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인생 3회차! 312화
37. 어나더 레벨(3)
“뭐가 그렇게 좋으십니까?”
“대충 들었잖아?”
“대충 들었는데 이해가 안 돼서요.”
“마크가 되묻지 않았어.”
“무엇을 말입니까?”
“현재 썬의 몸값이 어느 정도인지, 얼마를 준비해야 하는지 되묻지 않았다고.”
“그래서요?”
“마크도 썬을 데려올 생각인 거야. 그게 아니었다면 내가 사고 치지 못하게 선을 그었을걸?”
현재 다저스는 양키즈, 레드삭스와 함께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돈을 쓰는 구단 중 하나였다.
해마다 내는 사치세도 적지 않아서 구단주 입장에서는 과잉 투자를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저스 구단 지분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는 마크 월트 구단주는 알겠다며 통화를 넘겼다.
박유성의 실력과 필요성, 그리고 가치에 대해서 이해했으니 추후에 박유성을 영입할 시점이 다가왔을 때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자는 뜻이었다.
“로이. 어제 오늘 경기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어?”
“다저스 경기 말입니까?”
“썬의 경기를 말하는 거잖아.”
“하아……. 앤드류. 썬도 좋지만 다저스를 먼저 생각해 주세요.”
“다저스를 생각하고 있잖아?”
“미래의 다저스 말고 현실의 다저스를 봐야죠.”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로이. 내 역할은 다저스의 미래를 구상하고 준비하는 거야. 그라운드에서 싸우는 건 감독과 선수들의 몫이라고.”
현재 다저스는 지구 라이벌 자이언츠와 치열한 1위 다툼을 벌이는 중이었다.
어제 경기까지 자이언츠를 1.5경기 차이로 앞서고 있지만 설사 최종 순위에서 밀린다 하더라도 승률이 높아 포스트시즌 진출이 유력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구단 운영을 총괄하는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었다.
이미 지구 우승이 가능한 팀 전력을 짜놓았고 추가적으로 트레이드를 진행할 일도 없으니 나머지는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로이 홀랜드 보좌역의 생각은 달랐다.
“아직 브라이언의 계약이 남아 있습니다.”
“또 그 얘기야? 조쉬가 거절했잖아?”
“정확하게는 조쉬의 추가 제안을 앤드류가 거절한 겁니다.”
“그게 그거지. 지금 당장 시장에 나가봐. 6년에 9천만 달러 받기가 쉬운 줄 알아?”
“앤드류. 냉정하게 지금 당장 FA로 풀린다 해도 그 정도 계약을 받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과연 그럴까? 발목 부상으로 제대로 수비조차 하지 못하고 장타 욕심 내느라 정확도마저 떨어졌는데?”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시는 거 아닙니까?”
“로이. 자네야말로 너무 낙관적으로 보는 거 아니야? 우린 월드 시리즈 우승을 바라보는 팀이야. 단순히 우승이 목표라고 떠들어대는 게 아니라 우승에 가까이 서 있는 팀이라고. 그런 팀에 제 몸 사리기 바쁜 선수가 과연 어울린다고 생각해?”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의 2년째 바이 아웃 조항을 에이전트 조쉬 애버튼이 받아들이면서 잘 풀리나 싶었던 장기 계약 문제는 다시 난초를 만난 상태였다.
계약서에 서명을 하기 직전에 조쉬 애버튼이 총액 1억 달러를 맞춰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막판에 슬쩍 금액을 올려서 계약을 받아내는 게 에이전트들의 주된 전략 중 하나라지만.
브라이언 조던을 박유성의 대체 자원쯤으로 여기던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에게 통할 리 없었다.
“6년에 9천만 달러. 그 이상은 어렵습니다.”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더 들어볼 것도 없다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브라이언 조던도 자존심이 상했다.
“지금 6년째 다저스를 위해 뛰고 있는데 고작 1천만 달러를 못 올려주는 게 말이 돼요?”
다저스가 자신을 원치 않는다고 생각한 브라이언 조던은 그 불만을 최악의 방법으로 표출했다.
바로 태업.
