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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인생 3회차-309화 (309/412)

타자 인생 3회차! 309화

36. 기록의 사나이(11)

박유성의 연타석 홈런을 인터넷 중계로 지켜보던 안성태 스포츠부 편집부장도 이맛살을 찌푸렸다.

“젠장할. 이러면 나가리인데.”

그러다 연타석 만루 홈런이 터지자 더는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최성국!”

“저녁 먹으러 나가셨는데요?”

“지금 당장 들어오라고 해! 당장!”

안성태 편집부장의 호통이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성국 스포츠 1팀장이 허겁지겁 나타났다.

“어딜 갔다 온 거야?”

“죄송합니다. 밥 좀 먹느라…….”

“경기 봤어?”

“네. 봤습니다.”

“봤는데 지금 밥이 넘어 가? 제정신이야? 회사가 놀이터야?”

“죄송합니다. 부장님.”

“암튼 지금 기사 싹 다 스톱해! 알았어?”

다른 때 같았다면 일방적인 지시에 불만을 드러냈을 테지만.

최성국 팀장은 군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 역시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것이다.

“홍 기자는 어딨어?”

“퇴근했는데요?”

“뭐? 멋대로 똥을 싸질러 놓고 퇴근을 해?”

“전화할까요?”

“지금 당장 와서 똥 싼 거 치우라고 해!”

자리로 돌아온 최성국 팀장은 자리에 없는 홍민호 기자에게 화풀이를 했다.

그러다 생각이 바뀌었는지 막 전화를 걸려는 기자를 막아 세웠다.

“전화하지 마.”

“네?”

“홍민호 부르지 말라고.”

“아, 넵!”

“홍민호는 내버려 두고 지금부터 철저하게 박유성 기록에 맞춰서 기사 써.”

남아 있는 기자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뒤 최성국 팀장은 자리에 앉아 인터넷 중계 페이지에 접속했다.

이미 3연타석 홈런에 연타석 만루 홈런과 한 경기 최다 홈런 타이 기록을 세운 만큼 방향성이 달라질 일은 없었지만 혹시라도 박유성이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거나 이글스가 9점 차이를 뒤집고 역전승할까 봐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그 조마조마한 마음은 5회 초에 완전히 사라졌다.

-이 타구가 또다시 담장을 넘어갑니다!

플라이인가 싶어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던 최성국 팀장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4연타석 홈런에 12타점이라. 그대로 밀고 나갔다가 큰일날 뻔했네.”

여전히 7할 타율을 유지 중이지만 최근 박유성의 활약상은 시즌 초만 못한 느낌이 컸다.

4월 한 달간 박유성이 선보인 퍼포먼스는 실로 경이로웠다.

0.756의 타율과 15개의 홈런, 41타점, 33도루까지 프로 야구 역사는 물론이고 전 세계 야구 역사에도 없었던 전무후무한 퍼포먼스였다.

4월이 끝났을 때 여러 매체에서 박유성의 시즌 성적을 대폭 상향했다.

최소 80개 이상의 홈런과 180개 이상의 도루, 200타점까지.

야구인지 야구 게임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터무니없는 기록들이 언급됐다.

하지만 5월과 6월, 7월을 거치면서 박유성의 기대치는 확 꺾여 있었다.

7할이라는 터무니없는 타율은 유지 중이지만 80홈런과 180도루, 200타점의 목표를 달성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그 과정에서 박유성을 신처럼 떠받들던 야구 팬들의 목소리에도 힘이 빠졌다.

박유성의 야구 실력은 인정하지만 다소 아쉬운 장타력으로 과연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이 어려워진 것이다.

이를 두고 현장의 야구 기자들은 박유성의 날개가 꺾였다고 표현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야구의 신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지.”

“박유성이 진짜 야구의 신이었으면 억지라도 홈런을 뻥뻥 때려내야 하는 거 아냐?”

“투수들이 피해주니까 얼씨구나 하면서 스탯 관리하는 거지. 막말로 투수들이 맘먹고 달려들었으면 7할 유지 못 했을걸?”

“물론 지금도 대단하지. 대단해. 프로 야구는 물론이고 전 세계 야구 역사에 다시 없을 퍼포먼스인 거 인정해. 하지만 딱 거기까지인 거 같아.”

