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331화 (331/412)

타자 인생 3회차! 331화

38. 한국 시리즈는 처음이라(13)

“그렇지? 가능성을 봐야겠지?”

“올해 피터 페츠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훌륭했습니다. 게다가 아직 어리니까 사이영 상급 투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썬은 어때?”

“……네?”

“썬 말이야. 시즌 타율이 무려 0.749라고. 게다가 피터 페츠보다 훨씬 어리지.”

“…….”

순간 로이 홀랜드 보좌역은 아차 싶었다.

에이전트인 조쉬 애버튼에 대한 악감정 때문에 피터 페츠를 놓칠까 봐 말을 보탠 게 박유성에 대한 극찬으로 둔갑할 줄은 미처 몰랐다.

하지만 평소 로이 홀랜드 보좌역의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 노력해왔던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포스트 시즌이 시작됐을 때 다들 한목소리로 말했어. 썬의 민낯이 드러날 거라고 말이야. 하지만 난 동의하지 않았지. 썬은 이미 포스트 시즌에 준하는 경험을 쌓았거든.”

“LA 올림픽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을 치렀으니까 단기전에 대한 경험과 압박감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죠.”

“그것뿐만이 아니야. 썬은 이미 U-18 야구 월드컵에서 한국을 우승시켰어. 그때도 10할 타율에 타격 타이틀을 싹쓸이했었지.”

“U-18 야구 월드컵은 아마추어 대회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LA 올림픽도 아마추어 대회야. 본래였다면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거의 참가하지 않았을 테니까.”

LA 올림픽은 올림픽 조직 위원회에서 주관하는 대회이다.

그리고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였다.

스포츠의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프로 선수들이 대거 참가하고 있지만 프로 선수들의 출전을 제한하는 종목은 여전히 많았다.

“로이. 우리 구단에 오기 전에 어디서 일했다고 했지?”

“통계 분석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주로 야구 쪽 업무를 맡았고요.”

“그전에는?”

“대학과 대학원을 다녔죠.”

“그때 상 같은 것도 받았어?”

“제 자랑 같지만 많이 받았습니다. 그 이력들이 다저스로 오는 데 큰 도움이 됐고요.”

“그런데 만약에 말이야. 다른 누군가가 다저스 이전의 경력은 별거 아니라고 취급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

“기분 나쁘잖아. 그렇지? 자네는 자네의 영역에서 자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 그 결과 내 보좌역으로 일하게 됐고. 물론 내가 메이저리그 최고의 단장은 아닐지 모르지.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단장 중의 한 명이잖아?”

“커리어를 놓고 봤을 때 앤드류를 뛰어넘을 수 있는 단장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그래. 그렇게 대단한 내가 수많은 면접자들 중에 자네를 선택했어.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경험은 부족할지 몰라도 나와 잘 맞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 예상이 맞았나요?”

“로이. 내 옆에서 일한 지 얼마나 됐지?”

“이제 5년째입니다.”

“그래. 다른 보좌역들은 심심찮게 바뀌지만 자네만큼은 내 옆에 남아 있지. 다른 대답이 더 필요해?”

“아닙니다.”

로이 홀랜드 보좌역이 입가로 번지려는 미소를 꾹 눌렀다. 그러자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말고 웃으라고. 인정받으니까 기분 좋잖아. 아니야?”

함께 일하던 보좌역 하나가 다른 구단의 스카우트를 받고 곁을 떠나자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공채를 통해 보좌역을 뽑기로 결정을 내렸다.

당시 수많은 지원자가 지원서를 냈고 그중에 최종 10명만이 면접 자격을 받았는데 로이 홀랜드만 유일하게 야구 관련 경력이 없었다.

함께 면접을 봤던 브랜든 킹스턴 단장은 자신과 같은 대학을 나온 지원자를 강력하게 추천했다.

하지만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이렇다 할 접점이 없던 로이 홀랜드 보좌역을 최종 낙점했다.

자신의 냉정한 판단에 데이터적인 근거를 제시해 줄 거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에 자네에게 했던 말 기억해?”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남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면서요.”

“그래. 로이 자네는 인정하지 않았겠지만 다들 자네보다 경험이 많은 친구들이야. 거저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게 아니지.”

“…….”

