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351화
40. 프리미어 12(5)
세계 최고의 국가 대항전이라 불리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비해 프리미어 12는 격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많았다.
가장 큰 이유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참가 여부.
시즌이 끝난 다음에 치러지는 대회인 데다가 대회 상금이 크지 않고 일본에서 경기가 진행되다 보니 참가를 희망하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손에 꼽혔다.
이대로 가다가 마이너 대회로 전락하게 될 거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프리미어 12 조직위원회는 대회 상금을 대폭 늘렸다.
총상금 3,000만 달러에 우승 상금 1,200만 달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상금 규모를 껑충 뛰어넘었다.
5천만 달러가 넘는 월드컵 우승 상금에 비해 아직 갈 길이 멀긴 했지만.
항공편부터 시작해 숙소와 식사, 연습 환경까지 최고급으로 배려하면서 적잖은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대회에 참가를 한 상태였다.
당초 마이너리그 선수들 위주로 대회를 치르려 했던 미국조차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참가하지 못했던 메이저리그 선수들 위주로 팀을 다시 꾸렸을 정도.
이런 상황에서 선발 로테이션을 잘못 짰다간 지난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꼴이 나게 될지 몰랐다.
“그럼 찬기로 가자고?”
“경험만 놓고 보자면 찬기가 최선이긴 합니다. 다만 지금은 베스트 컨디션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누굴 올리자는 거야?”
“같은 좌완인 혜성이 어떠십니까?”
“혜성이? 김혜성?”
“혜성이는 일본 타자들도 생소할 겁니다. 구위만 놓고 보자면 찬우보다도 좋고요.”
2028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스타즈에 입단한 김혜성은 현재 임찬기의 국가대표 좌완 에이스 자리를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꼽히고 있었다.
임찬기와 김혜성의 체격 조건은 거의 비슷했다.
프로필상 신장은 임찬기가 189㎝에 김혜성이 190㎝.
체중은 임찬기 88㎏에 김혜성이 90㎏이었다.
둘 다 호리호리한 체형이라 모자를 눌러쓰고 선글라스까지 착용하면 멀리서는 구분이 어려울 정도였다.
피칭 스타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둘 다 와일드한 투구폼에 공격적인 투구로 타자들을 힘으로 제압하는 걸 선호했다.
차이가 있다면 프로 경력.
고등학교 졸업 후 2024년부터 1군 무대에서 뛰기 시작한 임찬기는 올해로 프로 8년 차를 맞았다.
2024년 8승 5패로 신인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데뷔 시즌 이후 최악의 성적을 거둔 올해까지 8년간 풀타임을 소화하며 타이거즈 토종 에이스로서의 자리를 지켜왔다.
반면 김혜성은 이제 프로 3년 차 투수였다.
임찬기가 한창 날아다니던 시절에는 동호 대학교에서 입스를 고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더 좋아진 어깨를 가지고 프로에 들어와 승승장구 중이었다.
비록 두 시즌 연속 20승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올 시즌에도 19승 5패 2.11의 평균 자책점으로 팀 동료인 송찬우 다음가는 성적을 거뒀다.
오죽하면 송찬우가 김혜성에게 공개적으로 미안함을 전했을 정도.
“흠……. 혜성이라. 혜성이가 일본을 상대로 버틸 수 있을까?”
“솔직히 말씀드려서 누굴 올려도 큰 차이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슈퍼 라운드까지 본다면 긴 이닝을 소화하기 힘든 찬기보다는 혜성이가 낫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과 일본, 캐나다, 네덜란드가 엮인 A조에서 슈퍼 라운드가 유력한 건 대한민국과 일본이었다.
오타니 쇼헤가 합류한 일본 대표팀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보다 더 강해졌다고 자평하는 중이고.
대한민국 대표팀도 김혜성과 이관우, 김신우 등 젊은 피들을 수혈하며 전력 보강에 심혈을 기울였다.
캐나다와 네덜란드의 전력이 만만치 않은 건 사실이지만 투타의 짜임새와 최근 국제 대회 성적 등을 놓고 봤을 때 대한민국과 일본의 진출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관건은 순위.
개막전으로 열리는 한일전에서 어느 쪽이 승리하느냐에 따라 추후 슈퍼 라운드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
“슈퍼 라운드는 하루 쉬고 바로지?”
“네. 저희는 4일 차 경기가 없어서 하루를 더 벌 수 있습니다.”
4일간 진행되는 조별 예선이 끝나면 하루를 쉬고 곧바로 슈퍼라운드 일정에 들어간다.
