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354화
40. 프리미어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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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1년 프리미어 12 일정이 발표됐을 때.
방송사마다 서로 독점 중계를 하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2026년 아시안 게임 우승 이후로 살아나기 시작한 대한민국의 야구 열기가 2028년 LA 올림픽 우승과 2029년 사상 첫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우승으로 정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16년 만의 프리미어 12 우승까지 더해진다면 대한민국 야구는 명실공히 세계 최강을 자처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야구 관련 미튜버들은 물론이고 전현직 야구선수들까지 이때다 싶어 프리미어 12 중계에 나섰다.
그리고 개인적인 사유로 대표팀에서 하차한 전직 메이저리거 추신우도 랜더스의 구단주이자 SG 그룹의 회장인 정영진 회장과 함께 개인 방송을 진행했다.
“회장님 SNS는 제가 가끔 보는데요. 이렇게 직접 뵈니까 혈색이 참 좋으시네요. 혹시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원활한 진행을 위해 함께한 BJ 나다가 분위기를 풀겸 말을 건넸다. 그러자 정영진 회장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 대회가 끝나면 박유성 선수 메이저리그 가잖아요.”
“이제 랜더스 다시 우승 가는 건가요?”
“내년 시즌에는 한국 시리즈에 올라갈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스타즈 등장 이전까지 야구계에 수많은 돈을 쏟아부었던 정영진 회장에게 지난 3년은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2028년 통합 우승의 영광을 안겨주었던 팀은 2029년 빈볼 사태 여파로 포스트 시즌에서 탈락했고.
2030년과 2031년에는 스타즈에 밀려 한국 시리즈에 올라가 보지도 못했다.
오죽하면 야구단을 매각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을 했을 정도.
하지만 박유성이 수순대로 프리미어 12에 참가한 이상 더는 고통받을 이유가 없었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박유성 선수는 프리미어 12에 참가만 하면 바로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는 건가요?”
BJ 나다가 추신우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추신우가 살짝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런 것도 조사 안 하셨어요?”
“제가 설마 몰라서 물어봤을까요?”
“……?”
“지금 저희끼리 노가리 까려고 마련한 자리가 아니잖아요. 아, 회장님. 저급한 단어를 써서 죄송합니다.”
“하하. 아닙니다. 편하게 하세요. 저도 그런 단어 좋아합니다.”
“역시 회장님은 평소에도 팬들하고 소통을 하시니까 좀 아시네요. 암튼 이 방송을 보시는 분들 중에 야구에 대해 딥하게 알지 못하는 분들도 계실 거라는 거죠. 그런 분들을 위해서 전직 메이저리거인 추신우 선수가 설명을 해주면 좋지 않을까요?”
“아, 미안합니다. 제가 개인 방송은 거의 안 해봐서요.”
“우리 추신우 선수, 야구만 할 줄 알지 아무것도 모르시네요.”
“아마 저뿐만 아니라 다른 야구 선수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농담 아니라 제가 마음만 먹으면 바로 추신우 선수 계좌에서 10억 빼먹을 수 있을 거 같은데요?”
“하하. 미안한데 돈 관리는 와이프가 해서요.”
“까비알론소. 암튼 제 질문에 대답이나 해주세요.”
살짝 당황하던 추신우는 BJ 나다가 옆 모니터에 국가대표 포인트 관련 자료를 띄워주자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박유성 선수가 획득한 국가대표 점수가 총 260점이거든요? LA올림픽 우승으로 70점에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우승으로 100점, 아시안 게임 우승으로 50점.”
“다 더하면 220점인데요?”
“거기에 U-23 야구 월드컵과 아시아 프로 야구 챔피언십에도 참가해서 우승했습니다. 그 두 대회가 각 20점씩이죠.”
“그럼 다 해서 260점인데 몇 점이 부족한 거예요?”
“원래 145점이 있으면 FA나 해외진출 자격을 한 시즌 앞당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규정이 바뀌면서 해외 진출의 경우 최대 두 시즌까지 앞당기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한 시즌에 145점이니까 두 시즌이면 290점이 필요한 거고 지금 박유성 선수는 260점을 땄으니까 30점이 부족한 거네요?”
“네. 그렇습니다.”
“간단한 얘기를 복잡하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번 프리미어 12에는 몇 점이 걸려 있는 건가요?”
“프리미어 12에서 우승하면 90점입니다. 준우승만 해도 70점이고요.”
“준우승이요? 지금 세계 최강 대한민국 야구가 우승 못 한다고 보시는 건가요?”
