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340화
39. 카운트다운(8)
내년 시즌 박유성의 활약을 섣불리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30억이라는 계약 소식이 전해지자 야구계가 술렁였다.
“30억? 그러니까 60배를 올려준 거야?”
“미쳤네. 미쳤어. 스타즈가 아주 미쳐가는구나.”
“신성 그룹에서 오더 내린 건가?”
“그게 뭐가 중요해? 이미 기사가 났는데.”
지난 LA 올림픽 우승 이후로 1,200만 관중을 돌파한 프로야구는 올해 1,400만 관중을 넘어서며 대성황을 누리고 있었다.
프로 야구 협회에서 일찌감치 발표한 내년 시즌 총 관중 목표는 1,500만.
총 관중 100만을 늘리려면 매 경기 1천 명 정도의 관중들이 추가 입장해야 했지만 프로 야구 협회는 물론이고 언론에서도 낙관적으로 내다봤다.
흥행 보증 수표인 박유성의 메이저리그 진출이 2년 앞으로 다가온 만큼 박유성을 보기 위해 더 많은 팬이 몰려들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국내 프로야구 구단들은 여전히 모기업의 지원을 받으며 운영 중이었다.
관중이 늘어났다 하더라도 입장 수익에 한계가 있다 보니 히어로즈를 제외하고는 모기업에 손을 벌려야 하는 처지였다.
그건 올 시즌 최다 관중을 동원한 스타즈도 마찬가지였다.
FA 선수도 아니고 이제 막 프로에 데뷔한 신인 선수에게 30억이란 연봉을 책정했다는 건 모기업인 신성 그룹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럼 옵션은 다 빠진 건가?”
“빠지긴 뭘 빠져? 오히려 더 올랐다던데.”
“올해 박유성 옵션으로만 30억 챙기지 않았어?”
“다 합치니까 많긴 한데 사실 챙길 만했지. MVP와 신인상, 골글에 타격 8관왕이니까.”
“만약에 내년에도 올해만큼 하면 연봉이 얼마가 되는 거야?”
“다 합치면 60억쯤 되겠네.”
“헐, 60억? 선수 한 명한테?”
“이러다 프로야구 판 망하는 거 아냐?”
프로야구 기자들은 모였다 하면 불만을 쏟아냈다.
그렇지 않아도 스타즈발 장기 계약 때문에 각 구단의 원성이 자자한데 2년 차인 박유성의 연봉을 30억으로 책정했으니 이쯤 되면 공존할 생각이 없다고 봐야 했다.
“선배 생각은 어때요?”
박유성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지자 공윤경 기자도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연봉 협상은 말 그대로 협상이야. 잘하면 더 주는 거고 못하면 덜 받는 거라고.”
“그야 알죠. 그런데 2년 차 연봉치고 30억은 좀 과하지 않아요?”
“과하다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데?”
“그야…… 지금까지 쌓인 데이터가 있잖아요.”
“그 데이터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참고 자료일 뿐이야. 유성이는 참고할 데이터가 없어.”
얼마 전까지 기자들이 비교군으로 꼽았던 송현민의 2년 차 연봉은 2억 1천만 원.
신인 선수 연봉 4,000만 원에서 420퍼센트 인상된 금액으로 박유성의 연봉 협상이 끝나기 전까지 2년 차 최고 연봉 및 최고 인상액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송현민의 2년 차 연봉 기록은 향후 10년간 깨기 어려울 거라는 얘기가 많았지만.
박유성이라는 슈퍼 루키가 등장하면서 프로야구 각종 기록은 물론이고 연봉 기록까지 갈아 치워 버렸다.
“송현민 선수 극성 팬들 때문에 그래?”
“송현민 선수가 나서서 달래긴 했지만 유성이가 송현민 선수보다 15배나 더 받는 게 맞나 싶은 생각도 들어서요.”
“WAR로 보면 15배 가까이 될걸? 그리고 왜 송현민 선수와 비교해?”
“그럼 누구하고 비교해요?”
“로메오 클레멘스는 어때?”
“랜더스의 로메오 클레멘스 선수요?”
“작년에 2+2년에 1,200만 달러에 계약했잖아. 옵션은 별도고.”
지난해 22승 4패, 평균자책점 2.15의 성적으로 랜더스의 통합 우승에 기여한 로메오 클레멘스는 랜더스와 최대 4년 계약에 합의했다.
