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357화
41. 슈퍼 라운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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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마다 참가국 확대를 논의 중인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과 달리 프리미어 12는 원년 대회부터 줄곧 상위 12개 팀 본선 참가를 고집했다.
야구의 저변을 확대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대회 수익 측면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주최국인 일본이 그리는 최고의 시나리오는 일본 대표팀이 라이벌 대한민국 대표팀을 꺾고 자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우승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토너먼트를 대신해 치러지는 슈퍼 라운드에서 최소 2위 자리를 차지해야 했다.
슈퍼 라운드는 간단히 말해 변형된 풀리그였다.
각 조 상위 1, 2위가 올라와 풀리그를 치르지만 같은 조에 묶여 있던 팀과는 경기를 생략한다.
대신 예선전 상대 성적을 그대로 반영한다.
[2031 프리미어 12 슈퍼 라운드 순위]
1위 대한민국 1승(A조 1위)
1위 도미니카 공화국 1승(B조 2위)
1위 미국 1승(C조 1위)
4위 일본 1패(A조 2위)
4위 대만 1패(B조 1위)
4위 푸에르토리코 1패(C조 2위)
개막전에서 일본 대표팀을 잡은 대한민국 대표팀은 슈퍼 라운드에서 1승을 챙기고 시작한다.
반대로 일본 대표팀은 1패를 떠안고 가기 때문에 남은 4경기에서 최소 3승 이상을 챙겨야 했다.
세 팀이 2승 1패를 거두며 TQB로 순위가 결정된 B조의 경우 조별 리그 순위와 슈퍼 라운드 순위가 뒤바뀌었다.
TQB는 가장 높았지만 도미니카 공화국과의 맞대결에서 패배한 대만 대표팀은 1패를 안고 가게 됐고.
반대로 쿠바(B조 3위)에 패배했지만 대만을 잡은 도미니카 공화국은 1승으로 대한민국, 미국과 함께 공동 1위로 슈퍼 라운드를 시작하게 됐다.
C조의 경우 3전 전승을 거둔 미국이 1승. 미국에 패배한 푸에르토리코가 1패.
“슈퍼 라운드도 만만한 팀이 하나도 없네.”
경기 일정을 살피던 강기태 감독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 슈퍼 라운드 일정표]
11월 29일(토) vs 푸에르토리코(C조 2위)
12월 1일(월) vs 대만(B조 1위)
12월 2일(화) vs 미국(C조 1위)
12월 4일(목) vs 도미니카 공화국(B조 1위)
내일 푸에르토리코전을 시작으로 대만과 미국, 도미니카 공화국을 연달아 만난다고 생각하니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보다 더 빡빡하게 느껴졌다.
그러자 이병구 수석 코치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첫 경기가 푸에르토리코라 다행입니다.”
“푸에르토리코는 에이스 카드를 썼지?”
“네. 어제 등판했으니까 내일은 죽어도 못 나옵니다.”
슈퍼라운드 진출 팀 중에 만만한 상대는 하나도 없지만.
현재 푸에르토리코는 베스트 컨디션이 아니었다.
베네수엘라와의 마지막 경기 때 모든 걸 쏟아부은 탓에 투수진의 피로도가 상당했다.
“선발은 그대로 혜성이로 가야겠지?”
“찬기보다는 혜성이가 낫죠. 도미니카 공화국전까지 맡아야 하니까요.”
많은 팀들이 4선발 체제로 대회를 치르고 있지만.
강기태 감독은 송찬우와 임찬기에 신예 김혜성으로 선발진 구성을 마쳤다.
이 세 명의 투수 중에 에이스는 누가 뭐래도 송찬우였다.
12월 2일 미국전에 이어 12월 7일로 예정된 결승전까지 맡아줘야 했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게 바로 김혜성.
본래 임찬기의 몫이었지만 임찬기가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은 상태라 신인인 김혜성이 대신하게 됐다.
“대만전은 어때? 천신위를 내보낼까?”
“천신위는 아마 미국전에 등판할 겁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일본전까지 등판이 가능합니다.”
