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타자 인생 3회차-310화 (310/412)

타자 인생 3회차! 310화

37. 어나더 레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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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성이 세계 최초 한 경기 5연타석 홈런과 홈런 사이클, 한 경기 최다 타점 기록을 세운 그 날.

각종 커뮤니티에는 이글스에 대한 칭찬이 쏟아졌다.

└박유성 대기록 작성 특급 도우미는 이글스인 거 인정?

└인정 받고 인정이요.

└마지막 타석 때 승부 안 할 줄 알았는데 승부하는 거 보고 감동이었음.

└이글스 팬이라서가 아니라 오늘은 이글스가 자랑스러움.

└저도요. 14 대 0으로 진 걸 떠나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ㅠ.ㅠ

└오늘 이글스는 스타즈에 진 게 아닙니다. 박유성에게 졌습니다.

└뇌절 좀 적당히. 진 건 진 거죠.

└뇌절 아니고 팩트인데? 14실점 전부 박유성한테 털렸고 다른 스타즈 선수들은 1타점도 못 올렸는데?

└솔직히 오늘 경기 보고 다른 구단에서 박유성을 왜 피해갔는지 확실히 이해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열심히 싸워준 이글스 선수들 고맙습니다. 유성이하고 승부하게 해준 손진우 감독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승부 기울었는데 자리 뜨지 않고 박유성 선수에게 박수 보내준 이글스 팬들 정말 멋집니다!

└직관 썰을 풀자면 솔직히 연타석 만루 홈런 얻어맞았을 때 그냥 가자는 얘기가 나왔음. 근데 경기 중반이었던 것도 있고 누가 박유성 한 경기 최다 타점 타이기록이라고 해서 끝까지 버틴 거임. ㅋㅋㅋ

└팀은 졌지만 대한민국 프로 야구 역사와 함께하셨네요.

└정말 쓴 돈이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ㅎㅎ

└박유성 홈런 페이스 뚝 떨어졌다고 깝치던 인간들 다 어디갔음?

└워워. 오늘같이 좋은 날 광역 어그로는 자제하세요.

└진짜 안 보이긴 하네요. 경기 전까지만 해도 박유성 적극성 어쩌고 잘만 떠들어대 놓고 머리카락도 안 보임. ㅋㅋ

└오늘 경기 봤으면 그딴 개소리 못 하죠. ㅎㅎ 첫 타석 빼고 전부 억지로 홈런 때렸잖아요.

└두 번째 타석에서 박유성이 빠지는 공까지 전부 걷어내니까 얼굴 시뻘게지던데요? ㅋㅋ

└오늘 홈런의 하이라이트는 4번째 홈런이었음. 최윤준 싱커를 그런 식으로 걷어 올려서 홈런 칠 줄은 몰랐음.

└유재식 슬라이더 밀어 친 게 더 어려웠습니다. 그건 치지 말라고 던진 건데 박유성이 완벽하게 찍어 때려서 넘긴 거임.

애당초 정면 승부를 하라고 지시한 게 아니었지만.

손진우 감독과 이글스 코칭스태프들은 커뮤니티의 반응에 많은 걸 느꼈다.

“이 코치. 지금 3위하고 몇 경기 차이지?”

“18경기입니다.”

“올 시즌은 힘들겠지?”

“솔직히 말해서 어렵습니다.”

“그럼 너무 아등바등거리지 말자고. 지금부터 전승해도 솔직히 포스트 시즌 진출 어려운 거잖아.”

잔여 경기가 40경기 앞으로 다가온 현재 포스트 시즌 진출을 두고 순위 싸움에 불꽃이 튀는 중이었다.

나눔 리그의 경우 스타즈가 1위를 사실상 확정 지은 가운데 타이거즈와 트윈스가 2위 다툼을 벌이는 중이고.

드림 리그는 히어로즈와 위즈, 베어스, 다이노스가 서로 물고 물리며 시즌 막판까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난해 리그 3위로 포스트 시즌 막차를 탄 뒤에 한국 시리즈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내긴 했지만 가능성이 희박한 포스트 시즌 티켓에 집착하는 것도 미련한 짓.

“이렇게 된 거 슬슬 백업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자고.”

“알겠습니다. 감독님. 다만 이번 스타즈 시리즈까지는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지. 이제 와서 갑자기 주전들 빼버리면 우리가 억지로 기록 만들어준 거 같잖아. 대신에 투수들 부담 주지 마. 승부하고 싶으면 승부하라고 해.”

“유성이하고 붙어보는 것도 다 경험이니까요.”

“그렇지. 이번 시즌 유성이 삼진 한 번도 안 당했잖아? 만약에 우리 팀 투수들 중에 누가 유성이 삼진 잡아봐. 아마 회장실에서 금일봉 내려올걸?”

