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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316화 (316/412)

타자 인생 3회차! 316화

37. 어나더 레벨(7)

정치권에서 체육 특성화 학교 지정 해제를 주장하자 신화 여자 중학교와 신화 여자 고등학교 출신 스포츠 선수들이 단체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철저한 반성과 성찰로 새롭게 시작하는 신화 여중·여고가 되길 바랍니다. 아울러 피해를 입은 박유선 양과 박유성 선수 이하 가족들에게 선배로서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야구팬들은 이제 와서 뒷북친다면서 코웃음을 쳤지만.

각 종목 국가대표 선수들이 다수 포함된 단체 성명서의 무게감은 결코 무시할 수가 없었다.

“뭘 한다고?”

“신성 중학교 좀 취재하겠다고요.”

“왜?”

“왜긴요. 결국 박유성 백으로 전학 간 거 아닙니까? 제가 알아보니까 신성 그룹에서…….”

“그래. 가.”

“정말이죠? 역시 부장님은 말이 통할…….”

“짐 싸서 나가. 이 새끼야.”

“……네?”

“지금 너 하나 때문에 몇 명이 깨진 줄 알기나 해? 왜 똥은 네가 싸놓고 애꿎은 다른 기자들이 피해를 봐야 해? 왜 너 때문에 오선 일보 폐간 소리까지 나와야 하냐고!”

“부장님. 아시잖아요. 취재를 하다 보면…….”

“그래. 너 말 잘했다. 적어도 기자라면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보고 기사를 써야지. 너처럼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도 못 하고 일단 써재끼는 놈들을 뭐라고 하는 줄 알아? 기레기라고 그래. 기레기! 내가 가장 혐오하는 말인데 넌 아니다. 넌 기레기만도 못해, 이 새끼야!”

최성국 스포츠 1팀장에 이어 안성태 스포츠부 편집부장에게까지 된통 깨졌지만 홍민호 기자는 이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물어다 준 특종이 몇 개인데 지랄이야? 좋아. 딱 기다려. 내가 왜 홍민호인지 보여줄 테니까.”

홍민호 기자는 성명서를 낸 스포츠 선수들 중에 분명 현 상황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그들조차 홍민호 기자의 취재 요청을 단칼에 거절했다.

“김상미 선수. 그러지 말고 한 시간, 아니, 30분만 내주세요.”

“왜 저한테 와서 이러세요? 다른 사람 취재하세요. 제가 인터뷰 안 한다고 했잖아요?”

“그러지 말고 서로 상부상조합시다. 내가 다음에 김상미 선수 기사 기깔나게 써드릴게요.”

“저기요, 홍 기자님. 제 기사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방해하지 마시고 그만 나가세요. 앞으로 저한테 연락하지도 마시고요.”

“뭐요? 김상미 선수. 나한테 이러는 거 후회 안 하겠어요?”

“미리 경고하는데 혹시라도 저 만났다는 소리 하기만 해요. 저도 절대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홍민호 기자기 이곳 저곳에서 치욕을 당하던 그 시각.

박유성은 쉬는 날을 맞아 모교인 신성 중학교 야구부를 방문했다.

“감독님. 그동안 잘 지내셨죠?”

“이 녀석아. 온다고 미리 말을 해주지 그랬어?”

3회차를 사느라 까마득해진 옛 인연들과 인사를 나눈 뒤 박유성은 미리 준비한 야구 물품들을 후배들에게 선물했다.

“네 덕분에 지원금 넉넉하게 받았는데 뭘 이렇게까지 가져와?”

“그래도 제가 선배인데 빈손으로 올 수는 없잖아요?”

프로 야구 협회와 대한 야구 협회가 맺은 아마추어 선수 지원 규약에 따라 아마추어 선수를 지명한 구단은 계약금의 10퍼센트를 해당 선수의 모교에 지원해야 한다.

지원 비율은 초등학교 1퍼센트, 중학교 2퍼센트, 고등학교와 대학교 3.5퍼센트.

박유성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에 뛰어든 경우 대학교 지원금이 초·중·고에 나눠 지급되는데 덕분에 신성 중학교 야구부도 6천만 원에 달하는 야구 물품을 지원받게 됐다.

“장비 후원받는 곳에서 별도 주문해서 싸게 했어요.”

“네 장비 후원 업체에서? 어쩐지 방망이 때깔부터 곱다 했다.”