김혜성이 푸에르토리코와 도미니카 공화국을 맡고 송찬우가 미국전과 결승전에 나서면서 남은 대만전 선발은 임찬기가 낙점됐다.
포심 패스트 볼의 구속이 나오지 않고 있는 터라 힘이 좋은 북중미 팀보다 대만 대표팀 타자들을 상대하는 게 상대적으로 수월해 보였다.
다만 맞대결할 선발이 관건이었는데 대만 대표팀도 결승 진출을 위해 에이스 천신위를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대만이 지금 1패지?”
“네. 슈퍼 라운드는 상대 전적 기준이라 도미니카 공화국전 패배를 그대로 안고 가야 합니다.”
“그럼 1패 이상 하면 결승전은 어렵다고 봐야겠네.”
“그래서 미국전에 등판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천신위를 내세워서 미국과 일본을 잡아내면 남은 두 경기에서 한 경기만 잡아도 결승 진출을 바라볼 수 있을 테고요.”
대한민국 대표팀이 푸에르토리코와 슈퍼라운드 1일 차 첫 경기를 치른 직후.
대만 대표팀과 미국 대표팀 간의 경기가 이어진다.
팀 전력은 조별 리그 전승으로 슈퍼 라운드에서 1승을 안고 시작하는 미국 대표팀이 대만 대표팀보다 앞서고 있지만.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 말처럼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천신위가 미국 대표팀 타선을 틀어막는다면 변수가 생길지도 몰랐다.
만약 대만 대표팀이 미국을 잡아내고 1승을 거두면 목표를 바꿔 일본 등과 2위 싸움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았다.
“미국전을 버리고 우리를 고르지는 않겠지?”
“대만도 찬기가 선발이라고 예상을 하고 있을 테니까 그렇게까지 무리하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찬기가 예전만 못하니까 요행을 바랄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얼마 전까지 일본 대표팀과 대만 대표팀에게 킬러 소리를 듣던 임찬기였지만 지난 캐나다와의 예선전 때 보여준 피칭은 기대 이하라는 평가가 많았다.
6이닝 7피안타 2실점.
세 명의 메이저리그 선수와 여섯 명의 마이너리그 선수로 구성된 타선을 상대로 너무 많은 안타를 허용했다.
게다가 실점 과정도 좋지 않았다.
2점 모두 2사 이후에 적시타를 허용해 내준 점수였다.
실제로 일본 언론들은 대만 대표팀이 천신위를 대한민국전에 내세워 결승 진출을 노릴 거라 전망했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발 투수 중 가장 약체로 평가되는 임찬기를 공략해 내면 대만의 목표인 결승 진출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정작 대만 언론들은 미국, 일본과 슈퍼 라운드 2위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대회 시작 전 일본과 한국의 배당률은 거의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나요? 한국이 일본을 13 대 4로 크게 이겼습니다.”
“한국 대표팀 전력의 핵심이 박유성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문제는 박유성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경험 많은 오타니 쇼헤가 박유성을 막지 못해 최악의 피칭을 한 걸 다들 봤을 겁니다. 경기가 끝나고 오타니 쇼헤도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타자라고 극찬을 했어요.”
“일부 언론에서 천신위는 다르다고들 하는데 박유성은 이미 국제대회를 통해 검증된 타자입니다. 천신위가 박유성을 잡아줄 거라고 장담할 수가 없어요.”
“다들 간과하고 있는 게 한국은 파트너를 고를 여유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한국을 잡기 위해 한국전에 천신위를 내보내면 한국은 미국전 선발로 예정된 송찬우를 당겨 쓸 수도 있어요. 그럼 미국만 유리해지는 겁니다.”
“지금 대만 대표팀에게 필요한 건 최대한 많은 승리를 챙기는 겁니다. 일단 결승전에 올라가기만 하면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어요. 하지만 한국을 잡겠다고 미국전을 놓치면 결승전에 올라갈 가능성이 사라질 겁니다.”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우린 지금 1패를 안고 있어요. 현실적으로 2위 자리를 노려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 한국을 빼고 결승 진출이 가장 유력한 팀이 어디입니까? 미국과 개최국인 일본 아닙니까? 그렇다면 일단 이 두 팀부터 잡고 봐야 합니다. 한국전에 천신위를 쓰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에요.”
