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323화 (323/412)

타자 인생 3회차! 323화

38. 한국 시리즈는 처음이라(5)

대표팀의 모든 선수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편이지만.

박유성은 특히 자신을 잘 챙겨준 김하선이 고마웠다.

너무 일찍 만난 송현민과 친형제처럼 가까워졌다면.

김하선은 대표팀 최고참이기 이전에 한 명의 선수로서 박유성을 인정하고 존중해 줬다.

만약 김하선이 선배랍시고 텃세를 부렸다면 LA 올림픽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마음 편히 뛰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하선이 형 만나면 살살 하려고?”

“아뇨. 이 악물고 열심히 하려고요.”

“와, 독한 놈.”

“한국 시리즈잖아요. 우승은 양보 못 하지만 최선을 다해야죠.”

1회차와 2회차를 살면서 한국 시리즈에 진출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파이터즈에서 16년을 뛰었던 2회차 시절에는 가을 잔치에 단 한 번도 초대받지 못했고.

FA로 스타즈에 입단한 1회차 때도 챔피언십 시리즈가 최고 성적이었다.

김하선 역시 데뷔 후 지금껏 우승 경험이 없지만.

40년간 한국 시리즈를 TV로만 지켜보다가 3회차 들어 첫 우승에 도전하는 박유성에 비할 바 아니었다.

하지만 박준수는 생각이 달랐다.

“그래도 난 위즈가 올라왔으면 좋겠어.”

“경석이 형 때문에요?”

“그 형은 그럴 거면 개그를 하지 뭐 하러 야구를 하나 모르겠다니까?”

박경호도 트래시 토크로 유명한 편이지만 나경석의 트래시 토크는 타자들이 극혐할 정도였다.

단순히 신경전을 하는 게 아니라 대놓고 아재 개그를 늘어놓기 때문이었다.

“저한테는 별말 안 하던데요?”

“네가 어려서 그래.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면 아재 개그가 안 먹히거든.”

“형하고 저하고 몇 살 차이나 난다고요?”

“나도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거든? 그런데 이게 자꾸 머릿속에 맴돌아. 지난번에는 뜬금없이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가 어딘 줄 아느냐고 물어보더라?”

“어딘데요?”

“부탄.”

“부탄가스요?”

“순간 짜증이 확 나는데 감정 컨트롤이 안 되더라. 결국 그 타석에서 삼진 먹었잖아.”

“삼진 먹고 괜히 경석이 형 핑계 대는 거 아니에요?”

“아니라니까 그러네. 암튼 이번에는 너도 당할 수 있으니까 조심해. 못 버티겠다 싶으면 아예 노래를 흥얼거려. 병규가 알려줬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더라.”

박유성의 바람대로 스타즈의 한국 시리즈 파트너로 히어로즈가 올라왔다.

7차전 초반부터 5실점을 하면서 그대로 끝이 나나 싶었지만.

스코어링 포지션에 주자가 나갈 때마다 꾸역꾸역 따라붙더니 9회 말에 김하선이 역전 투런 홈런을 때려내며 기어코 경기를 뒤집어 버렸다.

“김하선 선수. 결승 홈런을 때려낸 소감이 어때요?”

“올 시즌 팀에 크게 보탬이 되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했는데 이렇게나마 밥값을 하게 된 것 같아서 기분 좋습니다.”

“이제 스타즈와 한국 시리즈에서 만나게 됐는데요. 각오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스타즈의 기세가 워낙에 뜨겁지만 시즌 중에 스타즈 상대로 4승을 했으니까요. 악착같이 물고 늘어져서 7차전까지 가 보겠습니다.”

히어로즈의 첫 우승 다짐은 아니었지만.

경기장에 모인 히어로즈 팬들은 김하선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래. 한국시리즈에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솔직히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포스트 시즌도 불안했잖아? 한국 시리즈 갔으니까 된 거야.”

“그래도 모처럼 한국 시리즈 올라갔는데 우승해야 하지 않아?”

“박유성 치는 거 못 봤어?”

“박유성은 무슨 이글스전 이후로 다른 선수가 됐던데?”

“진짜 미친 듯이 치긴 하더라.”

“전력상 스타즈에 열세인 거 인정해야 해. 나는 홈에서 두 경기만 잡아줘도 만족이야.”

