운드를 내려오자 아나바 이쓰노리 감독이 무려 6명의 불펜 투수를 동원하며 총력전을 펼친 것이다.
반면 크리스 반스를 대신해 대표팀에 합류한 레드삭스의 좌완 영건 코비 스펜스는 1회에만 3점을 내주며 5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강판, 패배의 원흉이 됐다.
“이러면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게 되긴요. 우리한테 좋은 상황이 된 거죠.”
“우리한테?”
“결승 상대는 미국보다 일본이 낫죠. 안 그래요?”
프리미어 12 결승전은 슈퍼라운드 성적이 가장 좋은 두 팀의 맞대결로 치러진다.
대한민국 대표팀 입장에서는 LA 올림픽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힘겨운 대결을 펼쳤던 미국 대표팀보다는 일본 대표팀을 만나는 게 마음이 편했다.
“나는 오히려 미국 투수들이 편하던데?”
“그건 형이 메이저리그에서 뛰어서 그래요.”
“그런가?”
“그리고 이번에 예선에서 일본을 크게 이겼으니까 다른 형들도 일본이 편할 거예요. 반대로 일본은 지고 들어가는 기분일 거고요.”
포스트 시즌이나 국제 대회는 통상 단기전이라 불린다.
몇 개월간 치러지는 페넌트레이스가 아니라 짧은 기간 안에 최종 승자가 정해지기 때문이었다.
이런 단기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이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리빙 레전드 오타니 쇼헤를 상대로 도쿄 돔을 가득 채워놓고 대승을 거뒀으니 결승에서 일본을 만나게 된다면 쫓기는 쪽은 일본이 될 터였다.
반면 미국 대표팀과의 경기는 늘 쉽지가 않았다.
일단 투수들의 스타일 자체가 낯선 데다가 거를 타순이 없다 보니 모든 선수들이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경기를 치러야 했다.
“그래도 미국을 잡고 우승하는 게 좀 더 멋지지 않냐?”
“그건 다음 대회 때 해요.”
“다음 대회면 올림픽?”
“호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대부분 불참하겠죠.”
“너도 불참하는 건 아니지?”
“병역 혜택 받은 지 얼마나 됐다고 불참이에요? 걱정 마요. 입단할 때 아예 특별 조항으로 집어넣을 테니까.”
“그래. 넌 하선이 형보다 더 오래 국대 뛰어야 해.”
95년생인 김하선은 지난 202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까지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은퇴 당시 서른다섯 살이었으니까 이번 대회까지 참가해도 무방했지만 김하선은 경쟁력이 없다면 국가대표에서 물러나는 게 맞다는 명언을 남기며 야구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래도 실력이 안 되면 눈치껏 빠져야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박유성도 김하선처럼 실력이 꺾일 때쯤 국가 대표에서 물러나고 싶었다.
그러자 송현민이 피식 웃었다.
“넌 마흔 살에도 4할은 칠 거 같은데?”
“유턴해서요?”
“아니. 메이저리그에서.”
“에이, 그게 쉽겠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넌 가능하지 않을까?”
처음 송현민이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을 때 메이저리그 주요 매체들은 아시아의 거포가 메이저리그에 온다고 호들갑을 떨어댔다.
그런데 막상 포스팅을 통해 레인저스에 입단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프로 야구와 메이저리그는 다르다며 송현민이 3할을 칠 가능성은 없다고 전망했다.
메이저리그 첫 시즌 초반에 헤맬 때까지만 해도 송현민은 리그의 차이를 실감했다.
자신을 동양인 타자라고 무시하는 이들에게 대한민국 MVP 타자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지만 마음만 앞설 뿐 정타를 만들어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4년간의 계약을 마친 지금의 생각은 달랐다.
“메이저리그라고 모든 투수들이 전부 잘하는 줄 아냐? 평균치가 높을 뿐이지 똑같아. 그리고 절대적인 재능으로 따지면 널 이길 상대가 없을걸?”
