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339화
39. 카운트다운(7)
2
상징성을 위해 박유성과의 협상을 가장 마지막으로 미뤄놓았지만.
김재식 단장과 안재희 운영팀장은 매일같이 만나 박유성의 적정 연봉에 대해 논의했다.
“히어로즈 안현우 선수가 3억 2천만 원에 사인했다고 합니다.”
“3억 2천이요?”
“올 시즌에 1억 6천만 원을 받았으니까 100퍼센트 인상입니다.”
“히어로즈가 그 정도 여력이 되나요?”
“구단 사정을 떠나서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을 했으니까요. 게다가 안현수 선수는 히어로즈 간판선수라 더 챙겨주는 느낌입니다.”
박유성 등장 이전까지 최고의 외야 유망주로 꼽히던 안현수는 올 시즌 0.305의 타율과 15홈런, 117득점, 37도루로 드림 리그 외야수 부분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박유성만 없었다면 언론과 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만한 성적을 냈으니 구단 재정 상황이 좋지 않은 히어로즈 구단도 연봉을 올려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고과 기준으로는 얼마입니까?”
“리그가 다르긴 하지만 50퍼센트 인상을 기준으로 잡았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드림 리그 1위였는데 50퍼센트 인상은 너무 적지 않나요?”
“히어로즈가 압도적인 성적으로 1위를 차지한 게 아니라서요. 승수가 많으면 개인 고과도 높아지지만 단순히 순위만 1위인 거라 확 올려주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미 올해 과하게 받았고요.”
2027년 데뷔한 안현우는 시즌 후반기부터 백업 외야수로 뛰며 0.311의 타율과 3홈런, 13도루를 기록했다.
2028년 연봉은 3,500만 원 오른 8천만 원.
인상 요인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스타성을 고려해 연봉이 책정됐고.
안현우도 0.285의 타율과 11홈런, 31도루로 주전 중견수 자리를 꿰차며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해 냈다.
게다가 캠프에 집중하고 싶다며 연봉을 구단에 위임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히어로즈 구단도 100퍼센트 인상으로 화답했다.
스타즈 기준으로 1억 2천만 원쯤 받아야 할 연봉이 1억 6천만 원으로 책정된 것이다.
올 시즌 안현우는 지난해보다 견고한 외야 수비와 리그 최다 득점으로 히어로즈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타격 성적만 놓고 봤을 때 3억 이상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안현우 선수와 장영호 선수가 동기입니다. 장영호 선수는 1라운드 지명을 받았고 안현우 선수는 8라운드 지명을 받았죠. 데뷔 후 지금까지 성적은 장영호 선수가 더 낫습니다. 하지만 올해 연봉은 장영호 선수가 3억, 안현우 선수가 3억 2천만 원입니다. 어쩌면 히어로즈에서 장영호 선수를 염두에 두고 연봉을 책정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3루수로 전향해 첫 골든 글러브를 손에 넣은 장영호의 올 시즌 성적은 0.301에 36홈런, 117타점.
지난해까지는 불안한 외야 수비 때문에 타격에서도 집중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자주 보였지만 올 시즌은 미완의 대기라는 꼬리표를 떼고 스타즈의 중심 타자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그런 장영호에게 스타즈 구단은 100퍼센트 연봉 인상을 제안했고 장영호도 군말 없이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연봉 외적으로 걸린 옵션 보너스가 쏠쏠한 데다가 박유성이 있는 한 내년 시즌도 우승이 확정적이다 보니 몇천만 원 더 받겠다고 욕심부리지 않은 것이다.
“장영호 선수와 동기인 줄 몰랐네요. 이렇게 되면 장영호 선수가 서운해하겠는데요?”
“꼭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장영호 선수도 송광철 대표와 계약을 해서요. 아마 내후년 시즌쯤에 장기 계약을 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장영호 선수라면 꼭 잡아야겠죠?”
“수비력이 조금만 더 올라와 준다면 국가대표 3루수 자리를 꿰찰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격력은 이미 국대급이고요.”