“자네가 그 친구들을 따라잡으려 들었다면 그만큼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 거야. 그럼 자네는 그때까지 두 번째 옵션으로 남았겠지. 하지만 난 두 번째 옵션에게 비싼 연봉을 지급할 생각이 없어. 알지? 난 돈에 있어서만큼은 냉정한 사람이야.”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다저스에 온 이후 다저스의 재정 상황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그 과정에서 써야 할 돈을 쓰지 않는다는 비난도 나왔지만.

결과적으로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체질을 바꿔놓은 덕분에 다저스는 메이저리그 구단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구단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됐다.

그런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5년째 로이 홀랜드 보좌역을 옆에 두고 있는 건 그만큼 업무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요즘 들어 현장의 목소리에 지나치게 귀를 기울이는 건 살짝 아쉬웠지만 그 정도쯤은 충분히 웃어넘길 수 있을 만큼 로이 홀랜드 보좌역은 잘해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부심을 가져. 로이.”

“고맙습니다.”

“고맙긴, 내가 더 고맙지. 방금 자네의 말 덕분에 썬에 대한 확신이 커졌으니까. 하하하.”

“하아…….”

로이 홀랜드 보좌역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말로는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을 당해내기 어렵다는 거야 진즉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말꼬리가 잡혀 버리니까 싸울 의지마저 사라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박유성의 영입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일단 급한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좋겠습니다.”

“물론 그렇겠지.”

“브라이언 조던을 포기하실 생각이십니까?”

“어쨌거나 브라이언 조던은 가장 중요한 경기에 결장을 했어. 플레이 도중에 부상을 입은 게 아니라 피로 누적으로 발목에 무리가 생긴 거야. 그런 선수에게 어떤 계약을 제안해야 하지?”

“그야…….”

“만약에 내년 시즌에 우리가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는데 브라이언 조던이 또다시 결장하면 어떻게 될까? 챔피언십 시리즈 7차전에서 다시 자이언츠를 만났는데 이번처럼 빠져 버리면? 물론 빌어먹을 조쉬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단언하겠지. 하지만 말이야. 지난번 식사 때도 조쉬는 이렇게 말했어. 브라이언의 발목은 완벽해요, 앤드류. 의사가 아무 문제 없다고 말했다고요. 그걸 문제 삼는 건 선수에 대한 모욕입니다. 인종차별이 될지도 몰라요.”

“조쉬가 정말 그렇게까지 말했습니까?”

“나중에 농담이라고 웃어넘겼지만 에이전트라는 족속들이 원래 그래. 선수를 정말 상품 취급하거든. 비싼 값에 팔아먹을 생각만 하지 선수에 대해 100퍼센트 알지 못해. 관심도 없고 말이야.”

“애당초 브라이언은 대형 매물은 아니었죠. 피터 페츠를 비싼 값에 팔아먹기 위한 옵션이었으니까요.”

“그래. 맞아. 올해 어떻게든 브라이언 조던을 팔아넘겨야 내년에 피터 페츠를 좋은 값에 팔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브라이언의 발목에 다시 문제가 생긴 지금은 상황이 달라. 조쉬도 바보가 아닌 이상 1억 달러를 운운하지 못할 거라고.”

“피터 페츠도 올 시즌에 커리어 하이를 찍었으니까요.”

“챔피언십 시리즈 마지막 경기가 아쉽긴 했지만 그전까지는 정말 잘 해줬어. 올 시즌 장기 계약보다는 연봉을 올려놓고 내년 시즌에 장기 계약을 노리는 전략으로 선회할 거야.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브라이언 조던의 계약도 뒤로 밀리겠지.”

올 시즌 전까지만 해도 피터 페츠에게는 미완의 대기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제2의 블레이튼 커쇼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팬들의 기대는 상당했지만 15승을 넘기지도, 2점대 아래로 평균 자책점을 끌어 내리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조쉬 애버튼이 브라이언 조던의 장기 계약에 목을 맸던 것도 피터 페츠의 협상 테이블을 조금 더 빨리 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시즌 중반에 잠시 주춤했던 피터 페츠가 후반기에 다시 페이스를 끌어 올리며 18승과 2점대 평균 자책점(2.85)을 달성한 이상 조쉬 애버튼도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브라이언의 발목이 완벽하다는 판단이 서기 전까지는 장기 계약을 할 생각이 없어.”

“그러다 FA로 팀을 떠나면요?”

“어차피 한 시즌이잖아.”

“썬이 다저스에 온다고 확신할 수 없어요. 앤드류가 썬에게 관심을 갖는 만큼 다른 구단들도 썬을 데려오고 싶어 할 거라고요.”