“현민이 형이 저 후원한 걸로 엄청 우려먹는 거 아시죠? 그러니까 감독님도 제가 우려먹을 수 있는 후배들 많이 키워주세요.”

“이 중에서 너 같은 녀석이 또 나올까 싶지만 노력은 해보마.”

“참, 제 막냇동생도 야구 시킬 거니까 감독님이 책임지고 키워주세요.”

“막냇동생하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어?”

“이제 초등학교 들어갔으니까 5년 남았네요.”

“그때까지 내 목이 남아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렇다고 편애는 하지 마시고요.”

“별 걱정을 다 한다. 요즘엔 그랬다간 큰일 나.”

시즌이 끝난 뒤였다면 후배들과 함께 식사라도 했겠지만.

잠깐 짬을 내서 방문한 거라 사인과 사진 촬영을 해주는 선에서 마무리를 지었다.

“코치님. 중학교 배구부는 어디 있어요?”

“저쪽이잖아. 졸업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걸 까먹어?”

체육 특성화 학교는 아니지만 신성 재단도 스포츠 쪽에 상당한 투자를 해 왔다.

정확하게는 야구 쪽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다른 종목들로 확대가 된 거지만.

재단 이사장인 신상욱 회장이 워낙에 통이 크다 보니 신성 학원 배구 선수들도 신화 학원 못지않은 배구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중이었다.

“제법 그럴싸하네.”

경기장 한쪽에서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박유성의 눈에 낯익은 얼굴이 들어왔다.

“홍연주 선수네.”

자신처럼 40살까지 선수 생활을 했던 전직 국가대표 공격수 홍연주 감독이 신성 중학교 사령탑으로 와 있었다.

그런 박유성의 시선을 느꼈던지 홍연주 감독이 직접 관중석 쪽으로 올라왔다.

“박유성 선수 맞죠?”

“처음 뵙겠습니다. 박유성이라고 합니다. 선배님.”

“내가 누군 줄 알아요?”

“홍연주 선배님이시잖아요.”

“알아봐 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유선이는 내가 누군 줄 모르더라고요.”

“유선이가 배구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요. 이해 좀 해주세요.”

박유선이 롤모델로 여기는 강연경만큼은 아니지만.

홍연주도 대한 민국 프로 배구 레전드 선수였다.

177㎝의 단신에도 불구하고 왼손잡이라는 희소성과 높은 점프력을 발판으로 은퇴 직전까지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다.

‘야구에 비교하자면 양준석 선배님 같은 선수니까.’

40년의 프로 생활을 거쳐 3회차를 사는 박유성에게 오래도록 현역 생활을 유지한 모든 선수들은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유선이가 배구를 늦게 시작해서 특별히 신경 쓰고 있어요.”

“특별히 신경을 써주셔도 괜찮을까요?”

“괜찮아요. 저도 사실 중학교 1학년 때 배구를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유선이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돼요.”

“그래도 경기 출전은 최대한 공정하게 부탁드립니다.”

“그럼요. 그리고 우리는 신화 여중처럼 선수층이 두꺼운 게 아니라서 경기 출전 가지고 말 나오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요.”

홍연주의 요청으로 신성 중학교 여자 배구부 선수들과 잠시 인사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앞서 들른 야구부 후배들에게는 조금 미안했지만.

언제든 방문이 가능한 야구부와 달리 배구부는 허튼 기사가 날까 봐 함부로 드나들 수가 없었다.

혹시나 불편해하는 선수들이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박유성 선배님!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그럼. 편하게 불러.”

“유성이 오빠아! 저하고 결혼해 주세요!”

“미안해서 어쩌지? 나 만나는 사람 있는데?”

모교 선배랍시고 다들 편견 없이 대해주었다.

“박유성 선배님처럼 운동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일단 감독님하고 코치님 가르침을 잘 받아야겠지?”

“그리고요?”

“그리고 운동은 스스로 알아서 하는 거야. 남이 시켜서 하는 정도로는 프로에 갈 수가 없어.”

“저도 열심히 하면 국가대표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럼. 나도 중학교 때는 그렇게 야구를 잘하지 못했어. 고등학교 올라가서도 2학년 때까지는 선발로 거의 나가지 못했고. 그러니까 다들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해. 결국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올라가는 거니까.”

선수들과 잠시 시간을 보낸 뒤에 박유성은 신성 중학교 배구부에 후원금을 전달했다.

