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352화
40. 프리미어 12(6)
도쿄 돔을 찾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도 승리 팀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그래도 한국이 유리하지 않겠어?”
“도쿄 돔이잖아. 유리해도 홈인 일본이 유리하지.”
“한국도 도쿄 돔에서 경기를 많이 치러서 의미가 없을걸? 실제로 지난 아시안 게임 때도 도쿄 돔에서 우승을 차지했었으니까.”
“난 일본이 해볼 만하다고 봐. 림이 안 나왔잖아.”
“선발이 아쉬운 건 일본도 마찬가지야. 오타니보다는 마츠다가 나왔어야 했다고.”
“한국과 일본 모두 이번 대회 결승을 노리고 있으니까 쏭과 마츠다를 아낄 수밖에 없지.”
평소 박유성을 높이 평가해 온 다저스의 스카우트 조나단 짐머맨조차 오늘 경기만큼은 쉽사리 예상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한국이 이기겠죠?”
“그랬으면 좋겠는데 힘들지도 몰라.”
“오타니 때문에요?”
“오타니는 최근 몇 년간 국제대회에 참석하지 않았어. 오타니의 공을 경험한 건 키와 캄, 그리고 포수인 팍 정도라고.”
“하지만 오타니도 전성기는 지났잖아요?”
“전성기는 지났지만 그만큼 경험은 많아. 게다가 최근 3년간 투구 이닝이 많지 않잖아? 단순히 나이만 가지고 오타니를 평가절하할 수는 없어.”
202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 끝나고.
오타니 쇼헤는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투수 복귀를 선언했다.
투타 겸업을 감당하기에는 적지 않은 나이라 타격 쪽에 집중을 해왔지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박유성이라는 신성과 제대로 맞붙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이다.
2029년 70이닝을 소화하며 투수로서의 감각을 끌어올린 오타니 쇼헤는 2030년 100이닝을 던지며 최고 구속을 97mile/h(≒156.1㎞/h)까지 끌어올렸다.
올해도 규정 이닝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시즌 막판 99mile/h(≒159.3㎞/h)을 연거푸 찍어내며 일본 열도를 열광하게 만들었다.
“한국 선발은 어때요?”
“킴? 킴도 좋은 투수지. 당장 메이저리그에서 뛰어도 손색이 없는 투수야. 하지만 문제는 국제 대회 경험이야. 지난 아시안 게임 때도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으니까.”
“일본을 상대로 고전할 거라는 거네요.”
“일본 타자들은 한국 타자들에 비해 컨택트 능력이 좋아. 킴의 공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기력하게 당할 가능성도 낮아.”
“썬을 제외하고 하는 얘기죠?”
“그야 당연하지. 썬을 포함시키고 평균을 내면 한국이 더 낫다고. 하지만 썬은 한 명이잖아. 쏭이나 키, 감 정도가 아니면 오타니의 공을 쉽게 공략하지 못할 거야.”
“그럼 일본이 이기는 거예요?”
미셸 라슨이 조나단 짐머맨을 빤히 바라봤다.
지금까지의 분석만 놓고 보자면 일본 대표팀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다.
하지만 조나단 짐머맨은 대답을 유보했다.
“글쎄. 일단은 썬의 첫 타석을 봐야겠어.”
지난 LA 올림픽 때부터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그리고 이번 프리미어 12까지.
대한민국 대표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LA 올림픽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의 전력은 우승권과 거리가 있었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도 마찬가지.
박유성이라는 신성이 경계 대상으로 떠올랐지만 전반적인 전력은 메이저리그 선수들로 도배한 북중미 국가들보다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결국 우승을 차지한 건 대한민국 대표팀이었고
그 결과를 만들어낸 건 다름 아닌 박유성이었다.
“만약에 첫 타석에서 썬이 오타니를 무너뜨린다면 일본이 원하는 그림은 나오지 않을지도 몰라.”
조나단 짐머맨의 시선이 경기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프리미어 12 개막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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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캐스터 장호영입니다. 오늘은 대한민국과 일본, 일본과 대한민국의 프리미어 12 예선 첫 경기를 중계해 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오늘도 제 옆에는 이선철 해설위원께서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이선철입니다.
