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318화 (318/412)

타자 인생 3회차! 318화

37. 어나더 레벨(9)

스즈키 이치이로는 메이저리그에서만 10년 연속 200안타를 때려냈다.

메이저리그의 통산 최다 안타의 주인공인 피터 로즈(4,256개)도 무려 10번이나 200안타 시즌을 만들어냈지만.

10연속 시즌은 스즈키 이치이로가 메이저리그 최초였다.

한두 해 잘하다 보면 집중 견제를 받게 되고 크고 작은 부상과 슬럼프를 겪다 보면 타석에 설 기회가 줄어들게 마련이지만.

대기록을 세우는 기간 동안 스즈키 이치이로가 150경기 이상을 소화하지 못한 건 단 한 번뿐이었다.

160경기 이상을 소화한 시즌만 무려 6번.

그것도 전부 서른을 넘어선 이후의 출장 기록이다 보니 이 정도면 철인이라 불려도 될 정도였다.

“메이저리그에 처음 왔을 때는 모든 게 재미있었습니다. 강한 투수들을 상대하는 것도 재미있고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경기하는 것도 즐거웠죠.”

“첫 시즌에 엄청난 성적을 냈잖아요?”

“여러모로 운이 따랐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9년간 쌓은 경험이 큰 도움이 됐죠. 하지만 2년 차부터는 달랐어요. 투수들이 제 약점을 파고들기 시작했죠.”

“스즈키 씨에게도 약점이라는 게 있었나요?”

“하하. 이 세상에 약점이 없는 타자는 없을 겁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고요.”

“2년 차와 3년 차 때 부진한 것처럼 말하는데 두 시즌 모두 마지막까지 최다 안타 경쟁을 벌이지 않았어?”

옆에서 듣고 있던 래니 워커가 슬쩍 끼어들었다.

2005년까지 현역으로 뛰었던 래니 워커는 스즈키 이치이로가 맹활약하던 그 시절을 누구보다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자 스즈키 이치이로가 웃으며 말했다.

“결국 타이틀을 따내지 못했습니다. 경쟁에서 진 거죠. 하지만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경험들을 바탕으로 한 시즌 최다 안타를 때려냈으니까요.”

2002년 스즈키 이치이로는 단 하나 차이로 최다 안타 타이틀을 놓쳤다.

2003년에는 1위와 고작 3개 차이.

안타를 치지 못한 경기에서 조금만 더 집중했다면 충분히 뒤집을 수 있는 격차였다.

“박유성 선수의 6월은 그때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데이터상으로는 감히 비교가 되지 않겠죠. 박유성 선수는 6월과 7월에도 7할을 때려냈으니까요.”

“그래도 4월과 5월에 비해서는 부진한 느낌인 건 사실이었죠.”

“박유성 선수의 활약이 계속되니까 견제가 심해졌어요. 투수들이 승부를 해주지 않았고 자동 고의4구도 많아졌죠.”

5월과 6월에 박유성이 얻어낸 볼넷의 수는 40개와 35개.

4월의 34개와 비교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고 보긴 어려웠다.

하지만 자동 고의4구의 비율은 크게 늘었다.

4월에 4개였던 자동 고의4구는 5월 10개를 거쳐 6월에 23개, 7월에 21개로 배로 늘었다.

“애니. 컨디션이 좋을 때도 슬럼프에 빠질 수 있다는 거 알아요?”

“번아웃 같은 건가요?”

“그런 경우도 있겠죠. 연속 경기 안타 행진을 이어나가던 타자가 안타를 치지 못하면 한동안 슬럼프를 겪는 것처럼요. 다만 제가 말하는 건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한창 컨디션이 좋을 때 타자들은 어떻게든 치려고 합니다. 볼넷을 고르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안타를 때려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하지만 타자들이 덤벼들면 투수는 본능적으로 승부를 피합니다.”

“좋은 공을 주지 않는다는 거죠?”

“그렇죠. 아마 처음에는 부담스러울 겁니다. 지난 시리즈에서 4할쯤 쳐버리면 얻어맞을까 봐 겁도 나겠죠. 하지만 타자가 나쁜 공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상황이 바뀝니다. 유인구를 골라내면서 좋은 공을 공략해야 하는데 자꾸 유인구에 몸이 반응하면 자신도 모르게 타격 밸런스가 무너지게 되는 거죠.”

