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343화 (343/412)

타자 인생 3회차! 343화

39. 카운트다운(11)

1회에만 4실점을 한 로메오 클레멘스는 3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강판을 당했고 경기는 스타즈의 11 대 0, 완승으로 끝이 났다.

경기 MVP는 4타수 4안타에 2홈런을 때려낸 박유성에게 돌아갔다.

“오늘도 박유성이 박유성 한 경기였습니다. 오늘의 MVP, 박유성 선수 만나보겠습니다. 박유성 선수, 오늘 승리 축하드려요.”

“네. 감사합니다.”

“오늘 첫 타석에서 이번 시즌 첫 홈런을 때려내셨는데요.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가 워낙에 컨트롤이 좋은 투수라서요. 유인구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초구부터 3구까지 공 3개를 연거푸 골라내셨는데요. 박유성 선수가 보기에 전부 볼이었나요?”

“오늘 구심을 보신 박영철 심판이 스트라이크를 선언하지 않았으니까 볼이라고 봐야겠죠.”

“3볼 이후에 연달아 바깥쪽으로 빠른 공이 들어왔습니다. 노리던 공이 아니었나요, 아니면 치기 어려운 공이었나요?”

“둘 다였던 것 같습니다.”

3회차 야구 선수이기 이전에 2년 차 신인으로서 박유성은 최대한 말을 아꼈다.

하지만 인터뷰를 지켜보는 야구팬들은 채팅을 통해 박유성어를 해석하며 웃고 떠들었다.

└구심이 스트라이크를 선언하지 않았다 >> 당연히 볼이니까 스트라이크를 선언하지 않았겠죠?

└ㅋㅋㅋㅋ

└이거지! ㅋㅋㅋ

└둘 다였던 것 같습니다 >> 둘 다 아님.

└그것보다는 노리던 공은 아니지만 내가 못 칠까? 이거임

└ㅋㅋㅋ

└유성어 전문가들 다 모였네. ㅋㅋㅋ

└그런데 박유성은 왜 맨날 인터뷰 저렇게 함?

└저렇게 안 하면 기레기들이 물어뜯으니까요.

└박유성도 인터뷰 할 때마다 개피곤할 듯.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이번 시즌도 거의 전 경기 인터뷰해야 하죠~ ㅋㅋㅋ

“마지막으로 경기장을 찾아주신 팬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오늘 찾아와 주신 팬분들에게 이기는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어서 기분 좋고요. 모든 경기를 다 이길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많이 이기는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유성의 인터뷰가 끝이 나자 자리를 지키고 있던 스타즈 팬들이 기립 박수를 쏟아내자 자이언츠의 스카우트 존 쿠퍼가 혀를 내둘렀다.

“썬의 인기가 어마어마한데요?”

“당연하지. 썬은 한국의 슈퍼스타니까.”

“오늘 활약도 인상적이었어요.”

“당연하지. 썬은 한국의 슈퍼스타니까.”

옆에 앉은 선배 스카우트 던 마일러가 장난스럽게 대답하자 존 쿠퍼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정작 던 마일러는 당연한 것에 놀라워하는 존 쿠퍼가 더 어이없었다.

“오늘 썬은 말이야. 평소와 크게 다름없는 활약을 펼쳤어.”

“평소와 크게 다름없다고요? 홈런을 2개나 때려냈는데요?”

“그건 로메오 클레멘스가 승부를 걸어줬기 때문이야. 썬은 승부를 피하지 않는다고.”

지난해 박유성이 때려낸 홈런은 74개.

경기당 0.5개꼴이니까 한 경기에 2개를 친 건 평소보다 잘한 것처럼 느껴질지 몰랐다.

그러나 지난 시즌 내내 박유성을 따라다녔던 던 마일러의 생각은 달랐다.

“썬은 무리해서 홈런을 때려내는 타자가 아니야. 정확하게 말하자면 홈런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 타자라고.”

“썬의 안타 대비 홈런 비율이 다른 홈런 타자들에 비해 낮은 건 사실이죠.”

“아직도 그런 바보 같은 데이터를 운운하는 거야? 안타 대비 홈런 비율은 애매할 때나 따지는 거야. 마크 스테리와 로비 마르티네즈 중에 누가 더 잘했지?”

“작년 기준으로 따지자면 로비 마르티네즈 아닐까요? 마크 스테리보다 더 많은 안타를 때려냈으니까요.”

