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341화
39. 카운트다운(9)
-1회 말 스타즈의 공격은 톱타자 박유성 선수부터 시작됩니다. 지난 시즌 0.749의 타율에 74홈런, 134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리그 신인상과 MVP, 골든 글러브를 차지했습니다.
-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이보다 더 대단한 선수가 또 나올까 싶은데요. 무려 타격 8관왕을 달성했습니다.
-작년 개막전에서 3타수 3안타에 홈런 2개를 때려내며 화려한 데뷔전을 치렀는데요. 이선철 해설위원은 박유성 선수가 이렇게 잘할 거라고 예상하셨습니까?
-솔직히 예상 못 했습니다. 지난 시즌 성적은 만화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성적이니까요. 물론 박유성 선수가 시즌 MVP 경쟁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긴 했지만 무려 7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박유성 선수가 올 시즌에 더 나은 성적을 내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지난 골든 글러브 시상식 때 작년보다 안타 하나라도 더 치겠다고 말을 했었는데요. 어제 있었던 미디어 데이에서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만큼 시즌 준비를 잘 해온 것 같고요.
-확실히 키도 크고 체격도 탄탄해진 느낌입니다.
-본인 말로 키가 2㎝ 정도 컸다고 하고 체중은 5㎏ 정도 불렸다고 하는데 겉보기에는 아직도 호리호리한 느낌이 들거든요? 하지만 저래 보여도 지난 시즌 74개의 홈런을 때려낸 프로 야구 최고의 강타자입니다.
-이에 맞서는 랜더스의 선발 투수는 에이스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입니다. 재작년에 22승 4패로 나눔 리그 MVP를 차지했고 지난 시즌에도 17승 7패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지금 재작년 MVP와 작년 MVP의 맞대결이라는 자막이 나오고 있는데요. 일단 지난 시즌은 박유성 선수가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를 압도했는데 이번 시즌은 어떨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가 초구를 던집니다. 초구는 볼. 149㎞/h의 빠른 공이 스트라이크 존을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갑니다.
초구를 가볍게 흘려보낸 박유성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보다 일찍 시즌을 준비한 덕분인지는 몰라도 작년 개막전 때보다 구속도 빠르고 무브먼트도 좋아졌다.
만약에 작년 개막전 때 이 공을 봤다면 아마 방망이를 휘둘렀을 터.
하지만 상대에 대한 데이터를 쌓은 건 로메오 클레멘스만이 아니었다.
-2구도 볼. 이번에는 몸 쪽 낮은 코스를 파고들었습니다.
-이번 공은 슬라이더였는데요. 시도는 좋았습니다만 너무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좌타자가 공략하기에는 몸 쪽으로 붙었다는 말씀이신데요.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 저런 공이 들어왔다면 평범한 좌타자들은 방망이가 나갔을 겁니다. 하지만 원 볼 상황에서 저런 공에 속을 타자는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럼 볼 배합의 문제일까요?
-박유성 선수가 초구에 반응하지 않으면서 전체적인 레퍼토리가 꼬인 느낌이 듭니다. 만약에 초구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거나 파울이 났다면 방금 전 2구는 다음 공을 위한 목적구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초구가 볼인 상황에서 2구를 저렇게 어렵게 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네요.
-그만큼 타석에 선 박유성 선수가 대단하다는 방증 같은데요. 말씀드리는 순간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가 3구를 던집니다. 이번에도 볼! 몸 쪽 높은 코스에 공이 꽂힙니다.
“젠장할!”
박유성이 또다시 볼을 골라내자 로메오 클레멘스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지난 시즌 박유성에게 고전했던 이유를 분석하다가 하이 코스 공략에 소극적이었다는 걸 확인하고 과감하게 공을 때려 넣었는데 그것까지 골라내니까 짜증이 치밀었다.
하지만 박유성도 스프링캠프 때 만난 송현민에게 하이 코스에 대한 조언을 받은 상태였다.
“유성아. 너 이 기사 봤냐?”
“이게 뭔데요?”
“한 애널리스트가 너에 대해 쓴 건데 너 몸 쪽 높은 코스 공에 약하다던데?”