-많은 야구팬들이 프리미어 12를 기다려 왔는데요. 하필이면 첫 경기부터 한일전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일본과 같은 조가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조 편성이 갈리더라도 결국은 슈퍼 라운드에서 맞대결을 펼쳐야 하거든요.
-한 경기 한 경기가 중요한 슈퍼 라운드보다는 아무래도 예선 맞대결이 편하겠죠?
-이번 대회는 토너먼트 없이 곧바로 결승전이니까요. 전승 우승이 아니고서야 결승 진출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최대한 많은 경기를 이기는 게 관건입니다. 그런 면에서 가장 중요한 일본전을 먼저 시작하는 게 추후 일정을 소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중계석에서 오프닝 멘트를 주고받는 동안.
중계 카메라가 관중석을 천천히 훑었다.
지난 2029년 월드 베이스볼 이후 2년 만의 맞대결이어서일까.
입추의 여지가 없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빈 곳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렇게 아시아 야구의 성지라 주장하는 도쿄돔을 비춘 카메라가 다시 마운드로 방향을 틀었다.
그곳에는 일본 야구의 레전드, 오타니 쇼헤가 당당히 서 있었다.
-사무라이 제팬의 선발 투수는 오타니 쇼헤 선수입니다.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아시아 최고의 선수 중 한명입니다.
-지난 2025 프리미어 12 이후로 국제 대회에 참가한 적이 없는데요. 이번 대회는 직접 참가 의사를 밝혔습니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 끝나고 박유성 선수와 한번 대결해 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는데요. 설마하니 타자가 아니라 투수로서 맞대결을 하겠다는 뜻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도 올 시즌 투수로서의 활약상은 전성기에 버금간다는 평가가 많은데요.
-사실 오타니 쇼헤 선수는 투수보다 타자로서 더 좋은 성적을 냈습니다. 지난 2021년에 아메리칸 리그 MVP를 받았던 것도 46홈런을 때려낸 결과였고요.
-반면 투수로서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친 시즌은 많지 않은데요. 지난 2022년에 이어 올해 메이저리그 통산 두 번째로 15승을 달성했습니다.
-2022년 15승을 거뒀을 때도 사실 이닝 소화 능력은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28경기에 출전해 166이닝을 소화했으니까요.
-평균적으로 6이닝 이상을 던지지 않았다는 건데요. 그건 올 시즌도 마찬가지입니다. 28경기에 등판해 150이닝을 던졌는데 경기당 5.4이닝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오타니 쇼헤 선수가 시즌 후에 오늘 경기를 위해 체력 관리를 잘해왔다 하더라도 6이닝 이상 투구는 힘들다고 봤을 때 경기 초반이 중요합니다. 나이를 먹었다 하더라도 오타니 쇼헤 선수는 오타니 쇼헤 선수니까요. 최대한 빨리 마운드에서 끌어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때 다시 중계 카메라가 타석을 비췄고.
때를 맞춰 박유성이 타석으로 들어왔다.
-1회 초, 대한민국 대표팀의 공격은 박유성 선수부터 시작됩니다. 올시즌 타율은 0.771. 86개의 홈런과 241타점을 기록했습니다.
-박유성 선수는 뭐 말이 필요 없는 선수죠.
-2029년에 데뷔해 3년 내리 7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 중에 있으니까요. 통산 타율만 0.761에 달합니다.
-4타석에 들어서면 최소한 3번은 안타를 친다는 이야기인데요. 국제 대회 성적은 더 좋습니다.
-지난 LA 올림픽부터 시작해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과 아시안 게임에서 9할이 넘는 타격을 선보였는데요. 아시안 게임을 제외하고는 메이저리그에서 내로라하는 투수들을 상대했습니다.
-지금 마운드에 선 오타니 쇼헤 선수도 분명 대단한 선수이지만 일본 야구를 대표하는 원투 펀치라고 하면 마츠다 유이토 선수와 니키타 쇼우 선수일 텐데 두 선수 모두 박유성 선수를 막지 못했습니다.