“그래. 그래서 로비 마르티네즈가 마크 스테리를 제치고 MVP를 받았지. 그런데 왜 썬의 성적을 존중하지 않는 거야? 썬은 지난해 전 세계 프로 선수 중에서 가장 많은 안타와 가장 많은 홈런을 때려냈다고. 심지어 1번 타자로 출전해 217타점과 202개의 볼넷을 기록했어. 그런데 왜 안타 대비 홈런 비율 같은 걸 따지는 거야?”

“그야…….”

뭐라 변명하려던 존 쿠퍼는 입을 다물었다.

아시아 출신 선수들이 북중미 선수들에 비해 장타 생산 능력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지만.

지난 시즌 전 세계 야구 팬들을 경악하게 만든 박유성에게까지 그 잣대를 들이미는 건 자신이 생각해도 억지스러워 보였다.

게다가 장타율만 놓고 봤을 때 박유성의 장타 능력이 떨어진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지난 시즌 박유성의 장타율은 무려 1.631.

장타율에서 타율을 뺀 순장타율은 0.882였다.

390개의 안타 중에 2루타 이상의 장타만 265개.

거기에 무관심 도루 포함 200번 이상 베이스를 훔치면서 제 발로 스코어링 포지션에 나갔으니 실질적인 장타 생산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런 박유성을 깎아내리기 위해 일부 언론과 스카우트들이 홈런으로 트집을 잡는 중이지만.

설사 박유성이 메이저리그로 넘어와서 송현민급의 홈런 생산 능력을 보여준다 하더라도 박유성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존 쿠퍼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자 던 마일러가 피식 웃었다.

지난 시즌 활약상을 보고도 박유성을 평가절하하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었지만.

존 쿠퍼처럼 새롭게 합류한 스카우트들은 여전히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요즘 스카우트들 사이에서 올 시즌 썬의 성적 내기가 유행이라며?”

“유행……까진 아니고 많이들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존, 너는 했어?”

“내기 같은 건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안 했어?”

“정말입니다. 그럴 돈도 없고요.”

존 쿠퍼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박유성의 시즌 성적을 놓고 대형 도박 업체들까지 나서서 판을 연 상황이다 보니 함부로 발을 들이기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정작 던 마일리는 일찌감치 내기에 낀 상태였다.

“난 했는데?”

“네?”

“난 했어. 나에겐 확실한 데이터가 있거든.”

씩 웃는 던 마일리를 보며 존 쿠퍼는 괜한 배신감이 들었다.

자신에게는 쓸데없이 사고 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 당사자가 뒤에서는 몰래 관찰 대상의 성적을 두고 내기나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어디에 거셨습니까?”

“나? 지난 시즌보다 성적이 더 나올 거라는 데 걸었지.”

“타율만요?”

“아니. 모든 부분에서.”

“농담이죠?”

“내가 그런 재미없는 농담을 할 것 같아?”

“정말 썬이 지난 시즌보다 더 잘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존 쿠퍼가 던 마일리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러자 던 마일리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지난 시즌에 썬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잘했어. 포스트 시즌에서는 완벽에 가까운 활약을 펼쳤다고.”

“지난 시즌 타율이 무려 0.749에요. 4타석 중에 3번은 안타를 때렸다고요.”

“그래서? 그게 뭐가 어떻다는 거야? 지난 시즌 썬의 퍼포먼스는 우연도, 조작도 아니었어. 순수 실력으로 엄청난 활약을 펼친 거라고. 심지어 썬은 루키였어.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그만큼 해낸 거야.”

“설마 큰돈을 건 건 아니죠?”

“스카우트들끼리 가볍게 하는 내기인데 무슨. 100달러 정도 걸었어. 그때 가진 게 딱 100달러였거든.”

“그나마 다행이네요.”

“왜? 내가 돈을 잃을 것 같아서 그래?”

“썬은 지난 시즌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어요. 현실적으로 지난 시즌을 능가할 가능성은 낮다고요.”

해가 바뀌고 메이저리그 주요 언론들과 데이터 분석 기관에서 박유성의 2030시즌에 대한 전망을 늘어놓았다.

2029년 성적 예측에 전부 실패한 터라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였지만.

거의 모든 매체에서 2029년 시즌보다 낮은 시즌 성적을 전망했다.

시즌 타율은 0.550에서 0.600 정도.

