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349화 (349/412)

타자 인생 3회차! 349화

40. 프리미어 12(3)

지난 2028년.

4년 총액 6천만 달러에 레인저스와 계약을 한 송현민은 계약 말년인 올해 생애 첫 올스타에 선정됐다.

올 시즌 성적은 타율 0.317에 32홈런, 103타점.

5번 타자로 자리를 옮긴 지 2년 만에 30홈런을 넘긴 것이다.

이 정도면 송현민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보여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정작 송현민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러면 뭐 해? 내 기사보다 네 기사가 더 나오는데.”

“형이 MVP 인터뷰를 몇 번 안 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야. 내가 우리 팀에서 MVP 인터뷰 제일 많이 했거든? 그리고 인터뷰할 때 무조건 나오는 질문이 뭔 줄 알기나 해?”

“별로 알고 싶지 않네요.”

“박유성 선수는 잘 지내나요? 박유성 선수는 레인저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알았으니까 거기까지만 해요.”

“뭘 여기까지만 해? 박유성 선수는 뭘 좋아하나요? 박유성 선수에게 레인저스를 추천해 줬나요? 박유성 선수에게…….”

“네에. 네에. 제가 잘못했습니다.”

“짜식이 말이야.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시달리고 있는데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야.”

“와, 그러다 타율 덜 나온 것도 내 탓하겠네요?”

“어떻게 알았냐? 너 때문에 시달려서 타율 까먹은 거?”

루키 시즌에 0.303의 타율을 찍으며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을 차지했을 때.

송현민은 3푼 이상 타율을 끌어올리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국내에 있을 때 통산 타율이 0.331이었고 MVP 시절 0.353까지 때려냈으니 0.333도 충분히 가능할 거라 여겼다.

하지만 레인저스에서 4시즌을 보내면서 송현민은 단 한 번도 0.320 이상을 기록하지 못했다.

2년 차 때 타율을 0.311로 소폭 끌어 올렸지만.

5번 타순으로 옮긴 3년 차 때는 시즌 막판까지 2할대 후반에 머물다가 마지막 경기에 4안타를 몰아치며 0.301을 기록했고.

올 시즌에 FA로이드 효과로 0.317까지 타율을 끌어올렸다.

“그게 왜 내 탓이에요? 레인저스 선수들 탓이지.”

“너 지금 레인저스 무시하냐? 올 시즌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올라갔거든?”

작년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던 레인저스는 대대적인 전력 보강을 마친 뒤 올 시즌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냈다.

99승 63패로 100승을 기록한 양키즈에 이어 아메리칸 리그 2위.

레인저스 팬들은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양키즈를 만나지 않을 경우 그토록 염원하던 월드 시리즈 우승도 가능할 거라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현실은 양키즈 엔딩으로 끝이 났다.

“올해 좀 아깝긴 했죠. 3차전에서 허무하게 무너지지만 않았어도 분위기 잡을 수 있었는데.”

“하아. 그만 얘기해라. 속 쓰리니까.”

“그래도 올해 전력 보강 잘했으니까 내년 시즌 우승 노려볼 수 있지 않아요?”

“우승은 무슨 우승? 다들 무리해서 앓는 소리가 가득한데. 아직 보도는 안 나왔지만 선발 중에 둘은 빠질 거야.”

“설마 그 둘이 훌리오 바르테스와 토니 블레어는 아니죠?”

“뭐야? 뭐 들은 거 있냐?”

“둘이 포스트 시즌까지 고생했으니까 하는 소리죠.”

부상이 유력하다는 훌리오 바르테스는 19승 5패 평균자책점 2.43으로 아메리칸 리그 사이영상이 유력한 우완 투수였다.

188㎝라는 상대적으로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유연함과 역동적인 투구폼으로 98mile/h(≒157.7㎞/h)의 빠른 공을 스트라이크 존에 꽂아 넣는 공격적인 피칭으로 유명했다.

토니 블레어는 레인저스 팜에서 키워낸 미래의 좌완 에이스.

2027년 10승을 찍은 이후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올리며 레인저스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에이스인 훌리오 바르테스에 이어 올 시즌 14승 8패 3.16의 평균자책점으로 활약했던 토니 블레어가 전력에서 이탈하면 레인저스가 올해만큼의 성적을 낼 가능성은 낮았다.