“규정이 그렇다는 거고 우승할 거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래야죠. 지금 이렇게 세 명이서 결승전까지 중계해야 하는데 우승 못 하면 대참사입니다. 그러니까 발언에 각별히 신경 좀 써주세요.”
BJ 나다의 현란한 말솜씨에 추신우는 연신 당황했고.
옆에서 지켜보는 정영진 회장은 껄껄 웃으며 정신을 못 차렸다.
“잠깐 얘기가 옆으로 샜는데 제가 조사한 바로 프리미어 12는 참가만 해도 10점인 거죠?”
“네. 프리미어 12뿐만 아니라 국가대표 포인트가 걸린 모든 대회는 참가만 해도 10점을 줍니다. 어쨌거나 국가를 위해서 헌신하는 거니까요.”
“그럼 추신우 선수는 국대 몇 번 나가셨어요?”
“네? 아, 저는…….”
“민감한 질문인가요? 그럼 넘어가서 10점 추가하면 270점이니까 20점 남았는데 준우승 이상 해야만 점수를 주는 건 아니죠?”
“조별 예선을 뚫고 슈퍼 라운드에 진출하면 20점이 추가됩니다. 그래서 사실상 확정이라고 하는 거고요.”
“지금 우리나라하고 일본, 캐나다, 네덜란드가 한 조인데 다 해볼 만한 상대죠?”
“일본은 솔직히 만만치가 않습니다. 하지만 캐나다와 네덜란드 상대로는 충분히 이길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중계 화면이 바뀌고 대한민국과 일본의 로스터가 발표됐다.
“출전 선수 명단 떴네요. 1번 타자 박유성. 크으. 여기서 끝 아닙니까?”
“박유성 선수는 최고의 선수죠. 3년 연속 7할을 쳤으니까요.”
“항간에는 국내에서 달성한 기록일 뿐이라는 말도 있는데 전직 메이저리거로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솔직히 메이저리그나 일본에 비해 국내 리그의 수준이 조금 떨어지는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2023년에 대참사 났었잖아요. 그때 좋은 말씀 하셨잖아요?”
“크흠. 어쨌거나 202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이후로 이대로는 안 된다, 반성해야 한다 하는 목소리들이 많았습니다. 그 결과 유소년 야구에도 많은 투자가 이루어졌고요.”
“아직 격차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2023년보다는 많이 좁혀졌다는 거죠?”
“네. 그렇기 때문에 박유성 선수의 기록을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직 메이저리거 추 모 선수의 의견에 대해 회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 생각이요?”
“설마 오늘 방송에 박수 치러 오신 건 아니죠?”
“하하. 그럴 리가요.”
BJ 나다의 입담에 채팅창이 자지러졌고.
그런 분위기를 훑은 정영진 회장도 편하게 입을 열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말하는 거니까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사족 다실 시간에 그냥 말씀하시면 더 좋을 텐데요.”
“하하. 네. 알겠습니다. 저는 박유성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가더라도 5할은 칠 거라고 생각합니다.”
“5할이요?”
“국내에서 7할 5푼 이상을 쳤는데 메이저리그에서 5할을 못 치겠습니까?”
“그게 아니라 저는 6할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요?”
“……?”
“농담이고요. 회장님 말씀은 박유성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무조건 성공할 거라는 거죠?”
“무조건 성공합니다. 저렇게 잘하는데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죠.”
“만약에 박유성 선수가 메이저리그 생활이 마음에 안 들어서 유턴하면 랜더스에서 받아줄 의향은 있나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만약에 박유성 선수가 국내로 돌아온다면 원하는 모든 조건을 맞춰주겠습니다.”
“추신우 선수도 그렇게 잡으셨나요?”
“하하. 그건 영업 비밀입니다.”
웃고 떠드는 사이 다시 화면이 바뀌었다.
그리고 오타니 쇼헤의 모습이 잡혔다.
“오늘 일본 선발이 오타니 쇼헤 선수인데요. 솔직히 말해서 아시아의 레전드 아닌가요?”
“레전드죠. 스즈키 이치이로 선수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MVP를 따냈으니까요.”
“추신우 선수가 본 오타니 쇼헤 선수는 어떤 선수인가요?”
“투수와 타자 양쪽 모두에서 정점을 찍을 수 있는 대단한 선수입니다. 사실 어지간한 야구 선수들은 평생을 노력해도 어느 한쪽에서 빛을 보는 것조차 쉽지 않거든요.”