최근 몇 경기에서 충분히 잡을 수 있는 타구들을 포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며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의 눈 밖에 나 버린 것이다.
그나마 장타력을 끌어올리면서 수비에 대한 팬들의 불만을 억누르는 중이지만.
7연타석 홈런을 때려낸 슈퍼 루키의 활약상에 비한다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로이. 우리 솔직해지자고. 자네가 감독이라면 브라이언 조던을 계속 데리고 갈 거야?”
“지금으로서는 대안이 없지 않습니까?”
“과연 그럴까? 정말 대안이 없을까?”
“앤드류.”
“지금 당장에라도 브라이언 조던을 대신할 선수를 마이너리그에서 콜업할 수 있어. 브라이언 조던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브라이언 조던의 빈자리 정도는 얼마든지 채울 수 있다고.”
“브라이언 조던은 메이저리그 6년 차 선수입니다. 팀에 대한 충성심도 상당하고요.”
“충성심? 무슨 충성심? 우승이 가능한 팀에 남고 싶은 욕심 아니고? 그렇게 충성심이 대단한 선수가 몸을 사리며 플레이하나? 그건 충성심이 아니라 이기심이야. 다저스라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내로라하는 빅마켓에서 뛰고 싶은 이기심이라고.”
“그렇게 따지면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다들 우승이 가능한 팀에서 뛰고 싶어 할 테니까요.”
“그래. 그래서 더 브라이언 조던을 용서할 수가 없어. 프로 선수가 뭐 하는 거야? 계약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실력으로 몸값을 높일 생각을 해야지 팬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감히 태업을 해?”
분노를 쏟아내는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 앞에서 로이 홀랜드 보좌역은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시즌 막판에 접어들면서 브라이언 조던의 체력도 떨어졌고.
선택과 집중의 차원에서 수비보다 공격, 특히 연봉과 직결되는 장타 생산 쪽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이지만.
중견수는 기본적으로 수비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을 납득시키긴 어려울 것 같았다.
“정말로 계약을 내년으로 미룰 생각입니까?”
“계약 조건을 맞출 수 없다면 그렇게 해야지.”
“그러다 내년에 브라이언 조던의 수비력이 좋아지면요?”
“그럼 더 좋은 계약 조건을 제시하면 되는 거잖아. 뭐가 문제야?”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이 당연한 소리를 한다며 이맛살을 찌푸렸지만 로이 홀랜드 보좌역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만약에 내년 시즌 브라이언 조던이 커리어 하이 시즌을 찍고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요구한다면?
코앞으로 다가온 박유성 쟁탈전을 핑계로 브라이언 조던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았다.
“앤드류. 내년에 피터 페츠와 재계약을 해야 합니다. 코리 베츠도 장기 계약을 원할지 모르고요.”
“그래서? 내년에 나갈 돈이 많으니까 합리적인 가격에 브라이언 조던을 잡자는 거야?”
“조쉬 애버튼도 2년 바이 아웃 조건에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바이 아웃이 걸린 걸 비밀에 부치자고 했지. 추가로 1억 달러를 맞춰달라고 고집을 부리는 중이고. 만약에 말이야. 조쉬의 말대로 들어주면 어떻게 될 거 같아?”
“썬의 영입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생길 수도 있는 게 아니라 생겨. 그것도 100퍼센트 생긴다고. 2년 후 바이 아웃은 내가 들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였어. 빠르면 내후년에 썬이 메이저리그에 도전할 때 다저스에 자신의 자리가 있다는 걸 확실하게 인지시켜 줄 생각이었다고.”
“그때 가서 바이 아웃을 해도 되지 않습니까.”
“그래도 상관없다면 조쉬 애버튼도 군말 없이 받아들였겠지. 애당초 조쉬 애버튼은 썬의 영입에 협조할 생각이 없어. 2년 후 옵트 아웃으로 계약을 깬 뒤에 훨씬 더 많은 돈을 받고 재계약할 생각이라고.”
