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324화 (324/412)

타자 인생 3회차! 324화

38. 한국 시리즈는 처음이라(6)

히어로즈의 선발 장진호는 2003년 생 우완 투수.

189㎝에 95㎏으로 요즘 투수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체격 조건이 좋았다.

2022 드래프트에서 4라운드에 지명된 이후 곧바로 군에 입대, 병역 문제를 해결했고.

2023년과 2024년, 2군에서 담금질을 한 뒤에 불안한 제구를 잡고 1군 무대로 올라왔다.

선발과 불펜을 오갔던 첫 시즌 성적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6승 7패에 평균 자책점 4.11

다른 팀이었다면 불펜에서 조금 더 경험을 쌓게 했겠지만 송혁 감독은 이듬해부터 장진호를 선발진에 고정했다.

구단에서 말을 꺼내기도 전에 현역 복무를 자청했을 만큼 머릿속에 야구 생각만 가득한 장진호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송혁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듯 장진호는 매년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9승이었던 승수는 10승을 거쳐 11승, 그리고 올해 12승까지 올라왔고.

3.86이던 평균 자책점도 3.79에서 3.72, 다시 3.65까지 떨어졌다.

올 시즌 성적은 12승 6패 3.65

다승과 평균자책점, 승률 1위를 기록한 송찬우는 물론이고 18승의 김혜성이나 포스트 시즌 선발 로테이션에서 탈락한 손지원(15승 6패 3.33)보다도 아쉬운 성적이었지만

흔히들 토종 에이스라 불리는 3선발들의 올 시즌 평균 성적이 12승인 걸 감안했을 때 평균 이상의 피칭을 선보였다.

‘한국 시리즈야. 쉽게 보다간 잡아먹힐지도 몰라.’

어이없어하는 나경석을 뒤로하고 박유성은 천천히 루틴을 펼쳤다.

팀을 위해 사흘 만에 등판한 장진호의 투지는 높이 살 만했지만 그게 사정을 봐줄 이유는 되지 않았다.

-1회 말 스타즈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선두타자는 박유성 선수. 지난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무려 8할의 맹타를 휘두른 바 있습니다.

-아무래도 첫 포스트 시즌인 만큼 정규 시즌만큼 활약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 많았는데요. 그걸 보기 좋게 깨버렸습니다.

-앞서 열린 나눔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박유성 선수가 매 경기 선취 득점을 만들어냈는데요.

-박유성 선수의 활약 덕분에 스타즈가 트윈스를 잡아내고 한국 시리즈에 올라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경기는 어떨까요?

-글쎄요. 이런 말을 하면 뻔하다는 말이 나오겠지만 포스트 시즌과 정규 시즌은 다르고 한국 시리즈와 챔피언십 시리즈는 또 다르거든요.

-아무래도 양대 리그 최강자들이 맞붙는 시리즈니까요. 챔피언십 시리즈와는 무게감이 다르겠죠.

-많은 전문가들이 스타즈의 우세를 점치고 있지만 저는 단기전의 승패를 함부로 장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히어로즈는 7차전까지 치르며 고생했지만 또 극적인 역전승으로 한국 시리즈에 올라왔잖아요? 그 상승세가 오늘 경기로 이어지면 모르는 겁니다.

-스타즈 역시 시리즈 스코어 4 대 0으로 트윈스를 제압했는데요.

-물론 그렇긴 하지만 스타즈는 4차전 이후 지금 5일을 쉬고 경기를 치르는 거니까요. 챔피언십 시리즈 때의 타격감이 오늘 경기에서 100퍼센트 발휘되기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채팅창에서 억지 긴장감을 조성한다는 불만들이 쏟아졌지만.

장성오 해설위원은 눈을 딱 감고 채팅들을 무시했다.

총대를 멘 장성오 해설위원뿐만 아니라 애써 말을 아끼는 유희완 해설위원조차 한국 시리즈에서 스타즈가 우승할 가능성이 높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양대 포털 사이트 조사 결과 97퍼센트가 스타즈의 우승을 점쳤고.

1차전은 99퍼센트가 스타즈의 승리를 예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립을 지켜야 할 해설위원이 한국 시리즈 1차전부터 맥빠지는 중계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장성오 해설위원은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고 말씀하셨는데 유희완 해설위원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장진호가 풀린 스파이크 끈을 다시 동여매자 이동훈 캐스터가 유희완 해설위원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그러자 유희완 해설위원이 멋쩍게 웃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단 장성오 해설위원의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야구공은 둥글고 포스트 시즌에서는 온갖 이변이 일어나게 마련이니까요. 다만 이번 타석 승부가 중요할 거 같습니다. 장진호 선수가 박유성 선수를 잡아내 준다면 히어로즈가 원하는 그림으로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후우…….”

