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311화 (311/412)

타자 인생 3회차! 311화

37. 어나더 레벨(2)

따악!

경기장에 날카로운 파열음이 울려 퍼지는 순간.

“젠장할.”

“하아. X발 진짜 못 해 먹겠네.”

안지민과 이근수의 입에서 동시에 욕지거리가 터져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유성은 센터 쪽으로 뻗어나가는 타구를 잠시 지켜봤다가 천천히 그라운드를 돌아 홈을 밟았고.

그 모습이 경기장을 찾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눈에는 개선장군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 7연타석 홈런이지?”

“맞아. 세계 야구 역사에 7연타석 홈런은 처음이라고.”

“아니야. 잘 찾아보면 어딘가에서 7연타석 홈런 기록이 나왔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 정도 레벨의 리그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지.”

박유성이 스타즈와 입단 계약을 맺었을 당시만 해도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박유성에 대한 관심을 거둬들였다.

LA 올림픽에서 반짝 스타덤이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했으니 딱 그 정도의 선수일지 모른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을 멱살 잡고 우승으로 이끌자 분위기가 돌변했다.

스타즈 원정 개막전 때부터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출현했고.

7할이 넘는 방망이로 4월을 불태우자 스몰 마켓 구단들까지 스카우트를 보내 박유성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그렇게 스타즈의 홈, 원정을 가리지 않고 따라다니던 스카우트들에게 어제 경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내가 밤새 썬의 타격 영상을 돌려봤는데 말이야. 확실히 평소와는 달랐어.”

“그걸 영상을 돌려보고 안 거야?”

“그냥 하는 말이 아니야. 평소에 거의 건드리지 않았던 코스의 공을 때려서 홈런으로 만들었다고.”

“썬은 7할 타자야. 3할만 쳐도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타격에서 7할을 치고 있다고.”

옆에서 다른 스카우트들이 떠드는 이야기를 듣던 다저스의 스카우트 미셸 라슨이 사수인 조나단 짐머맨을 바라봤다.

그러자 조나단 짐머맨이 한숨을 내쉬며 보충 설명을 이어나갔다.

“솔직히 썬의 타격 재능에 비해 홈런 생산력이 아쉬웠던 게 사실이야. 3할 타자는 실투만 놓치지 않아도 충분하지만 7할 타자는 달라. 보통 70퍼센트 이상의 승산으로 타자와 싸우는 투수가 30퍼센트도 안 되는 확률로 썬을 상대해야 한다고. 그럼 어떻게 되겠어?”

“승부를 피하겠죠?”

“그래. 그게 포인트야. 물론 월드 시리즈 7차전 박빙의 상황에서 마크 스테리나 로비 마르티네즈를 만난다면 무리해서 승부를 걸 필요는 없어. 특히나 주자가 있는 상황이라면 말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타석에서 볼넷을 주지는 않을 거야. 어쨌거나 둘은 3할대 타자니까.”

“통계적으로 세 타석 중에 한 타석만 안타가 나온다는 거죠?”

“어떤 날은 3안타를 때릴 수도 있고 어떤 날은 안타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타율을 놓고 봤을 때 계속해서 안타를 때려낼 가능성은 지극히 낮아. 하지만 썬은 달라.”

“7할이면 세 타석 중에 두 번 아니에요?”

“그 이상이지. 네 타석 중에 세 번 안타를 치는 꼴인데 그러면 굳이 승부를 해야 할까?”

“그래도 25퍼센트의 확률을 노려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단순한 생각이 경기를 망치는 거야.”

“……?”

“아까 말했잖아. 3할 타자도 어떤 날은 3안타를 치지만 어떤 날은 안타 없이 빈손으로 돌아가기도 한다고. 3할이라는 건 결국 평균치야. 그리고 그 평균치가 높을수록 훨씬 더 좋은 활약을 펼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지.”

“썬의 7할 타율도 결국 평균치잖아요.”

“그래. 평균치야. 하지만 3할 타자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어나더 레벨의 수치야. 간단하게 생각해 봐. 한 경기에 5타석씩 들어서는 타자가 20경기 동안 3할을 치려면 총 30개의 안타가 필요해. 만약에 첫 세 경기에서 안타를 못 쳤다고 가정하자고. 그럼 남은 경기에서 얼마만큼 잘 쳐야 할까?”