시즌 홈런은 60개에서 70개 정도.

박유성이 대한민국 야구계에 이어 메이저리그의 각종 기록들을 갈아 치울 거라고 호들갑을 떨던 ESPM조차 0.588의 타율과 67개의 홈런을 예상할 정도였다.

하지만 현장에서 박유성의 활약상을 두 눈으로 지켜본 던 마일리의 생각은 달랐다.

지난해 박유성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참가하느라 스프링 캠프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MVP를 수상하며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에 사상 첫 우승을 안겨주었지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활약한 선수들이 막상 시즌에 들어가면 부진에 빠지는 것처럼 박유성도 준비 부족에 따른 후유증을 겪을 거라 내다봤다.

실제로 4월과 5월, 뜨거운 불방망이를 휘두르던 박유성은 6월과 7월 주춤하다가 8월 이후에 다시 반등했다.

그래서 스프링 캠프를 끝까지 소화한 올해는 시즌 초반만 잘 넘기면 작년 후반기의 퍼포먼스를 재현할 거라 예상하고 과감하게 역배당에 100달러를 걸었던 것이다.

“존. 오늘 로메오는 어땠어?”

“로메오요? 글쎄요. 한 경기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여러모로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공은 나쁘지 않았잖아?”

“작년보다는 잘 준비한 느낌이 들긴 했습니다. 하지만 썬과의 승부가 좋지 않았어요. 첫 타석에서 홈런을 맞은 건 그럴 수 있다 쳐도 두 번째 타석에서 초구에 2타점 2루타를 얻어맞은 건 최악이었다고요.”

“그래서? 로메오를 포기할 생각이야?”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다른 팀을 상대로 오늘 같은 경기력을 보여준다면 다른 투수를 알아보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다저스에 밀려 지구 우승에 실패한 자이언츠는 시즌 종료 후 로메오 클레멘스와 접촉했다.

비록 MVP를 탔던 2028시즌만큼은 아니었지만 17승 7패에 2.76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한 로메오 클레멘스가 다시 자이언츠의 선발진에 합류해 준다면 다저스와의 지구 우승 경쟁이 한결 수월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2+2년 계약에 묶여 있던 로메오 클레멘스는 친정 팀의 복귀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계약상 1년을 더 뛰어야 하니까 내년 시즌 끝나고 이야기를 하죠. 어때요?”

랜더스와의 계약을 떠나 자이언츠가 제안했던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로메오 클레멘스는 일찌감치 개인 훈련을 소화하며 몸만들기에 나섰다.

덕분에 슬로우 스타터라는 오명을 벗고 개막전부터 150㎞/h 전후의 빠른 공을 던질 수 있었다.

“로메오는 다음 경기에 잘할 거야.”

“어떻게 장담하죠?”

“썬 말고 로메오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는 타자는 많지 않아. 개인 기량만 놓고 봤을 때 로메오는 한국 리그에서 뛰는 투수들 중에 첫손에 꼽힌다고. 썬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고 해서 평가절하해서는 곤란해. 썬에게 얻어맞지 않은 투수가 없으니까.”

“그럼 던은 올 시즌 로메오가 얼마나 잘할 거라고 예상해요?”

“글쎄. 스타즈와 썬이 있으니까 재작년만큼 잘하긴 어렵겠지만 최소한 작년보다는 나은 성적을 거두겠지. 18승에 평균 자책점 2.5 정도? 물론 리그 우승은 스타즈가 차지할 거야. 랜더스는 잘하면 3위 정도? 올해 새로 영입한 용병 투수가 얼마나 해주느냐가 관건이겠지.”

대수롭지 않게 끄덕이고 넘겼던 던 마일러의 예상은 현실이 됐다.

로메오 클레멘스는 지난 시즌보다 향상된 18승 6패, 2.53의 평균 자책점으로 자존심을 지켰고.

랜더스는 새로 영입한 외국인 투수, 로스 라이트의 준수한 활약(16승 7패. 2.89)에 힘입어 타이거즈를 밀어내고 리그 3위로 포스트 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랜더스의 분전도 스타즈의 독주를 막지 못했다.

125승 25패.

지난 시즌보다 무려 2승을 더 챙긴 스타즈는 8월 말에 일찌감치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박유성은 지난 시즌 자신이 세운 모든 기록들을 갈아 치우며 생에 두 번째 MVP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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