“갑자기 왜 이래요?”
“갑자기는 무슨.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인데. 그래서 말인데…… 너 나하고 같은 팀에서 뛰고 싶다고 한 거 진심이지?”
“왜요? 어디서 좋은 제안 들어왔어요?”
“삼촌 말이 갑자기 연락 오는 곳이 많다는데?”
“어디에서 연락 왔는데요?”
“다저스하고 레드삭스, 양키즈, 자이언츠, 내셔널스?”
“오오, 좋은데요? 레인저스는요?”
“거기는 일단 뺐어. 너도 레인저스는 별로잖아?”
“세금이 싸도 더그아웃 분위기가 그 모양이면 좀 그렇죠.”
“암튼 우리 같은 팀 가서 메이저리그 씹어 먹어 보자. 어때?”
“그전에 프리미어 12부터 씹어 먹고요.”
“그건 당연한 거고.”
확실한 목표가 생긴 송현민의 방망이는 매섭게 불타올랐다.
다음 날.
대만과의 슈퍼 라운드 3일 차 경기에서 4타수 4안타에 홈런 2개를 때려내며 박유성을 제치고 MVP를 차지한 것이다.
당초 대만 대표팀에서 천홍위를 선발로 내세웠을 때부터 일방적인 경기가 될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에이스인 천신위 카드를 미국전에 쓴 상황에서 슈퍼 라운드 단독 1위인 대한민국 대표팀을 잡으려면 제2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전직 메이저리그 왕쥔린과 컵스에서 3년 차 시즌을 보내고 있는 천지아런, 둘 중에 한 명이 선발로 나와야 했다.
하지만 왕 다이강 감독은 천지아런이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파이어리츠 트리플 A에서 뛰고 있는 천홍위에게 기회를 주었다.
이를 두고 일본 보수 언론에서는 승부 조작이나 다름없다고 비난을 쏟아냈다.
“대만 대표팀은 이번 대회 목표를 결승 진출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경기에 최선을 다해야죠. 왜 한국전에 천홍위를 내세우는 겁니까?”
“왕쥔린이 한국에 약하고 천지아런은 휴식일이 짧다고 하는데 다 핑계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천신위를 미국전에 내세우지 말았어야죠. 한국을 상대로 승리를 따내면 그만큼 결승 진출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왜 천신위를 미국전으로 돌린 겁니까?”
“이건 분명 모종의 비리가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한국과 대만이 결승 진출을 위해 손을 잡은 게 확실해요!”
“대만 대표팀은 지금이라도 투수를 바꿔야 합니다. 천홍위로는 한국을 잡을 수가 없어요!”
일본 야구팬들도 덩달아 대만 대표팀의 투수 운영을 성토했지만.
박유성을 필두로 대한민국 대표팀이 17안타를 몰아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다물었다.