오늘 박유성의 동생과 관련한 기사가 터졌을 때 생각보다 많은 매체에서 호응했던 것도 박유성의 격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 리스크라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박유성이 보란 듯이 4연타석 홈런을 때려내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그저 갑자기 4연타석 홈런을 때려내도 놀라운 마당에 여동생과 관련한 불미스러운 기사를 접한 상태에서 괴력을 뿜어내고 있으니 그 경외로움을 감히 훼손할 수가 없었다.

“일본 한 경기 최다 타점 기록이 몇 개야?”

“일본은 11개. 메이저리그는 12개입니다.”

“지금 메이저리그하고 타이야?”

“리그는 다르지만 숫자는 동률입니다.”

“리그가 다른 게 무슨 상관이야? 박유성은 1번 타자인데.”

“지금 커뮤니티도 야구의 신이 재림했다면서 난리가 아닙니다.”

“여동생 관련 얘기는 없고?”

“올라오는 족족 비추 테러 맞고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 정도야?”

“박유성 팬들 눈깔 돈 거 같습니다.”

경기 직전까지만 해도 커뮤니티의 반응은 박유성을 비난하는 의견과 박유성의 말을 들어봐야 한다는 의견으로 팽팽히 갈렸다.

그런데 그 분위기가 단숨에 뒤집혔으니 박유선 건을 다뤄봐야 좋을 게 없었다.

“박유성 여동생 건, 홍 기자 거 빼고 전부 다 내려.”

“홍 선배 거는 그냥 둡니까?”

“홍 기자 자기 기사 건드리면 언론탄압이네 뭐네 게거품 물잖아. 그러니까 내버려 둬. 자기가 싼 똥은 자기가 알아서 치우겠지.”

최성국 팀장의 입에서 똥이란 표현이 나오자 남아 있던 기자들은 서둘러 기사들을 삭제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0분 뒤.

-아아, 큽니다! 쭉쭉 뻗어나갑니다!

-하하. 이것도 넘어갔네요.

-좌익수 뒤로! 좌익수 뒤로! 이 타구마저 담장을 넘깁니다! 홈런! 투런! 박유성 선수가 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최초의 5연타석 홈런을 달성합니다!

7회 말 2사 1루 상황에서 박유성이 좌완 유재식의 슬라이더를 밀어 때려 투런 홈런을 때려내자 홍민호 기자의 입에서도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X발 뭐야, 진짜. 이 새끼 약 빤 거 아냐?”

모처럼 한 건 했다고 생각하고 일찍 집으로 돌아와 치맥을 즐기던 홍민호 기자는 뜯던 닭 다리를 내려놓았다.

맛있는 건 가장 마지막에 먹으려고 남겨놨던 건데.

박유성의 미친 활약상을 보다 보니 싸늘하게 식어서 비린 맛이 느껴졌다.

그때 경인 스포츠 최덕수 기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홍 기자. 스타즈 경기 봤어?

“내가 스타즈 경기를 왜 봐?”

-아직 안 봤으면 한번 봐. 지금 난리도 아니니까.

“홈런 좀 친 거 가지고 호들갑은.”

-뭐야? 봤어? 그런데 그런 말이 나와?

“그래서 뭐? 제 인기 이용해서 동생 주전 만든 게 사라져?”

-그거 확실한 것도 아니잖아?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가 직접 발품 팔아서…….”

-홍 기자. 우리끼린 솔직해지자. 어차피 논란만 만들면 되는 거니까 대충 취재하고 터뜨린 거잖아. 아니야?

“그래서 뭐?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우리 쪽은 기사 다 내렸어.

“뭐? 기사를 왜 내려? 그렇게 박유성이 무서워?”

-박유성도 박유성이지만 야구인들의 축제 날에 고춧가루를 뿌릴 수는 없잖아. 안 그래?

“축제는 무슨. 이글스가 X신같이 처맞은 거지 이게 무슨 축제야?”

-지금 커뮤니티에서 이글스 칭찬하고 난리도 아니야. 박유성하고 승부해 줬다면서 말이야. 그게 지금 야구 민심이야. 그러니까 홍 기자도 적당히 몸 사려.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끊어!”

통화를 마친 홍민호 기자는 한참을 씩씩거렸다.

이제 겨우 박유성을 무릎 꿇릴 기회를 잡았는데 몸을 사리라니.

어림도 없는 소리였다.

“50연타석 홈런을 쳐봐라. 네 잘못이 사라지나. 신성한 스포츠에 장난질을 한 순간부터 넌 끝이야, 인마.”

박유성이 중계 카메라에 잡힐 때마다 홍민호 기자는 악담을 쏟아냈다.