“잠깐만요. 결국 85타석에서 30개 안타를 쳐야 하니까 0.353이네요.”

“그래. 평균치보다 5푼 3리 정도 더 잘 치면 되는 거지. 그럼 썬의 예를 들어볼까? 썬은 어제까지 타율이 0.737이었어. 이걸 편의상 7할로 잡자고.”

“7할이면 100타석에 70개 안타가 필요해요.”

“만약에 세 경기에서 안타를 못 친다면?”

“그럼 70안타를 85타석 안에 해치워야 하니까 0.824네요.”

미셸 라슨이 빠르게 계산을 마쳤다. 하지만 조나단 짐머맨이 원하는 건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그럼 조금 더 가혹한 조건을 대입해 볼까? 3경기가 아니라 6경기에서 안타를 치지 못했다고 가정해 보자고. 그럼 어떻게 될 것 같아?”

“그렇다면 3할 타자는 남은 경기에서 0.429의 타율을 기록해야 하고 썬은…….”

“썬은?”

“전 타석에서 안타를 때려내야 하는데요?”

“그래. 이제 좀 감이 와?”

“와……. 7할이 이 정도로 어려운 거였어요?”

“고작 3할 타자의 두 배 정도 잘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 수학자들이나 하는 짓이야. 야구에서 왜 수준급 타자의 기준이 3할이라고 생각해? 그건 리그 평균 타율이 3할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난해 내셔널리그 평균 타율은 0.243.

아메리칸 리그는 0.241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수백여 명의 타자들 중에 3할 이상을 기록한 건 양대 리그를 통틀어 고작 20명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3할 타자가 되려면 평균보다 25퍼센트 정도 타격을 잘해야 해. 그럼 썬은 어떨까?”

“한국 리그와 메이저리그를 직접 비교하는 건 어렵지만 리그를 무시하고 계산하면 300퍼센트 정도 잘해야겠네요.”

“이제 좀 감이 와?”

“네.”

“평균보다 25퍼센트만 잘해도 최고라 불리는데 썬은 무려 300퍼센트를 잘하고 있다고. 리그의 차이? 좋아. 그 리그의 차이가 어느 정도일까? 메이저리그가 한국보다 10배 정도 수준 높을까?”

“그 정도까진 아니죠.”

“10배 차이가 난다고 해도 썬은 메이저리그 최고 레벨이야. 그런데 그 정도 차이가 나지도 않지.”

“그랬다면 한국이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겠죠.”

“썬의 활약상을 냉정하게 판단하려면 말이야. 정확한 상황을 인지해야 한다고.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볼까? 썬이 지금처럼 잘한다고 가정했을 때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과연 썬과 정면 승부를 하려고 들까?”

“솔직히 힘들지 않을까요?”

“물론 누군가는 아시아 선수라고 깔볼 거야. 누군가는 승부욕이 지나쳐 일단 부딪치고 볼 테고. 하지만 썬이 5할, 아니, 4할만 쳐도 어지간한 투수들은 쉽게 승부하지 못할 거야.”

“그럼 크리스 반스는 어떨까요?”

미셸 라슨이 뜬금없이 질문을 했다. 불현듯 박유성이 메이저리그에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던 크리스 반스의 SNS 메시지가 떠오른 것이다.

그러자 조나단 짐머맨이 미간을 찌푸렸다.

“크리스 반스라 해도 다를 건 없어. 오히려 썬은 크리스 반스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고.”

“마크 스테리보다 썬이 더 까다로울 거라는 이야기죠?”

“어제 경기 전까지는 다른 까다로움이었어. 마크 스테리는 장타력이 부담스럽지만 썬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어제 경기 이후로 상황이 달라졌지. 메이저리그에서 내로라하는 거포들처럼 썬도 홈런을 만들어 때릴 수 있어. 지금까지는 그저 홈런 욕심을 내지 않았을 뿐이야.”

일본 언론에서는 고작 한 경기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하고 있지만.