6일 동안 B조와 C조에서 올라온 네 팀과 경기를 치러야 하는데 3선발 로테이션을 돌릴 경우 일본전 선발이 슈퍼 라운드 1경기와 슈퍼 라운드 마지막 경기를 책임져야 한다.
“슈퍼 라운드 일정은 아직 안 나왔지?”
“전체적인 일정은 나왔습니다. 다만 순위가 결정되어야 하니까요. 만약에 우리가 일본을 잡는다면 토요일과 월요일, 화요일, 목요일에 경기를 치르게 됩니다.”
“만약에 일본한테 진다면?”
“그러면 일정이…… 일요일부터 시작입니다. 일요일과 월요일, 수요일, 목요일이네요.”
“2위로 올라가면 선발이 하나 더 필요하겠네?”
“일요일 선발을 목요일로 당겨 쓸 수도 있지만 좋은 투수들이 많으니까요. 중간에 대체 선발을 넣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흠…….”
강기태 감독이 길게 신음했다.
지난 아시안게임 때까지만 하더라도 대표팀 투수 운영의 중심은 송찬우와 임찬기였다.
좌완에 약한 나라를 상대로 임찬기를 배정한 다음에 그다음으로 까다로운 나라에 송찬우를 놓으면 끝이었다.
하지만 올 시즌 부진한 임찬기와 국제 대회 경험이 많지 않은 신성 김혜성을 두고 고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지간하면 임찬기를 믿어보겠건만.
앞선 평가전에서 난타를 당한 투수를 일본전에 내는 건 감독으로서 직무유기나 다름없었다.
결국 남은 수는 송찬우와 김혜성.
“찬우를 일본전에 내세우는 대신에 등판 간격을 길게 가져가는 건 어때?”
“그렇게 하면 중간에 필연적으로 대체 선발이 필요합니다. 결승전이 일요일이니까 슈퍼 라운드 4일 차 이전에 찬우를 등판시켜야 하는데 너무 일찍 등판하면 결승까지 컨디션 관리가 어려울 테고요. 결승전에 맞춰서 늦게 등판했다가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여파가 결승전까지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휴식일을 정확하게 맞춰주기 어렵잖아?”
“찬우가 캐나다전에 등판하면 5일을 쉬고 슈퍼 라운드 3경기 때 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5일을 쉬면 결승전이고요.”
“그렇게 딱 맞아떨어지는 거야?”
“일단 결승에 진출한다는 가정하에 가능합니다.”
다소 부침을 겪고 있는 동갑내기 임찬기와 달리 송찬우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 중이었다.
2029년 21승 3패 평균 자책점 2.11을 시작으로 트리플 크라운(다승, 평균자책점, 승률)과 생애 첫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더니.
작년에 22승 3패에 평균자책점 2.09로 커리어 하이 시즌을 썼고.
올해도 21승 4패 평균자책점 1.97로 3년 연속 투수 부분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아직 골든 글러브 시상식이 열리지는 않았지만 이변이 없는 한 3년 연속 골든 글러브 수상이 유력한 상황.
국보급 투수라 불리는 선동연도 현역 시절 자신을 보는 것 같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비록 메이저리그 진출은 포기했지만 송찬우의 실력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물론이고 일본 언론에서도 인정할 정도였다.
만약 지난 대회였다면 최대 라이벌인 일본을 잡기 위해 송찬우 카드를 꺼냈겠지만.
전체적으로 전력이 상향 평준화된 이번 대회에서 에이스 카드는 최대한 잘 활용해야 했다.
“결국 찬기와 혜성이, 둘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한다는 건데…….”
“고민스러우시면 다른 코치들의 의견도 들어보시죠.”
“후우. 좋아, 그렇게 하자고.”
강기태 감독은 코치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소집했고.
오랜 논의 끝에 김혜성에게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
“유성아. 나 일본전 선발이란다.”
“오오, 형. 축하해요.”
“나 갑자기 떨린다. 어떻게 하냐?”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요? 그냥 평소처럼 던지면 되는 거지.”
“평소처럼?”
“형 공 좋아요. 지난 청백전 때 저 삼진 먹을 뻔했잖아요.”
“……3타수 3안타에 홈런까지 때려놓고 놀리지 말아줄래?”
“진짜예요. 그 두 번째 타석에서 말이에요.”
“안 들린다. 안 들려~”
자신 없는 척 엄살을 부렸지만 박유성은 김혜성이 일본을 상대로 잘 던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1회차와 2회차 시절 모두 일본 킬러로서 활약했던 데다가.