손진우 감독의 주문대로 이상균 수석 코치는 투수들을 따로 불러 박유성에게 삼진을 뺏어보라고 자극했다.

“어제 경기에서 겪어봐서 알겠지만 유성이 저거 진짜다. 아마 지금 당장 메이저리그 가도 4할은 칠 거야. 그러니까 맞는 걸 두려워하지 마. 반대로 생각해라. 저렇게 대단한 타자와 싸울 수 있는 걸 즐겨. 알았지?”

선발로 등판한 5선발 안지민은 박유성을 상대로 삼진을 잡아보라는 이상균 수석 코치의 말에 꽂혔다.

“오늘 경기에서 내가 삼진을 잡으면 박유성 프로 인생에 첫 탈삼진이라는 거지? 좋아. 한번 해보자.”

오른손으로 로진 백을 힘껏 움켜쥔 안지민은 박유성을 향해 초구부터 빠른 공을 찔러넣었다.

-몸 쪽 높은공! 안지민 선수가 어제 5연타석 홈런을 때려낸 박유성 선수를 상대로 초구부터 스트라이크를 잡아냅니다.

-박유성 선수는 공이 조금 높았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요. 구심은 스트라이크를 잡아줬습니다.

-지금 전광판에 154㎞/h가 찍혔는데요.

-저 공이 제구만 된다면 이글스의 선발진이 더 탄탄해질 텐데요. 그 점이 좀 아쉽습니다.

양대 리그가 시행되기 직전인 2023년 말.

이글스는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경성 고등학교 우완 투수 안지민을 호명했다.

191㎝의 건장한 체격에 155㎞/h의 빠른 공을 던지는 어깨를 높이 평가한 것이다.

안지민도 선발 경쟁이 치열한 다른 팀보다 이글스행을 반겼다.

“이글스에서 꼭 10승 투수가 되겠습니다.”

야구 전문가들은 당찬 신인 안지민이 이글스의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안지민은 좀처럼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불안한 제구를 해결하느라 2년간 2군에 머물러야 했고.

이후 군 복무를 해결하느라 다시 2년간 상무에서 뛰게 됐다.

2027년 처음으로 선발 기회를 잡았지만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다시 2군으로 내려갔고.

지난해 후반기에 다시 불펜 자원으로 1군으로 올라왔다가 올 시즌 처음으로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는 중이었다.

안지민이 팀의 기둥이 되어주길 바랐던 이글스 팬들 입장에서는 아픈 손가락인 셈.

그러나 안지민의 미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박유성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공 좋네. 괜히 제2의 송찬우가 아니야.”

박유성이 기억하는 안지민은 대기만성형 타자였다.

보통 유망주 소리를 듣다가 노망주로 넘어가는 선수들 중에 태반은 옷을 벗지만 안지민은 달랐다.

시점에 조금 차이가 있지만 1회차 시절과 2회차 시절 모두 서른을 넘긴 나이에 갑자기 제구가 잡히더니 이글스의 우완 에이스로 거듭났다.

게다가 한창때 어깨를 아낀 덕분에 마흔 살까지 마운드에서 버티다 은퇴를 했다.

‘지민이 형 공은 해가 지날수록 까다로웠지.’

안지민이 제2의 송찬우라 불렸던 가장 큰 이유는 송찬우처럼 다양한 구종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만 하더라도 빠른 공과 슬라이더, 커브밖에 던질 줄 몰랐던 안지민은 팀에 합류한 외국인 용병 투수에게 체인지업을, 일본인 코치에게 포크 볼을 전수받으며 팔색조로 거듭났고.

그 구종들을 수준급 이상으로 던지기 시작하면서 에이스급 투수 반열에 올라섰다.

비록 나이가 많아서 FA 대박을 터뜨리지도, 국가 대표팀에 승선하지도 못했지만 프로 40년 차 박유성이 인정하는, 몇 안 되는 국내 투수들 중 한 명이었다.

-안지민 선수가 2구를 던집니다. 2구도 몸 쪽! 다시 한번 빠른 공을 찔러 넣었습니다.

-안지민 선수. 확실히 과감하네요. 경성 고등학교 시절에도 저런 배짱 있는 공이 타자들에게 먹혔거든요? 워낙에 볼 끝이 좋은 투수이다 보니 박유성 선수도 쉽게 방망이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빠른 공으로 승부하다 보면 결국 눈에 익게 될 텐데요.

-그래서 이번 공이 중요합니다. 뺄 거면 확실히 빼고 속일 거면 박유성 선수가 속을 만한 공을 던져야 해요. 이도 저도 아닌 공은 의미가 없습니다.