어제 경기를 지켜본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박유성이 지금껏 실력을 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두 번째 타석과 세 번째 타석에서 연달아 만루 홈런을 때려내기 전에 투수를 몰아붙이는 공격성과 네 번째 타석과 다섯 번째 타석에서 홈런을 때려내기 어려운 코스의 유인구를 받아쳐 홈런을 만들어내는 기술은 운이 좋았다며 깎아내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홈런도 홈런이지만 어제 썬의 메이크 업은 최고였어.”

“메이크 업이요?”

“어제 경기 직전에 썬의 여동생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가 났던 거 알고 있지?”

“네. 들었어요. 썬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기자가 일부 조작된 인터뷰를 근거로 썬의 동생을 공격했잖아요.”

“그래. 메이저리그 선수들에게도 가족과 관련된 이슈는 민감한 문제야. 아내의 출산이 임박했을 때 휴가를 떠나는 것도 경기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야.”

“결국 야구는 팀 스포츠니까요.”

“만약에 어제 썬이 여동생의 일로 형편없는 경기를 펼쳤다고 생각해 봐. 그럼 어떻게 됐을까?”

“어떻게 됐을 것 같은데요?”

“아마 스타즈는 연패에 빠졌을 거야.”

“에이, 스타즈는 올 시즌 연패를 한 게 단 두 번뿐인데요?”

“연패를 거의 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썬이 있었기 때문이야. 연패를 당할 때처럼 투수들이 갑자기 무너지는 날에는 썬도 어쩔 수 없지만 투수들이 어지간히 버텨주면 썬이 경기 분위기를 바꿔 버린다고. 실제로 어제 경기를 봐. 14점 중에 다른 타자들이 만들어낸 타점은 한 점도 없어.”

“썬이 앞에서 다 쓸어담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썬은 클린업이 아니라 톱타자야. 하위 타자들이 만들어낸 밥상은 클린업까지 거의 연결되지 않는다고.”

메이크 업은 선수의 멘탈적인 영역을 평가하는 메이저리그 용어이다.

인성부터 시작해 승부 근성, 위기관리 능력, 배짱, 직업 윤리 의식 등 많은 요소들이 메이크 업 속에 포함되는데 박유성은 평소와 다른 공격적인 타격으로 자신으로 인해 어수선해진 팀 분위기를 바로잡고 팀을 대승으로 이끌었다.

“클럽 하우스 리더의 유형 중에 최고는 실력으로 솔선수범하는 스타일이야. 스스로 열심히 해서 다른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또 결정적인 순간에 활약해서 승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선수가 있으면 월드 시리즈 우승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고.”

“그런 리더십을 썬이 어제 보여줬다는 거네요?”

“저길 봐. 썬에 대해 멋대로 떠들어대던 녀석들이 조용히 야구를 지켜보고 있잖아?”

조나단 짐머맨이 한쪽으로 턱짓을 했다.

평소 아시아 선수들이 실력 대비 지나치게 많은 돈을 받고 있다며 불만을 늘어놓던 스카우트들이 입을 꾹 다문 채 경기장만 응시하고 있었다.

“저 녀석들도 느낀 거야. 썬이 단순히 실력만 좋은 타자가 아니라는 걸 말이야.”

“이거 이러다 내후년에 진짜 전쟁이 벌어지겠는데요?”

“벌어지겠지. 하지만 난 썬이 다저스 유니폼을 입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무엇보다 앤드류가 썬에게 푹 빠져 있으니까.”

조나단 짐머맨의 말처럼 앤드류 프라이드맨 다저스 사장은 매일같이 구단주에게 전화를 걸어 박유성의 소식을 전했다.

“마크! 기사 봤어요?”

-무슨 기사? 또 썬 얘기야?

“썬이 오늘 2개의 홈런을 때려냈어요. 세계 최초로 7연타석 홈런을 때려냈다고요.”

-그래봐야 한국 리그잖아.

“마크.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쏭과 키, 캄도 썬처럼 잘하진 못했다고요.”

-알았어. 영입 자금을 넉넉하게 지원해 줄 테니까 그만 좀 전화해.

“마크! 썬의 몸값은 계속 오르고 있어요. 마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자금이 들어갈지 모른다고요.”

-알았다니까 그러네. 나 지금 회의 들어가 봐야 하니까 이만 끊자고.

평소였다면 일방적으로 끊긴 전화에 짜증을 냈겠지만.

정작 앤드류 프라이드맨 사장은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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