전문가들도 히어로즈가 스타즈를 꺾고 우승하기란 쉽지 않을 거라고 전망했다.

“스타즈는 트윈스를 4 대 0으로 잡아냈습니다. 창단 첫 포스트 시즌에 대한 부담감도 스타즈의 기세를 막지 못하고 있어요.”

“냉정하게 따졌을 때 히어로즈와 트윈스는 전력상 큰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마운드는 트윈스가 조금 더 좋죠. 트윈스 마운드를 상대로 박유성 선수는 13안타에 4홈런 타율 0.813을 쳤습니다. 7차전까지 치르느라 지칠 대로 지친 히어로즈 투수들이 박유성 선수를 막아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선발 로테이션도 스타즈 쪽에 웃어주고 있습니다. 스타즈는 1선발인 저스틴 스몰 선수부터 돌아가지만 히어로즈는 에이스인 브랜든 멕케니 선수가 3차전에나 나올 수 있습니다. 스타즈 원정 2연전을 허무하게 내줄 경우 트윈스처럼 와르르 무너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다음 날 열린 미디어 데이 행사에서도 양 팀의 예상이 갈렸다.

몇 차전까지 진행될지를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김석률 감독은 6차전을, 히어로즈 송혁 감독은 7차전을 예상했다.

“먼저 송혁 감독님께 여쭤보겠습니다. 7차전까지 가길 원하시는 건가요?”

“한국 시리즈는 모든 야구팬들의 축제니까요. 가능하면 7차전을 꽉 채웠으면 좋겠습니다.”

“7차전까지 가서 우승을 차지하는 게 최고의 시나리오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사실 7차전까지 가면 승부는 하늘에 맡겨야 하는 거라서요. 기왕이면 승부의 여신이 히어로즈의 손을 들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자가 여러 차례 유도 질문을 했지만 송혁 감독은 끝내 우승을 하겠다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

트윈스가 올라왔다면 2년 전의 준우승을 되갚아주겠다며 큰소리를 쳤겠지만 상대는 트윈스를 4 대 0으로 완파한 스타즈.

심지어 박유성의 타격감이 날카롭게 살아 있는 상황에서 우승을 바라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김석률 감독님. 6차전인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스타즈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라서요. 가능하면 홈 팬들 앞에서 우승하고 싶습니다.”

반면 김석률 감독은 시종일관 여유를 잃지 않았다.

프로 야구 역대 단일 시즌 최다승인 123승을 거둬놓고 앓는 소리를 할 수는 없는 노릇.

그렇다고 4 대 0으로 끝내겠다고 말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홈 우승을 핑계로 6차전을 언급했다.

“그럼 이제 김하선 선수와 박유성 선수 차례인데요. 두 분 모두 한국 시리즈가 몇 차전까지 갈지 손가락으로 말씀해 주세요.”

사회자의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김하선은 손가락을 일곱 개 폈다.

송혁 감독의 말처럼 누가 이기더라도 7차전까지 치열하게 맞붙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 옆에 선 박유성은 양손을 들지 않았다.

“김하선 선수는 7차전을 예상했는데 박유성 선수는 4차전입니다. 박유성 선수! 자신 있나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석률 감독님은 홈 팬들 앞에서 우승하길 희망하셨는데 박유성 선수의 생각은 다른 거죠?”

“홈 우승은 나중에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김하선 선수. 박유성 선수의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회자가 일부러 김하선의 반응을 유도했다.

하지만 김하선은 야구팬들이 보는 앞에서 소신 있게 구는 박유성이 대견하기만 했다.

“솔직히 스타즈를 상대로 3승 이상을 따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서 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경기를 만들겠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두 선수. 서로 마주 보면서 악수 한번 해주세요.”

사회자의 주문에 따라 박유성과 김하선은 카메라 앞으로 나와 마주 섰다. 그러고는 손을 맞잡으며 서로 각오를 주고받았다.

“쉽진 않을 거다.”

“올 시즌 일찍 시작하셨으니까 빨리 쉬게 해드릴게요.”

미디어데이 직후 진행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97퍼센트가 스타즈의 우승을 점쳤다.

1차전 승리팀을 묻는 질문에는 99퍼센트가 스타즈를 꼽았다.

심지어 히어로즈 팬들조차 1차전 승리를 기대하지 않았다.

