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350화 (350/412)

타자 인생 3회차! 350화

40. 프리미어 12(4)

“피터 페츠도 다저스를 떠나겠지?”

“다저스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지금 분위기상으로는 이적할 거 같아요. 작년에 딱히 성적이 좋았던 것도 아니니까요.”

지난 2029년.

자이언츠를 잡아내고 지구 우승을 차지할 때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은 다저스가 3년 안에 정상에 설 거라 전망했다.

사이영상에 근접한 에이스 피터 페츠와 탄탄한 선발진, 그리고 중량감 있는 클린업까지.

전력으로 손색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자이언츠에게 다시 지구 1위 자리를 빼앗긴 데 이어 올해 다이아몬드 백스에 밀려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자 다저스를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

지역 언론은 특별한 전력 보강 없이 안주한 결과라며 비난의 수위를 높였고.

성난 다저스 팬들은 구장 앞에 모여들어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좀 웃기지 않냐? 어떻게 피터 페츠하고 크리스 반스하고 나란히 망가지냐?”

“둘 다 그전까지 많이 던졌잖아요. 한두 시즌 쉬어갈 때가 왔나 보죠.”

“너도 그래?”

“저야 아직 어리잖아요.”

“와, 젊은 것도 아니고 어리다고? 좋겠다, 이 자식아.”

다저스의 부진은 에이스 피터 페츠의 부진에서 시작됐다.

2029년, 18승 6패 평균자책점 2.85로 사이영상급 피칭을 선보였던 피터 페츠는 이듬해 14승 9패 3.11이라는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더니 올해는 아예 낙제점을 받았다.

시즌 성적은 12승 10패에 평균자책점 3.33.

승리야 운이 따라야 한다지만 2점대까지 끌어내렸던 평균자책점이 다시 3점대로 치솟고 피장타율과 피홈런이 늘어나면서 몸에 이상이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피터 페츠의 에이전트인 조쉬 애버튼은 피터 페츠라고 항상 잘 던질 수 없는 거라며 열심히 변호를 하는 중이지만.

LA 지역 언론들은 지난해 장기계약이 불발된 것까지 걸고넘어지며 다저스와 피터 페츠의 결별을 부추기고 있었다.

“이러다 레드삭스로 피터 페츠가 가고 다저스로 크리스 반스가 오는 거 아니냐?”

“서로 맞바꿀 수도 있죠. 크리스 반스는 타격도 좋은 편이니까 내셔널리그도 상관없을걸요?”

“투수가 타격이 좋아 봤자야. 오타니 급으로 잘 치는 거 아니면 요즘은 별 메리트 없더라.”

“그래요?”

“물론 그 오타니도 유성이 네 앞에서는 그냥 투잡 선수일 뿐이지만.”

“에이, 그래도 오타니는 오타니죠.”

2021년 46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아메리칸 리그 MVP를 거머쥘 때까지만 해도 오타니 쇼헤를 능가하는 아시아 선수는 당분간 나오지 않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듬해 15승과 30홈런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을 때는 계약 총액 5억 달러의 시대를 열 거라는 찬사까지 쏟아졌고 2023년 시즌 후 10년 4억 5천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에 도장을 찍으며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로서 자존심까지 지켜냈다.

하지만 그런 오타니 쇼헤도 어느덧 은퇴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진한 성적이 신경이 쓰였던지 지난 LA 올림픽부터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아시안 게임까지 연거푸 불참하면서 사실상 일본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그러던 오타니 쇼헤가 이번 프리미어 12 참가를 전격 결정하면서 일본 언론은 박유성과 오타니 쇼헤의 맞대결에 모든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다.

올 시즌.

오타니 쇼헤는 총 28경기에 선발 등판해 15승 7패, 평균자책점 2.81을 기록했다.

타격 성적은 평이했지만 투수로서 제 몫을 다해주면서 에인젤스의 포스트 시즌 진출에 일조했고.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양키즈를 상대로 팀에 유일한 승리를 안겨주었다.

전성기만큼의 구위는 아니지만, 메이저리그 14년 차 투수인 오타니 쇼헤에게 일본 야구팬들이 거는 기대는 상당했다.

하지만 최근 2년간 오타니 쇼헤보다 나은 타격 성적을 거두었던 송현민은 코웃음을 쳤다.