“그래서 미리미리 교통정리를 하는 중이잖아? 만약에 브라이언이 내후년에 팀을 떠나고 중견수 자리를 마이너리그 선수로 채운다면 어떻게 될까?”

“외야는 지옥으로 변할 겁니다.”

“그래. 그럼 아마 마크에게 전화가 걸려올걸? 무조건 썬을 데려오라고 말이야.”

“썬이 계속해서 꾸준한 성적을 낼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로이. 이제 인정할 건 인정하라고. 리그를 떠나 썬은 괴물 같은 타자야. 자네가 말한 것처럼 우리 팀은 물론이고 메이저리그 모든 구단에서 탐낼 타자라고. 어쩌면 내년 시즌이나 내후년에는 올 시즌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썬은 7할 타자야. 150경기를 소화해서 7할을 때려냈어. 한국 리그 전체가 조작된 게 아니라면 그 가치는 달라지지 않아.”

박유성이 0.749의 타율로 시즌을 마쳤을 때 야구 관련 매체마다 논평을 내놓았다.

다들 경이로운 기록이라고 입을 모았지만.

내년 시즌에도 이 정도 성적을 낼 거라 예상하는 매체는 손에 꼽혔다.

“썬은 4월에 0.756을 쳤죠. 그리고 5월에 0.762를 쳤습니다. 시즌 타율은 그보다 살짝 낮은 0.749입니다. 다시 말해 초반의 페이스대로 시즌을 치른 셈입니다.”

“하지만 내년 시즌은 쉽지 않을 거예요. 한국 투수들도 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분석이 됐을 테죠. 반면 썬은 올 시즌만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면 말이죠. 보다 많은 돈을 받기 위해서라도 무리를 할 테고 그게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높아요.”

“내년 시즌 성적이요? 글쎄요. 썬은 확실히 타격 밸런스가 좋은 선수입니다. 무리해서 장타를 욕심내지 않지만 또 필요한 순간에 장타를 때려내는 타자예요. 게다가 썬의 빠른 발은 슬럼프가 없어요. 시즌 도루가 134개에요. 무관심 도루로 빠진 것까지 포함하면 200개 이상입니다. 게다가 144개의 2루타와 47개의 3루타를 만들어냈죠.”

“내년에 큰 부상을 당하지 않는 이상 썬의 성적이 평범해질 가능성은 작습니다. 아무리 못해도 3할 후반 정도는 치겠죠. 어쩌면 5할을 넘길지도 모릅니다. 다만 확실한 건 올해만큼의 성적을 재현하기란 쉽지 않을 거라는 점입니다.”

“현재 언론에서 추정하는 썬의 몸값이 어마어마한데요. 지금 당장 그걸 두고 떠들 필요는 없습니다. 썬이 메이저리그에 오려면 최소 2년은 더 있어야 하니까요.”

“내년 시즌과 내후년 시즌의 성적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썬의 몸값은 자연스러운 조정기를 맞을 겁니다.”

박유성이 포스트 시즌에서 맹활약하면서 부정적인 전망들이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 역시 내년에 박유성이 0.749 이상의 타율을 기록할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썬은 어쨌거나 7할을 친 타자야. 그리고 팀에게 123승을 안겼어. 그 경험을 가지고 우리 팀에 합류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거야.”

“썬의 필요성까지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몸값이 문제겠지.”

“내년 시즌과 내후년 시즌을 전부 날리지 않는 한 천문학적인 계약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큰 부상으로 야구를 접는 게 아니라면 말이야.”

현재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박유성의 계약 총액은 3억 달러를 훌쩍 넘긴 지 오래였다.

연평균 연봉도 3천만 달러에서 3500만 달러를 돌파해 4천만 달러까지 올라갔다.

물론 여전히 많은 전문가들이 메이저리그를 경험하지 않은 아시아 타자에게 4천만 달러를 주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세계 야구 역사상 최초로 7할 시즌을 보낸 박유성의 적정 연봉에 대해서는 다들 말을 아꼈다.

말 그대로 전례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로이. 자네가 생각하는 적정 금액이 얼마야?”

“현재 기준에서 말입니까?”

“스타즈가 우승을 할 거야. 그것까지 감안해서 판단해 봐.”

“그렇다면…… 최소 오타니 쇼헤의 계약이 기준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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