오늘은 운 좋게 넘겼을지 몰라도 박유선의 일이 공론화되면 제아무리 박유성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박유성도 순순히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팬 여러분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요?”

“먼저 오늘 불미스러운 기사로 심려를 끼쳐 드려서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도 경기 직전에 기사를 확인했는데 제가 신성 여중에 방문한 걸 가지고 모 기자님이 소설을 쓰셨더라고요. 제가 왜 신성 여중에 찾아갔는지는 아마 조만간 아시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저로도 부족해 제 가족까지 공격하신 것에 대해서는 저도 가만있지 않을 예정입니다.”

박유성의 폭탄 발언에 경기장을 지키고 있던 이글스 팬들이 박수를 쏟아냈다.

대패를 당한 것과 별개로 대한민국 야구계를 이끌어 나갈 슈퍼 루키의 당당함에 매료된 것이다.

“내가 말했지? 보나 마나 헛소리라고.”

“경기장 들어올 때는 오늘 박유성 멘탈 박살 났을 거라며?”

“그랬음 좋겠다는 거였지 기사가 진짜란 말은 아니었는데?”

“와, 이 자식 말 바꾸는 거 봐?”

“그나저나 이제 박유성에게 적극성 타령도 못 하겠다.”

“누가 내 앞에서 그딴 소리 떠들면 입을 찢어버리려고.”

“뭘 그렇게까지 해?”

“저기 전광판 안 보이냐? 14 대 0으로 졌는데 14타점을 올린 선수가 누구?”

“하아. X발. 잠깐 잊고 있었네.”

“이게 다 스탯 관리한다고 떠들어댄 새끼들 때문이잖아. 내가 장담하는데 그런 개소리 한 인간들 중에 이글스 팬들이 제일 적을걸?”

“우린 아니지. 우리가 괜히 보살이냐? 게다가 우리 볼넷 안 주고 전 타석 승부했잖아?”

“그건 좀……. 솔직히 두 번째 타석하고 세 번째 타석은 박유성이 볼넷을 거부한 거잖아.”

“그게 그거지. 막말로 피치 아웃 하거나 자동 고의4구로 걸렀어 봐. 박유성이 무슨 수로 치냐?”

“그건 또 그렇네? 우리 팀 좀 멋진 듯?”

“박유성한테 볼넷 주면서 구질구질하게 야구하느니 지더라도 화끈한 게 낫지.”

“그래. 그렇게라도 정신승리 하자고.”

양대 포털 사이트가 박유성의 대기록 작성으로 도배가 될 무렵.

신화 여자 중학교 취재에 나섰던 공윤경 기자의 기사가 올라왔다.

[단독] 박유성 갑질? 실제 피해자는 박유성의 여동생이었다.

그리고 해당 기사는 순식간에 스포츠 메인 기사로 올라갔다.

└박유성 여동생이 피해자라는 말이 무슨 소리야?

└1학년 선수들이 단톡 따로 파서 박유성 여동생 따돌렸다고 함.

└헐. 이유가 뭐임?

└그냥 오빠가 박유성이라 싫었대.

└박유성 여동생이 왕따당한 이유. 1. 박유성 여동생은 배구를 늦게 시작했다. 2. 늦게 시작했는데 재능이 있어서 전국 최강이라 불리는 신화 여중에 입학하게 됐다. 3. 신화여중 출신 국대 선수들이 찾아와서 박유선 챙기니까 질투가 났다. 4. 박유성이 직접 경기 응원까지 찾아오는 게 못마땅했다.

└이게 진짜면 가해자들이 피해자랍시고 인터뷰한 거네. 진짜 말세다. 말세야.

└박유성이 학교 찾아가서 청탁했다는 거 아니었어?

└박유성이 청탁한 게 아니라 신화 여중에서 후원 요청했다고 함.

└후원? 무슨 후원?

└전국 최강 타이틀 유지하려면 돈 들어가는 게 한두 푼이 아닌데 대다수 지원이 신화 여고에 몰려 있어서 지원이 필요하대. 그걸 야구 선수인 박유성에게 부탁했다고 함.

└그럼 그 대가로 박유성 여동생 주전 뛴 거임?

└박유성 여동생은 선발로 1경기 출전했고 다른 1학년들도 전부 선발 출전 경험이 있다고 함. 모두가 공평하게 출전한 거고 박유성도 후원 조건으로 동생에게 특별 대우 해주지 말라고 했다고 함.

└역시 갓유성. 믿고 있었다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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