스즈키 이치이로의 설명에 에릭 지터와 래니 워커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저리그에서 각각 8천 타석과 1만 2천 타석을 소화한 레전드이다 보니 비슷한 상황을 숱하게 겪은 것이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슬럼프에 빠지면 이겨내기가 쉽습니다. 이유가 명확하니까요. 하지만 컨디션이 좋다가 갑자기 슬럼프에 빠지면 생각보다 오래갑니다. 타격 밸런스가 망가졌다는 걸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더 걸리거든요.”

“썬도 그랬나요?”

“썬은 사실 슬럼프라는 게 없었죠. 7할을 치는 타자에게 슬럼프가 찾아왔다고 말하려면 다른 타자들은 9할쯤 쳐야 할 테니까요.”

스즈키 이치이로를 대신해 래니 워커가 말을 받았다.

슬럼프의 기준이 명확한 건 아니지만 한두 경기 정도 안타가 없었다고 해서 섣불리 슬럼프라는 단어를 가져다 붙이지는 않는다.

평소에 비해 정타 비율이 확 줄어들고 헛스윙 비율이 늘면서 타격 밸런스가 완전히 흐트러진 모습이 보여야 전문가들도 슬럼프라 언급하는데 박유성은 올 시즌 안타를 치지 못한 경기가 단 두 경기뿐이었다.

그마저도 한 번은 빈볼 사태로 타격 기회가 없었고 나머지 한 번도 3개의 볼넷을 골라냈으니 부진했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저는 박유성 선수에게도 슬럼프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 몇 번 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슬럼프가 없었죠.”

“위기의 순간들을 전부 이겨낸 건가요?”

“전부 이겨냈다고 말하긴 어렵겠죠. 6월과 7월에 월간 타율이 소폭 하락하긴 했으니까요. 다만 박유성 선수는 자신만의 타격 밸런스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기다렸죠. 투수들이 다시 승부를 걸어주길 말입니다.”

“투수들이 다시 승부를 걸어줄 거라고 예상했다는 건가요?”

“아무래도 후반기에 접어들면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팀과 그렇지 못한 팀이 갈리니까요. 포스트시즌이 절실한 팀은 박유성 선수에게 안타를 맞는 게 부담스럽겠지만 그렇지 않은 팀은 계속해서 박유성 선수와의 승부를 피할 명분이 없죠. 팬들도 그걸 바라지 않을 테고요.”

“그때쯤 되면 투수들도 자존심이 상할 겁니다. 승부를 피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죠. 썬의 7할 타율이 무너졌다면 또 모르겠지만 썬은 월간 타율 7할을 지켜냈잖아요? 승부를 마냥 피하는 게 정답이 아니게 된 거죠.”

스즈키 이치이로와 에릭 지터의 분석대로 8월 이후 박유성을 향한 집요한 견제가 누그러졌고.

박유성은 그동안 참아왔던 타격 본능을 일시에 폭발시켜 8월에만 22개의 홈런을 쏘아 올렸다.

“견제를 이겨내고 7연타석 홈런을 때려냈을 때는 정말 감동이었어.”

“맞아요. 마치 한껏 굶주린 맹수를 보는 기분이었어요.”

“만약에 투수가 승부를 피하지 않았다면 8연타석 홈런도 가능했을걸?”

“8연타석뿐이겠어? 투수가 적당히 승부만 해줬다면 계속해서 홈런을 때려냈을 거라고.”

“그 얘기는 조금 있다가 다시 하기로 하고요. 스즈키 씨가 아직 대답을 해주지 않았어요.”

“대답이요? 미안한데 질문이 뭐였죠?”

“썬이 최소 300개의 안타를 칠 거라는 에릭의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아, 그거요?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 잠깐 잊어버렸네요.”

“그 얘기는……?”

“300안타는 딱히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262개의 안타를 때려냈던 시즌보다 썬이 배는 잘하니까요.”

“그렇다면 스즈키 씨는 썬이 얼마나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나요?”

“글쎄요. 만약에 박유성 선수가 부상 없이 꾸준히 활약해 준다면 피터 로즈의 기록도 깨지지 않을까요?”

“통산 최다 안타 말이죠?”

“물론 시즌당 300개의 안타를 때려내도 14년이 걸리겠지만 박유성 선수가 올 시즌만큼의 활약을 이어나간다면 그보다 이른 시기에 충분히 경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즈키 이치이로가 피터 로즈를 소환하자 메이저리그 팬들도 갑론을박을 쏟아냈다.