“걔들뿐만이 아니야. 벨트란도 내년 시즌 풀타임 출전이 어려운 상태인데 정작 브룩 로우는 계속 2루에서 뛰겠다고 징징거리니 문제야.”

“포지션 얘기는 끝난 거 아니었어요?”

“끝났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언론이 브룩 로우를 너무 좋아해. 그래서 나도 다른 팀 알아보는 중이고.”

“레인저스가 형 안 잡아요?”

“잡긴 하겠지. 그런데 내년 시즌에 브룩 로우도 옵트 아웃이거든. 내가 남으면 브룩이 나갈걸?”

송현민이 오기 전까지 레인저스의 2루수 자리를 지키고 있던 건 국가대표 2루수 브룩 로우였다.

수비 능력만큼은 메이저리그 2루수들 중에 최고라고 평가받고 있고 두 자릿수 홈런이 가능한 장타력까지 겸비하고 있어서 레인저스에는 송현민의 자리가 없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브룩 로우가 송현민을 위해 2루수 자리를 양보하면서 극적인 영입이 이루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름다운 동행이 가능할 것 같았지만.

유격수 포지션으로도 모자라 하비에르 벨트란을 대신해 3루수까지 커버해야 하자 브룩 로우의 입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강타자들이 즐비한 코너 내야수로 몰리면 추후에 입지 보전이 어려워질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레인저스 입장에서는 브룩보다 형이 나을 텐데요?”

“꼭 그렇지도 않아. 브룩은 연봉이 나보다 적잖아. 옵션 보너스도 거의 받은 적이 없고. 반대로 난 이번에 재계약하면 연평균 2천만 달러부터 시작할 텐데 프랜차이즈 스타나 다름없는 브룩 쪽으로 기울겠지.”

“4시즌 동안 홈런을 100개 넘게 때려낸 타자를 대신해서 커리어 통산 타율이 0.270도 안 되는 타자를 잡는다고요?”

“작년에 지출이 많았잖아. 게다가 올해는 너까지 있으니까 불필요한 지출은 최대한 줄이고 갈 생각인가 봐.”

“재밌네요.”

“재밌지? 너하고 날 바늘과 실 같은 사이로 엮을 때는 언제고 막상 금전적으로 쪼들릴 거 같으니까 딴 생각하는 거 말이야.”

“형하고 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죠.”

“짜식. 빈말이라도 고맙다.”

“진짠데요? 솔직히 형이 레인저스 있어서 레인저스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었는데 빼야겠네요. 내가 연봉을 받아도 형보다 훨씬 더 받을 텐데 나중에 나한테도 그럴 거 아니에요?”

“고마우면서도 짜증 나는 이유는 뭘까?”

“기분 탓이에요.”

레인저스 입장에서 최선은 간판타자인 하비에르 벨트란의 대체 자원을 구하는 것이다.

99년생인 하비에르 벨트란은 내년에 서른셋.

아직 에이징 커브를 겪기에는 이른 시점이지만 내후년에 6년 계약이 끝난다는 걸 감안했을 때 미리 후계 선수를 키워두는 편이 나았다.

2년 후에 하비에르 벨트란과 재계약을 하더라도 3루수보다는 1루수나 지명 타자로 기용될 터.

그렇다면 브룩 로우를 아예 붙박이 유격수로 쓰고 메이저리그 적응을 완벽하게 끝낸 송현민을 2루수 겸 클린업으로 기용하는 게 최선이다.

그런데 송현민과 브룩 로우를 두고 저울질을 하고 있으니 당분간 올 시즌만큼의 성적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도 레인저스하고 협상은 해 줘라.”

“형 잡을 돈도 없는데 협상이 되겠어요?”

“내가 그동안 입 턴 게 좀 있거든. 그러니까 립서비스라도 좀 해 줘라.”

“오히려 그러다가 나중에 딴 팀 가면 욕을 더 먹지 않을까요?”

“그런가?”

“그보다 형은요? 형은 어디로 갈 생각이에요?”