11월 29일 오전 10시.
대만 대표팀이 미국전 선발로 천신위를 발표하자 1ch이 발칵 뒤집혔다.
└이건 말도 안 돼. 세계 최강인 미국을 상대로 천신위를 투입하겠다니? (DK351KAB55)
└대만이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게 틀림없어. (SAR32GQ525)
└너희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아. 대만은 가장 현명한 결정을 내린 거라고. (DFS231AD23)
└현명한 결정이라니? 대체 뭐가 현명하다는 거야? (J62W4Q22MD)
└대만의 메이저 언론에서 나온 기사를 참고하자면 천신위가 미국전에 등판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아. 첫째로 천신위는 24일에 등판했어. 4일 휴식 후 29일에 등판하는 게 가장 좋다고. 둘째로 미국 대표팀은 천신위에 약해. 미국 대표팀 타자들 중에 천신위를 상대로 강한 타자가 거의 없어. 셋째로 대만의 목표는 결승 진출이야. 에이스인 천신위를 최대한 많은 경기에 활용해야 하는데 미국전에 투입하면 일본전 선발이 가능해. 마지막으로 천신위는 대만 야구의 자존심이야. 한국전에 나섰다가 오타니 쇼헤 꼴이 나면 곤란하다고. (P145EI6D7K)
└그 주장은 전부 엉터리야. 내가 전부 반박할 수 있어. (J62W4Q22MD)
└자신 있으면 해봐. (P145EI6D7K)
└선발 투수는 4일 이상만 쉬면 돼. 따라서 1일에 등판해도 상관없어. 그리고 미국 타자보다는 한국 타자가 더 쉬워. 결승에 진출하려면 보다 쉬운 한국을 잡아야 한다고. (J62W4Q22MD)
└ㅋㅋ 선발 투수는 4일 이상만 쉬면 된다는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걸 보니까 야구에 대해 전혀 모르는구나? (P145EI6D7K)
└미국의 우승 확률은 일본보다 낮아. 대만 입장에서는 천신위가 미국과 일본을 잡아주는 게 최고라고. (IEJ534A6D2)
└그런데 왜 마지막 이유에 대한 반박은 없는 거야? (RQ32W1E45T)
└천신위가 오타니 쇼헤보다 낫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는 게 아닐까? (IEJ534A6D2)
└커리어만 놓고 보자면 오타니 쇼헤가 한참 위지만 현재 실력은 객관적으로 천신위가 조금 더 낫다고 봐. 물론 그 차이는 크지 않겠지만. (RQ32W1E45T)
└이렇게 된 거 미국이 대만을 잡아주길 기도하자. 미국이 대만을 이기면 대만은 결승 진출이 사실상 불가능해. (K2W90D4J7F)
└설사 그렇게 되더라도 한국이 미국을 이겨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어. (K32NFT2G45)
└헛소리 마! 한국 따위가 야구 종주국인 미국과 일본을 이긴다는 건 말도 안 돼! (DK351KAB55)
└미국이 대만을 잡고 한국이 미국에게만 패배하면 우리가 미국을 잡아도 결승전에 진출하기 어려워져. (RQ32W1E45T)
└전부 4승 1패면 가능하지 않아? (M73R2W8D9F)
└한국에게 13 대 4로 패배했잖아. TQB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하다고. (N2RQ64W2D1)
└젠장할. 이번 프리미어 12도 한국의 우승을 씁쓸하게 지켜봐야 하는 거야? (SAR32GQ525)
└그러니까 다들 멍청한 소리 말고 한국을 응원하라고. 일단 한국이 모두에게 1패를 안겨주면 우리가 결승에 올라갈 가능성도 높아져. (K32NFT2G45)
미국 언론들은 결승 진출을 위해서는 결국 대만을 잡아내야 한다면서 천신위의 선발 등판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표팀이 푸에르토리코 대표팀을 11 대 3으로 제압한 데 이어 대만 대표팀이 미국 대표팀을 1 대 0으로 꺾자 부정적인 보도를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