└1차전 선발 저스틴 스몰 vs 장진호입니다.

└히어로즈 팬이지만 솔직히 1차전은 포기. 2차전 기대합니다.

└저도요. 저스틴 스몰도 빡센데 원정 경기의 장진호는 답이 없습니다.

└장진호 내세우고 승리 바라는 거 자체가 도둑놈 심보죠.

히어로즈는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3선발 로테이션을 가동했다.

1선발인 브랜든 멕케니가 1차전(패배)과 4차전(승리), 7차전에 등판했고.

2선발인 코비 아노가 2차전(승리)과 5차전(패배)을.

3선발인 장진호가 3차전(패배)과 6차전(승리)을 맡았다.

일각에서는 7차전 때 조기 강판된 브랜든 멕케니가 다시 마운드에 오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전망을 내놓았지만.

송혁 감독은 브랜든 멕케니를 3차전에 올리겠다고 못을 박았다.

그렇다면 순서상 2선발인 코비 아노의 차례겠지만.

송혁 감독의 선택은 토종 에이스인 장진호였다.

└코비 아노 어디 아픈가요? 왜 장진호예요?

└저스틴 스몰 vs 코비 아노면 무조건 저스틴 스몰이 이깁니다. 그래서 장진호 던지게 한 거예요.

└장진호가 1차전에 나가면 4차전 홈경기 때 김혜성 상대로 등판할 수 있습니다. 김혜성하고는 올 시즌 두 번 맞붙어서 1승씩 주고받았으니까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5차전에 등판한 코비 아노는 한국 시리즈 1차전까지 4일을 쉰 상태였다.

반면 6차전에 선발 등판한 장진호는 나흘도 아니고 사흘 만의 등판이었다.

6차전에서 5이닝 동안 60구밖에 던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정상 투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송혁 감독은 정석 운영보다 변칙 운영을 통해 변수를 창출해 내고자 했다.

“진호야. 불펜 피칭한다고 생각하고 딱 3회까지만 버텨. 알았지?”

“네. 감독님.”

“너 2차전으로 돌리면 홈에서 저스틴 스몰하고 붙어야 해. 저스틴 스몰보다는 김혜성이 나을 거야.”

스타즈가 4차전 만에 트윈스를 제압하고 한국 시리즈에 선착했을 때.

송혁 감독은 6차전에서 챔피언십 시리즈를 끝내고 싶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에이스인 브랜든 멕케니를 한국 시리즈 1차전으로 돌릴 수 있었다.

큰 키에 160㎞/h에 육박하는 빠른 공을 내리꽂는 저스틴 스몰을 상대하는 건 부담스러웠지만.

스타즈가 4선발 로테이션을 고집하는 이상 홈에서 열리는 4차전에서 김혜성을 상대로 브랜든 멕케니를 내세울 수 있었다.

“7차전까지 가면 브랜든과 송찬우야. 그럼 진짜 해볼 만해.”

나눔 리그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국가대표 우완 에이스 송찬우가 쉬운 투수는 아니지만.

드림 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인 브랜든 멕케니가 평소만큼만 던져준다면 어떻게든 비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챔피언십 시리즈 5차전을 허무하게 내주면서 브랜든 멕케니 카드를 소진하고 말았다.

챔피언십 시리즈 7차전에서 맥없이 무너지면서 팀을 망친 주범으로 전락할 뻔하긴 했지만.

히어로즈 선발 투수들 중에 브랜든 멕케니보다 나은 투수는 없었다.

그런 브랜든 멕케니를 3차전으로 돌리면서 전략을 짜다 보니 장진호가 사흘 만에 다시 마운드에 서게 됐다.

“진호야. 나만 믿고 편하게 던져.”

1회 초 공격이 삼자 범퇴로 끝나자 나경석은 포수 보호구를 단단히 묶었다.

팀을 위해 헌신하는 장진호를 위해서라도 포수인 자신이 제대로 리드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잠시 후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를 본 순간 그 각오가 흔들렸다.

“유성아. 진호 이틀 쉬고 나온 거야. 불쌍하지?”

“진호 선배님이 고생이 많으시네요.”

“그러니까 살살 하자. 응?”

“네. 진호 선배님 빨리 쉬게 해드려야겠어요.”

“뭐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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