중계 카메라에 잡힌 장진호가 길게 숨을 골랐다.

챔피언십 시리즈 6차전 등판 이후 사흘만의 등판이라 어깨가 무거웠지만.

일단은 송혁 감독에게 부여받은 3이닝 미션을 해결하고 싶었다.

그때 포수 나경석이 몸쪽 사인을 냈다.

‘볼을 낭비할 여유가 없어. 초구부터 과감하게 부딪쳐야 해.’

나경석의 속내를 읽은 장진호가 단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올 시즌 박유성 상대 성적은 6타수 4안타에 1볼넷.

피안타율은 0.667로 박유성의 시즌 타율보다 낮지만.

이닝의 선두타자로 만났을 때는 전부 출루를 허용했다.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을 때도 박유성을 막지 못했는데 사흘 만에 마운드에 올라와 힘싸움을 하는 건 바보 같은 짓.

‘때린다고 다 안타는 아니야.’

잠시 뜸을 들이던 장진호가 이를 악물고 공을 내던졌다.

하지만 박유성은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듯 들어오는 공을 그대로 흘려보냈다.

-초구는 몸쪽! 장진호 선수가 슬라이더로 카운트를 잡아 냅니다.

-방금은 상당히 위험한 코스였는데요. 박유성 선수가 예상을 못 했던 것 같습니다.

-바깥쪽 공을 노린 걸까요?

-박유성 선수의 타격감이 워낙에 좋으니까요. 무리해서 승부를 걸기보다는 최대한 어렵게 승부할 거라 예상했을 텐데 허를 찔린 느낌입니다.

-유희완 해설위원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유성 선수가 꿈쩍도 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박유성 선수가 노리던 코스의 공은 아닌 거 같습니다. 다만 이번 스트라이크가 득이 될지, 아니면 독이 될지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독이 된다는 게 무슨 말씀인가요?

-제 생각에 장진호 선수가 치라고 던져 준 공 같거든요? 그런데 저런 공을 건드려 주지 않으면 투수 입장에서는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유희완 해설위원은 현역 시절 수 싸움에 능한 투수였다.

느려 터진 포심 패스트 볼을 가지고 프로에서 101승을 거둘 수 있었던 건 정교한 제구와 더불어 자신이 가진 공의 능력을 최대로 끌어내는 레퍼토리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 유희완 해설위원이 보기에 방금 전 장진호가 던진 몸쪽 슬라이더는 타자의 허를 찌르겠다기보다 최대한 칠만한 공을 던져줘서 박유성의 타격을 유도하겠다는 의도에 가까웠다.

만약에 타석에 선 타자가 박준수나 다니엘 브리토였다면 장진호가 수싸움에서 이겼다고 칭찬해줬겠지만.

상대는 7할 타자 박유성.

4타석 중에 3타석은 안타를 때려내고 6타석 중에 5번 가까이 출루를 해내는 괴물이 저렇게 눈에 들어오는 공을 놓쳤을 리 없었다.

“뭐야, 박유성? 오늘 컨디션 별로야?”

나경석도 미심쩍은 얼굴로 박유성을 바라봤다.

살짝 깊게 들어가긴 했지만 방금 공은 박유성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안타로 연결할 수 있었다.

초구에 안타를 얻어맞더라도 어쩔 수 없고.

운 좋게 범타로 이어지면 베스트라 생각하고 리드했던 공에 박유성이 미동조차 하지 않으니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진호 선배님 공 좋은데요? 사흘 만에 등판한 거 맞아요?”

“좋긴 뭐가 좋아? 다 풀려서 들어왔는데?”

“그럼 제가 놓친 걸로 해요.”

“뭐야? 뭔데? 뭘 노리고 있는 건데?”

나경석이 채근하듯 물었다. 그러자 박유성이 나경석을 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안알랴줌.”

“…….”

한참을 고민하던 나경석은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왠지 바깥쪽을 노리는 느낌인데 일단 몸쪽으로 하나 더 붙여보자.’

사인을 확인한 장진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나경석의 주문대로 몸쪽 낮게 체인지업을 붙였다.

후앗!