김재식 단장이 묵묵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장영호의 연봉을 조금 더 올려주고 싶었지만 이미 언론에 발표한 계약 내용을 뒤집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안현우의 계약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건 결코 아니었다.
“이렇게 되면 박유성 선수의 연봉도 다시 조정해야겠네요.”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스타즈에서 책정한 안현우의 적정 연봉은 2억 4천만 원 정도.
거기서 33퍼센트가 인상된 금액을 받았으니 프로야구 최고의 활약을 펼친 박유성의 연봉도 그만큼 인상되는 게 당연했다.
“그럼 27억이 어떻습니까?”
“안현우 선수가 너무 많이 받아서요. 그 정도로 송광철 대표가 성에 찰지 모르겠습니다.”
밤새 계산기를 두드리던 김재식 단장은 다음 날, 구단 앞 중식당에서 송광철 대표를 만났다.
“그동안 별일 없으셨죠?”
“2주 전에 뵀는데요 뭘. 별일이 있겠습니까?”
“다행이네요. 오늘 기분은 어떻습니까?”
“쌓였던 눈이 거의 다 녹았더라고요. 차가 덜 막히니까 살 것 같았습니다.”
“저도 만약을 대비해서 30분 일찍 나왔는데 수월하게 왔습니다.”
“막상 일찍 도착하고 나서 먼저 들어가서 기다려야 하나 싶었는데 단장님 차가 딱 나타나지 뭡니까? 그거 보면서 왠지 오늘 계약도 술술 풀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하.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김재식 단장과 송광철 대표는 웃으며 식사부터 즐겼다.
이미 여러 차례 만난 사이이다 보니 불필요하게 예를 차리지도, 신경전을 펼치지도 않았다.
그렇게 서로 든든히 배를 채운 뒤에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갔다.
“이게 저희 쪽 제안입니다.”
“잠깐 보겠습니다.”
김재식 단장이 정중하게 내민 제안서를 받으면서도 송광철 대표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박유성이 올 시즌 전 세계 야구계를 경악하게 만들만 한 활약을 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숨에 연봉이 확 오르지는 못할 거라 여겼다.
게다가 박유성은 연봉보다 옵션 보너스에 걸린 금액이 더 많았다.
올해 각종 보너스로 30억을 챙겼으니 설사 기대에 못 미치는 금액이 적혀 있더라도 내년 시즌 옵션을 조정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약서 첫 장에 적힌 금액은 송광철 대표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30억이요?”
“엊그제 발표된 안현우 선수의 계약을 반영해서 금액을 조금 더 조정했습니다.”
“이렇게 주신다면야 감사하지만…… 이거 괜찮을까요?”
“사실 박유성 선수의 올 시즌 고과는 측정이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2년 차라는 이유만으로 연봉을 책정하는 건 박유성 선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옵션 규모를 조정하실 생각이십니까?”
“아닙니다. 기본 옵션은 작년과 똑같이 보장해 드릴 생각입니다. 수상 관련 옵션은 금액을 상향할 방침이고요.”
“이거 이러다가 내후년에는 100억 받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대신에 내년 시즌도 잘 부탁드립니다. 박유성 선수 때문에 스타즈 팬들의 기대치가 올라가서요. 못해도 120승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애초 20억 정도에서 시작했던 연봉이 30억까지 올랐지만 김재식 단장은 지나치게 퍼줬다는 생각을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다.
만약 지금 당장 박유성이 메이저리그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장기 계약을 제안한다면 어떻게 될까?
메이저리그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 연평균 100억 이상을 불러야 협상 테이블을 펼 수 있을 터였다.
“120승 해야죠. 박유성 선수도 내년 시즌이 진짜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렇지 않아도 골든 글러브 시상식 때 박유성 선수 소감 듣고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뻔한 얘기인데 박유성 선수가 말하니까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MVP 시상식장에서 고마운 이들에게 충분히 감사 인사를 한 박유성은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내년 시즌 포부를 밝혔다.