“높은 코스요?”
“여기 보면 나와 있잖아. 하이 패스트 볼에 파울이 난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난 이거 일부러 파울 낸 줄 알았는데 아니었냐?”
“그런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겠죠?”
“암튼 메이저리그에서는 약점으로 지적받으면 집요하게 노리고 들어오거든? 그러니까 신경 좀 써. 다른 코스의 공은 그러려니 하겠는데 몸 쪽 높은 공은 위험하잖아.”
“그렇죠. 잘못 맞으면 시즌 아웃 행이잖아요.”
“빈볼뿐만 아니라 파울 타구 잘못 맞아도 오래 간다. 게다가 메이저리그 애들은 이상한 공 많이 던지잖아? 어떤 미친놈은 싱커를 얼굴 옆으로 붙이기도 한다니까?”
박유성은 송현민의 조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40년의 경험치를 가지고 맹활약한 프로야구와 달리 메이저리그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
경험치가 쌓이기 전까지는 오직 실력만으로 버텨야 하기 때문에 성적에 악영향을 끼칠 만한 나쁜 습관들은 미리 고쳐두는 편이 나았다.
그렇게 높은 코스의 공을 의식하며 히팅 존을 재설정하다 보니 로메오 클레멘스의 유인구에도 속지 않을 수 있었다.
-이제 노 스트라이크 쓰리 볼 상황인데요.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가 어떤 공을 던질까요?
-다른 투수라면 볼이 되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다시 한번 유인구를 던지겠지만 글쎄요.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가 개막전 첫 타석부터 박유성 선수를 볼넷으로 거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승부를 할 거라는 말씀이신데 던질 공이 있을까요?
-지금 박유성 선수를 압도할 만한 공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박유성 선수도 지난 시즌에 10할을 친 게 아니거든요?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를 상대로도 0.789를 기록했습니다.
-19타수 16안타를 때려냈고 그중 3개가 홈런이었습니다.
-그걸 바꿔 말하자면 3번은 아웃카운트를 잡아냈고 또 13번은 홈런을 맞지 않았으니까요.
-불리한 상황이지만 과감한 승부를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로 이끌어내는 게 최선이라는 말씀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이미 박유성 선수는 피해도 답이 없다는 걸 지난 시즌에 겪어봤으니까요. 올 시즌에는 차라리 맞는다고 전부 안타가 되는 건 아니라는 야구 속설에 기대 싸워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포수 임기성이 벤치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랜더스의 박전권 감독도 편하게 승부하라는 사인을 냈다.
지난 시즌 직후.
SG그룹 정영진 회장은 그토록 소원하던 박유성과 따로 식사를 즐겼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시즌 초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을 사과하며 프로야구 흥행을 위해 서로 최선을 다하자고 약속했다.
구단주가 식사 중에 내뱉은 대부분의 말들이 미튜브 영상으로 편집되어 공개가 된 마당에 개막전부터 박유성을 볼넷으로 거를 수는 없는 노릇.
“그냥 한 점 주고 시작한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해.”
벤치의 의중을 확인한 임기성은 바깥쪽 낮은 코스의 투심 패스트 볼을 주문했다.
구사하기 까다로운 코스지만 제대로만 들어와 준다면 박유성의 방망이를 충분히 잡아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인을 확인한 로메오 클레멘스도 단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박유성을 무섭게 째려본 뒤에 있는 힘껏 투구판을 박찼다.
후앗!
낮게 출발한 공이 한복판을 지나 바깥쪽으로 꺾이듯 움직이자 박유성은 그대로 방망이를 멈췄다.
현재 볼 카운트는 3볼.
스트라이크를 하나도 잡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방망이를 휘두를 이유가 없었다.
-4구는 스트라이크! S존 모서리에 정확하게 찍힙니다.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가 정말 좋은 공을 던졌네요. 괜히 300만 달러를 받는 게 아닙니다.
-이번 공도 박유성 선수가 지켜만 봤는데 원하던 코스가 아니었을까요?