3회차 시절의 구위는 앞선 회차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평가전에 앞서 치렀던 청백전에서 상대했던 김혜성의 공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준이었다.
그런 김혜성에게 박유성이 해줄 수 있는 조언은 하나뿐이었다.
“암튼 형. 자신 있게 던져요. 외야로 오는 타구는 내가 책임지고 처리할게요.”
“수비는 그렇다 치고 공격은?”
“그래도 형 일본 킬러 데뷔전인데 기본은 해야죠.”
“기본이면 히트 포 더 사이클? 아니면 홈런 3개?”
“현민이 형하고 짰어요?”
“농담 아니라 그 정도는 해줘야 해.”
“하아. 노력해 볼게요.”
3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이 결전의 땅, 일본으로 향하던 그 시각.
미국 4대 도박 사이트 중 하나인 폭스뱃에서 프리미어 12 우승 배당 포인트를 발표했다.
대한민국 +300
일본 +350
미국 +400
푸에르토리코 +800
도미니카 공화국 +800
베네수엘라 +1,200
소식을 전해 들은 야구팬들은 밤잠을 설쳐야 했다.
└지금 우리가 우승할 가능성이 제일 높다는 거죠?
└네. 300포로 제일 낮습니다.
└300포면 배당이 어떻게 되는 건가요?
└10달러 넣으면 30달러 더 받아서 40달러 받는 겁니다. 그러니까 3배 먹는 거죠.
└3배면 좀 높은 편 아닌가요? 일본하고 별 차이도 안 나는 거 같은데 ㅠ.ㅠ
└이건 참가국 전체 대상으로 해서 그래요. 개최국 일본 제치고 우승 후보로 꼽힌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임.
└아직 한일전 배당은 안 떴나요?
└메가 히트 쪽은 배당률 떴는데 거의 막상막하입니다. 한국이 1.80이고 일본이 1.95예요.
└배당률 차이가 그것밖에 안 나요?
└일본 선발은 오타니 쇼헤고 우리는 김혜성이잖아요. 이 정도면 선방한 거임.
앞서 LA 올림픽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우승해서일까.
국내 야구팬들은 일본전 승리를 확신했다.
반면 일본 야구팬들은 대한민국 대표팀보다 높게 나온 일본 대표팀의 배당에 불만을 쏟아냈다.
└조작이야! 날조라고! (DK351KAB55)
└메가 히트의 직원 중에 춍이 있는 게 틀림없어. 그게 아니고서야 저런 결과가 나올 수가 없다고. (SAR32GQ525)
└나 지금 30분째 새로고침 중이야. 분명 오류야. 다시 정정될 거라고. (Q2W4E12R5T)
└한국과 우리의 배당이 바뀌어서 나왔다는 얘기가 있던데 사실이야? (W23QE1R4Q6)
└다들 적당히 해. 배당은 배당일 뿐이야. 그리고 이 정도면 배당률 차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P145EI6D7K)
└난 우승 배당도 불만이야. 어째서 우리가 한국보다 높은 거야? (J14Q44W6DF)
└한국은 김하선이 빠졌고 기정후와 감백호는 나이가 많아. 게다가 젊은 투수들을 많이 데려왔지. 절대 사무라이 제팬의 적수가 될 수 없어! (JKQ214RY44)
└이번 대회를 통해 리빌딩을 생각하는 나라와 같은 수준으로 취급받는 건 굴욕적이야! (C123SA4D6F)
└어이! 너희들! 이번엔 무조건 이겨야 해! (DK351KAB55)
└기필코 이길 거야. 절대 이길 거야. (V12R5Q82DF)
└애당초 한국에 진다는 거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어. (SAR32GQ525)
└걱정하지 마. 우리에겐 오타니가 있다고. (Y723QW9E7F)
└그런데 오타니로 괜찮을까? 올 시즌 잘하긴 했지만 오타니도 나이가 많아. 체력적으로 힘이 들 거라고. (RQ32W1E45T)
└그런 걱정 할 필요 없어. 한국의 선발 투수는 처음 들어보는 루키니까. (J62W4Q22MD)
└바보. 그 루키가 3년간 57승을 거뒀다고. (DFS231AD23)
└그건 형편없는 한국 리그니까 가능한 거야. 7할 타자가 나오는 리그라고. (J14Q44W6DF)
└아무리 화가 나도 박유성을 무시하는 건 위험해. 박유성은 진짜 잘한다고. (RQ32W1E45T)
└그래봐야 한국에서 잘하는 것뿐이야. 메이저리그 MVP인 오타니의 공은 건드리지도 못할걸? (JKQ214RY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