“나야 일단 네 계약 끝나고 나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삼촌도 너 하나 케어하기 벅찰 텐데?”

송 에이전시의 1호 계약 선수는 송현민이지만.

박유성의 계약을 앞둔 상황에서는 제아무리 송현민이라 해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현재 송현민은 메이저리그에서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며 대한민국 최고의 메이저리그 타자 소리를 듣고 있었다.

물론 그 앞에 시한부나 박유성 이전이라는 수식어가 덧붙긴 했지만.

지금 당장 송현민이 다른 팀을 알아보겠다고 나선다면 빅마켓 구단들이 앞다투어 달려들 가능성이 높았다.

“형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감동인데요?”

“감동할 거 없어. 나뿐만 아니라 올 시즌 FA 시장은 네 계약 끝날 때까지 올 스톱인데 뭘.”

“만약에 말이에요. 날 영입하는 팀에서 형까지 영입한다면 어떨 거 같아요?”

“나까지? 그럼 땡큐지. 못해도 메이저리그 우승 반지로 타노오스 놀이는 할 수 있잖아?”

타노오스는 마브르 유니버스에 등장하는 절대적인 존재.

6개의 초월보석이 박힌 건틀릿으로 세상을 파괴하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다.

“우승 반지 6개면 되겠어요?”

“양손 가득 끼면 더 좋겠지만 나는 나이가 있잖아. 앞으로 10년만 더 뛰어도 감지덕지지.”

2004년생인 송현민은 올해로 스물여덟.

메이저리그에서 10년을 더 버티면 서른여덟이다.

아시아 출신 타자들 대부분이 서른다섯 이전에 에이징 커브를 겪게 되는 만큼 송현민이 지금처럼 활약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7년 정도였다.

그 7년 중에 우승 반지를 하나라도 껴 보는 게 개인적인 목표였는데 박유성과 함께라면 7시즌 연속 우승도 가능할 것 같았다.

비록 미국에서 박유성의 경기를 지켜봤지만.

지난 3년간 박유성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경이로움을 넘어 경악에 가까웠다.

아시아 선수를 깔보던 몇몇 팀 동료들조차 박유성의 이야기가 나오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양손 엄지를 추켜들 정도였다.

그런 박유성이라면 메이저리그 중하위권 팀도 얼마든지 우승권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박유성과 한 팀에서 뛰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떤 팀이건 박유성을 영입하려면 운용 가능 자금 대부분을 털어 넣어야 할 터.

그렇게 되면 연평균 2500만 달러 정도를 노리는 자신을 잡을 수가 없었다.

“너하고 같이 뛰면 참 좋은데…… 솔직히 힘들 거야.”

“또 모르죠. 대대적인 리빌딩을 준비하는 팀이 나올지도요.”

“레드삭스 말하는 거야?”

“레드삭스도 그렇고 다저스도 가능하고요.”

박유성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메리칸 리그 최강자로 군림하던 레드삭스는 지난해와 올해 포스트 시즌에서 탈락했다.

가장 큰 이유는 에이스 크리스 반스의 부진.

작년 하반기에 팔꿈치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하더니 올 시즌에는 시즌 절반을 넘기고 합류해 8승 5패, 평균자책점 3.33에 그쳤다.

“그런데 레드삭스가 크리스 반스를 버릴까?”

“대체 선수가 없다면 모르겠지만 코비 스펜스가 있으니까요.

크리스 반스가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허덕이는 동안.

제2의 크리스 반스라 불리던 코비 스펜스가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지난해 10승 6패 평균자책점 3.11로 아메리칸 리그 신인상을 받은 코비 스펜스는 올 시즌 14승 7패, 2.85의 성적을 찍으며 벌써부터 차세대 에이스 소리를 듣고 있었다.

부상에서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크리스 반스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

과거에도 그랬지만 크리스 반스가 레드삭스를 떠날 가능성이 높았다.

7년간 총액 2억 달러를 받기로 한 크리스 반스가 이적하면 그만큼 추가로 전력을 보강할 여유가 생길 터.

박유성 영입 준비가 끝났다며 큰소리를 쳐 온 레드삭스인 만큼 송현민을 추가 영입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해 보였다.

다저스의 상황도 양키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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