연평균 연봉은 프로 야구 협회에서 정한 상한선인 300만 달러.
거기에 추가로 달성할 수 있는 옵션이 연평균 200만 달러 정도 보장되어 있었다.
올 시즌에도 17승 7패에 평균 자책점 2.76을 기록하며 옵션 보너스를 전부 수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메오 클레멘스 올 시즌 실질 연봉이 500만 달러야. 한화로 65억이라고. 어디 로메오 클레멘스뿐이야? 다니엘 브리토도 보너스 포함해서 400만 달러 이상 가져갔어. 박준수 선수도 이것저것 다 하면 35억 이상이고.”
“그 선수들은 연차가 있는 선수들이잖아요.”
“저연차 선수들이 연봉을 적게 받는 건 FA 자격을 얻기 전까지 구단에 끌려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야. 하지만 요즘 봐. 조금만 잘한다 싶으면 FA 전에 장기 계약으로 묶어두려고 하잖아?”
“유성이는 내후년에 메이저리그 진출하는데요?”
“그래서? 내후년에 메이저리그 진출하니까 연봉을 후려쳐도 된다는 거야?”
“어휴, 그럴 리가요.”
공윤경 기자가 냉큼 손사래를 쳤다. 어쩌다 보니 주변에서 떠들어대는 말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갑질을 정당화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 소문 잘못 나면 선수들이 인터뷰 안 해준다.”
“내가 선배 말고 누구한테 이런 얘기를 하겠어요?”
“암튼 조심하라고. 그리고 말 나온 김에 내가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줄까?”
“또 무슨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하시려고요?”
“트윈스에서 송현민 선수 마지막까지 메이저리그 안 보내려고 했던 건 알고 있지?”
“알죠. 그때 선배가 욕 엄청나게 했잖아요.”
“그런데 구단이 왜 말을 바꾼 줄 알아?”
“여론에 못 이긴 거 아니었어요?”
“여론은 그냥 하는 말이고. 결론은 돈이야.”
“돈이요?”
“간단한 거야. 당시 송현민의 몸값은 총액 1억 달러 수준이었어. 연평균 1,500만 달러 이상이었다고. 차포 떼고 750만 달러만 잡아도 한화로 100억인데 트윈스에서 그 돈을 챙겨줄 수 있었을까?”
“100퍼센트 세금 보전하고 옵션 넣는다고 해도 힘들지 않을까요?”
“거의 불가능하지. 거기에 메이저리그를 포기한 위자료까지 추가하면 답이 없는 수준이고.”
“그러니까 결국 송현민 선수 몸값을 감당하지 못해서 포기한 거예요?”
“덤으로 포스팅에 따른 이적료까지 챙겼잖아.”
송현민이 레인저스로 이적하면서 트윈스가 챙긴 이적료는 무려 1,087만 5천 달러.
한화로 무려 140억에 달했다.
“그렇다고 트윈스를 비난하려는 건 아니야. 프로 야구 규모와 메이저리그 규모는 다르니까. 하지만 그 핑계로 연봉을 깎는 게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 국제 대회에서 우리나라 야구 시장이 일본보다 못하다는 이유로 일본에 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 안 그래?”
“일본에 대패할 때 푸념처럼 늘어놓는 변명이긴 하죠.”
“그것도 거의 반어법에 가깝잖아. 야구 대표팀이 국제 대회에서 이만큼 잘하고 있는데 인프라와 투자가 형편없다는 얘기를 돌려 말하는 거지. 그런데 왜 세계 최고의 선수에게 좋은 대우를 한 걸 가지고 말들이 많은 걸까?”
“그러게나 말이에요.”
“만약에 말이야. 올 시즌 유성이 기준으로 연봉 협상을 진행한다면 어떻게 될 거 같아?”
“유성이를 기준으로요? 그렇다면…… 전원 삭감이지 않을까요?”
“WAR 기준으로 유성이의 반의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선수들이 대부분이야. 유성이 지금 연봉 기준으로 따져도 그나마 제일 잘한 선수들이 7억쯤 받을까 말까야. 그런데 다른 선수들이 박탈감을 느낀다고 투덜대는 건 뭐야? 그렇게 유성이 연봉을 억지로 깎아내리면 유성이가 받을 박탈감은 어떻게 할 건데? 그러다가 나중에 국가대표 보이콧 하면 누가 책임지고?”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요?”