“그럼 박유성 선수하고 비교하면 어떤가요?”
“글쎄요. 사실 자국 리그에서의 성적만 놓고 보자면 오타니 쇼헤 선수보다 박유성 선수가 한 수 위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오타니 쇼헤 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경험을 쌓았으니까요. 그 경험치가 오늘 경기에서 어떻게 발휘될지가 관건일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메이저리그 커리어는 무시 못 한다는 거죠?”
“메이저리그가 국내 리그보다는 험난한 게 사실이니까요.”
“지금 채팅창에는 박유성 선수 국제 대회 성적이 9할이 넘는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박유성 선수도 오타니 쇼헤 선수를 상대하는 건 처음이라서요.”
“야구공은 둥글다? 여기에 대해 회장님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저는 박유성 선수가 첫 타석 때 안타를 칠 거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몰래 사설 토토 하신 거 아니죠?”
“하하. 그럴 리가요. 그리고 사설 토토 하려면 박유성 선수 삼진에 걸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긴. 그 말씀도 맞네요.”
전문적인 야구 해설가들이 함께하는 게 아니다 보니 1회 초가 시작된 이후에도 편한 대화가 이어졌다.
“초구 볼이네요. 오타니 쇼헤 선수. 겁먹었어요.”
“일단 박유성 선수의 반응을 보려고 공을 하나 뺀 거 같네요.”
“에이. 박유성 선수한테 저런 거 안 통하죠. 저렇게 볼카운트 불리하게 시작하면 이제 말립니다. 두고 보세요.”
특유의 설레발로 호들갑을 떨던 BJ 나다는 볼카운트가 원 볼 투 스트라이크로 바뀌자 갑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박유성이 연거푸 볼을 골라내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렇지! 제가 뭐랬어요? 말린다고 했죠?”
“아직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오타니 쇼헤 선수도 여기서 박유성 선수를 내보내고 싶지는 않을 거예요.”
“추신우 선수. 혹시 오타니 쇼헤하고 개인적인 친분 같은 거 있나요?”
“그게 아니라 아직 대결이 안 끝났다는 겁니다. 풀카운트면 반반이에요. 타자가 유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투수도 충분히 해볼 만합니다.”
“그럼 저하고 내기하실래요? 저는 박유성 선수가 홈런 친다에 걸겠습니다. 추신우 선수는요?”
“저는…….”
“그럼 이렇게 해요. 박유성 선수가 홈런 치면 제가 이기는 거고 아니면 제가 지는 걸로. 만약에 제가 지면 추신우 선수가 원하는 대로 조용히 야구 지켜볼게요. 콜?”
BJ 나다의 도발에 추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개인 방송이라고는 하지만 지나치게 호들갑스러운 BJ 나다의 방송 스타일에 짜증이 나려던 차였다.
하지만 그건 평소 텐션 높은 방송을 추구해 온 BJ 나다도 마찬가지였다.
“대신에 만약에 박유성 선수가 홈런 치면 그때부터 반말합니다. 아셨죠?”
“네. 좋습니다.”
“자, 유성아! 하나만! 제바아아알!”
BJ 나다가 두 손을 맞잡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 순간 오타니 쇼헤의 손끝에서 새하얀 공이 빠져나갔고.
그 공을 박유성이 기다렸다는 듯이 퍼올렸다.
“어! 크다!”
홈런을 직감한 BJ 나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옆에 있던 추신우가 한마디 했다.
“잡힐 거 같은데요.”
오타니 쇼헤가 던진 공은 몸 쪽 하이 패스트 볼.
스트라이크 존 가장 높은 코스보다 살짝 높게 찍힌 것으로 봐서 방망이 중심에 맞혔다 해도 힘을 싣기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추신우의 예상과 다르게 중계 카메라가 잡은 타구는 계속해서 뻗어 나갔다. 그러고는 높디높은 도쿄 돔 오른쪽 담장 밖으로 사라졌다.
“넘어가나? 가나! 크아아아아! 홈러어어어언! 내가 뭐랬어? 칠 거라고 했죠?”
정영진 회장의 두 팔을 붙잡고 흔들어대던 BJ 나다는 눈을 휘둥그렇게 뜬 추신우를 보며 말했다.
“신우야. 봤어? 이게 야구야. 너 야구 좀 더 배워야겠다.”
“…….”
도쿄 돔이 침묵에 빠진 가운데 박유성은 당당히 그라운드를 돌아 홈플레이트를 밟았다.
그러고는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선수들과 묵직한 하이파이브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