“언제 적 오타니 얘기하는 거냐?”

“그런 얘기 하려면 46홈런 기록부터 깨야 하지 않을까요?”

“홈런은 내가 뒤질지 몰라도 통산 타율은 내가 한참 앞서. 왜 이래?”

투타 겸업을 선언한 오타니 쇼헤의 통산 타율은 3할을 넘기지 못했다.

반면 송현민은 메이저리그 통산 타율이 0.310에 달했다.

아직 4년 차 데이터라 우열을 논하기는 이른 시점이지만 아시아의 타격왕 스즈키 이치이로조차 송현민의 타격 센스에 엄지를 들 정도였다.

물론 그런 송현민도 눈앞에 앉은 박유성에게는 한 수, 아니 세 수쯤 접어야 하는 처지였다.

“우리하고 붙을 때 오타니 쇼헤가 선발로 나온다는 소문이 있더라.”

“정말요?”

“그래. 그러니까 정말로 오타니 쇼헤를 만나면 서비스 확실하게 해 줘.”

“무슨 서비스요?”

“사이클링 히트 정도면 어떨까? 아니면 3연타석 홈런도 나쁘지 않고.”

“올해 오타니 공 좋던데요?”

“내가 붙어봐서 아는데 못 칠 정도는 아니야. 나도 홈런 하나 때렸잖아?”

“정말요? 뭐 쳤는데요?”

“포심. 슬라이더로 꼬시는 거 안 넘어가니까 바로 몸쪽으로 찔러 들어오더라. 그래서 냅다 후려쳤지.”

“오오, 역시 갓현민.”

“그러니까 너도 제대로 보여줘. 오타니 쇼헤가 대회 참가한 걸 후회하게 해주라고.”

2

올해로 5번째 대회를 맞는 프리미어 12에서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이 우승한 건 한 번뿐이었다.

대회 원년인 2015년.

준결승에서 주최국인 일본을 잡은 대한민국 대표팀은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빠진 미국 대표팀을 8 대 0으로 대파하며 초대 우승국의 영예를 안았다.

하지만 이후 3번의 대회 동안 대한민국 대표팀은 우승을 맛보지 못했다.

결승에 진출한 것도 2019년 대회뿐.

2024년 대회와 2027년 대회 때는 일본에 덜미를 잡히면서 4강에서 탈락했다.

반면 주최국인 일본은 초대 대회 결승 진출 실패 이후 3연속 우승을 차지하며 아시아 최강국으로서 자존심을 지켜왔다.

비록 2028년 LA 올림픽 이후 아시아 최강의 자리는 대한민국에게 넘어갔지만.

일본 야구계는 홈에서 열리는 프리미어 12 우승을 통해 실추된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타니 쇼헤가 합류하면서 선발진이 완벽해졌습니다.”

“마츠다 유이토와 니키타 쇼우, 오타니 쇼헤라면 전승 우승도 가능한 상황입니다.”

“한국과 슈퍼 라운드가 아니라 예선에서 만나는 것에 대한 우려가 큰데 전혀 상관없었습니다. 오히려 예선에서 한국을 잡는다면 슈퍼 라운드를 편하게 치를 수 있을 테니까요.”

“한국은 결국 박유성 원맨 팀입니다.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투수가 한 명도 없는데 우승 후보라 불리는 것 자체가 난센스입니다.”

TV를 통해 일본 야구 전문가들의 자신만만한 목소리를 들은 강기태 감독은 쓰게 웃었다.

“일본이 너무 들떠 있는데?”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거의 총동원했으니까요. 거기에 정신적인 지주인 오타니 쇼헤까지 합류했으니 신이 난 것 같습니다.”

“우리 상대로 오타니 쇼헤를 내보낸다는 얘기가 나돌던데 어떻게 생각해?”

“그건 좀 자만 아닐까요? 한창때 오타니 쇼헤라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 서른일곱입니다. 5회까지 버티지도 못할 겁니다.”

올 시즌 15승을 거둔 오타니 쇼헤를 두고 일본 언론은 제2의 전성기에 돌입했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오타니 쇼헤의 모든 지표는 전성기때에 비해 확실히 떨어져 있었다.

28경기 중에 6이닝 이상을 소화한 적은 단 3번뿐이고.