이글스의 주전 포수 이근수도 3구째 바깥쪽으로 빠지는 포심 패스트 볼 사인을 냈다.

빠른 공에 박유성의 방망이가 딸려 나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일단은 시선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었다.

“후우…….”

길게 숨을 내쉬며 안지민이 단단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완전히 바깥쪽으로 빠져 앉은 이근수를 향해 있는 힘껏 공을 내던졌다.

후앗!

안지민의 손끝을 빠져나간 공이 한복판을 지나 밖으로 도망치자 박유성은 지체 없이 방망이를 휘둘렀다.

전성기 때의 안지민이라면 절대 건드리지 않았겠지만.

올해 처음으로 풀타임 선발에 도전 중인 안지민은 제구가 형편없었다.

그나마 빠른 공은 제구가 되는 편이지만 변화구는 못 봐줄 정도의 수준.

‘이걸 쳐야 해.’

애당초 머릿속에 빠른 공 하나만 염두에 두고 타석에 들어선 터라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걸려들었어!’

박유성이 반응하자 이근수는 속으로 쾌재를 내질렀다.

제아무리 박유성이라 해도 이 공을 그라운드 안으로 밀어넣지는 못할 거라 여겼다.

하지만 이근우의 예상보다 빠르게 허리를 빠져나온 방망이는 스트라이크 존 가장자리를 스치듯 빠져나가던 공을 그대로 집어삼키고는.

따악!

그대로 외야 쪽으로 날려 버렸다.

-아아, 큽니다! 쭉쭉 뻗어 넘어갑니다! 좌측 팬스! 좌측 팬스! 좌측 팬스 뒤에 떨어집니다!

-와아. 이걸 넘기네요.

-홈런! 박유성 선수가 이번 시즌 50호 홈런을 안지민 선수에게서 빼앗아냅니다!

“대단하군. 대단해.”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손진우 감독은 그저 헛웃음만 났다.

이근수의 요구보다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방금 전 안지민이 던진 공은 칠 수 있는 타이밍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조금만 서둘러도 1, 2루간 땅볼이 나기 십상이고.

조금만 늦어도 파울이 될 수밖에 없는 공이었다.

그런데 그런 공을 완벽한 타이밍으로 때려내 왼쪽 폴대 안으로 밀어 넣었다.

7할 타자니까 그 정도쯤은 식은 죽 먹기 아니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런 완벽한 타격은 한두 해 방망이를 휘두르는 정도로는 흉내조차 내기 어려웠다.

“김 코치. 신인이 저게 가능한 거야?”

손진우 감독이 김희성 타격 코치를 찾았다. 그러자 김희성 타격 코치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애들은 알려줘도 저렇게 못 칠 거 같습니다.”

이글스에도 기대를 모으는 타자들이 적지 않지만 박유성은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야구 천재였다.

그것도 단순히 공을 맞히는 재주만 뛰어난 게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가 박유성의 머릿속에 대한민국 투수들의 모든 피칭 데이터를 심어놓기라도 한 것처럼 완벽한 타이밍에 공을 때려내고 있었다.

“하아. 우리 지역에서는 유성이 같은 녀석 안 나오나?”

“그렇지 않아도 찾아보고 있는데 올해도 딱히 건질 선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전면 드래프트를 실시해야 해. 잘하는 녀석들은 전부 서울로 가버리니까 뽑을 선수가 없잖아.”

“그러게나 말입니다.”

작년 일부 구단에서 프로 농구식 드래프트 추첨제를 도입하자고 제안했을 때 코웃음쳤던 걸 떠올리며 손진우 감독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약에 박유성이 한 시즌만이라도 이글스에서 뛰어준다면 참 좋을 텐데.

상대 팀 감독으로서 지켜봐야만 한다는 사실이 야속하기만 했다.

박유성이 솔로포로 기선 제압에 나섰지만 스타즈의 추가 득점은 나오지 않았다.

어제 경기와 마찬가지로 박유성의 홈런에 자극을 받은 타자들의 스윙이 커지면서 안지민을 도와준 것이다.

그렇게 8타자를 연속 범타로 잡아낸 안지민은 3회 초, 2사 주자 없는 가운데 다시 박유성을 상대하게 됐다.

-볼 카운트 원 볼 원 스트라이크에서 이제 3구를 던집니다. 몸 쪽! 이 공이 다시 한번 박유성 선수의 방망이에 찍힙니다!

앞선 타석의 복수를 하겠다며 안지민이 과감하게 몸 쪽 빠른 공을 내리꽂았지만 공은 보기 좋게 한복판으로 몰렸고.

6연타석 홈런으로 타격감이 절정이던 박유성은 그 실투를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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