“물론 올림픽으로 병역 혜택을 받았으니까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국가대표 요청을 거절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우리도 유성이에게 최선을 다해달라고 강요할 수 없을 거야.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벌써부터 유성이 데려가려고 난리인데 수백억도 아니고 고작 30억 받은 걸로 이러면 어쩌자는 거야?”
“선배. 너무 흥분하신 거 같은데 진정하세요. 호흡 좀 골라요.”
“이래 놓고 내년 아시안 게임 시작되면 또 유성이만 바라보겠지. 아마 그때가 되면 전 구단 팬들이 정화수 떠놓고 기도할걸?”
“유성이가 브로커 노릇 잘하게 해달라고요?”
“내년 아시안 게임은 메이저리그 선수들 빼고 치러야 해. 심지어 김하선 선수도 없다고. 박준수 선수와 민병규 선수만 가지고 답이 나올까?”
“결국 유성이가 해줘야겠죠.”
“그러니까 치졸한 인간은 되지 말자. 적어도 야구팬이라면 유성이를 지지해 줘야지. 안 그래?”
나영진 기자가 울분을 토했지만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기자는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국대가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한 거지. 안 그래?”
“까놓고 박유성이 희생한 것도 없어. LA 올림픽 나가지 못했으면 메이저리그 진출 1년 늦어졌잖아. 안 그래?”
“그렇지. LA 올림픽에서 잘해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까지 뽑힌 거잖아?”
“국대는 국대고 프로는 프로야. 국대에서 활약한 건 국가대표 포인트로 받아가잖아.”
“암튼 올 시즌에 박유성이 얼마나 잘하나 보자고.”
“20억 계약금 받고 0.749 쳤으니까 30억 받은 올해는 작년보다 더 잘 쳐야지.”
“못해도 7할은 쳐야겠지?”
“7할이 무슨 뉘 집 개 이름이야? 작년에야 박유성의 기세에 말렸지만 올해는 달라. 다른 구단들도 제대로 준비했을 거라고.”
2029시즌, 스타즈의 들러리 신세를 면치 못했던 나눔 리그 구단들은 저마다 타도 박유성을 외치며 담금질에 나섰다.
“유성이한테 볼넷을 주는 건 손해입니다. 유성이는 루상에 나가면 69퍼센트의 확률로 홈을 밟았습니다. 하지만 볼넷으로 나갔을 때 득점 확률은 78퍼센트입니다.”
“유성이가 루상에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고 도루로 그라운드를 흔들 게 뻔한데 자동 고의4구로 걸러봐야 투수들의 멘탈만 털릴 겁니다.”
“수비도 보강해야 합니다. 작년에 유성이에게 허용한 안타 중에 호수비로 잡아낼 수 있었던 게 10개나 됩니다.”
“외야뿐만이 아니라 내야도 보강해야 합니다. 수비수들이 기민하게 움직여 줘야 땅볼로 두 베이스를 가는 터무니없는 짓을 못 하죠. 그런 거 한 번씩 당할 때마다 선수들 사기가 땅으로 떨어집니다.”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던 트윈스와 타이거즈는 물론이고 랜더스와 자이언츠, 라이온즈까지 박유성 전담 분석팀을 신설해 내년 시즌에 대비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뾰족한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작년에 홈경기에서 스윕 패를 당한 거 잊지 않았지? 올해는 우리가 되갚아 줄 차례야.”
2030시즌 개막전을 스타즈 원정으로 시작하게 된 랜더스의 박전권 감독은 선수들을 불러놓고 복수를 주문했다.
2028시즌 우승 전력을 거의 그대로 보존한 데다가 새로 뽑은 외국인 투수도 기대 이상이라 3연전 중에 최소 한 경기 이상은 잡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3년 연속 개막전 선발 투수로 나선 2028시즌 MVP, 로메오 클레멘스도 이를 악물었다.
“올해는 다를 거야, 썬.”
지난 시즌의 아쉬움을 만회하기 위해 마무리 캠프를 소화하는 건 물론이고 예정보다 일찍 전지 훈련장으로 넘어와 몸을 만들었던 만큼 박유성을 잡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러나 박유성도 겨우내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