5회를 채우지 못하고 강판당한 경기도 10번이나 됐다.

거기에 휴식일도 넉넉하게 보장받으며 만든 기록이다 보니 지레 겁을 먹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첫 단추를 잘 뀌어야 하는 강기태 감독은 일본과의 개막전이 여러모로 부담스러웠다.

“유성이가 잘해주겠지?”

“별걱정을 다 하십니다. 유성이 때문에 망한 사설 도박장이 몇 개인데요?”

“그래도 또 모르는 거지. 오타니 쇼헤도 일본의 자존심이잖아.”

“저는 전성기 시절 오타니 쇼헤가 와도 유성이한테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병구 수석 코치는 대표팀에 합류하기가 무섭게 타자들을 직접 챙겼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메이저리거 기정후와 감백호, 송현민부터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이동엽과 장태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타자들을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런 이병구 수석 코치도 박유성만큼은 신경 쓰지 않았다.

가만히 놔둬도 요령 피우지 않고 알아서 잘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무엇을 하건 일절 터치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박유성만 특혜를 받는다고 떠들어댔지만.

도미니카 공화국을 비롯해 B조 국가들과 치른 연습 경기에서 박유성이 불방망이를 뽐내자 비난 여론은 언제나처럼 쥐구멍으로 사라졌다.

“점수는 유성이가 어떻게든 뽑아 줄 겁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선발입니다.”

“하아. 선발이라.”

“찬우를 결승전에 쓰려면 일본전은 다른 선수가 나가야 합니다.”

이번 프리미어 12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일본, 캐나다, 네덜란드와 함께 A조에 편성됐다.

당초 일본과 조가 나뉠 거란 의견이 많았지만.

조 편성 직전 프리미어 12 대회 조직 위원회에서 대회 규칙을 일부 변경하면서 대한민국과 일본이 같은 조로 묶이게 됐다.

조 편성이 끝나고 주요 언론들은 A조의 슈퍼 라운드 진출국으로 대한민국과 일본을 꼽았다.

최근 국제 대회를 싹쓸이하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팀이 조 1위로 슈퍼 라운드에 진출할 거라는 전망이 주를 이룬 가운데 마운드의 우위와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린 일본 대표팀의 선전을 변수로 두었다.

반면 캐나다와 네덜란드는 대한민국 대표팀과 일본의 벽에 가로막혀 조별 예선에서 탈락할 것으로 예측됐다.

“그래도 일본인데 찬우가 선발로 나가는 게 낫지 않을까?”

현재 대한민국 대표팀의 에이스는 우완 송찬우.

한때 좌완 에이스라 불리던 임찬기는 한창때만큼의 구위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개막전에서 일본만 잡으면 슈퍼 라운드 진출이 수월해지는 상황에서 팀의 에이스인 송찬우를 내세우는 건 당연한 전략이었다.

다만 그렇게 될 경우 송찬우가 결승전에 등판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었다.

“일본전에 나선 투수가 슈퍼 라운드 1경기와 마지막 경기를 책임져줘야 합니다. 그게 아니면 대체 선발을 써야 하는데 자칫 잘못했다가 승패 동률이 나오면 골치 아파질 수도 있습니다.”

“그건 나도 아는데…… 일본전에 마땅히 내세울 만한 투수가 없다는 게 문제야.”

조별 예선 이후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되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과 달리 프리미어 12는 슈퍼 라운드를 통해 최종 1,2위가 결승전을 치르게 된다.

슈퍼 라운드는 예선 리그의 성적을 떠안고 진행되는데 슈퍼 라운드에 올라가는 팀과의 성적만 인정받기 때문에 일본전의 결과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임찬기의 컨디션이 좋다면 일본전 선발로 임찬기를 등판시켰겠지만.

올 시즌 10승을 겨우 채우고 대표팀에 합류한 임찬기에게 일본전을 맡기는 건 도박처럼 느껴졌다.

“만약에 말이야. 일본전을 내주면 많이 힘들까?”

“1패를 떠안고 가는 거니까 부담스럽긴 할 것 같습니다. 슈퍼 라운드에서 북중미 팀들을 상대해야 하는데 다들 타격이 좋으니까요. 한 경기라도 터지면 경우의 수를 따져가며 싸워야 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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