다저스 구단에서 2년 후 계약 해지 옵션(바이 아웃)을 넣은 것처럼 조쉬 애버튼도 2년 후 계약 해지 옵션(옵트 아웃)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다저스는 박유성의 영입을 원하고 있고 조쉬 애버튼은 브라이언 조던이 보다 좋은 조건으로 장기 계약하길 바라고 있으니 2년 후 옵션은 서로에게 윈윈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조쉬 애버튼은 이번 장기 계약이 땜질 계약처럼 비치는 걸 원치 않았다.
“계약 조건이 오픈되면 언론에서 뭐라고 떠들 것 같아?”
“원안대로 계약한다면…… 2년짜리 단기 계약이라고 하겠죠.”
“그래. 우리가 썬을 원하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아마 썬과 엮어서 떠들어대겠지. 그럴수록 팬들도 브라이언 조던보다 썬을 원할 테고.”
“자연스럽게 브라이언 조던도 새 팀을 알아보게 되겠죠.”
“그 정도만 되어도 썬은 다저스를 눈여겨볼 거야. 돈 싸움은 그다음 일이라고.”
에이전트인 조쉬 애버튼이 철저하게 자신의 고객인 브라이언 조던의 입장만 대변하는 것처럼.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도 2년 후 바이 아웃 조항으로 인해 브라이언 조던의 자존심이 상하는 걸 신경 쓰지 않았다.
브라이언 조던보다 나은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라 마지못해 재계약을 추진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6년이라는 계약 기간을 다 채워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설사 2년 후 옵션을 비밀에 부친다 해도 썬이 지금처럼만 활약해 준다면 다저스 팬들은 썬을 원할 겁니다.”
“그래.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애꿎은 선수들이 도마 위에 오를 거야. 6년 계약을 한 브라이언 조던과 썬이 공존할 수도 있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는 팬들이 나올 거라고.”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의 말처럼 2년 바이 아웃 조건을 공개하는 것과 감추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바이 아웃 조건이 알려질 경우 팬들은 당연히 브라이언 조던의 계약 기간을 썬의 영입 직전까지로 예상하겠지만.
바이 아웃 조건을 모른다면 6년이라는 계약 기간만 보고 브라이언 조던이 한동안 다저스 외야의 한 축을 담당할 거라 오해할 가능성이 높았다.
“다른 구단에서 한목소리로 썬을 원할 때 우리 팬들은 여러 옵션들을 가지고 싸워댈 거야. 그런 모습들이 썬과 썬의 에이전트에게 부정적으로 보이겠지. 로이 자네라면 어떨까? 자네 자리가 확실히 정해진 구단과 보직 이동으로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구단. 어디로 가고 싶겠어?”
“그야…… 당연히 자리가 확실한 구단이겠죠.”
“그래. 난 올해 초부터 썬을 다저스에 데려오고 싶었어. 썬은 이미 내 계획 안에 들어 있는 선수라고. 그런 사실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려면 포지션 정리부터 확실하게 해놓아야 해. 그걸 망치는 건 설사 마크라 해도 용납할 수 없어.”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의 입에서 구단주의 이름까지 나오자 로이 홀랜드 보좌역도 더는 재계약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박유성이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7연타석 홈런포를 쏘아 올리며 전 세계 야구 팬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계약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2
이글스와 원정 3연전을 치르기 전까지만 해도 박유성의 기록 경신은 시간이 걸릴 거란 의견이 많았다.
“박유성 홈런 경신까지 12개 남았지?”
“홈런 12개에 타점 17개.”
“8월 안에 가능할까?”
“쉽지 않을걸? 지난달에 홈런 7개에 19타점이었잖아. 올스타전으로 경기 수 좀 빠진 거 감안해도 힘들걸?”
4월부터 시작된 7할 맹타는 계속 유지 중이지만.
박유성의 월간 홈런과 타점 추이는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15개로 시작했던 홈런은 10개와 9개에 이어 7개로 내려왔고.
타점도 41타점에서 31타점, 27타점, 19타점으로 하락세였다.
하지만 이글스와의 3연전에서 무려 네 개의 기록을 세운 박유성은 히어로즈와의 홈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이승엽의 기록을 넘어서더니 내친김에 이대오가 가지고 있던 9연속 경기 홈런 기록까지 깨버리며 야구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