└나는 썬을 정말 좋아해. 썬이 하루빨리 메이저리그에 오길 바란다고. 하지만 피터 로즈의 기록을 넘는 건 불가능해. 그건 불멸의 기록이라고. @truebluefan745

└피터 로즈는 24시즌 동안 무려 4,256개의 안타를 때려냈어. 시즌당 평균 177개야. @Bravefan237

└썬의 올 시즌 기록을 보고 얘기를 했으면 좋겠어. @Bleacher7

└썬이 올 시즌 390개의 안타를 친 건 알고 있지만 한국 리그와 메이저리그는 다르잖아? @Bul052

└나는 스즈키 이치이로의 말에 동의해. 썬은 무려 7할 타자야. 현대 야구 역사에 다시는 나오지 않을 괴물 같은 선수라고. @Leftfield253

└스즈키 이치이로도 메이저리그 진출이 빨랐다면 피터 로즈의 기록에 도전할 수 있었을 거야. 썬은 빠르면 내후년에 메이저리그에 건너와. 22살부터 데이터를 쌓을 수 있다고. @joeysports

└22살? 와우. 아시아 출신 선수들의 수명이 짧다고 해도 30대 중반까지는 충분히 뛸 수 있을 테니까 가능할 것 같은데? @Bleacher7

└스즈키 이치이로의 말에 에릭 지터와 래니 워커는 동의하지 않았어. 그게 중요하다고 봐. @epicgiraf324

└나와 같은 방송을 본 게 맞아? 에릭 지터와 래니 워커도 스즈키 이치이로의 말에 거의 동조했어. 생각이 달랐다면 바로 반론을 제기했겠지. @frogman72

└썬의 기록을 제대로 살펴봤다면 지금의 논쟁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게 될 거야. 썬은 단순히 안타만 많이 치는 유형의 타자가 아니야. 볼넷도 무려 202개나 골라냈다고. @Miky H.

└뭐야? 그렇게 호들갑을 떨더니 베리 본드의 기록을 넘지 못한 거야? @Marc_3272

└약쟁이 기록을 넘어서 뭐 하게? @MomsOopsBaby

└썬은 베리 본드의 홈런 기록을 뛰어넘었어. 그러니까 더 이상 베리 본드를 가져다 댈 필요 없다고. @Captain Redsox

└과연 썬이 메이저리그에 와서도 베리 본드만큼 홈런을 칠 수 있을까? @Marc_3272

└만약 썬이 베리 본드만큼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어? @Murry

└앞으로 홈런은 애런 조지의 기록을 가져와 달라고. @Domini

피터 로즈를 기억하는 올드 팬들은 스즈키 이치이로의 발언에 불쾌함을 드러냈지만.

박유성의 메이저리그 입성을 손꼽아 기다리는 대다수 팬들은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당사자인 피터 로즈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박유성이 자신의 기록을 경신해 주길 소원했다.

“본래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겁니다. 다른 선수도 아니고 세계 최초로 7할 시즌을 보낸 썬이라면 제 기록에 도전할 자격이 차고 넘치죠.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썬이 레즈에 오는 겁니다. 만약에 썬이 내 등번호를 원한다면 기꺼이 허락할 생각입니다.”

스즈키 이치이로와 피터 로즈의 발언에 대해 박유성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직 시즌이 다 끝난 게 아니라서요. 지금은 스타즈의 한국 시리즈 우승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시즌 막판까지 치열한 순위 다툼을 벌인 끝에 타이거즈가 트윈스를 한 경기 반 차이로 제치고 나눔 리그 2위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의 승자는 트윈스였다.

타이거즈를 시리즈 스코어 3 대 2로 제압하고 스타즈가 기다리고 있는 나눔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올라왔다.

“스타즈는 강하지만 단기전은 다릅니다. 스타즈 선수들은 젊고 포스트 시즌 경험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우린 다르죠. 얼마든지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시리즈 전날 미디어데이에서 윤지현 감독은 한국 시리즈에 올라가는 건 트윈스가 될 거라 단언했다.

주요 언론들도 정규 시즌과 포스트 시즌은 다르다며 가을 야구 DNA를 가진 트윈스가 반전 드라마를 쓸지 모른다고 떠들었다.

하지만 박유성의 뜨거운 방망이는 가을 찬바람에도 꺾이지 않았다.

-아아! 큽니다! 쭉쭉 뻗어나갑니다! 우익수 뒤로! 우익수 뒤로! 담장 밖으로 넘어갑니다! 홈런! 쓰리런! 박유성 선수가 오늘 경기의 마침표를 찍어냅니다!

4경기 연속 홈런을 포함, 매 경기 3안타 이상을 때려낸 박유성의 맹활약 속에 스타즈는 트윈스를 시리즈 스코어 4 대 0으로 잡아내고 한국 시리즈에 선착했다.

그렇게 박유성 야구 인생 첫 한국 시리즈의 막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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