-조금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탈탈 털렸는데요. 오타니 쇼헤 선수는 어떤 피칭을 보여줄지 지켜보겠습니다.
“후우…….”
타석에 선 박유성은 길게 숨을 골랐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마운드를 바라봤다.
오타니 쇼헤.
일본 야구의 상징과 같은 위대한 선수를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1회차와 2회차 시절.
오타니 쇼헤는 2025년 이후 국제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4억 5천만 달러라는 계약에 대해 책임감을 느낀 오타니 쇼헤가 소속 팀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당시 한창 세대 교체가 진행됐던 일본 대표팀도 오타니 쇼헤의 뜻을 존중했다.
당연하게도 박유성 역시 오타니 쇼헤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
오타니 쇼헤는 2033년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를 선언했는데 1회차 시절에는 2038년 아시안게임 때 국가대표로 발탁됐고 2회차 때도 2034년이 되어서야 태극마크를 달 수 있었다.
그래서 오타니 쇼헤와의 맞대결은 이루어지지 않을 줄 알았건만.
이렇게 경기장에서 만나니까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건 오타니 쇼헤도 마찬가지였다.
2021년 아메리칸 리그 MVP를 받은 이후로 수많은 아시아 출신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의 문을 두드렸지만.
애석하게도 그들 중에 자신을 뛰어넘은 선수는 없었다.
야구 관련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해서 아시아 야구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늘 쓴웃음을 지어야 했지만 박유성이 등장하면서 할 말이 생겼다.
3년 연속 7할에 타격 8관왕을 차지한 아시아의 괴물.
단순히 한국 리그에서만 잘하는 게 아니라 국제 대회에서는 홀로 경기를 지배하는 최고의 타자.
이런 박유성과 제대로 한번 붙어보기 위해 지난 3년간 마운드 위에서 구슬땀을 흘려야 했다.
그런 오타니 쇼헤의 노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포수 구와하라 세이지는 최대한 신중하게 사인을 냈다.
-오타니 쇼헤 선수가 초구를 던집니다. 바깥쪽 볼. 전광판에 156㎞/h가 찍혔습니다.
-일단 빠른 공으로 박유성 선수의 반응을 체크하려던 것 같은데요. 역시나 박유성 선수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공 좋네.”
바깥쪽으로 살짝 빠져나가는 공을 지켜본 박유성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경기 초반이라 밸런스가 잡히지 않았던지 공이 손끝을 빠져나오는 순간부터 볼이라는 걸 예상하고 타격을 포기했지만.
포수의 미트 속에 꽂히는 무브먼트는 확실히 매서웠다.
“이번에도 바깥쪽이려나?”
다시 타석으로 돌아온 박유성이 방망이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 순간 오타니 쇼헤가 투구판을 박차고 나왔고.
퍼억!
바깥쪽으로 돌아 들어온 공이 스트라이크 존 가장 낮은 구석에 꽂혔다.
-2구는 스트라이크. 오타니 쇼헤 선수가 박유성 선수를 상대로 첫 스트라이크를 잡아냅니다.
-백도어성 슬라이더였는데요. 올 시즌 저 공으로 재미를 많이 보고 있는데 박유성 선수는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혹시 놓친 걸까요?
-그랬을 수도 있지만 원 볼 상황에서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딱히 루상에 주자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어쨌거나 볼 카운트가 원 볼 원 스트라이크로 균형을 이룬 상황에서 이번 3구가 중요해질 것 같은데요. 오타니 쇼헤 선수. 심호흡을 마치고 투구에 들어갑니다. 이번에는 몸 쪽! 이 공을 박유성 선수가 단숨에 걷어냅니다!
오타니 쇼헤의 기합성을 가르며 날아든 공은 따악, 하는 파열음과 함께 1루 쪽 관중석으로 넘어갔고.
관중석 곳곳에서는 아쉬움의 탄성이 쏟아졌다.
전광판에 찍힌 구속은 무려 158㎞/h.
오타니 쇼헤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공을 던졌지만 박유성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