└젠장. 한국이 언제부터 저렇게 강했던 거지? (N26WQ72DF3)
└언제부터라니? 지난 LA 올림픽 때부터 지금까지 치른 주요 국제 경기는 전부 한국이 우승했다고. (K32NFT2G45)
└닥쳐! 한국이 우승한 경기는 조작을 한 경기뿐이야! 실력으로는 절대 일본과 미국을 이길 수가 없다고! (DK351KAB55)
└제발 눈을 뜨고 현실을 직시해! 이러니까 일본 야구가 계속 제자리걸음인 거야. (RQ32W1E45T)
└한국은 이번 대회 모든 경기에서 10점 이상을 뽑아냈어. 팀 득점력이 압도적인 1위라고. (DFS231AD23)
└그건 기정후와 감백호, 송현민이 합류한 결과 아니야? (Y32W5Q7W7E)
└물론 메이저리그의 합류가 도움이 됐겠지. 하지만 문제는 박유성이야. 박유성이 경기 초반부터 분위기를 가져오니까 한국을 이길 수가 없다고. (K32NFT2G45)
└한국의 메이저리그 선수들 중에서는 송현민 혼자 분전 중이야. 기정후와 감백호는 밥값 정도만 해주고 있고 (K2L5W6G7G0)
└송현민의 분전도 결과적으로 박유성 때문이지? (I23W6K7D8J)
└당연하지. 박유성의 덕을 가장 많이 보고 있는 게 다름 아닌 송현민이라고. (K2L5W6G7G0)
└만약에 천홍위 대신 천지아런을 올렸다면 대만이 이길 수 있었을까? (W1M5R3I6T8)
└무리. 한국은 일본을 상대로 13 대 4로 이겼어. 오타니 쇼헤는 올 시즌 15승을 거뒀지만 천지아런은 9승에 그쳤다고. (Q823WE6Z9A)
└천지아런이 오늘 나왔다면 더 빨리 강판당했을 거야. 사흘밖에 쉬지 못했는데 지난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경기에서 110구를 던졌다고. (DFS231AD23)
└왕쥔린은? 요즘 다시 메이저리그 진출 얘기가 나오고 있지 않아? (RQ32W1E45T)
└대만의 2선발은 천지아런이야. 왕쥔린이 더 잘했다면 2선발은 왕쥔린이 됐겠지. (IEJ534A6D2)
└왕쥔린도 대만에서나 잘하는 거야. 작년 아시안 게임이 끝나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렸지만 실패했잖아. (U6Q3W5D6G8)
└애당초 선발은 중요하지 않아. 박유성이 버티고 있는 한 결과는 마찬가지일 거라고. (9O323Q6KWD)
└대만이 한국을 이길 거라고 진짜로 기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 (L0W4K56DM2)
└차라리 잘됐어. 대만도 2패 째니까 오늘 도미니카 공화국만 이기면 결승 진출이 쉬워질 거야. (P145EI6D7K)
└도미니카 공화국은 이길 수 있겠지? (M54WK2D7M2)
└당연하지. 일본은 미국도 꺾었다고. (K2W54J6D7M)
대한민국 대표팀이 대만 대표팀을 잡아내면서 슈퍼 라운드 순위가 대혼란에 빠졌다.
[슈퍼 라운드 3라운드 순위]
1위 대한민국 3승
2위 일본 1승 1패
2위 도미니카 공화국 1승 1패
4위 미국 1승 2패
4위 대만 1승 2패
4위 푸에르토리코 1승 2패
공동 2위인 일본과 도미니카 공화국을 비롯해 미국과 대만, 푸에르토리코까지 모든 팀들이 2위 자리를 두고 다투는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과 대만전 다음으로 진행된 일본과 도미니카 공화국의 경기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만약에 일본이 이기면 일본이 결승에 올라올 가능성이 높겠지?”
“거의 90퍼센트 이상이라고 봐야죠. 우리하고 미국전을 치렀으니까요.”
객관적인 전력상 일본 대표팀의 우세승이 예상됐고.
일본 언론들도 도미니카 공화국을 상대로 충분히 승리할 거라 내다봤다.
하지만 에이스 역할을 해줘야 할 마츠다 유이토가 갑작스럽게 무너지면서 도미니카 공화국이 2승째를 챙겼다.
“이러면 도미니카 공화국이 유리해지는 건가?”
“꼭 그렇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남은 두 경기 중에 한 경기는 무조건 잡아야 하는데 남은 경기가 미국하고 우리라서요.”
“그럼 대체 누가 올라오는 거야?”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분위기상 TQB까지 따져야 결승 진출팀이 정해질 것 같습니다.”
강기태 감독은 결승전 구상 때문에 머리가 아팠지만.
연전연승을 거두는 대한민국 대표팀은 박유성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다.
“유성아. 내일은 특별히 더 잘해야 하는 거 알지?”
“미국전이라서요?”
“뭐야, 피터 페츠가 너 잡겠다고 인터뷰한 거 못 봤어?”
“피터 페츠가요?”
“넌 진짜 야구밖에 모르는구나? 기다려 봐. 내가 찾아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