-박유성 선수 입장에서는 쳐봐야 좋을 게 없는 코스의 공이었습니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였다면 어떻게든 걷어냈겠지만 지금은 볼카운트가 쓰리 볼이니까요. 무리해서 건드렸다가 타격 밸런스를 흐트러뜨리기보다는 다음 공에 대비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만약에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가 저 공을 다시 던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글쎄요.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의 컨트롤이 좋다고 하더라도 방금 공과 똑같은 공을 다시 던지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물론 엇비슷하게는 던질 수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되면 빠지는 볼이 되거나 박유성 선수의 방망이에 걸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한번 핀포인트를 정확하게 노리지 못하는 이상 여전히 주도권은 박유성 선수에게 있다는 말씀이신데요.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서도 커트 신공으로 버티면서 홈런을 때려내는 타자이지 않습니까? 스트라이크 하나 잡은 것으로 달라질 건 없을 겁니다.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아 경기를 지켜보던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방금 공은 끝내주는데?”
“그러게. 저 정도면 전성기 시절 로메오로 돌아왔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메츠에서 괜히 로메오 클레멘스에게 관심을 갖는 게 아니라니까?”
“어디 메츠뿐이야? 자이언츠도 노리고 있잖아.”
“그런데 로메오 4년 계약 아니야?”
“2+2년 계약이라 올 시즌 후에 옵트 아웃을 행사할 수 있다나 봐. 99년생이니까 메이저리그로 돌아오려면 올해뿐이겠지. 4년 계약을 다 채우고 나면 너무 늦어.”
“그나저나 썬은 작년보다 컨디션이 더 좋아 보이는데?”
“썬은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가 진짜였어. 후반기의 썬에 비하자면 전반기의 썬은 루키스러웠다고.”
주변의 이야기를 듣던 다저스의 스카우트 미셸 라슨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조나단 짐머맨을 바라봤다.
그러자 조나단 짐머맨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또 뭐야?”
“방금 공이요.”
“방금 공이 왜?”
“스트라이크잖아요?”
“그래서?”
“로메오가 잘 던진 거 아니에요?”
“방금 공만 놓고 보자면 그렇겠지.”
“……?”
“하아. 중요한 건 방금 공이 3볼에서 나왔다는 거야.”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던진 거 아니었어요?”
해가 지나면서 미셸 라슨은 5년 차 스카우트가 됐다.
5년 차 정도면 이제 사수 없이 혼자 돌아다니며 경기를 봐야 했지만 미셸 라슨의 옆에는 여전히 조나단 짐머맨이 함께하고 있었다.
“미셸. 내가 결과만 보지 말라고 했지?”
“제가요?”
“방금 공은 로메오가 메이저리그 시절에 종종 던지는 공이었어. 좌타자를 상대로 몸 쪽 공을 붙여 유리한 볼카운트를 만들어낸 뒤에 방금처럼 꼼짝 못 할 공을 던졌다고.”
“그러니까 결정구 같은 거네요.”
“그래. 결정구야. 그런데 그 공을 로메오는 왜 3볼이 되고 나서야 던졌을까?”
“그건…… 상대가 썬이라서요?”
“100점짜리 같은 빵점짜리 답이야.”
“썬이라서 어렵게 승부한 게 맞잖아요?”
“그건 메이저리그 선수들로 구성된 미국 대표팀이 세계 최강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하지만 결과는 어때? 지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누가 우승했지?”
“그야…….”
“썬을 그렇게 단순하게 판단해서는 절대 좋은 스카우트가 될 수 없어. 넌 지금도 썬이 지난 시즌 0.749의 타율을 친 것 때문에 높이 평가할 뿐이잖아. 아니야?”
“…….”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겠지. 그래봐야 어차피 한국 리그에서의 성적일 뿐이잖아.”
“미안한데 제 흉내는 내지 말아줄래요? 그리고 저 그렇게 말한 적 없거든요?”
“그러니까 좀 더 제대로 보라는 거야. 로메오 클레멘스는 3구까지 전부 썬이 약한 코스에 공을 던졌어.”
“썬이 약한 코스요? 그런 게 있어요?”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약한 코스야. 썬은 모든 히팅 존에서 6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