“이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원래 신화 여중에 후원할 예정이었는데 유선이가 전학을 와서요. 기왕이면 모교가 낫지 않을까요?”

“그럼요. 모교가 낫죠.”

“아마 제가 후원했다고 하면 신성 그룹에서도 더 신경을 써줄 겁니다. 그러니까 저희 유선이, 빡세게 굴려주세요.”

“빡세게 굴려달라는 거 보니까 찐남매 맞네요.”

“남매란 원래 그런 것이죠. 하하.”

박유성이 후원금을 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신상욱 회장도 가만있지 않았다.

“코트에 문제 있어?”

“아닙니다. 회장님. 코트 상태는 양호합니다.”

“그래도 뭔가 부족한 게 있으니까 유성이가 저러는 거 아냐? 이번 기회에 재단에 말해서 보고서 올리라고 해. 필요한 거 있으면 전부 요청하라고 하고.”

“알겠습니다. 회장님.”

신상욱 회장의 주문대로 신성 학원 운동부에 대한 추가 지원이 발표되자 선수들은 물론이고 학부모들마저 박유성 만세를 외쳤다.

“이게 다 박유성 선수 덕분이라면서요?”

“박유성 선수가 후원금 냈다니까 회장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거죠.”

“그렇지 않아도 신성 학원은 이름난 프로 선수들이 거의 없어서 아쉬웠는데 박유성 선수 덕분에 한 시름 놓았네요.”

“그런데 왜 박유성 선수가 배구부에 후원금을 낸 거죠?”

“왜요? 동생 잘 봐달라고 청탁이라도 했을까 봐서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야구 선수인데 굳이…….”

“어디 가서 쓸데없는 소리 하기만 해요. 신화 학원 지금 초상집 분위기인 거 알죠?”

“사람이면 최소한 고마움은 알고 삽시다. 막말로 박유성 선수 덕분에 신성 학원 위상이 올라갔는데 그런 삐딱한 시선으로 봐야겠어요?”

“우리 애가 그러는데 박유성 선수가 와서 좋은 얘기 많이 해주고 갔다네요.”

“그래서 그런가? 우리 애도 요즘 많이 달라졌어요.”

“분명히 애들 이용해서 이간질하는 인간들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신화 학원 같은 일이 안 생기도록 우리부터 정신 바짝 차리자고요.”

물론 모두가 박유선의 전학을 반기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신화 여자 중학교처럼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박유선을 험담하거나 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일반 학생들 역시 박유성이 신성 중·고를 나왔기 때문에 박유선이 신성 중학교에 다니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그렇게 상황이 진정되자 박유성도 다시 야구에 전념했다.

-아아, 큽니다! 쭉쭉 뻗어나갑니다!

-이건 넘어갔는데요?

-우익수 뒤로! 우익수 뒤로! 우익수가 타구를 포기합니다! 홈런! 쓰리런! 박유성 선수가 시즌 70호째 홈런을 3점포로 장식합니다!

9월 16일.

홈에서 치러진 랜더스와의 최종전에서 프로 야구 첫 70호 홈런을 달성한 박유성은.

9월 30일.

타이거즈와의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 때 다시 한번 홈런포를 가동하며 시즌 홈런 기록을 74개로 마무리했다.

금지 약물을 복용했던 베리 본드가 기록한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73개)을 기어코 넘어선 것이다.

“한국 리그와 메이저리그는 전혀 다른 리그입니다.”

“한국의 홈런왕이던 이승협도 일본에서는 41개의 홈런에 그쳤습니다. 박유성도 일본에 오면 50홈런을 장담할 수가 없어요.”

단일 시즌 세계 신기록이라는 국내 언론들의 보도에 일본 보수 언론들은 앞다투어 반박했지만.

정작 메이저리그 언론들은 박유성의 압도적인 활약상에 감탄만 늘어놓았다.

“어떻게 저런 호리호리한 체격으로 74개의 홈런을 때려낼 수가 있는 거지?”

“썬은 홈런 타자가 아니야. 이건 분명해. 하지만 썬은 장타를 때려낼 수 있는 타자야. 압도적인 안타 생산 능력으로 파워를 극복하고 있다고.”

“썬이 메이저리그에 온다면 2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낼 수 있을까?”

“그야 당연하지. 최소 30홈런 이상이야. 썬을 다른 아시아 타자들과 똑같이 취급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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