제대로 채지 못한 공이 위험한 코스로 날아들었지만, 이번에도 박유성은 공을 흘려보냈다.

-이번에도 스트라이크! 장진호 선수가 박유성 선수를 상대로 투 스트라이크를 잡아냅니다!

-장진호 선수가 확실히 배짱이 좋네요. 지금 박유성 선수가 바깥쪽 공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몸쪽으로 공을 던졌는데요. 그 전략이 다시 한번 통했습니다.

-유희완 해설위원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저는 솔직히 조마조마한 심정입니다. 꼭 제가 공을 던지는 기분이에요.

-만약에 유희완 해설위원이 장진호 선수 대신 마운드에 서 있다면 이번에 어떤 공을 던지시겠습니까?

-글쎄요. 일단 저라면 장진호 선수처럼 과감하게 투 스트라이크를 잡지 못했겠지만 운 좋게 투 스트라이크를 선점했다면 그때부터는 볼넷을 줘도 상관없다는 각오로 유인구를 던질 겁니다.

-투 스트라이크 노 볼인데 유인구를요?

-박유성 선수잖아요. 박유성 선수는 투 스트라이크를 먹고 시작해도 풀카운트까지 끌고 간 다음에 홈런을 때려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선수입니다. 게다가 어쨌거나 투 스트라이크를 잡았잖아요? 삼진은 어렵더라도 최소한 범타로 유도할 가능성이 높아졌는데 그 기회를 날릴 수는 없죠.

유희완 해설위원의 말대로 볼카운트가 투 스트라이크가 되자 나경석도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유성아. 너 올 시즌 삼진 몇 번 당해봤냐?”

“글쎄요. 안 세어봐서 모르겠는데요?”

“세긴 뭘 세? 한 번도 안 당했으면서.”

“그랬나요?”

“암튼 포스트 시즌 성적은 통산 성적에 안 들어가니까 편하게 하나 먹어라.”

“삼진을요?”

“너 삼진 못 잡았다고 일본에서 엄청나게 까는 거 알지? 그러니까 오늘 하나 먹어줘라.”

“그래요. 형이 사면 먹죠 뭐.”

박유성을 적당히 긁었다고 생각한 나경석이 3구째 바깥쪽 낮은 코스의 빠른 공을 주문했다.

건장한 체격에서 내리꽂는 장진호의 포심 패스트 볼은 전광판에 찍히는 구속 이상으로 묵직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게다가 공의 회전도 좋아서 패대기치듯 던져도 홈플레이트 앞까지 공이 뻗어 들어올 정도였다.

‘유성이도 경석이 공은 몇 번 못 봤으니까. 잘하면 삼진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

준비를 마친 나경석이 왼쪽 무릎 아래쪽으로 미트를 내밀었다.

그 순간 장진호가 이를 악물고 공을 내던졌고.

후앗!

생각보다 낮게 출발한 공이 그대로 밀려서 스트라이크 존 근처로 날아들었다.

‘됐어!’

공의 움직임을 확인한 나경석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1차전은 반쯤 포기하고 장진호를 올린 거지만.

만에 하나 첫 타석에서 박유성을 상대로 삼진을 잡아낼 수만 있다면 분위기가 바뀔지도 몰랐다.

하지만 프레이밍을 하기 위해 시동을 걸려던 순간.

따악!

벼락같이 나타난 새까만 방망이가 그대로 공을 3루 쪽 익사이팅 존으로 날려버렸다.

-3구는 파울! 박유성 선수가 처음으로 방망이를 휘두릅니다.

-이번 공은 바깥쪽 빠른 공이었는데요. 공이 낮았지만 박유성 선수로서는 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박유성 선수도 호락호락 물러설 생각은 없는 것 같은데요.

-아까 유희완 해설위원이 말했던 것처럼 박유성 선수는 투 스트라이크도 풀카운트로 만들 능력이 있으니까요. 히어로즈 배터리도 투 스트라이크를 잡았다고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3구 삼진을 잡을 절호의 기회를 날린 나경석은 4구째 몸쪽 높은 코스의 빠른 공을 주문했다.

초구부터 시작해 모든 공이 타자의 무릎 높이에서 놀았던 만큼 박유성의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었다.

사인을 확인한 장진호도 박유성의 얼굴 옆쪽을 향해 팔을 내던졌다.

사흘만의 등판이라 빈볼성 공이 나오더라도 박유성이 이해해 줄 거라 여겼는데.

따악!

피해야 정상인 공을 향해 박유성이 다시 한번 방망이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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