“많은 분들이 내년 시즌 목표를 물어보시는데요. 먼저 스타즈의 2연패가 목표입니다. 정규 시즌은 물론이고 한국 시리즈까지 다시 한번 우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올해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올해보다 나은 성적을 내겠다는 표현은 커리어 하이 시즌을 찍은 선수들이 주로 써먹는 레퍼토리였다.
커리어 하이 시즌은 말 그대로 인생 최고의 시즌.
매 시즌 커리어 하이를 경신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만큼 커리어 하이를 달성한 다음에는 몸을 사리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박유성은 모든 야구팬들이 지켜보는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당당하게 더 나은 시즌을 다짐했다.
2할 후반쯤 치고 운 좋게 신인왕을 수상한 타자가 3할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무려 0.749의 타율을 기록하며 프로야구 역사를 새롭게 쓴 타자가 다시 한번 그 기록들을 갈아 치워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를 두고 야구팬들의 반응도 갈렸다.
└29 박유성 vs 30 박유성, 과연 승자는?
└무조건 29 박유성임.
└올해 박유성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내년 시즌은 올해만큼 잘하기 어려울 겁니다.
└올해 성적 자체가 말이 안 됐어요. 오죽하면 일본 우익들은 아직도 리그가 조작됐다고 의심하잖아요.
└저 지난번에 박유성 친필 사인 받은 유니폼 인증까지 했던 찐팬인데 29박유성은 불멸의 기록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박유성 안티들 이때다 싶어 가면 벗고 나왔네. ㅋㅋㅋ
└그러게요. 올 시즌 박유성이 이만큼 잘할 줄 누가 알았나요?
└4월 7할 칠 때 운이 좋았다. 곧 떨어진다. 5월 7할 칠 때 박유성이 잘 버티고 있지만 결국 떨어진다. 6월 7할 칠 때 월간 타율 하락세다, 곧 떨어진다. 7월 7할 가까스로 맞출 때 박유성이 잘 버티고 있지만 결국 떨어진다. 그러다 8월에 타격 폭발하니까 그때부터 입 다뭄. ㅋㅋㅋㅋ
└진짜 다시 봐도 역겹네요. ㅋㅋ
└29박유성 > 30박유성이라고 해서 박유성 안티로 몰지 맙시다. 29박유성이 워낙 압도적이니까 넘어서기 어렵다는 거지 30박유성이 망할 거라는 얘기는 아니잖아요. ㅠ.ㅠ
└저도 스타즈 팬이지만 30박유성은 7할에 60홈런만 쳐도 성공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저도 딱 그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박유성은 생고기 먹고 장염에 걸려도 7할은 칠 거임.
└박유성이 내년 시즌에 8월 퍼포먼스 보여주면 커리어 하이 경신 충분합니다.
└포스트 시즌 퍼포먼스 다들 잊어버리셨나 보네요. 투수들이 박유성에게 적응했으니까 쉽지 않을 거라고들 하시는데 그 반대로는 생각 안 해보셨나요?
└진짜 제가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박유성이 혼자서만 2회차 사는 것도 아니고 낯선 프로 무대에서 7할 5푼을 쳤는데 의심하는 사람들 보면 국적이 의심스러워요.
야구 전문가들도 박유성의 내년 시즌 활약상에 대한 언급을 조심스러워했다.
“개인적으로는 박유성 선수가 내년 시즌에 더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 보이고요. 다만 지나치게 높은 목표가 혹여나 부담으로 작용할까 봐 걱정입니다.”
“박유성 선수는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선수입니다. 설사 내년 시즌 성적이 올 시즌만큼 나오지 않더라도 박유성이라는 야구 천재의 실력을 깎아내릴 수는 없는 겁니다.”
“박유성 선수도 메이저리그 진출을 준비 중에 있으니까요. 장타 비중을 높이는 쪽으로 타격 스타일을 바꿔 나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타율을 일부 손해 보겠지만 메이저리그 성공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질 테고요.”
“내년 시즌 성적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건 AI도 불가능할 겁니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내년 시즌에도 박유성 선수는 박유성 선수일 거라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